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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7: 뜻이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1841 추천 수 0 2013.09.20 19: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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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9-15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7: 뜻이 이루어지이다"
2010년 6월 19일(토) 텔아비브 욥바교회
 마태복음 6:9-15

  오늘은 주기도문 일곱 번째 시간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내용으로 주기도문의 일곱 개의 청원 가운데 세 번째 청원이다. 주기도문의 첫 번째 청원부터 세 번째 청원까지는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당신의’라는 말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동사의 어법이 간접명령형이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읽으면 이렇게 읽을 수 있다.

‘아버지,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것인데, 이 말을 들을 때 난 예전에 어느 부흥사가 했던 노래가 기억이 난다. 내가 20대 중반 때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때 부흥회 강사목사가 이 찬양을 불렀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그러더니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것이다.
  ‘내 뜻대로 살기로 했네. 내 뜻대로 살기로 했네. 내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교회에서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고 부르는 신자들이 세상에 나가서는 ‘내 뜻대로 살기로 했네’식으로 산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리 한 것이다.

  그 생각이 나는데, 생각해보면 실제로 그렇다. 그런데 말이다. 뒤돌아서야 한다. 주님 뜻대로 살 때는 뒤돌아서면 안된다. 그러나 내 뜻대로 살려고 할 때는 반드시 뒤돌아서야 한다. 우리의 본성은 자꾸만 내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반드시 뒤돌아서야 한다.

  오늘 주님의 뜻에 대해 본다. 주님의 뜻,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청원은 그 앞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청원의 연장선이다.

  지난번에 이 부분을 말씀전하면서 주기도문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이 청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라는 청원의 연장선인 것이다. 주기도문의 중심이자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주기도문의 모든 청원들, 일곱 개의 청원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로 통한다. 하나님 나라와 연결된다.

  이어지는 청원이 무엇인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왜? 용서가 하나님의 나라이기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기도문의 중심이자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소서’도 하나님 나라와 통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다. 당연히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경배가 사람들을 통해 드려진다. 입술의 찬양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경배가 드려지고, 삶의 순종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경배한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예배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에서 예배한다면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증거다.

  왜 ‘이스라엘의 찬송 가운데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말씀하는가?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찬송 가운데 거하신다는 뜻인데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찬송 가운데, 예배 가운데 임하신다는 뜻이다.

  찬송과 예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마음이고 행위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배의 기준은 우리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 분위기, 내게 감동을 주는 예배와 말씀이 그 기준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 참된 예배의 기준이다. 내가 은혜 받았다는 것이 예배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과연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렸는가 하는 것이 예배의 기준이다.    

  언제 예배가 드려지는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임한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예배다. 찬양이 나온다. 그때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찬양이 터져 나오고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예수 믿기 전까지는 그렇게 힘들었던 찬양과 예배가 예수 영접하고 나니까 드려지게 된다.

  언제 참된 예배가 드려지는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질 때다. 예수님을 영접해서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더 자라고 확장되어질 때다. 그것을 우리는 은혜 받았다. 성령충만하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도, 교회를 다녀도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배가 힘들어진다. 찬양이 힘들어진다. 비단 모르는 찬양이고 예배 스타일이 달라서가 아니다. 예수님을 영접해서 내 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제대로 자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하나님 잊고 살아보라. 일주일 내내 하나님과 아무 교제 없이 살아보라. 말씀도 기도도 순종도 없이 살아보라. 정말 그렇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살았을 때 예배가 어떨까? 힘들다. 교회 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더 자라고 확장되게 하라.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다. 예수님과 날마다 관계를 가지라. 날마다 성령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라.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는 내 안에서 자라나고 확장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참된 예배는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임하고 예수님을 통해 확장되어지고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어지는 나라이다. 작게는 내 안에서 이루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은 순간 하나님의 나라는 내 안에 임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순간부터 내 안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범죄한 인간의 실존은 결핍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결핍들이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해 채워진다. 변화된다. 우선 죄용서 받아 자유를 맛본다.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는다. 염려에서 평화로, 하나님을 거역함에서 예배로, 미움에서 용서로, 거짓에서 정직함으로,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다툼이 일어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함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동시에 다툼이다. 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이런 다툼이 없었다. 죄 가운데 있었고 영원히 죽을 운명이었고 하나님과 관계없이 늘 하나님을 거역했던 죄인이었고 그래서 참된 평화도 몰랐고 예배도 몰랐고 사랑도 몰랐고 참된 공의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다툼이 생긴다. 전혀 다른 것이 들어오니 다툼이 생긴다. 내 본성과 반대되는 것들이 들어오니 다툼이 생긴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성을 가진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는 자꾸만 자라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처럼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자라나서 많은 새들이 깃들만큼 자라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물론 이 비유는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작게는 내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로도 볼 수 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만큼 임했다. 큰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만큼 작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자라나려고 한다. 왜? 하나님의 나라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라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 있다. 누굴까? 우선은 사탄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주기도문의 청원 중에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청원이 있는 것처럼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끌어내려고 발악을 한다. 성경은 사탄이 마치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가게 하고,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게 끌어내려고 온갖 수단을 다한다.

