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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5:1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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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영화 목사 |
참고 : | 당진 함께하는 교회 http://tgchurch.hompee.com |
뜻하지 않은 축복
마가복음 15 : 16 - 23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흔히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일이든지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어떤 결과가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나 원인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복을 받을 만한 원인이 있고 그 반대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해당되는 원인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선한 일의 대가를 받게 되지만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반드시 그 악한일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도 하나님이라는 대상을 알지는 못하였지만 하늘을 공경하고 그 뜻을 귀히 여겼습니다. ‘역천자는 망하고 순천자는 존한다’ 는 의미는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망하지만 그 뜻을 따를 때에는 복을 받는다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을 잘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게 됩니다. 존경을 받든지 배척을 당하든지 대부분 그것은 자신이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사는 원리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너무도 정확하게 우리를 보시며, 우리의 모든 행동들을 기억하시어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에게 보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면 선한 행위대로 우리에게 보응하시며, 우리가 악한 일을 하면 우리의 악한 일대로 우리에게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일에 관하여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주님의 이름 안에서 행하는 모든 봉사와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컴퓨터보다 더 정확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모든 행위를 기억하시고 그에 합당한 상급을 우리를 위해 예비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어떤 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확히 모를 뿐이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뿌린 대로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분명히 믿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소개된 ‘구레네 사람 시몬’ 은 얼떨결에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짐으로 하나님의 상급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골고다로 향하시던 도중 채찍과 모진 고문에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갈 힘이 없으시자 그 옆에 있다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지고 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비록 그가 처음부터 믿음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였던 것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막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고 하셨던 말씀처럼 비록 자원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억지로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시몬을 축복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 주변에서도 비록 믿음은 없지만 복음에 협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에스더 여선교회에서 아나바다 장터가 있었습니다. 여선교회 사업을 위해 처음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것을 어디에서 팔 것이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셔서 전혀 뜻하지 않게 신성 아파트에서 아나바다 장터를 시작하면서 장소를 제공해 주고 오히려 너무나 쉽게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리소장으로부터 오히려 장터의 활성화를 위해 참여해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비록 신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뜻하지 않게 이 일에 사용된 분들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서 교회를 건축할 때를 보면 아주 극렬하게 반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신앙이 없으면서도 전기도 물도 끌어다주고 협조를 해 주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 까지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주를 위해 행하는 모든 일에는 결코 헛됨이 없다고 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행하는 모든 일들은 사실 세상의 어떤 일보다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마지막 날 증거 되기 때문입니다. ‘시몬’ 이란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치 우리의 철수나 영희 정도 되는 이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몬에 대해서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그에 관하여 대략적으로 아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시몬은 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먼 길을 떠나 성지인 예루살렘에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월절을 맞이하여 자기가 살던 성읍 어느 한 거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일행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앞서 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미 예수님은 채찍으로 온몸이 성하지 못한 상태여서 그 상태는 더 이상 형틀의 십자가를 도저히 지실 수 없는 그런 상태이셨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로마 군인은 마침 체격이 건장하고 힘이 좋아 보이는 한 시골 사람을 지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몬은 그 광경을 구경하다가 얼떨결에 강제로 붙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눅23: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고 하면서 성경에서는 로마 병사들이 그를 붙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시몬은 군인들에 의하여 억지로 잡혀서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의 나무를 지고 골고다까지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지만 또한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예수님은 당신이 지셔야 할 그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셨고 그러한 채로 골고다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장 힘드셨을 때 비록 그가 자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중한 십자가의 한쪽 나무를 대신 짊어진 구레네 시몬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강제로 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을 도와 준 일은 틀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시몬이었다면 얼마든지 중간에 꾀가 나서 그만 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갑자기 복통이 난 것처럼 한다든지 바쁜 일이 있다고 한다든지 혹은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었음에도 시몬은 그리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잘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묵히 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몬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대부분 나를 어떻게 보고 이런 일을 시키는가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아예 외면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에게 어떤 일이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사용하시겠다는 의미이기도합니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고 환경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일들이 주어질 때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감당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억지로 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더 복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위한 것 같고 교회를 위한 일 같지만 그러나 실상은 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감당함을 통해 우리는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 가면 훈련소 입구에 걸어 놓은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이 내가 피할 수 없다면 그 일을 즐길 수 있을 때 그 시간을 가장 잘 보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실 때 때로는 우리가 시몬과 같이 믿음이 없다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그 일을 감당하면 언젠가 그 일이 내게 은혜가 되고 복의 근원이 되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봉사의 일도 나에게 주어졌다면 억지로라도 감당하면 언젠가는 은혜의 방편이 됩니다. 헌금도 부담이 되더라도 억지로라도 하면 나에게 복이 됩니다. 예배도 참석하기 어렵더라도 어떻게 하든 와서 졸든 딴 생각을 하든 일단 빠지지 않으면 언젠가는 예배의 성공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환자가 약을 먹을 때에 약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먹어야 합니다. 