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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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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8.27 ⓒhttp://www.john316.or.kr |
골로새서(12) 잘 죽고 잘 사십시오
(골로새서 3장 1-4절)
성도란 땅에 것에 대해서 이미 죽은 사람을 말합니다(3절). 앞으로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살면서 걱정 근심이 많고 문제가 복잡해집니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덜 죽고 설죽어서 그렇게 바동거리며 살고 생각도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수많은 심리적 질병들은 ‘내가 죽었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지면 대개 치료가 가능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죽는 것입니까?
어느 날, 성자 마카리우스에게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사람들이 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죽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카리우스가 말했습니다. “자네, 오늘 밤에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에 있는 사람들보고 ‘이 나쁜 위선자들아! 이 고약하고 무식한 놈들아! 이 저주 받은 복 없는 놈들아!’하고 욕하고 돌아와 보게.” 제자가 밤에 그대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카리우스가 제자에게 “무슨 반응이 있더냐?”고 묻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던데요.” 마카리우스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공동묘지에 가서 이번에는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칭찬해 주고 돌아와 보게.” 그래서 제자는 아침에 공동묘지에 가서 칭찬을 잔뜩 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카리우스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반응이 있더냐?” 제자가 말했습니다.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던데요?” 그때 성자가 말했습니다. “바로 그게 죽은 것이네.”
죽은 사람은 사람의 말이나 환경에 따라 요동하지 않습니다. 누가 칭찬한다고 해서 우쭐해지는 사람은 공동묘지 묻힌 분들로부터 조금 배워야 합니다. 또한 누가 조금 상처 주는 말을 한다고 해서 한과 상처로 발전시키는 사람도 공동묘지에 계신 분들로부터 조금 배워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칭찬해도 교만할 것이 없고 욕을 당해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죽을 수 있다면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 3절에 나온 ‘너희가 죽었고’란 말처럼 위대한 말은 없습니다.
그처럼 성도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는 사실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다음에는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잘 죽이는 데에서만 머무르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과거와 세상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잘 죽어야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힘차게 잘 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내 하나님’입니다 >
죽어도 주님 안에서 죽으면 주님의 때에 가장 영광된 존재가 됩니다(4절).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에게는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길이 있고 그의 내일은 찬란할 것입니다. 죽음도 딛고 일어서는 길이 있는데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딛고 일어서지 못하겠습니까? 가끔 힘든 일을 만나다 보면 하나님 어디 계시냐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 편에서 깨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으십시오.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가면서 광야에서 돌베개를 하고 잘 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깨어서 뭐라고 고백합니까?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구나(창 28:16).” 그 광야는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런 장소였지만 그곳에서 가장 하나님이 가까이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나갈 때만 함께 계시지 않고 오히려 힘들고 절망적인 순간에 더 함께 계십니다.
그때 야곱은 자기가 하나님을 만난 광야를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비록 광야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곳이 바로 ‘벧엘(하나님의 집)’입니다. 그처럼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고난과 절망과 상처의 자리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길이 안 보인다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길이 안 보여도 길이 있습니다.
이제 낙담과 절망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고 나가십시오. 성경은 무수히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바로 ‘내 하나님’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시고 합력하여 최선의 길을 열어주시는 ‘내 하나님’으로 굳게 믿고 다시 한 번 멋지게 앞날을 설계하고 최선을 다함으로 높이 비상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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