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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3: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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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8.28 ⓒhttp://www.john316.or.kr |
골로새서(13) 성도의 4대 행동원리
(골로새서 3장 5-11절)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통해 나타나는 죄로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의 5가지 죄를 듭니다(5절). 그 중에서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표현하며 특별히 주의시킵니다. 잠언 28장 16절에는 “탐욕을 미워하면 장수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탐욕은 건강을 훼손하고 사고 확률과 죽을 확률도 키웁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탐심은 죄보다 앞서 있는 죄의 근원이기에 잘 버려야 합니다.
‘탐욕’이란 ‘남을 배려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물질을 더 많이 가지려는 것’입니다. 졸부들은 말합니다. “내 돈으로 내가 쓰는데 왜 상관이야!” 그러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나눌 줄 모르고 자기 배만 채우면 결국 화를 당합니다. 물론 탐심을 버리라는 말은 물질을 외면하며 살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성도가 물질을 외면하면 물질을 잘못 쓰는 사람의 손아귀로 물질이 다 흘러들어가기에 성도는 물질적인 영역의 정복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물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잘 사용하면 됩니다.
2. 죄를 멀리하려는 삶
사도 바울은 죄의 결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말합니다(6절). 물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해서 당장에 벼락을 내리는 것으로는 대개 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상습적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버린 자식처럼 죄 가운데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진노 수단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결국 때가 되어 무서운 심판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자로서 땅의 육신적인 죄를 벗어버리라고 하면서 6가지 죄를 열거합니다(8-9절).
그런 죄들을 짓는 옛 사람의 행동을 옷을 벗듯이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하는데 이 구절에서 2번이나 ‘벗어버리다’란 표현을 쓴 것은 죄를 멀리하려는 스스로의 능동적인 의지도 있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도 있어야 하지만 ‘벗어버린다’는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도 필요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것과 더불어 ‘죄를 벗어버리려는 깨끗한 마음’도 추구해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채우는 가방이 됩니다.
3. 지식까지 새로워지는 삶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지식에까지 새로워지면서 생각도 바뀌고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는 이해력도 탁월해지면서 영적인 IQ도 높아집니다(10절). 사실 인간의 지식과 상식과 인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박사에게 고등학생이 풀 수 있는 삼각함수 문제를 내면 풀 수 있는 철학박사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학자도 그가 아는 지식은 한정된 것입니다. 자기 지식을 지나치게 믿거나 자랑하지 마십시오. 또한 사람간의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계층, 세대, 지역 간의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함경도 사람이 육이오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처음 보는 물건이 있어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시기?” 부산 사람은 ‘무시기’가 무슨 말인지를 몰라 되물었습니다. “무시기가 뭐꼬?” 그러자 함경도 사람은 ‘뭐꼬’가 무슨 말인지를 몰라 다시 물었습니다. “뭐꼬가 무시기?” 같은 말을 가지고 서로 인식이 달라서 설전을 벌인 것입니다. 그런 인식의 차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는 한정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지나친 철학적 분석으로 불행을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4. 차별하지 않는 삶
누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인종이나 민족이나 신분이나 문명 유무나 할례 유무로 인한 차별 없이 중생할 수 있습니다(11절). 결국 사람을 복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최고의 원천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남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타인을 차별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이런데 저 사람은 저래!”라고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구별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먼저 신중히 살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빌리 썬더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화를 잘 내는 것이 흠이지만 오래가지 않아요. 저는 뒤끝이 없어요.” 그때 빌리 썬더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성도님! 성도님은 뒤끝이 없어 좋겠지만 성도님 때문에 생긴 남의 상처는 오래 갑니다.” 자기가 뒤끝이 없는 것은 좋지만 자기 행위로 상처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남의 감정을 뭉개지 마십시오. 또한 필요하면 가르치되 분류하지는 마십시오. ‘남을 뒤에서 정죄하는 죄’보다 더욱 치사하고 비인격적인 죄는 ‘남과 나를 구별하는 죄’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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