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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6: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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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0-11-28 http://www.yullin.org |
가장 큰 감사의 이유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6:17~18).
I. 본문해설
로마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범죄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혹시 사도의 이 같은 설명을 들으면서 그러면 은혜를 더하려 죄를 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그럴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 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진 우리의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죄를 향하여 살던 우리들을 의를 향하여 살도록 하시려고 베푸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 됨은 구원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무한한 감사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II. 가장 큰 감사: 구원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 가장 큰 감사가 구원임을 밝히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받은 나머지 모든 은혜의 기초이자 핵심입니다. 성경은 이 구원의 사실을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A.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됨
먼저는 우리가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죄의 종살이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과 약속을 파기하고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대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칠게 반항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도, 자연과의 관계도, 자기와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인간의 영혼과 정신은 본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죄로 물들기 전 영혼은 하나님을 향해 밝게 빛나고 주님의 진리를 응시할 수 있었지만 죄의 종이 된 후에는 영혼에 어두움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지성은 눈멀게 되었고, 인간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많은 사실들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설령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더듬어 안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바로 해석하고, 자신에게 연결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우상을 섬기는 데 치달았습니다.
인간의 지성뿐만 아니라 감정도 지극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빛과 선, 아름다움, 그리고 참된 것에 의해서 자극 받고 사랑의 정동이 일어나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여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가 되었습니다. 의지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대신 거칠게 저항하고 충동에 따라 움직여 인간은 모순으로 가득찬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종 된 모습입니다. 자신을 주인 삼고 자신에게 봉사할수록 섬김을 받는 대신 오히려 거칠고 무서운 죄에 종속되어 갑니다.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복되게 살도록 부르심 받았음에도, 점점 하나님으부터 멀어져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러 시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계몽주의의 도래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굳게 믿기를 인간이 만약 거친 감정과 충동적인 의지를 버리고 온전한 이성의 도움을 받으면 세계는 인간에 의해 확실하게 파악될 수 있고, 인간은 이성적으로 인류의 갈 길을 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국가 간에 선한 질서를 세우고, 서로를 정복할 마음을 버리고 평화를 추구하면 인간의 힘으로 얼마든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한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다시금 주님께 의지하고 돌아갔어야 했는데, 인류는 신뢰할 수 없는 이성을 끌어내리고,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을 규율할 수 있는 가치의 체계는 모두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억압하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이러한 가치체계를 허물어 버림으로써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을 근원도 알 수 없이 우주에 던져진 존재로 규정하고, 절대적인 가치는 없기 때문에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서 온전히 그 자유에 직면하기 위해서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부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가치를 다 부정하고 나면 인간은 지극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데, 그런데 그 자유는 무시무시한 자유다.”라고 말한 현실이 그들에게 적용된 것입니다.
이 자유는 그들 말대로 무시무시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눈을 똑바로 뜨고 직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무시무시함을 잊기 위해 많은 현대인들은 쾌락에 탐닉합니다. 성적인 쾌락뿐만 이 아닙니다. 가치 없는 일에 자신을 몰두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며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죄의 종살이 하는 모습이고,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러한 처지에서 스스로를 구해낼 수가 없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그곳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그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기에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복음 안에서 되새길 수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이 벌레 같은 인간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격하며 기뻐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신자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사라질 때, 자기를 주인 삼고자 하는 온갖 정욕과 더러운 욕망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주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야 할 존재가 마음속으로 주님을 시기하고 대적하게 될 때에 그의 정신과 영혼에는 안정이 사라지고 삶은 무질서와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종살이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믿음 안에 살아가는 삶이 좀 어렵다고 생각될 때마다 죄의 종살이하던 그 비참한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어려움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B. 의를 위해 섬기는 자가 됨
구원의 또 다른 측면은 주님이 이제는 우리가 의를 위해서 섬기며 살아갈 사람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 보다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이루셨으니 교회는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 아직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복음과 사랑으로 정복하여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의 창조하신 뜻을 따라 살도록 만들기 위해 부름 받은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의의 종으로 부름 받았다면 나라에 점점 군인의 수가 늘어나는 것 같은 뿌듯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이상하게 병원만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수없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가끔 눈물을 흘려도 절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인들, 티끌만한 일에 상처를 받고 교회를 향해 복수하듯 하거나, 교회를 떠나버리는 막무가내의 교인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교회의 번영을 위해서 얼마나 봉사하는 사람들일 수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눈앞에 전쟁이 벌어져서 전투에 나가야 되는데 같이 뛰어나가던 동료가 자기 발을 좀 밟았다고 총을 팽개치고 탈영을 하는 것 같은 일들이 교회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잘 적응하면서, 스스로를 챙기며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로 정의한다면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리는 교회의 모습과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가 본래는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구나!”사도는 이렇게 의를 위해 섬기는 자가 된 이 놀라운 신분의 변화를 두 가지 원인으로 제시합니다.