왜입니까? 그래야 건강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라도 하는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공부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공부가 좋아서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억지로라도 하다보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나중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되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게 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에도 때로는 억지로라도 감당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처음부터 믿음이 생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듣다보면 마치 콩나물이 물이 밑으로 다 빠지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쑥쑥 자라나는 것처럼 어느 순간 하나님을 경험하고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어떻게 하든 접촉점을 가지고 있을 때에 믿음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비록 억지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예수님이 지셨던 그 십자가를 얼마동안 함께졌던 시몬에게 어떤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까? 한마디로 그는 영적인 신앙의 위대한 가문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가족은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가가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마가복음을 기록할 당시에 이미 그의 아들들은 초대교회에서 유력한 신앙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레네 시몬을 가리켜 말하기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라고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즉 이와 같이 마가가 마가복음에 그의 아들들을 기록한 것은 이미 그 당시에 초대교회 사람들에게는 시몬의 아들들이 영적으로 깊은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들이었기에 사람들에게 더욱 친밀감을 주고 구레네 시몬에 관하여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시몬을 가리켜 누구의 아버지라고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시몬의 아들들은 초대 교회에서 영적인 지도자들이 되었으며 그들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아버지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몬의 일을 귀하게 여기셔서 그들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특이 하게도 시몬의 일은 그의 아내에게까지 좋은 축복을 받게 하는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한 몸이며 하나입니다. 남편을 통해 아내도 복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시몬의 아내를 부르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롬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사도 바울로부터 ‘나의 어머니라’ 칭함을 받을 수 있었던 분이 바로 루포의 어머니였으며 우리가 함께 본 본문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 가운데 특히 남편 된 분들은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의 선한 일들로 아내가 얼마나 존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귀히 쓰임을 받고 높임 받는 존재로 변하게 되는지를 기억하시고 그러한 남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는 이렇듯 구레네 시몬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그의 가정이 얼마나 영적인 큰 축복을 받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를 위해 행한 모든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갚아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며 봉사와 헌신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있음을 알고서도 때때로 하나님의 응답에 관하여 회의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에게서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사49: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바로 이와 같이 이사야 선지자도 한때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일들과 선지자로서의 사역에 회의를 가졌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인 슬럼프’ 를 경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한번 슬럼프에 빠지면 여간해서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운동선수도 한번 슬펌프에 빠지면 다시 극복한다는 것이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영원히 주저 않는 이들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전보다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있을 때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삶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그리고 무기력함 가운데 빠지거나 모든 것이 불평이 됩니다. 내가 하던 모든 일들도 내려놓고 그냥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싶어집니다. 저도 오래전 사역을 하면서 이와 같은 영적인 슬럼프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를 ‘나는 기복이 없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저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막상 그러한 일이 주어졌을 때에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때 저는 영적인 슬럼프를 극복하는 중에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깊은 슬럼프에 있더라도 하나님과의 마지막 관계의 끈 하나 만큼은 억지로라도 놓지 않고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리게 되면 결국 회복할 수 있는 길이 그만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공연히 자신에게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그 일을 행하였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이런 불신앙의 마음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한때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결론은 위대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을 맺는 것입니다. 정녕히 즉 틀림없이 꼭 하나님이 자신의 선한 행위대로 보응하시며 갚아 주신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참된 신앙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때론 억지로 행하더라도 복이 됩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억지로 지는 것보다 자원해서 달게 지는 것이 더 큰 복이 됩니다. 다시 말해 이왕에 십자가를 질 바에야 확실하게 지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지려고 하고 내가 지려고 하는 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왜일까요? 이는 십자가를 진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지는 것을 일부러 피하려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아직도 십자가 지는 것을 피하려 하는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게 오는 하나님의 복을 버리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십자가이든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정하니 힘들다면 구레네 사람 시몬과도 같이 억지로라도 지고 갈 때 우리에게 복이 되고 은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왕에 지는 것이라면 자원함이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열두명의 제자가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모두 도망하고 엉뚱한 구레네 사람 시몬이 그 십자가를 대신 지었습니다. 영적인 일은 이와 같습니다. 억지로라도 주님과의 한번의 만남은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억지로라도 우리는 복음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과 상황을 모두 다 봐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만은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여든이 넘은 장로님은 동생분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서 귀를 잡고 교회로 억지로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투덜투덜 하더니 믿음이 들어간 후에는 형님 때문에 자신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여러분 영적인 일에는 반드시 수고함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억지로라도 수고함이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이 자라게 되고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달게 지겠다는 찬송은 많습니다. 찬송만 잘 부르고 십자가를 멀리 한다면 합당하지 않는 것처럼 공동체에 어떤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먼저 짊어지리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등을 내미는 믿음의 성도가 많을 때 교회는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처음에는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이 억지로라도 감당하였다 하더라도 제는 기쁨과 자원함으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여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이 큰 은혜를 받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3. 6. 30. 주일예배말씀. 이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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