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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전7: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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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명혁 목사 |
참고 : |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전7:13-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When times are good, be happy; but when times are bad, consider."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귀 담아 들어야 할 지혜의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인생 경험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말씀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첫째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루에 밤과 낮이 있고 일년에 춘하추동 사 계절이 있듯이 인생 여정에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병행해서 있다는 말씀입니다. 전도서3:4에 보면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조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전3:11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또는 조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조화의 지혜입니다. 이 조화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세상에 낮만 있다면 사람이 살기가 힘들 것이고 세상에 여름만 있다면 살기가 지겨울 것입니다. 만일 세상에 형통한 날만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게을러지고 안일해지고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만일 세상에 곤고한 날만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고 우울하고 약해지고 낙심하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도 바울에게도 형통한 날들과 함께 곤고한 날들을 주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연도 아니고 불행도 아닙디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조화이며 우리의 유익이며 행복입니다.
2.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
둘째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뻐하라는 말은 사도 바울에게뿐 아니라 솔로몬에게도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솔로몬은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전3:12과 22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노라."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기뻐할 줄 아는 것이 행복입니다.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건강해도 기뻐할 줄 모르고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밤에 단잠을 잘 수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집이 있고 부모형제 처자가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있고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운동도 하고 등산도 할 수 있는 몸이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마음껏 기도하고 예배 드릴 수 있는 교회가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 솔로몬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기뻐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밤에 단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집이 있고 부모형제 처자가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있고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운동도 하고 등산도 할 수 있는 몸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마음껏 기도하고 예배 드릴 수 있는 교회가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분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뻐할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은혜의 사람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처한 처지에 자족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생각과 성품이 단순한 사람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형통할 때 모두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
3.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셋째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곤고한 날이란 모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역경과 고난과 환난의 날을 말합니다. 불치의 병에 걸리는 일 이 있습니다. 전쟁의 재난에 휩싸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바울처럼 매를 맞는 일도 감옥에 갇히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곤고한 날들이 많이 다가옵니다. 곤고한 날을 당할 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When times are bad, consider."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교만한 마음으로 급하게 노를 발하지도 말고 인내하며 겸손하게 깊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전7:8,9에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것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생각이 부족합니다. 우리에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 드리는 대로 생각이 우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생각이 곧 우리 자신입니다. 근심 걱정을 하라는 말이 아니고 깊은 사색을 하라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고 단순하게 깊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깊이 생각하라."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겠습니까? 첫째, 나의 부족함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곤고한 날은 나 자신을 솔직하게 돌이켜 보는 날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했던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맡기며 열심히 기도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하고 부지런하게 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곤고한 날들이 나로 하여금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만들고 나를 반성하게 만들고 나를 뉘우치게 만든다면 곤고한 날은 나에게 화가 아니라 복이 될 것이고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 될 것입니다.
둘째, 곤고함을 당하는 이웃들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보다도 더 극심한 곤고함을 당하는 이웃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나보다 더 극심한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곤고함을 당할 때 곤고함을 당하는 이웃을 생각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4). 사실 우리가 곤고함을 당해 보아야 곤고함을 당하는 이웃을 생각하게도 되고 이해하게도 되고 동정하고 사랑을 베풀게도 됩니다.
정신대에 끌려가서 한 평생을 극심한 치욕과 고통 가운데서 살아 온 어느 할머니가 길거리에서 배고파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사 주며 사랑을 베풀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소유 전부를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서 써달라고 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만약 곤고한 날들이 나로 하여금 곤고함을 당하는 이웃들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게 만든다면 곤고한 날은 나에게 화가 아니라 복이 될 것이고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 될 것입니다.
셋째 곤고한 날을 당할 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인 고난이 아니라 자기 몸에 부어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고후1:5). 히브리서 편지에서는 고난 당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를 주목해서 바라보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이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권면했습니다(벧전2:19). 곤고한 날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날입니다.
넷째, 곤고한 날을 당할 때 무엇보다 깊이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입니다. 곤고한 날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운데, 형통한 날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임을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사방은 온통 캄캄해 집니다. 터널은 종착점에 이르는 한 과정입니다. 한 번 두 번 또는 몇 번씩 당하는 곤고한 날들은 70년 또는 80년 지나가는 인생 여정에서 통과해야 하는 몇 개의 터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종착역이 중요합니다. 끝이 더 중요합니다. "끝이 시작보다 낫다"(8)라고 했습니다. 곤고한 날을 당할 때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졌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불치의 병에 걸렸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와 야곱이 피난을 갔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40년 광야의 길이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신8:7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우리 모두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십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 곤고한 날에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곤고한 날들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할 수 있게 만든다면 곤고한 날은 나에게 화가 아니라 복이 될 것이고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지금 수 많은 사람들이 곤고한 날들을 맞고 있습니다. 앞이 캄캄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든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형편에 처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When times are bad, consider." 첫째,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생각하십니다. 둘째, 곤고함을 당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생각하십니다. 셋째 가장 큰 곤고함을 당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니다. 넷째,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깊이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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