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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요1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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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최장환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smbible/5JQI/664 |
요10;1-21 배우는 마음 자세
약하고 두려울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먼저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야 방법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드러내야 합니까? 하나님께 드러내야 합니다!
자신감을 잃고 나면, 우리는 꼭 버러지 같고
지렁이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지만, 의미 없이 허우적댈 뿐입니다.
내 안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두려움의 유익이 이것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라는 신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고 계신 신호이며
자신감이 사라질 때,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됩니다.
다 잃었는데, 더 잃을 것이 무엇입니까?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는데, 더 약해질 것이 무엇입니까?
그 자리에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라고 드러내면 됩니다.
물론 아무리 하나님께서 지렁이 같은 야곱아라고
부르셔도 야곱은 지렁이가 아니예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소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희망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드디어 세상의 가장 깊은 우물
밑바닥에 내려온 것처럼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만을 들을 수 있고 칠흑같은
어둠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난 능력 때문에 감동받지 않으시고
우리가 버러지 같은 약한 모습을 인정하며
나아갈 때 감동을 받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길입니다.
추위에 떨어본 사람일 수록 태양의 따뜻함을 알고
인생의 괴로움을 겪어온 사람일수록
생명의 존귀함을 안다"고 합니다.
늘 배우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나이들어 가는 것은
경험한 수많은 사건들로 진중해 지고 노련해 지기도 하지만,
그 경험들이 스스로를 얽어매여 굳어진 마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그럽고 지켜볼 수 있는 아량을 갖고 스스로의
모자람을 인정할 수 있는 여유도 가져야 합니다.
용서란 무엇일까요? 누군가와 관계에 상처가 생겼을 때,
그 일로 인해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마음의 상처들을 잊어버리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용서는 이해요, 긍휼입니다.
긍휼을 베풀려면 그 사람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마음이 즐거우면 표정도 웃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습니다.
마음은 그다지 즐겁지 않지만 그래도 얼굴이 웃으면
어느샌가 마음도 따라 웃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며 웃어 보십시오
그러면 왠지 모르게, 이유도 없이 마음도 웃기 시작합니다.
이번엔 슬픈,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을 지으면
왠지 마음까지 슬퍼지니 따라서 잘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멋진 일입니다.
늘 어둡고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보다
미소를 띌 수 있는 사람이 훨씬 행복해 질 수 있고,
자기를 더욱 더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늘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어디서 무엇을 해도 어떻게 되어도
항상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은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요 강도이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양들의 목자이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자기 양들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들은 결코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서 달아날 것이다. 그것은 양들이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이 말씀 때문에 유대 사람들 가운데 다시 분열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귀신이 들려서 미쳤는데,
어찌하여 그의 말을 듣느냐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말은 귀신이 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어떻게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양의 목자라고 설명하시면서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목자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강도라고
말씀하시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여 도망가며
또 양이 문이라고 설명하시며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다
에수께서 문이시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거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이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시고
또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시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삯군 목자는 버리고 도망하며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하시자 유대인들이
귀신들려 미쳤다고 어찌 이 말을 듣겠느냐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말은 귀신들린 자의 말이 아니다
어찌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주신 모든 환경이나 일을 통해서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발전할 수 있고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본문에서 알아 봅시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첫 번째로 예수께서 삶에서 인도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양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다.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양의 목자다.
문을 지키는 사람은 목자를 위해 문을 열어 준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밖으로 인도한다.
목자가 자기 양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후,
양들 앞에서 걸어가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그의 뒤를 따른다.
하지만 양들은 낯선 사람을 절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서 멀리 도망간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이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즉 예수께서 나는 양의 문이다.
문으로 들어가는 양의 목자와
다른데로 넘어 들어가는 절도요 강도라고 대조하며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아니까 따라오지만
다른 사람의 음성은 모르니 따라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삶에서 인도자가 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모든 삶에서 예수께서 인도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팔로 품에 안으시며
온순히 인도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예수께서 인도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더 지혜롭게
하나님의 애쓰심과 심정을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모르면서도 자신은 가장 잘믿는 자로 착각하고
예수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네가 나를 핍박한다는 말씀을 듣고
꼬꾸라져서 다메섹으로 들어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이 볏겨져서 영적으로 눈이 뜨고
곧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가르칩니다.
예수께서 삶에서 인도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졌습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삶에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인도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두 번째로 예수께서 삶에서 구원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앞에 온 사람들은 다 도둑이며, 강도들이다.
양들은 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문이다. 나를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며,
또 좋은 목초를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
즉 예수께서 양이 문이라고 설명하시며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다
예수께서 문이시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거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이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예수님만이 구원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천하 인간에 예수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만이 메시야 곧 구원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삶에서 구원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인정하며
깨달으며 그 안에 머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가이샤라에서 백부장으로 하루는 환상 중에
배드로를 청하라고 하시자 종들을 베드로에게 보냈는데
그 때 그 시간에 베드로에게는 하늘에서 보자기다
내려오는데 그 안에 각종 짐승들이 들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잡아 먹으라고 하시는데
그럴 수가 없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한 것이라고 하시는데 마침 베드로가 계시냐고 말하여
성령의 역사인 것을 알고 따라가서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얻게 합니다.
환상을 통해서 구원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졌습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삶에서 구원자가 되심을 항상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세 번째로 예수께서 삶에서 선한목자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품삯을 받고 양을 돌보는 사람은 사실
목자가 아니며, 양도 자기 양이 아니다.
그 사람은 늑대가 오는 것을 보면,
양만 남겨 두고 멀리 도망가 버린다.
그러면 늑대는 양을 공격하여 양들을 흩트린다.
그 사람은 단지 품삯을 받고 양을 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양을 돌보지 않는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도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알아본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아버지를 안다.
그리고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내게는 이 우리 안에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인도해야 한다.
그 양들도 내 음성을 들을 것이다.
그래서 한 목자 아래서 한 무리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나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아무도 내게서 목숨을 빼앗을 사람이 없고,
다만 내 스스로 생명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세도 있고,
그것을 다시 찾을 권세도 있다.
나는 이 계명을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 사이에
또다시 편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그가 귀신이
들렸다"고 하거나 "그가 미쳤다.
너희가 왜 그 사람의 말을 듣느냐?"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귀신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목자라고 설명하시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삯군 목자는 버리고 도망하며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하시자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어떤 사람은 귀신들려 미쳤다고 어찌 이 말을 듣겠느냐고 하는데
또 다른 사람은 이 말은 귀신들린 자의 말이 아니다
어찌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삶에서 선한목자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23;1-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다윗은 여호와는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녀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하셔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하고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는 모든 삶속에서 예수께서 선한목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항상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부른 제자들인데
베드로는 그물로 고기를 잡을 때 부르셨고
요한은 고기를 잡는 그물을 손질할 때 부르시자
예수님을 따라서 제자로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부르시는 선한 목자가 되심을
인정하고 따라갔을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삶에서 선한목자 되심을
항상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되어도 어디에 있든지
항상 하나님께서 왜 여기를 보내셨으며
무엇을 하실려고 그러시는 가를 생각하며
거기에서 무엇인 가를 배워서 자신에게 적용하여
지혜롭고 귀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사람에게도 배우고 환경에게도 배우고
일이나 사건들을 통해서 배우고
아픔과 고통과 환난을 통해서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가장 지헤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첫 번째로 예수께서 삶에서 인도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두 번째로 예수께서 삶에서 구원자가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세 번째로 예수께서 삶에서 선한목자 되심을 배우는 마음 자세를 가져서
하나님께서 원시는 것을 감당하며
원하시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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