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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세상 법정에 선 성도간의 송사문제

순전한신앙이야기 황부일목사............... 조회 수 2280 추천 수 0 2013.08.08 13: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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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순전한 신앙 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세상 법정에 선 성도간의 송사문제

 

오래 전 어느 법률가가 언론에서 자기 느낌을 밝힌 바에 의하면 종교 내 갈등과 분쟁으로 인하여 법정으로 올라온 사건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것이 제일로 다루기가 어렵고 골치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도 기독교계 내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갈등으로 인해 법정에 계류 중인 민형사 사건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데 가능한한 서로 그런 교계 사건은 안 맡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법과 얽혀서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교계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를 통해 볼 것 같으면 교회 분쟁으로 인해 서로 고소하고 고발하는 사건도 많고 교단끼리 얽힌 문제로 인해 법정에다 서로 소송한 일도 있고 교단내 정치문제로, 신학교 문제로, 어떤 재정문제로, 교단장 선출에서 부정선거 시비로, 불법문제로, 재단이사운영문제로, 심지어는 선교사업 문제로, 성경찬송출판이권문제로 폭력이나 명예훼손 시비 등으로 서로 고소하고 고발하고 소송을 제기하고 무효소송을 내고 가처분신청이나 가압류신청을 하는 교계 실재의 사건들이 연이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사가 목사끼리 고소하고 목사가 장로나 교인을 고소하고 반대로 교인이나 장로는 목사를 고소하고 교인들은 교인들끼리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세상 사람들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것이 정당한 것처럼 합니다. 또한 그랬다고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말하고 언론에 공포도 하고 있습니다. 기독 언론에는 주로 목사들 사건만 거론되어 나와서 그렇게 보이는지 몰라도 목사들이 고소 고발 소송재기는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어느 기독교 계통의 월간잡지에서 보니까 어느 목사가 그동안 자기가 20여년 담임 해온 교회 장로들을 걸고 은퇴 사례비가 적다고 법정에 고소한 일이 있었는데 그 목사는 그 교회를 담임해 오면서 거슬리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경찰에 고소한 전과가 있을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필자도 목사에 의해 고소당한 적이 있습니다. 순진했던 신학교 시절에 말은 전도사지만 무급으로 한 작은 교회 중∙고등부와 청년들을 가르치며 봉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연세 많은 담임 목사님이 노회 보고도 없이 예배당을 팔고 이전한 것이 문제가 되어 노회가 그것을 불법이라 하여 정치 문제로 다루고 전권 위원을 구성하여 새로운 목사를 당회장으로 위임하여 파송했던 것입니다. 교인들은 갑자기 나타나 내가 노회로부터 파송 받은 당회장이라며 자기 말을 거역하면 제명시키겠다고 엄포 놓는 그 목사를 거부하자 그때부터 교회는 분쟁으로 혼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로 모여 예배를 하려했지만 항상 몇 명의 젊은 사람을 동반하고 온 그 목사로 인해 번번이 아수라장이 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교인들은 대부분 떠나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방해 없이 드려지던 학생 청년 예배시간에 남아 있는 몇몇 교인들이 함께 나와 참여하면서 화살이 관여도 없는 내게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몇몇 학생과 청년회장을 데리고 노회 장을 찾아갔고 노회장이 가르쳐주는 전권 위원장을 찾아가서 지금 교회 분쟁으로 교인들이 떠나고 가족 된 학생들이 떠나니 교회를 살려달라고 순진하게도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답은 변함없이 노회가 파송한 목사를 받아들이든가 싫으면 두고 떠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장로교 큰 교단 노회였지만 그들의 목적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남은 교인들에게 있어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교회 분쟁과는 상관없이 토요일 주일마다 나오는 학생들을 두고 홀가분하게 떠난다는 것 또한 내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학생예배시간에 와서 방해하던 그 목사님 측과 청년 학생 간에 서로 밀고 버티는 과정에서 그 목사님은 학생들한테 폭력을 당했다고 주일인데도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고(1주가 나옴) 관할 경찰서에 고소를 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나는 앞선 주동자로 따로 고발되었고 피의자가 되어 경찰서에 가서 목사 때린 폭력 죄인 취급받으며 조사를 받았고 지청까지 가서 난생처음 검사에게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나를 고소한 그 목사도 함께 검사실에 왔는데 검사가 먼저 나에게 이 목사를 때린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 목사가 “야가 앞장서서 먼저 나를 때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검사는 “내가 목사님한테 물었습니까? 그렇다고 교회 학생들이나 교인들을 고발하고 고소하는 목사는 잘하는 짓인 줄 아세요?” 나는 당시 상황이나 그때의 느낌을 일기 식으로 기록해 놓은 노트가 참작이 되어 무혐의로 되고 말았지만 내게는 매우 커다란 상처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만큼 신학을 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로 낙담이 되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한 권속이요 믿음의 형제요 한 몸 된 지체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서로 고소하며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말씀의 법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목사들이 신앙의 지도자들이 그런다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권위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유익과 자기 권위와 자기 영광을 얻으려는데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획득을 위해 상대적인 자를 묶어 두거나 물리치기 위해 구속력 있는 세상 법을 가능한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그냥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 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기도 살기 위해 정당방위차원에서 같이 세상 법을 이용합니다. 물론 성도도 목회자도 세상에서 살다보니까 세상 법을 따라야 되는 것이며 또한 세상 법을 이용하여 권리나 기본권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끼리의 송사문제를 세상 법으로 가져가는 것은 분명 교회 된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백성이라 면서도 세상 법정에 고소한 일이 있었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당시 유대 교권주의 자들은 예수를 세상 법정인 빌라도 총독 앞으로 끌고가 고소했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를 로마의 빌라도 법정에 고소한 것입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교권에 위협을 느낀 것이며 또한 자기들의 인정받는 신앙과 가르침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이나 교훈이 그들에게는 정면적인 거스림이었고 또한 위협과 방해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주의 자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교권과 무리들로 인한 인기와 영광을 계속 누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느낀 예수님을 제거하기위해 세상 법정에 고소한 것입니다. 요즘에 보면 사이비나 이단들이 지적을 받고 몰리면 그 상대에 대해 가차 없이 이렇게 저렇게 얽혀서 세상 법에 고소하고 재판을 걸고 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사이비가 아니라 할지라도 교회 된 성도끼리 세상 법정에 재판을 걸고 서로 싸우며 대립하는 교회가 있었는데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헬라의 남부 아가야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가 성도끼리 일어나는 시비문제나 어떤 일로 인해 세상 법정이나 관청에 호소하고 고소하는 일에 대해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성령께서는 바울의 입을 빙자하여 책망합니다(고전 6:1-9 참조)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은 형제끼리의 문제,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성도간의 문제를 가지고 불의한 자들(믿지 아니하는 세상) 앞에서 송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는 완연한 우리의 허물인 잘못되고 부끄러운 처사가 되는 것이라고 증거 합니다. 세상이 오히려 교회 판단을 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의 참 판단이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 안에서 판단이 될 수도 없는 인간적이고 세상 적 기준으로 되어 있는 세상 법정에 송사하면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형제끼리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 판단하고 해결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누가 너희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며 너희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주며 억지로 오 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 리까지 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8-41). 그렇다면 성도는 불의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권리와 정당성을 주장하지 말고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란 말씀일까요?