  그것뿐일까? 하나님의 나라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 사탄뿐일까? 아니다. 나 자신이다. 하나님 나라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자아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막고 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온 우주에 편만하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못 들어가시는 데가 있다. 바로 내 안이다. 왜?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강제로 내 안에 들어가시지 않는다. 무당들을 보면 신 내렸다는 말을 한다. 혹은 귀신들렸다는 말은 한다. 사탄은 비인격적인 존재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연약한 부분을 공격해서 강제로 사로잡고 그래서 그 인격을 파괴하고 파멸의 길로 이끄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강제로 내 안에 들어가시지 않는다. 강제로 나를 굴복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를 무례하게 대하시지 않는다.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존중하신다. 내가 불순종함에도 하나님은 나를 함부로 대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나를 온 우주와 같은 소중한 존재로 여기신다. 하나님은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내가 인격적인 반응을 하길 원하신다. 그것이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이 될 때 하나님은 내 안에 들어오신다. 성령님으로 내 안에 들어오신다. 그래서 내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내 안에는 여전히 장애물이 있다. 뭔가? 바로 나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내가 왕이 되어서 내 마음대로 살았다. 예수를 믿는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는 내가 왕이 아니라 주님이 왕이시라는 것이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길 원하신다.

  그런데 내 안에는 여전히 자꾸만 왕이 되려고 하고 주인이 되려고 하는 내가 있다. 나의 뿌리 깊은 죄성이 있고 탐욕이 있고 매우 강한 자아가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뿌리가 된다. 불순종의 뿌리가 되고 죄의 뿌리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

  지난 주 라기스 현장예배 때‘나의 라기스’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고 끊어내라고 했다. 라기스로 인해 예루살렘과 온 나라에 하나님보다 말과 병거를 의지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불신앙이 들어왔고 애굽의 우상숭배가 들어와 혼합종교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이건 괜찮겠지, 남들 다 하는데,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 합리화했던 것들, 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임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잘못들... 이것이 나의 라기스다. 나를 영적으로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지 못하게 만드는 라기스다. 나의 라기스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고 그것을 끝장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권면하는데 ‘당신의 라기스’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단호하게 끊어내라.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초신자든 기성 신자든 마찬가지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일주일 내내 나를 무너뜨리고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지 못하게 만드는 라기스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라기스를 끊어낼 작정이다.

  당신의 라기스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끊어내라. 그리고 특히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신 분들, 모태신앙인 분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한 분들, 직분을 맡은 분들, 교회에 익숙하신 분들, 성경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일수록 나의 라기스가 있다. 그 라기스를 끊어내라.

  나의 라기스는 내 안에 여전히 살아서 주장하는 나의 자아이고 내 죄성과 탐욕에 따라 움직이려고 하는 나 자신이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잘못된 습관들과 합리화하는 것, 굳어버린 타성과 게으름이다. 이것이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고 확장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장애물을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하게 자라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내 결단과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의 결단과 의지와 노력이 없이는 성령님의 도우심은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찾는 자를 만나시겠다고 하셨다.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의 결단과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우리 안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 그리고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더 확장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 개인적인 차원으로 축소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은 개인적인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무슨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겠는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출발은 바로 나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하고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더 자라나고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는 도구로 살아가는 것이다.

  기억하라.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 그리고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고 확장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내 삶 가운데 이루어지길 간구하고 그렇게 되도록 결심하고 노력하고 도우심을 구하라.

