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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1: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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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7.26 ⓒ http://www.john316.or.kr |
골로새서(4) 대 자유의 은혜 체험 (골로새서 1장 18-23절)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고 바울의 복음을 들은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교인들이 ‘다른 복음’에 미혹되지 않고 ‘바른 복음’에 굳건히 서도록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보다 깊은 확신을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에는 예수님의 신성과 탁월성과 위대성에 묘사가 특별히 많습니다. 본문에서도 그런 묘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구원 받은 자녀는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있었다고 말씀합니다(21-22절). 그래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신성과 탁월성을 강조해도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어서 사도 바울은 복음이 사방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복음의 일꾼이 된 사실을 강조합니다(23절).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종이고 복음의 일꾼임을 자랑하며 사십시오. 그런 자의식과 소명감을 가지고 살면 성도다운 행동도 따라오고 결국 열매와 축복도 따라옵니다. 복음의 일꾼으로 산다는 것은 고난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쉽지 않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길로 갈 때 얻는 보람도 크지만 무엇보다 영혼의 풍성해지고 강건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게으름의 유혹을 떨치고 거룩한 일을 위해 불편함과 어려움을 삶을 감수하려고 각오하면 그만큼 그 영혼은 강건해질 것입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본능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잃습니다. 미국 해안에서 내륙 깊은 곳으로 물고기를 싱싱하게 운송하려면 수족관 속에 문어를 몇 마리 넣습니다. 그래야 물고기들이 문어를 피해 달아나느라고 계속 움직여서 싱싱함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 싱싱한 영혼으로 살았던 것은 마치 편안함을 피해 다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복음의 사명을 따라 계속 불편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살았기에 사실상 편한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끔 감옥에도 갔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역발상적인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조금 쉬라고 감옥에 보내셨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그가 가장 편안했던 때는 감옥에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쉬라고 고난의 순간을 허락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 원리를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고난을 비극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고난의 길을 기쁘게 갔습니다.
< 대 자유의 은혜 체험 >
왜 사도 바울은 고난의 길을 기쁘게 갔습니까?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이 고난의 길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예수님 때문에 위선이 드러나고 기득권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몰았지만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심으로 세상의 위선과 폭력을 이겨내셨습니다. 폭력은 두려워할 때만 힘을 발휘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폭력의 힘을 극복하시고 결국 승리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해 울먹이지만 중요한 것은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길에 더러운 것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은 욕하고, 어떤 사람은 모른 척 지나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치웁니다. 바로 세 번째 사람이 십자가의 길로 가려는 책임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책임적인 사람에 의해 세상은 조금씩 밝아집니다. 기도할 때도 십자가의 책임을 무겁게 느끼며 기도하면 하나님은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시고 그의 기도에 기쁘게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은 외롭게 갈보리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 아마 지금도 많이 외로우실 것 같습니다. 동행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과 함께 일하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고백을 들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그처럼 주님의 길에 동행하겠다는 고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의 외로운 마음을 덜어주십시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문턱을 넘어 예수님의 길을 따르면 그때부터 신비한 기쁨이 가슴에 차오르고 상상을 초월한 만남과 열매의 축복이 삶에 넘치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질 때 주어지는 부활로 인한 대 자유의 은혜입니다. 결국 진리로 인한 대 자유의 은혜 체험은 오직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이제 탓하고 외면하는 태도를 버리고 고난과 상처를 사랑으로 녹여서 멋진 작품인생을 빚어내는 거룩한 영적 장인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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