 

예수님은 유대주의 자들로 인해 빌라도 법정에 서셨을 때 빌라도가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인데 왜 너의 나라 사람들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끌고 와 고소하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요 18:35-36).

 

그렇습니다. 우리가 손해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바보처럼 취급받으면서도 같이 대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양보하며 져주며 송사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여 이루며 영원히 누려야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명예와 영광과 권리와 재물과 높은 자리와 유익을 최고로 삼고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며 살벌하게 경쟁하는 세상 사람이 이제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처럼 현실의 여러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에 재판을 거는 자나 지지 않으려고 그런 자를 상대하여 함께 투쟁하려는 자를 지적하여 불의한 자들이라 했고 이런 자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증거 한 것입니다. 즉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림으로 세상 죽은 자들과 같다는 뜻이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모습과 삶으로 가지 못하는 자란 것을 분명히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성도간의 송사문제는 거의 일반화 되어버렸습니다. 누구하나 그것을 고민하며 이러면 안 된다고 신앙양심에 가책을 가지며 아파하는 자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자도 거의 없습니다. 하기사 오늘날 교회 상위 부서가 되는 교단 노회나 총회에 지도자들부터 서로 얽힌 문제를 가지고 툭하면 세상 법정 앞에서 공방을 해대니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통해 분명히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 교계는 교회 모습을 가르치며 이끌어야할 위에서부터 교회 된 모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 최고여야 하는데 거기에는 굴복하지 않고 결국 세상 법정까지 가서 거기서 져야 굴복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볼 때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얻으려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며 결국 그들로 인해 오늘날 교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잘 들어나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성도끼리의 송사 문제조차 하나님 말씀으로 따지지 않고 세상 법정에서 따지려고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송사문제가 세상 법정에 서게 된 꼴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문제를 따지지 않고 세상 법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것을 교계 지도자나 교회에서 목사들이 강하게 책망하지 못하고 모르는 척, 그래도 되는 척들 하기 때문입니다. 노회가 모이고 총회로 모여도 하나님의 법과 질서가 먹히지 않고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거기에 바로 서지 못하는 이런 상태를 돌아보며 하나님 말씀을 놓고 분명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교회 정치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경찰에 법정에 고소하고 재판하는 것이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위반됨이요 잘못됨이 아니냐는 교회 판결은 이제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송사문제를 따지는 것조차도 이제는 세상 법정에 가서 판사들에게 교회 송사문제는 교회에서 해결하라고 성경이 이렇게 나와 있으니 그렇게 판결해 달라고 하는 아이러니 한 실정이 현 교계 실태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많은 신앙의 지도자들부터 이 세상에서 자기 기대적인 것들을 잃으려 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것을 이루어 가는 거룩하고 참된 모습과 삶은 잃을지언정 내 유익과 영광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성공과 높은 자리를 놓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고 잃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얻으려 하지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려는 목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것을 구분하는 구속력 있는 세상 법이 필요하고 거기다 송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그리스도로 서가는 교회 모습을 목표로 하고 힘쓰고 있다면 교회 된 우리 끼리들의 일에 때론 부족하며 문제가 생겨도 세상 법이 필요 없으며 그 법의 도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머리로 그 안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라고 하면서도 내가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가운데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사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 나라 법과 질서까지 하나님 백성이라는 우리에게서 아무소용 없게 되어가는 불의한 무리들로 전락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거부하는 세상처럼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종 된 자라고 밝힐 수 있다면 하나님 말씀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나를 굴복시키는데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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