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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觀)의 문제

마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104 추천 수 0 2013.09.20 19: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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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19-23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관(觀)의 문제
2010년 8월 7일(토) 텔아비브 욥바교회
본문: 마태복음 6:19-23

  지난 주 일요일 남선교회 주관으로 사마리아 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성경의 아주 중요한 지역이지만 그리 쉽게 갈 수 없는 지역이다. 내가 처음 사마리아 지역을 갔을 때는 4명이 팔레스타인 택시를 하루 대절을 해서 다녔다. 군사지도와 GPS를 가지고 구석구석 다녔다. 그때 유적지들을 찾아다니면서 참 안타까웠던 것은 발굴된 지역들이 방치되어 있다는 것과 도굴된 흔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도굴을 할 때 어디를 팔까? 창고라 짐작되는 곳을 파기도 하지만 방의 바닥을 판다. 이것은 고고학 발굴에서도 나타나는데, 귀중한 보물이 나오는 곳은 대개 방바닥이고,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도둑이 구멍을 뚫고 가져간 증거이다.

  고고학 발굴 지역이나 유적지를 가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지역은 집의 기초나 기둥은 돌로 짓지만 벽은 진흙을 빗어 만든다. 그러다 보니 도둑이 벽을 뚫고 도둑질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물을 방바닥에 묻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천이나 녹이 쓸 수 있는 것들은 쌓아두면 좀이 슬거나 녹이 슬어서 망가지기 쉽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방습 기술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녹이 슬지 않는 보물의 경우도 안전하지 못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벽을 뚫고 들어온 도둑은 기가 막히게 보물을 숨길만 한 장소를 알아내서 땅 아래에 구멍을 뚫어 훔쳐가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19절을 보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땅에 보물을 쌓아 두는 일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럼 다른 안전한 곳에 보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귀하게 여기고 목숨을 거는 재물들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파괴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느 할머니가 돈을 침대 매트리스에 넣어서 보관을 했다. 평생 모은 것이니 꽤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래간만에 찾아온 딸이 침대 매트리스를 보더니 너무 낡고 헤져서 나름대로 어머니를 위한다고 그것을 버리고 새 침대 매트리스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 경우는 적은 돈이었지만 그런 경우가 있었다. 군에 입대했을 때 아버지가 용돈을 주셨다. 그 당시에 훈련소 입대 당시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돈이 만원이 안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돈이 필요할 것이라면 오만 원을 주셨다. 그 당시로는 큰 돈이다.

  훈련소 입소 첫날 내무반에서 소지품 검사를 한다. 책은 성경책만이 허락이 되었고 돈의 경우 그 이상일 경우 압수를 했다. 어떻게 할까 하다 꾀를 생각해냈다. 만원을 뺀 사만 원을 철모에 감추어두는 것이었다. 그때 철모는 말 그대로 철모였다. 철로 만들어진 헬멧에 얇은 플라스틱으로 된 헬멧이 그 안쪽에 있어서 그 사이에 돈을 숨길만 했다. 내 사물함 위에 있는 것이니 누가 가져갈 일도 없다. 딱이었다. 거기에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되는 것이다.

  오늘 훈련 끝나고 피엑스에 가서 초코파이 사먹어야지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훈련을 끝내고 내무반에 들어오니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철모가 사라진 것이다. 헬멧은 헬멧인데 플라스틱으로 된 방탄 헬멧으로 몽땅 바뀐 것이다. 그때의 그 황당함, 허탈함, 박탈감은 말로 못한다. 그때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요즘이야 땅 속에 돈이나 보물을 숨기는 경우는 없겠지만, 주식시장이 곤두박질하거나 집값이 폭락한다던가 부도가 난다던가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여전히 도난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재물이 우리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재물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만다. 권력도, 명예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생 자체가 영원하지 않다.

