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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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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호 목사 |
참고 : | 2013.9.1 높은뜻씨앗이되어교회 |
자족을 배우자.
빌 4:4-9.
1992년도 올림픽이 끝난 직후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선배 목사 한분이 한국에 나오셔서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숙소에서 텔레비젼을 보시다가 깜짝 놀랄 뉴스를 보시게 된 모양입니다. 한국의 아이들이 당시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운동화들을 신고 다닌다는 뉴스였습니다. 지금도 10만원은 작지 않은 돈인데 20년도 전인 당시 10만 원 짜리 운동화는 정말 놀랄만 했습니다.
저는 그런 운동화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정말 10만 원 짜리 운동화가 있느냐와 정말 그런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느냐를 물었습니다.
정말 그런 운동화가 있고 자기들만 빼고는 다 신고 다닌다는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왜 너희들은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느냐를 물었더니 큰 아들놈이 '사달라고 해봤자 안 사주실텐데요 뭐'라고 대답을 하여 웃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비싼 운동화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서 고맙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런 운동화를 신지 않아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 대답은 '쓸데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였었습니다. 올림픽 전에 코오롱이라고 회사가 황영조 선수에게 1억 원 짜리 운동화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발에 잘 맞고 가벼운 운동화를 개발하기 위하여 1억 원이라는 돈을 지불하였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그 황영조 선수의 1억 원 짜리 운동화는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유는 '쓸데 있다'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하여 필요하면 1억 원 짜리 운동화도 신을 수 있지만 쓸데 없다면 10만 원 짜리 운동화도 신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10 만원 짜리 운동화를 신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를 물었습니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함이냐?', '국위를 선양하기 위함이냐?' 물었습니다.
너희들이 그런 운동화를 신으려고 하는 이유는 그냥 단순히 '나는 이런 운동화를 신고 다시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자랑하려 함이 아니냐?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10만 원짜리 신발을 자랑하며 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10만 원 짜리도 되지 못하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이 10 만 원의 가치도 없으니까 10만 원짜리 신발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신발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희의 사람 됨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거라.'
우리는 10만 원 짜리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늘 말씀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자로 사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은 소유가치가 높은 삶이 아니라 존재가치가 높은 삶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그 말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편지가 제 자신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살면서 가끔 놀라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수입이 있는 분들이 나보다 더 부하지 않은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분들의 수입이 저보다 조금 더 많은데 그 분들의 소비와 지출이 저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자랑 같아서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은 저는 수입의 49% 정도를 헌금과 구제로 사용하고 현재까지 재산의 약 60% 정도를 하나님과 세상을 위하여 쓰기로 결심하고 실행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은퇴 후 원로목사가 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저축이 있습니다. 그 이유와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1992년도 제가 아이들에게 써 주었던 그 편지 때문입니다.
10만 원 짜리 운동화를 자랑하지 않으려 하니까 쓸데 없는 소비와 지출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돈이 많이 여유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를 자랑하는데 속아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쓸데 없는 일에 많이 낭비하게 되기 때문에 저축도 적고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만족도 적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절 이하에서 우리가 잘 아는 아주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로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곧 배부름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사도바울은 매우 중요한 단어를 말씀하는데 그것은 자족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자족이 바로 10만 원 짜리 운동화를 자랑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혀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얻어야 한다는 제 이야기와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그 자족을 비결이라고 말씀합니다. 정말 비결 중의 비결입니다. 바울은 자족을 능력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자족은 정말 능력입니다. 자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살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 2절에서 다윗은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복은 주 안에만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주 밖에도 복이 있다고. 사탄이 가짜 복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속입니다.
진짜 복과 가짜 복이 있습니다.
평안과 편안. 평안은 진짜 복이고, 편안은 가짜 복입니다. 편안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편안이 우리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기쁨과 재미. 기쁨이 진짜 복이고, 재미는 가짜 복입니다. 기쁨과 비슷해 보이지만 기쁨과 재미는 그 품질이 다릅니다.
돈과 소유는 우리에게 편안과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과 소유는 절대로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돈과 소유의 뻐저린 한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주 안에 있으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쁨은 진짜 복인데 그 진짜 복은 주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있으면 혹 가난하여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기쁨은 소유와 세상이 주는 재미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기쁘게 행복하게 살려면 소유에 집착하기 보다 하나님께 집착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착하여 하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우리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자족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자족하게 되면 많은 소유가 필요없습니다. 10만 원 짜리 운동화가 필요없습니다. 1만 원 짜리 운동화로도 아무 불편이 없습니다. 그러면 똑 같은 조건에서도 남보다 9만 원 정도를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쓸데 없는 일에 많은 지출을 하게 되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 관용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아멘.
혹시 힘들고 어렵게 되어도 주 안에 있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어지지 때문에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아멘.
제가 좋아하는 이사야 55장 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조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아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주안에서 자족을 배우십시다.
그리하여 쓸데 없는 허영을 버리고, 어리석은 경쟁을 버려서 쓸데 없는 소비와 지출을 줄이십시다.
쓸데 없는 것에 우리의 소비와 지출을 하지 말고 쓸데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우리의 소비와 지출을 늘려 가십시다. 그래서 세상에서 진정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우리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요함이 다른 사람의 부요함으로 이어지게 되는 그런 근사한 삶을 살아가십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때문에 세상이 주는 편안과 재미를 배설물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 4:4-9.
