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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삿2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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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7.11 http://www.john316.or.kr |
사사기(50) 신앙과 신념은 다릅니다 (사사기 20장 1-16절)
자기 첩의 사체 훼손을 통한 레위인의 선동으로 전체 이스라엘 총회가 미스바에서 열렸습니다(1절). 그때 이스라엘 자손이 일의 자초지종을 묻자 레위인은 자기가 첩을 자기 대신 내어주어서 죽은 사실은 쏙 뺀 채 기브아 사람들이 욕보여 죽였다는 말만 해서 전 이스라엘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그 레위인의 위선과 비진실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최대의 단초였습니다.
그 레위인의 말을 듣고 전 백성이 기브아 사람들을 치자고 만장일치로 가결했습니다(8-9절). 그리고 총회 후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불량배들을 넘겨달라고 했지만 베냐민 자손은 자존심을 내세워 듣지 않고 오히려 베냐민 지파의 26개 성읍에서 군사들이 나와 기브아에 모여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려고 했습니다. 그처럼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인한 감정적인 대응이 결국 큰 화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때 베냐민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고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에 택한 자가 칠백 명으로 전체가 26,700명이었습니다. 특히 기브아 주민 중에 선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서 물매로 돌을 던지면 정확히 맞히는 용사들이었습니다(15-16절). 그처럼 700명의 명사수 왼손잡이를 언급한 것은 기브아 성읍의 군대가 가장 막강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약 15배에 가까운 이스라엘 연합군에 대항해 과감히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 과신이 문제입니다.
< 신앙과 신념은 다릅니다 >
믿음은 소중한 것이지만 지나친 과신은 잘못된 결과를 낳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지나치게 믿어서 자랑을 일삼고 분수에 넘는 행동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신앙과 신념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믿는 신앙은 축복을 예비하는 소중한 것이지만 믿음을 믿고 자신을 믿는 신념은 오히려 패망으로 이르는 지름길이 됩니다.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특징대로 이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를 주시고 저 사람에게는 저런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내게 없는 것이 네게 있고 네게 없는 것이 내게 있게 하심으로 겸손한 삶과 협력하는 삶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남이 가진 것이 부럽다고 그것을 가진 것처럼 억지로 흉내 내지 마십시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날뛰면 언젠가는 큰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어느 날, 부흥회 참석자들이 죄를 회개하며 애통할 때 일부는 그 분위기에서 소외되는 것 같아 애통을 흉내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거짓된 애통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것으로 차라리 잠잠히 있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또한 어떤 은사 집회에서는 여러 참석자들이 예언의 말을 하자 몇몇 사람들은 그 분위기에서 소외되는 것 같아 예언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행위는 양심을 배반하는 행위이며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속이는 부끄러운 행위입니다. 믿음은 흉내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서도 안 됩니다.
사도행전 19장 14-17절 말씀을 보면 분수를 모르고 행동했다가 낭패당한 기록이 나옵니다. 어느 날,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큰 기적을 행하고 심지어는 그의 물건마저 병자에게 얹으면 즉시로 병이 낫자 그것을 당시 스게와란 제사장의 일곱 아들이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야, 바울이란 자도 예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데 우리가 왜 못하느냐? 우리도 제사장의 아들이다.”
곧 그들은 한 미친 사람을 데려다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말했습니다. “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그리고 그들에게 달려들어 난동을 부리자 그들은 상처를 입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 유사한 모습이 요즘도 얼마나 많이 발견됩니까? 그런 모습으로 사탄의 비웃음을 받는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자기 믿음의 분수에 충실하십시오. “남이 하니까 나도 해보자!”라고 하며 아무 일이나 뛰어들어 영육 간에 상처를 입고 실패하고 망하는 길로 가지 마십시오. 그런 태도들이 모두 과신과 교만의 산물입니다. 성도는 넘어져도 실망할 것이 없고 일어서도 교만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위치와 분수와 사명에 충실하면 하나님이 언젠가 반드시 그를 일으켜주시고 때가 되면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복된 삶을 위해 4가지를 버리라고 도전합니다. 첫째, 레위인의 위선과 비진실을 버리십시오. 둘째, 분열하는 모습도 버리십시오. 분열의 습성을 버리고 하나 됨의 습성을 배양하려고 하나님은 큰 기도제목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셋째, 자존심과 감정을 버리십시오. 자존심 때문에 축복의 댐이 무너진 인생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과신과 교만을 버리십시오. 신앙과 신념은 다른 것임을 늘 잊지 마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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