  사람들이 이걸 모를까? 재물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권력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안다.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돈에 눈에 멀어 돈의 노예처럼 살아가는가? 인간의 탐심 때문이다. 탐욕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탐욕으로 물들어버린 마음을 지적하고 계시는 것이다. 마음은 인간의 내적 중심이다. 가장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는 곳에 마음이 가게 마련이다. 바꿔 말하면 마음이 가 있는 곳에 가장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마음이 끌린다, 마음이 간다, 마음이 뺏겼다, 마음이 없다, 이런 말들이 다 그런 의미 아닌가?

  재물과 관련해서는 물질에 대한 탐욕이다. 돈이 필요하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재물에 마음이 빼앗기는 것이다. 재물에 마음이 빼앗겨 재물을 얻는 것에 모든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인생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부를 가졌느냐에 따라 생활수준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진다. 돈이 인격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부자들이 살기에 너무 좋다. 부자들이 살기에 너무 좋은 나라는 매우 안 좋은 나라다. 북유럽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는 부자들이 살기에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세금을 많이 내거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돌보는 사회복지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바탕은 맘모니즘이다. 사실 성경적이지 않은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돈벌이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다.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들이 그 한 예다.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이 그러하다. 중학생 여자아이들을 보며 3,40대, 50대 아저씨들이 좋아한다.

  이제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들까지 나온다고 한다. ‘초딩도 섹시할 수 있다’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말이다. 뜨고 싶고, 뜨면 돈도 벌 수 있어서 더 뜨고 싶어 하는 아이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하는 기획사들의 욕심, 그리고 이런 자기 딸 같고 조카 같은 어린 여학생들을 보면서 은근히 성적 만족을 즐기려고 하는 어른들의 변태적인 성적 취향이 한데 어울려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마음이 뺏겨 있다.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에 마음이 빼앗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돈에 마음이 빼앗겨 남의 것을 탐하고 속이고 빼앗고 양심을 팔고 몸을 팔고 인생을 망친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마음이 뺏겨 돈이 인생을 이끄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가?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예수 믿기 이전에야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예수 믿은 후에도 그러할 때다. 예수는 믿고 교회는 다니는데 여전히 돈에 마음이 뺏겨 산다. 여전히 돈이 목적이 되어 돈이 이끄는 인생을 산다. 하나님도 나의 부귀영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물질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 이런 데는 별로 관심도 없고 마음도 없다. 혹은 인색하다. 그저 나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다. 이럴 때가 문제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제부터는 하나님만이 나의 보물입니다 라는 것 아닌가?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 최고의 목적이라는 것 아닌가? 내 마음 하나님께 두겠다는 것 아닌가? 이전에는 내 마음을 재물에 두고, 성공에 두고, 세상에 두고, 쾌락에 두었지만 이제는 내 마음 하나님께 두고 내 온 마음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이것 아닌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내 마음이다. 내 마음 헛된 것에 두지 말고 빼앗기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내 마음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향해 있고 그것에 내 마음을 두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21절에서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다. 이 것을 바꾸어 말하면 내 마음이 있는 곳이 내 보물이다. 내 마음이 가는 곳, 내 마음이 빼앗겨 있는 것이 내 보물이다.

  하나님과 돈,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쾌락, 하나님과 권력, 하나님과 성공, 이 둘 중에서 어느 곳에 내 마음이 더 향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디에 더 내 마음이 끌리고 내 마음이 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둘 중에서 하나님에게 더 마음이 끌리고 더 마음이 가면 하나님이 내 보물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내 마음이 돈, 성공, 권력, 세상의 쾌락이나 만족에 더 끌려있고 그러한 것에 마음이 더 가 있다면 그것들이 내 보물이다. 결국 마음의 문제를 지적하시는 것이다. 너의 마음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에 대해 말씀하신다. 22-23절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 하겠느냐”

  네 마음이 재물에 있냐 하나님께 있냐를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눈에 대해 말씀하신다. 좀 생뚱맞은가? 왜 눈에 대해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되는가?

  이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화 캐릭터가 있다. 원래는 소설이었다가 영화로 제작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이란 캐릭터다. 이 소설을 쓴 존 톨킨이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인데, 비록 소재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그 내용이나 캐릭터들을 보면 기독교적인 것들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골룸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주인공인 프로도와 같은 호빗족이었지만 절대 반지에 마음이 빼앗긴 이후 외모도 흉측하지만 이중인격을 가진 괴물이 되고 말았다. 골룸의 눈은 언제나 절대 반지를 향해 있었다. 온 마음이 빼앗겼으니 다른 것은 안 보인다. 오직 반지다. 반지를 다시 손에 넣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만이 보인다.

