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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그리스도

로마서 신실............... 조회 수 2354 추천 수 0 2013.08.26 13: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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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3:9-18 
설교자 : 이영화 목사 
참고 : 당진 함께하는 교회 http://tgchurch.hompee.com 

오직 예수 그리스도

로마서 3 : 9 - 18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어떤분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늘 소화가 잘되지 않아서 고통을 당했는데 유명하다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보았지만 이렇다 할 병명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고통이 점점 심해 견딜 수 없게 되자 병원에서 다시 정밀 진단을 받았습니다.  역시 검사를 해보아도 특별한 것이 발견되지 않자 의사가 한가지 검사만 더 해보자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했더니 췌장암이더라는 것입니다.  소화가 안되서 위나 간과 같은 검사만 했지 설마 췌장암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 너무 늦게 발견하여 말기가 되었고 수술을 해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말과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결국 수술을 하였지만 두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암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암은 얼마만큼 빨리 발견하느냐가 치료의 관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의사가 잘못된 판단으로 암을 빨리 진단하지 못한다면 병만 키우게 되어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병에 걸리게 되었을 때에 병을 치료하는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되는 것은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입니다.  병에 대한 철저한 진단, 그리고 거기에 대한 처방이 따라올 때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간혹 병원에서 의료사고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데 잘못해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맹장 수술을 하기로 하였는데 엉뚱한 수술을 하는 그런 일들이 간혹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한 일입니까? 그만큼 정확한 진단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적 질병의 진단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진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인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이것을 정확히 알아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보신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상태를 마치 병원의 최신형 진단 장비처럼  구석구석을 진단하시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인간의 모습을 진단하시 후에 마지막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인간은 죄의 아래에 있이며 어떤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이다.’ 라는 것입니다.

 