1992년도 올림픽이 끝난 직후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선배 목사 한분이 한국에 나오셔서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숙소에서 텔레비젼을 보시다가 깜짝 놀랄 뉴스를 보시게 된 모양입니다. 한국의 아이들이 당시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운동화들을 신고 다닌다는 뉴스였습니다. 지금도 10만원은 작지 않은 돈인데 20년도 전인 당시 10만 원 짜리 운동화는 정말 놀랄만 했습니다.
저는 그런 운동화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정말 10만 원 짜리 운동화가 있느냐와 정말 그런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느냐를 물었습니다.
정말 그런 운동화가 있고 자기들만 빼고는 다 신고 다닌다는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왜 너희들은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느냐를 물었더니 큰 아들놈이 '사달라고 해봤자 안 사주실텐데요 뭐'라고 대답을 하여 웃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비싼 운동화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서 고맙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런 운동화를 신지 않아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 대답은 '쓸데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였었습니다. 올림픽 전에 코오롱이라고 회사가 황영조 선수에게 1억 원 짜리 운동화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발에 잘 맞고 가벼운 운동화를 개발하기 위하여 1억 원이라는 돈을 지불하였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그 황영조 선수의 1억 원 짜리 운동화는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유는 '쓸데 있다'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하여 필요하면 1억 원 짜리 운동화도 신을 수 있지만 쓸데 없다면 10만 원 짜리 운동화도 신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10 만원 짜리 운동화를 신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를 물었습니다. '기록을 단축하기 위함이냐?', '국위를 선양하기 위함이냐?' 물었습니다.
너희들이 그런 운동화를 신으려고 하는 이유는 그냥 단순히 '나는 이런 운동화를 신고 다시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자랑하려 함이 아니냐?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10만 원짜리 신발을 자랑하며 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10만 원 짜리도 되지 못하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이 10 만 원의 가치도 없으니까 10만 원짜리 신발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신발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희의 사람 됨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거라.'
우리는 10만 원 짜리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늘 말씀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자로 사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은 소유가치가 높은 삶이 아니라 존재가치가 높은 삶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그 말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편지가 제 자신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살면서 가끔 놀라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수입이 있는 분들이 나보다 더 부하지 않은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분들의 수입이 저보다 조금 더 많은데 그 분들의 소비와 지출이 저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자랑 같아서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은 저는 수입의 49% 정도를 헌금과 구제로 사용하고 현재까지 재산의 약 60% 정도를 하나님과 세상을 위하여 쓰기로 결심하고 실행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은퇴 후 원로목사가 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저축이 있습니다. 그 이유와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1992년도 제가 아이들에게 써 주었던 그 편지 때문입니다.
10만 원 짜리 운동화를 자랑하지 않으려 하니까 쓸데 없는 소비와 지출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돈이 많이 여유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를 자랑하는데 속아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쓸데 없는 일에 많이 낭비하게 되기 때문에 저축도 적고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만족도 적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절 이하에서 우리가 잘 아는 아주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로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곧 배부름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사도바울은 매우 중요한 단어를 말씀하는데 그것은 자족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자족이 바로 10만 원 짜리 운동화를 자랑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혀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얻어야 한다는 제 이야기와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그 자족을 비결이라고 말씀합니다. 정말 비결 중의 비결입니다. 바울은 자족을 능력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자족은 정말 능력입니다. 자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살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 2절에서 다윗은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복은 주 안에만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주 밖에도 복이 있다고. 사탄이 가짜 복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속입니다.
진짜 복과 가짜 복이 있습니다.
평안과 편안. 평안은 진짜 복이고, 편안은 가짜 복입니다. 편안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편안이 우리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기쁨과 재미. 기쁨이 진짜 복이고, 재미는 가짜 복입니다. 기쁨과 비슷해 보이지만 기쁨과 재미는 그 품질이 다릅니다.
돈과 소유는 우리에게 편안과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과 소유는 절대로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돈과 소유의 뻐저린 한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주 안에 있으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쁨은 진짜 복인데 그 진짜 복은 주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있으면 혹 가난하여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기쁨은 소유와 세상이 주는 재미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기쁘게 행복하게 살려면 소유에 집착하기 보다 하나님께 집착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착하여 하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우리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자족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자족하게 되면 많은 소유가 필요없습니다. 10만 원 짜리 운동화가 필요없습니다. 1만 원 짜리 운동화로도 아무 불편이 없습니다. 그러면 똑 같은 조건에서도 남보다 9만 원 정도를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쓸데 없는 일에 많은 지출을 하게 되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 관용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아멘.
혹시 힘들고 어렵게 되어도 주 안에 있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어지지 때문에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아멘.
제가 좋아하는 이사야 55장 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조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아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주안에서 자족을 배우십시다.
그리하여 쓸데 없는 허영을 버리고, 어리석은 경쟁을 버려서 쓸데 없는 소비와 지출을 줄이십시다.
쓸데 없는 것에 우리의 소비와 지출을 하지 말고 쓸데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우리의 소비와 지출을 늘려 가십시다. 그래서 세상에서 진정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우리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요함이 다른 사람의 부요함으로 이어지게 되는 그런 근사한 삶을 살아가십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때문에 세상이 주는 편안과 재미를 배설물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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