  마지막에 골룸이 프로도에게서 반지를 빼앗아 들고 기뻐다가 그만 용암 아래 떨어지면서 했던 말이 있다.“My precious!” 반지에 마음과 눈이 빼앗겨 이제 용암 아래 떨어져 죽는 그 순간에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보물’이었다. 앞서 반지의 제왕에는 기독교적인 내용이 스며들어 있다고 했는데, 골룸을 보면 딱 이 말씀 아닌가?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고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건 시력이나 눈의 건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눈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결국 마음과 같은 맥락이다. 마음이 끌린다, 마음이 뺏겼다, 마음이 간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이 눈이다. 눈길이 간다, 눈길이 머문다, 눈이 멀었다 라는 말을 쓰지 않는가?

  예수님께서 마음 이야기를 하시다가 눈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은 생뚱맞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말을 하시는 것이다. 네 마음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네 마음이 어디에 있기에 그런 것에 눈길을 주고 눈이 멀어있냐는 것이다.

  눈이 성하다, 눈이 나쁘다는 말은 다른 뜻이 아니다. 눈이 ‘성하다’는 말은 원어로 보면 ‘단순하다, 순수하다’는 뜻이다. 눈이 순수하다, 단순하다, 즉 순수한 눈, 단순한 눈을 말하는데 어떤 눈인가? 말 그대로 순수한 눈이다.

  재물에 있어서도 탐욕을 부리지 않는 순수한 눈, 다른 사람들의 것을 탐하지 않는 눈,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기꺼이 자신의 물질로 도와줄 수 있는 자비로운 눈이다. 하나님께 향해 있는 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따르는 눈,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는 눈이다.

  반대로 나쁜 눈은 어떤 눈인가? 순수하지 않은 눈, 단순하지 않은 눈이다. 재물을 탐하는 눈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려 하는 눈이다.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탐하는 눈이다. 어려운 이들에게 인색한 눈이다. 자신의 탐욕에 충실한 눈이다. 재물을 모으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눈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바로 관(觀)의 문제이다. 볼 관(觀)이다. 예수님께서 어디에 마음을 두고 무엇에 보느냐를 말씀하셨는데, 이는 관(觀)의 문제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가치관의 문제, 세계관의 문제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관(觀)이 있다. 무언가를 보고 행하는 가치관, 세계관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물질관, 성공관, 인생관, 결혼관, 학문관, 직업관 등이 있다는 것이다.

  관(觀), 어떠한 것을 어떠한 마음으로 보느냐의 문제인데, 이 가치관, 세계관이 결국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것이다.

  내가 군 제대를 할 때쯤, 그러니까 8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 세계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이었다. 여러 곳에서 기독교 세계관 세미나가 열렸고, 관련 도서들이 출간되었었다. 나 역시 수차례 기독교 세계관 세미나에 참석을 했었고 책들을 읽으며 공부했었다.

  왤까? 왜 이런 기독교 세계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까? 관(觀)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는 믿는 것 같은데 관(觀)이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가치관, 성경적인 세계관이 기독교인들 가운데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짧은 역사 가운데서 크게 부흥한 교회다. 그래서 교인들을 보면 뜨겁고 열심히 있다. 그런데 실제의 삶의 현장에서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라. 여러분의 물질관이 어떻게 다른가? 여러분의 직업관, 성공관, 결혼관, 인생관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살아가는가?

