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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blog.daum.net/kjeddh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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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기도
1. 침묵과 독락
침묵하지 않으면 독락(獨樂)할 수 없다. 침묵은 입을 다무는 것 이상이다. 귀를 여는 행위이다. 침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함이고, 외부의 소음을 끄고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총명하게 침묵하면 기도의 근원에 닿게 되고, 속박에서 해방되며, 열정이 자라나고, 생각을 단속하며, 적의 외침을 살피고, 평온을 누리며, 독단적인 태도를 방지하고, 지식이 성장하며, 성찰에 들어가며, 눈에 띄지 않는 발전을 하며, 천상을 은밀히 오고간다. 그리고 타인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며, 사람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자유를 얻는다. 그들의 필요에 민감해지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 몇 시간이라도, 한 달에 한번 한나절을 침묵하고, 일 년에 하루를 침묵하고, 5년에 한번은 일주일을 침묵하고, 죽기 전에 30일 동안 영성의 피정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침묵은 경건의 훈련이고 성령의 파수꾼이다(헨리 나우웬).
2. 관상기도(Prayer of Contemplation)
관상이란 하나님과의 일치 체험의 단계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인식하는 것이다. 관상의 컨템플라시오(contemplatio)는 어떤 존재의 근원을 깊이 바라보는 것으로서, 이런 깊은 응시 속에서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된다. 관상이란 일종의 예술 체험이기 때문에 연구에서 지성을 많이 사용하고, 묵상에서 마음을 많이 사용했듯이, 관상에서는 상상력을 사용한다. 상상력은 사실 또는 진리를 전체적인 정황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말씀의 관상은 상상력을 통하여 본문 속에 들어가서 그 현장의 한 사람이 되어, 그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며 경험하게 한다. 그러한 경험은 우리의 영성과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만들어 간다. 이것이 합일에 이르는 관상이며, 하나님께 마음을 돌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오직 현존하시는 그분만을 사랑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기도의 관상이란 상상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그 분께 자신을 솔직하게 열고, 문제의 근원부터 열매까지를 고하고 드리며, 해결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름 부르며 찾아가는 것), 자신을 여는 것(자성과 자백), 사정을 고하는 것(일일이 구체적으로 느낌까지 말한), 하나님의 반응을 보는 것(응답), 그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임재 가운데 참여하여 기뻐하는 것) 등의 순서를 따라 기도 속에 참여하고 하나 되는 것이다.
3. 향심기도
반복하지 않고 ‘사랑’이나 ‘하나님’과 같이 간단한 단어 하나를 정한다. 정신이 흐트러질 때 그 단어를 사용해 하나님께 집중한다. 정신적 참 고요이며, 완전한 침묵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과 함께 머무르는 것이다. 침묵과 관상 가운데 들어가면 하나님은 신자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음을 가라앉혀서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고 집중하고 묵상한다. 이미지나 감각을 초월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자신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이다. 향심기도는 현존하는 주님께 나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잔해를 모두 치워버리는 청소이고 응답이다. 생각을 멈추고 마음이 즉시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한다.
먼저 편안하게 앉아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생각, 갈등, 기분 등을 모두 내려놓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에 기댄다. 이어서 하나님의 임재에 순복하겠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를 하나 정해서 그 단어를 조용히 생각한다. 가능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어면 좋다. 그런 다음 생각이 나거나 기분이 변하면 하나님의 임재에 순복하고 기대겠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를 조용히 생각하라는 신호로 삼는다. 그런 다음 정신이 맑고 차분해지면 그 단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한다. 생각이 흩어지면 조용히 그 단어를 생각한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 질문, 걱정이 들더라도 그 단어로만 대답한다. 기도를 마칠 때(아침저녁으로 20분이 적당) 1,2분 정도 침묵을 깬다. 조용히 주기도문을 천천히 외우면서 기도를 마친다. 향심기도를 탁월하게 하는 사람들은 기도자의 마음에 목표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기도는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하루와 평생에 걸쳐 여문다. 그리고 그 결실은 성령의 열매이다.
4. 예수기도
예수 기도는 입술로, 정신으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계속, 쉬지 않고 부르는 것이다. 예수님의 변함없는 임재를 인식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항상, 심지어 잘 때에도 주님의 복을 비는 것이다. 아침에 예수 기도에 눈을 뜨고, 낮에는 예수 기도에 감격하고, 밤에는 예수 기도를 하는 꿈을 꾼다. 그 기도는 숨결과 고통처럼 일부가 된다. 6세기 필레몬(Abba Philemon)이 언급한 것이 발전되어, 동방 기독교 영성의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 이 기도는 복음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신구약을 관통한다(막 10:47;눅 18:378).
예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우선 성실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완전히 조용한 장소에 있어야 한다. 조용한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호흡을 통해 정신을 마음에 집중한다. 고개를 숙여 심장이 있는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더 좋다. 조명이 어두운 방에 편안히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호흡의 리듬에 맞춰 예수 기도를 시작한다. 보통 사람이 일분에 12-15회 숨을 쉰다면 3천 번을 하려면 서너 시간이 걸린다. 100-500번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기도 끈을 사용할 수도 있다. 기도의 내용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Kurie elei son, Chri ste elei son. Kurie elei son).라고 한다. 간단히 ’그리스도시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하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길을 걸으면서도 가능하고, 하루 종일도 가능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몸으로 미로를 따라 기도하기, 십자가의 길 기도, 이콘, 순례, 금식, 십자성호와 다양한 몸짓, 안식, 봉사 등으로 통하여 다양한 영성훈련을 할 수 있다. 토니 존스의 ‘되찾은 영성’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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