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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복음은 설탕 같은 위로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3833 추천 수 0 2013.08.25 08: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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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7:7-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주일 http://sungamch.net 
그리스도의 복음은 설탕 같은 위로가 아닙니다.
마7:7-8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고통이 생기고 비명을 지르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절망 합니다. 그런데 그 상처라는 게, 내 밖에서, 나의 외부로부터 누군가에 의해 또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의 고집과 편견이, 내 속에 어떤 완고함을 만들고 있어서, 눈앞에 펼쳐지는 사람이나 사건이나 상황을 자기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습성에서 오는 것일까요?

따지고 보면 상처는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이 내게 휙 던져놓은 불행’이 아닙니다. 상처는 8할이 자기중심적이라는 속성이 상처를 만들어 내는 공장 노릇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공장장 노릇을 하는 것들이 바로 ‘고집’ ‘편견’ ‘자기중심’인데, 이를 완고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상처는 내 밖의 어디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들어오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자신의 완고함 때문에 상처가 생긴다고 합시다. 이웃하고 싸워서, 의견이 맞지 않아서,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하고 아파요. 이럴 때 목사나 신부나 혹은 정신과 의사나 부모나 친구나 술이나 마약이나 이런 사람 또는 물질이나 방식으로 위로를 해야 할까요?

만약 상처가 나와 상관없이 내 외부로부터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면 ‘위로’나 ‘격려’가 보탬이 되겠지요. 그런데 만약 이 상처가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된 완고함에서 생긴 거라면 ‘위로’는 오히려 독이 될 겁니다.

요즘 목욕탕엘 가도 ‘마사지’라는 걸 합니다. 동남아 여행에서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마사지’라는 건 ‘따뜻한 속임수’일 뿐입니다. 치료는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뭉쳤던 어깨는 다시 뭉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요?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요? 문제는 자기중심에 있는 것이므로 ‘자기를 혁신’하지 않으면 상처는 치료되지 않습니다. ‘자기혁신’이 항상 발생하는 상처에 대항하는 방식입니다.

나의 상처는 나의 좁은 자아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자주 화나고, 성질나고, 미움이 생기고, 분노가 일어나고, 맘이 괴롭고 하는 것은 나의 좁은 자아 때문입니다. ‘자기혁신’이란 이 ‘좁은 자아’를 깨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좁은 자아를 깰 수 있을까요?

스티브 잡스가 ‘옹졸한 자기 자아’를 깼던 출발점은 이것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바닥까지 살펴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게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궁리했습니다. 궁리를 해서 바닥까지 가보자! 그래야 사태를 바로 알 수 있고, 진정한 혁신도 나올 거다.” 이게 오늘날 산업사회의 잡스혁명인 것입니다. 궁리와 궁리를 거듭하여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자기 자신만의 치열함이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맹자도 말합니다.
“개나 닭이 집을 나가면 온 동네를 다니며 찾으면서 정작, 자신의 마음을 찾는 데는 등한이 한다. 마음을 잃어버려도 찾을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손가락이 아프면 용하다는 의원은 모두 찾아다니면서 마음이 굽어지고 구멍이 뚫리는데도 사람들은 그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고집, 편견을 이루고 완고함을 만들어서 결국 자기 자신을 상처 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잡스에게서나, 맹자에게서나 ‘옹졸한 자기 자아’를 깨는 방법은 자기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자신의 실체를 보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뭡니까? 잡스는 잡스의 방법이 있었고, 맹자는 맹자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우리가 ‘좁은 자기 자아’를 깨는 방법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어디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합니까?  

인간 개개인에게 상처를 주는 작고 작은 자아를 깨는 방법을 예수님은 오늘 마7:7-8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유대인을 반면교사로 세운 다음에 그의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흔히 우리는 이 본문을 ‘기도 열심히 하면 바라는 것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얼렁뚱땅 이해를 하지만 그건 지극히 작위적입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은 이미 6장5-15사이에 소위 ‘주기도문’의 7개 항목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기도는 다 가르친 후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이 ‘기도’의 말씀일리는 없습니다.

먼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던 숙어적 표현일까요? 아니, 예수님 이전에 이미 사용되던 어떤 숙어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새로 지어서 하시는 말씀을 까요? 이 문구는 기원전 2세기 말에 활동했던 예호수아 벤 페라흐 현자의 다음과 같은 설교를 통해 그 의미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호수아 벤 페라흐는 뭐라고 설교하는 줄 아십니까?

너를 위해 선생을 만들어라
너를 위한 동료를 얻어라
어떤 사람이든 회의적(두드리고 두드리고)으로 판단할 것이다. <선조들의 어록1:6>

‘선생을 만들어라’ 하는 것은 자기에게 배움을 줄 선생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하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이 ‘구하라’고 말한 그 목적어는 다름 아닌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을 청해 그에게서 진리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게 마7:7절 앞머리에 등장하는 ‘구하라’의 뜻입니다. 9절을 보세요. ‘구하라’고 한 다음에 예수님은 “여러분 가운데 누가 아버지로서 그의 아들이 빵을 구하는데 돌을 던져 주겠습니까?”하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7절의 ‘구하라’와 연결해 보면 아들이 아버지(스승)에게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청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스승 또는 아비가 거짓을 가르치겠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에 ‘찾아라’는 동사의 목적어는 ‘동료’입니다. 자기와 함께 진리를 공부를 할 좋은 동료를 찾으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혼자 진리를 배우는 것보다 동료와 함께 배우는 것이 어떤 이로움이 있기에 그러는 걸까요? 감리엘 랍반의 말과 대조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를 위해 선생을 만들어라
의심에서 벗어나라
추측으로 십일조를 많이 내지 말라<선조들의 어록 1:16>

‘의심’은 자기 선생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리를 공부할 때 생기는 궁금증 또는 의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자라는 공부를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동료들과 함께 예수 공동체의 삶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드리라’는 말은 뭘 의미하는 걸 까요? 무엇을 두드리라는 것일까요? 좋은 선생을 구하여 진리를 배우고, 동료를 잘 찾아서 함께 공부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면, 두드리면, 열심히 갈고 닦으면, 진리를 찾고 찾으면, 그 뜻이 밝혀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추측으로 십일조를 내지 않고 정확하게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십일조는 단지 수입의 1/10의 의미 보단 진리를 배우는 삯에 해당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 의미를 먼저 알고 교리를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편견’, ‘자기 경험’, ‘세상의 이치’에 갇혀 상처를 유발하는 ‘작은 자아’를 넘어서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설탕 같은 위로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설탕 같은 복음이 교회를 휩쓸어 왔습니다. ‘거짓 위로’와 ‘따뜻한 속임수’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에 ‘진정한 스승을 구하고, 신앙의 진보를 가져올 동료를 찾고, 우리가 매 순간 배우고 듣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찾고 또 찾는, 진리를 두드리고’그걸 위해 십일조를 하고 재물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인간 개개인의 상처는 외부 환경의 영향이 1/3이고, 2/3는 모두 자신의 좁은 자아로 인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감사하고 기쁘게’살려면 자신의 좁은 자아를 깨야 하는 것입니다. 네가 원망하는 모든 일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세상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굴레를 벗으려면, 자신을 혁신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합니다. 이것이 세상과 나를 이기는 법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넘어서야 할 그만의 우물을 넘어선 것입니다. 우리더러도 우리가 넘어서야 할 ‘코 구멍 만 한 자아’를 넘어서라고 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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