  이제 좀 더 범위를 넓혀보자.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말씀에서 하나 생각해보자.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은 단순히 heaven이 아니다. 천국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 개념은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전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공간이다. 그곳에서는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충만함이다. 풍요함이다. 어떤 결핍도 없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 결핍이라고 했다. 생명의 결핍, 그래서 질병과 죽음이 찾아왔다. 거룩의 결핍, 사랑의 결핍, 평화의 결핍, 능력의 결핍, 하나됨의 결핍... 이런 결핍이 하나님의 떠난 죄인의 실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결핍이 없다. 생명의 근원이시고 자체이신 분으로 가득한 나라이다. 거룩하시고 사랑이시며 공의로우시며 평화이시고 능력이신 하나님으로 가득 찬 나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결핍이 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범죄함으로 인간에게 찾아온 결핍을 끝내는 것이다. 결핍된 인간 세상을 하나님의 풍요와 충만으로 바꾸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이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임하고 확장되고 완성된다. 왜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예수 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는 없다. 왜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주권과 통치에 순종해야 하는가? 예수 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은 없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가? 그분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이 예수 믿어 죄용서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있는 결핍을 끝내고 하나님의 풍요로 바꾸시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통치와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풍요와 충만을 이 땅에서 맛보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나고 확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가는 것이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야지만 나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확장되어질 수 있다. 어디에서? 나의 관계 속에서. 내가 있는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심고 가꾸고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은 충만과 풍요라고 했다. 어떤 결핍도 없다고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랑과 공의다. 이 둘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충만하고 온전히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것이 실제로 우리 안에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오늘은 먼저 사랑을 보자.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 되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계시지만 한분이시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하는데 잘 이해해야 한다. 우선 삼신론이 아니다. 어렵지만 한 분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라. 인간의 숫자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삼위의 하나님이 완전한 하나됨, 특별히 사랑으로 완전하게 하나됨이 바로 삼위일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 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하나 되는 사랑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하늘에서처럼 이 땅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는 사랑이 바로 하나 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 되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라.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마지막 기도를 하신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21절)

  체포직전에 하신 기도가 우리의 하나됨이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것 아니다. 우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한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근거이고 능력이고 소망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일까? 에베소서 4장이 그 답을 준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2-3절)

  이것을 한마디로 줄이면 사랑의 섬김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의 섬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진정으로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임했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가?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분 스스로 나는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창조주이신 분이 피조물로, 만물의 주인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분이 종의 모습으로 오셨고, 당연히 섬김 받으셔야 할 분이 섬기러 오셨다. 그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섬기셨고 발을 씻겨주셨고 목숨까지 주는 사랑의 섬김을 실천하셨다.

  아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종의 되는 섬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섬김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의 초청은 섬김의 부르심이다. 자기 부인이고 섬김의 부르심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이 말은 자기 부인 없고 사랑의 섬김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없다는 말이고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자기 부인과 사랑의 섬김은 같은 말이다. 자기 부인 없이 사랑의 섬김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죄는 자기주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부인이라고 했다.

  자기 부인이 무엇인가?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의 깊은 인식이다.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용서해주셨다는 은혜에 대한 깊은 인식이다. 이 인식이 없이는  자기 부인 못한다.

  이 인식이 있기 전에는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기 교만과 열등감이다. 자기가 옳고 자기가 잘났고 남은 나보다 못하고 틀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남보다 못하고 그래서 나보다 잘난 사람, 가진 사람 보면 싫고 시샘이 나고 미워진다. 이런 자기교만과 열등감이 바로 자기주장이다. 서로 다른 모양의 자기주장이다.

  이러한 자기주장을 가지고 하나 되는 사랑의 섬김을 할 수 있을까? 천만에. 절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됨은 자기부인에서 나오는 사랑의 섬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 부인은 내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의 깊은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들어가서 보면 나는 그저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 잘난 것 하나 없고 옳은 것 하나 없다. 너도 마찬가지다. 부자라서 좀 낫고 잘 배워서 좀 낫고 힘 있어서 좀 낫고 외모가 잘 생겨서 좀 낫고 집안이 좋아서 좀 나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이 죄인이고 모두 다 똑같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을 죄인일 뿐이다. 그런 죄인인 나를 하나님께서 택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깊은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자기부인이다. 내가 괜찮아서, 혹은 내 안에 괜찮은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자기부인 못한다. 지가 잘나서 구원받은 줄 아는데 어찌 자기부인을 할 수 있겠는가?

  날마다 십자가 앞에 엎드리라. 그리고 나에게는 구원받을만한 선한 구석이 결코 없음을 확인하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용서 받았음을 깊이 인식하고 날마다 확인하라. 그래야 내 안에서 계속해서 꿈틀거리는 자기주장이 사그라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의미이다.

  이 자기부인에서 사랑의 섬김이 가능해지고, 사랑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자기주장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자기주장은 자기 의다. 내가 높아져 섬김을 받겠다는 것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고 너와 나는 다르다는 것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고 너를 위해 손해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 이익이 항상 먼저다. 내가 너를 섬기기보다는 너의 섬김은 받고 싶다는 것이다. 받고도 당연하게 여긴다. 늘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너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그랬는데 안하면 너를 판단하고 멀리하는 것이다. 자기주장은 이기심이고 교만이고 열등감이고 판단과 정죄하는 것이고 차별과 편견, 끼리끼리 모이는 당 짓는 배타성으로 나타난다.