9-10절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죄의 보편성에 대해서 성경은 선언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가 그 후손인 인간에게 그대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는데 롬5:12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하다는 ‘성선설’ 이 아닌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나 악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성악설’ 을 말합니다.  이것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하면서 다윗은 자신이 죄인으로 출생하였음을 고백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죄인이라는 말에는 예외가 없는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는 말씀처럼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여기면서 교만과 특권의식, 우월감에 사로잡혀 사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너희도 예외가 아니며. 너희에게도 심판이 있으며. 너희도 죄인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정말 내 자신이 나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여전히 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매일 강단에서 나를 죄인이라고 하는가?’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죄에 대해 상대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름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착하게 살았으니 작은 죄인이라고 스스로 자위합니다.  그런가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말을 입에서 늘 습관처럼 하지만 정작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나 말할 때에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전혀 죄인처럼 생각하지 않고 마음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찬양할 때나 기도할때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벌레만도 못한 죄인’ 이라고 하지만 정작 누군가 나의 허물과 죄를 지적하면 안색이 바뀝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죄에는 특성이 있는데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죄인들이 갖는, 타락한 인간이 갖는 죄의 특성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전적인 무능’입니다.  인간은 범죄의 결과로 무능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1-12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전적인 무능과 무지입니다. 깨닫는 자가 없다는 것은 진리를 깨닫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죄가 그를 무지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시고 경고 하셨지만 그들은 깨닫지도 돌이키지도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죄로 인한 무지함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상을 찾고 있습니다.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복 주시는 하나님만을 찾았습니다.  내가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징계하지 않고 무조건 나를 받아주시는 그런 복 주시는 하나님만을 찾았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하나님 손에 들려 있는 복만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무익이라는 말은 허망하다는 것으로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바로 찾지도 못하는 전적으로 무능하고 무지한 존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지은 인간의 특성은 전적인 부패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부패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13-15절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부패한 인생은 속에서 더러운 악을 끊임없이 쏟아놓는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는 악입니다.  인간들은 깨어있을 때마다 악을 만들어내는 악의 제조 공장과도 같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누가 시키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악한 일에는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고대 중동에서는 우리처럼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땅에 파고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동굴 속에 시신을 넣고 돌문을 막습니다. 그것이 무덤인 것입니다.  그래서 ‘회칠한 무덤’ 이라는 것은 그 무덤 앞에 막은 돌에다가 회를 칠해서 구별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속에는 시신이 썩고 있지만 밖에는 그럴싸하게 회를 칠해놓은 모습을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장사지내고 돌문을 닫아 놓았는데 가끔 도굴범들에 의해서 또 지진에 의해서 바위가 굴러지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동굴 입구가 열려지게 되고 그곳에서 시신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혀로는 속임이요’ 라고 말합니다.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입을 열면 늘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말합니다.  한 번은 거짓말대회가 열렸는데 누가 일등을 했을까요?  자기는 태어나면서부터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 일등을 했다고 합니다.  인간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속에 악의 본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혀로는 속이는 것입니다. 또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유순한 말이나 온유한 말, 격려의 말보다는 독사처럼 공격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고 찌르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하더라도 긍정적이고 부르럽고 사랑스러운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한 실험에서 두 용기에 밥을 넣고 한쪽은 사랑스러운 말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은 저주와 욕을 듣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사랑스러운 말을 들은 밥은 오랫동안 깨끗하게 유지된 반면에 저주의 말을 들은 밥은 금방 상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입에서 선한 말, 부드러운 말이 나와야 하는데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다. 칭찬은 하고 격려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 독이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잘되면 진짜 기뻐서 잘되었다고 합니까?  겉으로는 ‘너무 좋다. 너무 잘 되었다. 얼마나 좋으냐?’ 라고 하지만 속은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하며 부글 거리며 속상하지만 단지 드러내지 않는 이런 모습이 바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또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있다’ 고 말합니다.  입을 열면 남을 향한 저주가 끊이지 않습니다. 중상모략과 험담과 비난의 말이 이어집니다. 이것 역시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또한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고 하였습니다.  선한 일보다는 악한 일에 그 발이 빠릅니다. 좋은 일에는 안 갑니다. 그러나 악한 일에는 열심히 갑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본성 자체가 악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적인 부패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마음이 부패해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간들은 죄로 인해 전적인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16-17절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태어날 때부터 죄의 선고를 받고 태어나는 인간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습니다.  땀 흘리고 노력하지만 그 앞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고생이 있어 그 고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더구나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죄로 인한 결과는 결국 인간을 파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는 말씀처럼 죄인 된 인간들은 결국 모두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파멸의 길이요 심판의 길인 것입니다. 땀을 흘리지만 거기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늘 고생하지만 평강이 없습니다.   이것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그 어디에도 소망을 찾아 볼 수 없는 절망에 빠진,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들에게 한 가지 기쁨의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진단해 보니 어디에 성한 곳이 없습니다. 죄로 얼룩져있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이 이제는 새로운 희망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그 피를 믿고 나의 죄를 자백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으며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앞서 9절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는 말씀처럼 인간은 다 죄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죄라는 말을 단수로 쓸 때는 ‘그 죄의 실체’ 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인간 속에 그 죄를 계속 충동질하는 일으키는 것이 사탄마귀, 어두움의 세력입니다.  이 세력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죄를 짓도록 충동질합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려면 죄의 실체를 이길 수 있는 전능하신 그 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피흘리시고 죽으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이 죄 값을 치르려면 한 사람이 고통 받는 것 정도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그가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볼 때 우리 죄가 얼마나 큰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행동으로 짓는 결과를 가져오는 죄가 있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마음으로만 짓는 죄도 있습니다.  마음으로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어도 이미 간음했다고 했습니다.  또 형제를 보고 ‘라가’ 라 하는 이미 살인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나 크고 엄청나기 때문에 그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 생명을 내어놓고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들 앞에서 내 옷을 벗듯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환자가 의사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 하면 부끄러워서 벗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입니까? 벗어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람의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문둥병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이 왔을 때 밖에 나아서 맞이하지도 않고 단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아만은 ‘아니, 적어도 한 나라의 장군이 오면 나와서 영접을 하고 치료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보지도 않고 별 볼일 없는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 는 말에 나아만은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옆에서 수종드는 한 사람이 나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한 일도 할 수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것이 뭐가 어렵냐는 말에 그의 화려한 외투를 벗고 세상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요단강에 몸을 담그었습니다. 그의 벗은 몸은 문둥병자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너무나 더럽고 끔찍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근사하게 자신을 감추고 치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본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은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절망에 빠진 죄인입니다. 주님만이 나를 도우실 수 있으며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고백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한 절망감에 빠질 때 구원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없고 내 능력으로 내 죄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야지만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가 있습니다.  죄인은 죄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습니다.  오직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실 수 있고 우리의 죄를 해결하실 유일한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원하기를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 앞에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온전히 영접하며 내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심으로 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그 은혜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3. 7. 28. 주일예배말씀. 이 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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