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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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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0-07-25 http://www.yullin.org |
영혼의 시선을 주님께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3:5)
I. 들어가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항상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잔잔한 물 한 가운데를 지나는 것 같은 인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 안에 있는 죄악 때문에 징계를 받아 시련을 당할 때도 있지만, 믿음으로 사느라 애를 쓰는데도 오히려 그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을 당해야 하는 때가 있다. 또 어떤 때에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고통과 시련 때문에 나도 애매하게 고난을 당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모든 시련과 어려움이 우리 삶 주변에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세상 속에서 발생하지만 답은 이 세상 속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엉킨 실타래를 풀 때처럼 서두르지 말고 제일 먼저 매듭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앙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종종 우리는 무엇인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낙심하게 되는 상황이 찾아왔을 때 곧바로 절망으로 달려가고 싶어 한다. 이런 낙심과 깊은 절망은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도 순간순간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상황이 다가온다 해도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분은 나의 피할 바위요 산성이시요 그리고 나의 피난처이시다. 또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고 나를 다 버려도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그분께 갈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고 그분은 언제나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라는 고백을 품고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이 신앙이다.
II. 영혼과의 대화
본문은 바로 그런 경건의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자아와의 대화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그런데 시인의 영혼이 그렇게 낙망하고 괴로워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근거 없이 불안해하고 낙망하며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낙망하는 이유는 분명히 무엇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신앙이 없어도 볼 수 있다. 믿음이 있어도 보이고 없어도 보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성을 통해 해석이 되어서 그대로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내가 해를 받을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면, ‘내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보면 달라진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이성은 해를 받을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나는 해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이성으로는 입증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이 자신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육적인 자아가 아닌 신앙적인 자아가 그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III.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말씀을 향해 우리의 지성을 기울이는 것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이것은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뜻이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향해 “환경이 어렵고 절망과 시련과 고통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얼굴을 돕는다는 것은 대면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이 정면으로 인간을 대면을 하실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준엄한 심판의 표현이요, 두 번째는 비할 때 없는 친교의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후자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본다는 것일까? A.W 토저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응시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물상으로 물체 가운데 계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의 오관으로는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없다.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혼의 응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당신 자신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방법인 그분의 말씀을 향해 우리의 지성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지성을 다해서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을 응시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언제나 그 말씀을 통해서 계시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우리 속에 오시고, 보이시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도록 우리에게 말씀으로 나타나 보여 주시며, 당신은 움직이시지 않으면서도 그 말씀에 접촉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변화시키신다.
IV.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을 잠시 멈추고 주님 한분께 우리의 시선을 모으고 말씀 앞에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온전히 드릴 때,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우리의 인생을 바꾸시고 변화시키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움직이시는 방법이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을 영적인 안목으로 해석해 보라.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깨달으라고 그러시는 것일까? 묻기 시작할 때, 흩어 졌던 여러분의 마음이 모아지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다. 말씀 앞으로 달려가도록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준비시키시는 것이다.
육체의 쉼은 노동을 멈추는 것이지만, 영혼의 쉼은 영혼의 연인을 향하여 시선을 두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쉼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영원히 응시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주위에 낙망하여 어둠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그래서 그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201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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