  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가치관, 세계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은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은 알 것이다. 어떠한 관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것을 통해 우리의 몸이 밝아지기고 하고 어두워지기도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세계관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맡고 있어도, 은사도 받고 믿음이 좋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가치관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초신자들 경우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한다. 교회에서 정말 믿음이 좋아 보이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나 목사님, 선교사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가 그들의 실제적인 삶의 현장을 보았을 때 매우 실망하고 때로는 시험에 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앙적일 것 같은 장로님이 자기의 사업에서는 전혀 신앙적이지 않고, 그렇게 신실해 보이는 권사님이 자기 아들딸 결혼시킬 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집사님이 세상에서는 너무나 똑같이 살아간다는 것이고, 순교를 각오하고 열정적으로 사역하는 목회자나 선교사님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서는 조금의 양보도 없이 인색한 것을 보면서 실망하고 시험에 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관(觀)의 변화이다.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이다. 로마서 12:2을 보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은 다른 것 아니다. 우리의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단순히 이 세상이 아니라 이 세대의 가치관, 세계관, 풍조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이 세대의 가치관, 세계관이 무엇인가? 저급하고 탐욕적인 맘모니즘 아닌가? 이기적이고 거짓되고 부정과 불의를 따라가는 것 아닌가? 음란하고 패역한 문화, 복수와 폭력의 문화 아닌가?

  이스라엘에 와서 참 감사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나라 TV 드라마를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대로 외국에서 살다보면 우리의 정서를 위해서 한국 드라마를 볼 필요가 있다고 하고 가끔 괜찮은 드라마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훨씬 더 많은 드라마는 정말 말 그대로 막장이다. 정말 갈 때까지 가고 있다.

  막장 드라마들, 수많은 영화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돈이 있어야 폼생폼사할 수 있다, 돈이 최고다, 나에게 해를 가한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마라, 복수해라, 성적으로 즐기며 살아라 그것 아닌가? 어떻게 남편 하나로 사냐, 어떻게 아내 하나로 사냐 그것 아닌가? 결혼 전에 성관계 하는 것이 멋진 사랑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음란하고 저급하다. 왜 그리 욕설은 많은지...

  드라마니까? 영화니까? 아니다. 이 세대의 가치관, 세계관, 풍조가 담겨 있는 것이 바로 드라마고 영화다. 나는 반 문화주의자가 아니다. 문화를 즐겨라. 그러나 조심해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보는 것 때문에 나의 보는 것, 나의 관, 나의 가치관, 세계관이 더렵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요구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돈이 최고라고 말하는 세상에 대해서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실제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돈은 수단일 뿐이지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에 마음 뺏기지 말고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성적인 쾌락을 즐기라고 말하고 불륜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 세대를 향해서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실제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한강변에 줄지어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가봐라. 얼마나 부적절한 관계들이 많은지. 남녀 둘이 앉아 있는데, 적절한 관계인지 부적절한 관계인지를 보면 안다.

  어떻게 한 여자, 한 남자하고만 살 수 있냐고? 한 여자, 한 남자만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사는 것 보다 훨씬 멋있고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성적인 순결을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여주라는 것이다.

  뇌물을 요구하고 뇌물을 줘야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이 세대를 향해서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영화 투캅스에 나오는 부패한 형사처럼 교회에 나와서 회개하고 일주일 동안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그런 삶 이제는 그만 두자는 것이다.

  성경적인 방법, 신앙양심에 따라 하면 기업이 안 되고 사업이 안 되고 비즈니스가 안 되는가? 정말 안 되는가? 내가 목사라서 세상 물정 몰라서 그런 말 한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제가 아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정말 신앙양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경적인 방법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사업을 하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그래서 망한 것이 아니라 성공하고 있다.

  안된다고 하면서 이 세대를 따라가는 것 이제는 그만 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하라. 이 외에도 많다. 부패하고 음란하고 저급하고 탐욕에 이끌려 살아가는 이 세대를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마음의 문제를 말하신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것이다. 늘 새롭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새롭게 되는가? 본질에 집중하라. 본질에 눈을 고정하라. 본질이 무엇인가? 뒤에 나온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하나님과 재물 중에서 무엇이 본질인가? 하나님이다. 하나님께 집중하라. 눈을 고정하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지 말라. 하나님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그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눈을 고정하라.