  지난주에 욥바, 예루살렘 등지에서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의 시위가 있었다. 사태는 지난해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임마누엘’ 유대인 정착촌에 거주하는 아쉬케나지(유럽계) 유대교인 부모 40쌍이 자신의 딸이 스파라디(스페인, 북 아프리카, 중동계) 유대교인들과 한 학교에 다니는 것을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법원은 지난해 8월 스파라디 유대교인 여학생이 아쉬케나지 학생들과 한 학급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판결했고, 아쉬케나지 학부모들은 이에 반발해 딸들의 등교를 거부했다. 법원은 결국 이날까지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를 2주일간 구금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내렸지만, 이들은 시위로 맞섰다.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은 비교적 부유한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대교 교리를 철저히 지키며 극우 성향을 유지해왔고 ‘초정통파’ 성향을 갖게 된 데 비해 스파라디 유대인들은 생존을 위해 교리가 비교적 개방적으로 유화됐다. 아시케나지 랍비는 방송에서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파라딤의 신앙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학급을 분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을 보여주는가? 차별이다. 유대인이 유대인을 차별하는 행위이다. 자기 의다.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것이다. 난 유대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사회에 이런 편견과 차별이 있다. 우리나라를 보라. 얼마나 많은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가?

  문제는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편견과 차별이다. 초정통파 유대인들도 어쨌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아닌가? 그것도 철저하게 믿겠다고 초정통파 아닌가? 그런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이 무엇인가? 차별이고 편견이고 당짓기다.

  이런 차별과 편견, 당짓기가 교회 공동체, 신앙공동체에는 없는가? 있다. 너무 많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는커녕 무너뜨리는데 힘을 기울인다. 지역에 따라, 학벌에 따라, 부의 차이에 따라, 사회적인 지위, 피부색깔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고 그에 따른 편견이 있고 차별이 존재한다. 비슷한 사람들, 그런대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 익숙한 사람들, 오랫동안 교회 다닌 사람들끼리의 집단 이기주의가 있다.

  하나됨과 배타성은 다르다. 하나됨과 친함은 다르다. 같은 사람들,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친해지고 단결되는 것은 배타성이고 집단 이기주의일 뿐이다. 자기들만이 옳고 자기들만 있는 것이 좋다는 것 아닌가?

  세상은 원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할 교회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나니 문제다. 이런 교회 공동체, 신앙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도 거룩한 주님의 몸도 성전도 아무 것도 아니다. 아까운 땅만 차지하고 있는 쓸데없는 것일 뿐이다.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지 못하고 대신 끼리끼리의 당짓기와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겸손히 낮아져 서로를 돌아보고 섬기는 사랑의 섬김이 사라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나라를 막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능력 있는 사람? 유명한 사람? 아니다. 큰 교회? 부자 교회? 아니다. 우리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도 엘리트 지상주의, 성공 지상주의, 성장 지상주의, 메가 처지 신드롬에 열광한다.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자기 부인이 있는 사람이다. ‘내려놓음’이란 책이 있데 무엇을 말하나? 자기 부인이다. 자기 부인이 있고 겸손이 있는 사람, 그래서 사랑의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쓰시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영적 영향력을 가진 리더가 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심어지고 확장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도 마찬가지다. 자기부인에 기초한 사랑의 섬김이 있는 교회이다. 큰 교회, 돈 많은 교회,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교회를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기 부인이 있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사랑의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이다. 서로 살아서 자기를 주장하는 교회는 결코 하나될 수 없다. 스스로도 하나 되지 못하는 교회가 무슨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섬김을 위해 부르셨다. 하나님 나라는 섬김이다. 우리는 섬김을 위해 존재한다. 나의 지성, 영성, 재물, 힘, 모든 것들은 섬김을 위해 있는 것이다.

  이 섬김을 통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신다. 그래서 더욱 더 우리가 하나 되길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확장된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된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초대교회 아닌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한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그래서 하나 되게 하셨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끝인가? 아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켰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도들의 권위에 순종함으로 사도들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았고, 사도들과 온 성도들이 예수님을 닮은 자기부인에 기초한 사랑의 섬김을 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내가 그것을 깨닫던 깨닫지 못하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내 안에 임하여 시작되었다. 그것이 자라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더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나라의 풍요와 충만과 축복을 맛보길 원하시고, 아울러 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심고 이루시고 확장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하셨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초청은 자기 부인이고 섬김이다. 자기부인에서 출발하는 사랑의 섬김의 부르심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섬기는 자가 되자. 겸손히 낮아져 사랑의 섬김을 하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게 하자. 그래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더욱 힘써 지킬 수 있는 우리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심고 확장하는데 쓰임 받는 도구가 되고 교회가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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