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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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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8.1 ⓒhttp://www.john316.or.kr |
골로새서(6) 이단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골로새서 2장 1-7절)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의 사역의 열매인 골로새 교회를 비롯해서 인근의 라오디게아 교회와 히에라볼리 교회 성도들 사이에 위로와 사랑이 넘치고 풍성한 지혜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님을 깨닫고 복음에 굳게 서서 이단에 넘어가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1-2절). 그리고 예수님의 탁월성을 강조했습니다(3절). 왜 그렇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탁월성을 강조했습니까? 이단들이 교묘한 말로 골로새 교인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4절).
당시 이단들은 교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복음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으면서도 복음과 더불어 구약 율법도 최선을 다해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말이 상당히 끌립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너무 싱겁고 너무 단순하고 너무 편한 것 같기 때문에 “어떻게 구원을 그렇게 쉽게 얻느냐?”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바로 그때 거짓 교사들이 뱀과 같은 화려한 말솜씨로 미혹하니까 거기에 넘어가서 결국 이단으로 넘어간 사람이 속출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이단들은 복음을 너무 싱거운 것처럼 여기게 하고 복음에 성령 충만, 은사, 기적, 축복, 행위 등을 더해서 자신들이 마치 ‘더 나은 복음, 더 완벽한 복음, 더 순수한 복음, 더 역사하는 복음’을 가진 선택된 존재인 것처럼 선전합니다. 그래서 기존 교회나 기존 교인을 무미건조하고 싱거운 존재로 여기게 만듭니다.
물론 믿음생활에는 성령 충만과 은사도 필요하고, 기적과 축복도 필요하고, 또한 행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구원을 완벽하게 하려고 보충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더 나은 복음’을 내세우는 것은 기존 복음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더 부실한 다른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예수님의 대속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예수님의 신성과 전능성을 부인하는 행위가 됩니다.
결국 이단 교사들이 ‘더 나은 복음’을 주장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예수님만으로는 불충분하다!”란 얘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이단들에게 물들지 말라고 강력하게 호소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 본능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하면서 더 나은 창조적인 삶이 펼쳐질 수도 있지만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특별하게 되려다가 특별하게 망하게 됩니다.
< 예수님 안에 거하십시오 >
그처럼 소아시아를 휩쓸던 거짓 교사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미혹될 때 골로새 교인들은 비교적 복음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3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 예수님 안에서 행하라고 합니다. 둘째,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고 합니다. 셋째,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그 감사가 일상의 삶에서도 넘치게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감사는 가장 뚜렷한 믿음의 척도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정말 좋은 사람을 자세히 보면 한결같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삽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으라! 복음 안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물질과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도가 죄를 짓고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잃는 것입니다.
성도가 죄를 짓는다고 해서 ‘구원’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이 주는 기쁨’을 상실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사건을 회개하면서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소서(시 51:12).” 지금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마음속에 주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이 있는가를 보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지는 않으셨지만 죄를 지으면서 그 죄를 마음껏 즐길 수는 없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죄를 범했을 때 큰 고통을 느낍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은 죄에 처해도 고통과 더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결국 성도와 죄인의 차이는 “죄를 지었느냐? 짓지 않았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만 성도와 죄인은 죄에 대한 기본자세가 다릅니다. 죄인은 죄 가운데서 죄를 즐기지만 성도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죄에 빠지긴 하지만 죄를 깊이 자각하고 혐오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 죄를 혐오하고 예수님의 필요성을 절감하면 그는 구원과 축복으로부터 멀지 않은 존재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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