1. 복음이 전파됨
첫째로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세상에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착하게 산 것도 아니고 그들이 예수를 믿었더라면 살았을 그 삶보다 우리가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유도 알 수 없이 그들에게는 전파되지 않은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누군가 꽃다운 젊음을 바치며 선교지에서 쓰러져 갔고, 이후 밀알같이 솟아난 젊은이들이 선배들의 뒤를 이어 아무도 알지 못하던 은둔의 땅 조선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들이 복음의 혜택을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대치할 수 없는 소명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먼 곳에 는 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믿지 않고 어둠 가운데 방황하는 이웃들, 죽음의 때가 임박했으나 서서히 죽음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부모님들, 그리고 아직까지도 회심하지 못한 자식들에게 만약 여러분이 하루에 한번이라도 눈물로 기도하고, 거절을 당할지라도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예수의 십자가 사랑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과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의 마지막 소망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증거해 주었다면, 아마 상당수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의 가장 중심적인 관심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녹을 줄 모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뜨거워질 수 없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 육체의 자랑이 여러분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있다면 끓어오르십시오. 마지막에는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밖에는 남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님이 나 같은 인간을 위해 베푸신 이 구원의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깊이 감사하며 어찌하든지 무명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함으로써 복음을 나에게 전파해 준 것처럼 나도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2. 마음으로 순종
둘째로 사도는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었다”라고 말합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아닙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어떤 이들은 더 완강히 그 복음을 거절하고 마음이 강퍅해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복음이 전해졌을 때에 마음으로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의의 자녀로서 주의 종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 한 것입니까? 주님이 은혜로써 우리를 움직이시지 않았더라면 뼛속 깊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던 우리가 그 복음을 받아들였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의지와 연합을 이루어서 우리의 마음과 의지를 움직여 복음을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그리스도의 교훈에 순종할 마음을 갖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얻었으니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넘어질 때도 있고 쓰러질 때도 있었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진 것은 우리 스스로 악해서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요,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이 변화무쌍한 우리를 사로잡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결심을 주셨기에 우리는 이제껏 믿음 생활을 이어올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III. 의를 위해서 살아감
결국 이러한 구원의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들이 살아 선택할 수 있는 현재외 미래의 삶은 여러 가지가 아닙니다. 오직 의를 위해서 사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다시 죄의 종살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주님의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고 돌보지 않으시기 때문에 곤고하고, 비참한 삶을 이어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짐난, 성경은 거꾸로 말합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의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 107:10-11).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순종의 삶을 사는 대신 불순종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관심사인 교회의 영적인 번영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영달과 자신의 번영을 위해 살고 있다면, 시련과 고난을 만나 번민과 갈등하는 것을 이상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효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 죄 없으신 그분이 비참한 죄의 결과를 경험하셨습니다. 굶주림,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 육체의 곤함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러실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이 불쌍한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들과 함께 계시며 경험한 모든 슬픔과 이별, 눈물과 결핍, 고통에 대한 모든 체험은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 보좌에 오르셔서 통치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이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은 당신의 탁월한 사랑을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성육신 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가 받는 그 모든 사랑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분여된 하나님의 사랑의 부은바 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렇게 우리 인간들을 가장 잘 알고 계신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인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IV. 결론: 소명을 따라 살자
이 모든 감사의 제목들을 등진, 오늘날 유행하는 번영주의와 성공주의는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거짓이고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성도들은 이 가짜 복음을 혐오하고 미워합니다. 거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취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의 유혹을 받지만 그때마다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어린 아이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붙듭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주님의 손을 붙들 때 우리가 거절할 수 없는 유혹들을 거절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시련을 만났을 때에도, 나의 힘으로는 인내할 수 없는데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를 인내하게 만들어 주고, 이길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은혜에서 미끄러졌다면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와서 진실하게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잘못과 부주의함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주님의 은혜로 다시 세워달라고 기도할 때 주님이 어찌 여러분들을 거절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채워주시려고 그리고 소명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당신의 교회를 살피며 미끄러진 지체들을 일으켜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는 은혜에 감격하는 살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 벌레 같은 우리를 위해 큰 해 받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찢으시기까지 아낌없이 버리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할 때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최고의 기쁨은 주님을 믿게 된 것이며, 내 생애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잊어버릴 수 없는 찬송 제목은 이 쓸모없는 죄인을 구속해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과 감사에 붙잡혀 복음과 함께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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