  재물과 목숨 중에서 무엇이 본질인가? 목숨이다. 내 생명이 훨씬 중요하고 내 영혼이 천만 배 중요하다. 돈 없다고 죽는 것 아니고 돈 없다고 죽을 생각하지 말라. 내 인생이 돈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된다. 돈 때문에 의시대지 말고 돈 없다고 무시하지도 말고, 돈 없다고 기죽지도 말라는 것이다. 돈 때문에 사람을 버리는 짓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염려와 하나님을 믿는 것 중 어떤 것이 본질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본질이다. 그래서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고 우상숭배다.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신앙양심에 따른 정직과 거짓 중에서 무엇이 본질인가? 신앙양심에 따라 정직과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거룩과 음란, 무엇이 본질인가? 거룩이다. 세상의 풍조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무엇이 본질인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본질이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본질이다.

  이 본질에 집중하라. 이 본질에 마음을 두라. 이 본질에 눈을 고정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눈을 고정하고 마음을 두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나의 직장에서, 비즈니스에서, 학문에서, 가정에서, 결혼에서, 성에 대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물질관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관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삶의 변화, 인생의 변화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원하신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두고 눈을 고정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게 된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무엇이 보물인가?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오해를 한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유대교의 성경해석을 봐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유대교의 성경해석 전통을 염두에 두셨다.

  잠언 2:4에 보면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이라고 되어 있는데, ‘보배를 찾는 것 같이 찾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토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보배, 보물이라는 것이 잠언 2:4에 대한 유대교의 미드라쉬, 즉 성서해석이다.

  더불어 창세기 미드라쉬 랍바에 보면 에덴동산과 지옥에 대한 이런 해석이 있다.
‘이처럼 누구든 계명과 선행을 쌓으면 이것은 에덴동산이다. 그러나 누구든 계명과 선행을 쌓지 않으면 이것은 지옥이다.’

  이것이 유대교의 미드라쉬, 성서해석인데, 이러한 해석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토라의 법도를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토라의 법도, 즉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잘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구제, 쩨데카인데,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는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 나타나고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하고 이웃 사랑은 실제적으로 도와주고 섬기는데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한 것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의 마음과 눈이 하나님께 두고 향하고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우리의 관(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과 눈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왜 순종하지 않겠는가? 왜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왜 이웃을 사랑하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행을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내 마음과 눈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향하여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늘에 보물을 쌓기를 원하는가?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잘 분별하여 순종하라. 그리고 그와 똑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실제적인 섬김을 하라.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부자가 되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하늘나라에 보물이 쌓일 것인데, 그 보물은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실망되는가? 아주 멋진 맨션과 보물이 가득한 집을 생각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보상심리일 수도 있다. 물론 요한계시록 등에는 실제로 보물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깨닫게 될 보물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보물이라는 말이다. 하늘나라에 보물이 없어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는 우리의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천국에 가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만큼 쌓여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 불순종의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순종하려고 애썼던 그 마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닮아갈 수 있을까 기도하며 생각하며 몸부림쳤던 그 마음,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섬겼던 그 마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귀하다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내 것을 더 주고 더 섬기려 했던 그 마음, 나도 넉넉지 않지만 그래도 더 어려운 사람들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했던 그 마음, 이 땅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 갖고 도움을 주고 섬겼던 그 마음이 하나 가득 쌓여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보물로 여기시고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지금 만일 죽어 천국에 간다면 어떨 것 같은가? 나의 마음이 얼마나 쌓여 있을 것 같은가? 믿음은 영원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사는 것 아니다. 재물이나 권력, 우리가 가진 것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고 영원하지 않고 우리의 생명 자체가 영원하지 않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십 되고 오십 되었는데, 한번 더 눈 깜짝하면 우리의 생명은 끝날 것이다. 그때 나는 영원한 부자인가 하는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하늘에 나의 마음을 보물로 쌓아두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나의 마음을 세상의 재물이나 헛된 것이 아닌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와 뜻에 나의 눈을 고정시키자. 그래서 나의 물질관뿐만 아니라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이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중심으로 바뀌게 하자. 그리고 그렇게 실제로 살아가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을 살아가자. 그래서 나의 마음 보물처럼 하늘나라에 쌓을 수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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