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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이상호 목사............... 조회 수 3027 추천 수 0 2013.10.24 11: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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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2:37-40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22:37-40                                        

2010. 9. 12, 사랑의나눔주일

 

한 율법사가 어느 날 예수님께 나아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어느 계명이 크냐?는 한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늘 마음에 주님을 품고 주님을 생각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사랑하셨습니다.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비참하게 죽이시면서까지 사랑했습니다. 시시하게 적당하게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사랑하지 않고 있습니다.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나의 온 정성과 생각과 의지를 총동원하여 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물질과 시간과 은사 등을 동원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온 힘을 다하여 기도도 하고, 온 힘을 다하여 찬송도 하고 온 힘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주님은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함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함이 신앙성장의 기준이 된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성장의 기준은 주님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하고 봉사를 많이 해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나의 믿음이 성장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나눔주일을 맞이하여 두 번째 계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1년 세 차례 '사랑의 나눔주일'을 지키기가 벌써 20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형식적인 날이 아니라 우리의 살과 피를 나누는 주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네 이웃을 사랑하라(39-40)


사실 율법사는 주님에게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두 번째 계명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곧 이웃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사랑의 구체적인 행위가 곧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곧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주님은 묻지 않는 대답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 두 계명은 두 가지의 계명이 아니라 하나의 계명입니다.

요일 4:20-21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왜 이웃을 사랑해야합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표지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까?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에다 십자가를 달고 다닙니까?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성경찬송 손에 들고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인하여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헌금하고 봉사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그리스께 속한 사람이라고 빛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세상과 결별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그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세상 안에서 그분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수단은 사랑입니다.


□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39절)

다른 사람의 이웃이 아니라 내 이웃입니다. 그러면 나의 이웃은 누구일까요? 우리의 개념으로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이웃입니다. 늘 얼굴을 맞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사는 자가 바로 내 이웃입니다. 남편 출근하면 함께 점심먹고 함께 등산하고 쇼핑하는 자가 바로 이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이웃은 그런 이웃이 아닙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신 이웃은 누구입니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입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우한 환경 가운데 있는 자입니다.

눅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질문을 한 율법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니까 이 율법사가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눅10:29) 고 묻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선한 사마리안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제사장이 지나가다 보고 그냥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레위인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 강도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응급조치를 취한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튼날에 데나리온 둘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올 때 갚아 주리라”고 말한 다음에 떠나갔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에 주님은 그 율법사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 율법사가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 나의 이웃인가? 강도 만난 자입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들 주변에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 나의 이웃은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학비 마련을 위하여 남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아줌마(파출부)가 당신의 이웃일 수 있습니다.

 

□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몸과 같이 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끔찍하게 사랑합니다. 얼마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을 사랑합니까? 건강에 좋고 정력에 좋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태국에까지 가서 곰을 잡아먹고 뱀까지 잡아먹겠습니까? 아마 지구상에 뱀을 수입해서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몸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실제적으로 사랑합니다. 철학적으로 자신의 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철학적으로 자기 몸을 사랑하면 배가 고파서 죽고 맙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합니다. 졸음이 오면 자야합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체력이 떨어지면 운동을 합니다. 몸이 조금만 불어도 밥을 안 먹습니다. 돈을 들여가면서 수영도 하고 에어로빅도 합니다. 테니스도 하고 등산도 합니다.


그리고 좀더 자신의 몸을 예쁘게 하기 위해서 성형외과를 찾아가서 수술을 받습니다. 속눈썹도 달고 희미한 사람은 아예 그곳에 진하게 문신도 새겨 넣습니다. 들창코 납작코도 최명길씨 코처럼 만들어 놓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운동을 하고 좋은 보약을 먹고 몸을 가꾸고 돌봅니까? 다 이게 뭡니까? 자기 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실제적으로 몸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이웃을 사랑하되 실제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내 몸을 사랑하듯 실제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사랑하기에 수백만 수천만원의 돈을 투자하고 수백만원의 돈을 들여 수술을 받고 자기 몸의 건강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듯 그냥 강도만난 자를 보고 지나쳐버린 제사장과 레위인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 강도만난 자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고 물질을 허비했습니다. 최소한 두 데나리온(이틀 품삯)은 허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허비가 아닙니다. 가치 있는 지출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오늘 우리들 주변에는 이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주 장애인 무료급식, 무의탁 노인 돌보기, 결식아동을 도와주는 것 등 입니다. 보지 못하는 분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산책을 시켜 주는 것도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장기 한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자기 몸의 장기 일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이 세상을 떠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얼마전 연세대학교의학대학을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는 수련의가 환자를 돌보러 병원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부모들은 아들의 장기를 여러 사람에게 주어 이식 수술을 받게 하였습니다.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 의대에 진학했던 이 아들은 자신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시켜 주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자신은 이 땅을 떠났습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장기를 내어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오해하면 안됩니다. 내 몸의 장기를 기증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우리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① 추운 겨울에 청소하느라고 고생하시는 파출부 아줌마나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는 것이다.

② 앞을 못 보는 장애인들에게는 잠깐이지만 눈이 되어주고 손과 발을 못쓰는 장애인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주는 것

③ 주님의 마음을 품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 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가?


1. 주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기 때문입니다.

행 10장에 보면 당시 가이샤라 빕립보 지방에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사람으로만 이루어진 정예부대의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면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경외함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나님에게는 기도로 나타나고 이웃에게는 구제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이 두 가지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절을 보면 갑자기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고넬료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여 무슨 일이니까? 내가 뭐 잘못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천사가 그때 이렇게 말합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4절)

기도만이 상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제도 상달됩니다. 우리의 이웃 사랑도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2. 하나님께 상을 받습니다.(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어린 아이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결단코 잊지 않으시고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보다도 더 확실한 약속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상급을 준비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주변에 있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나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곧 희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되며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상을 주십니다.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여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원종수 권사를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와 함께 하늘이 훤히 보이는 천막집에서 추운 겨울을 지나는데 어머니가 거지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목욕을 시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딱딱하게 떡처럼 굳어있는 떼의 가죽을 벗겨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먹을 것도 없는데 음식을 먹게하고 옷가지를 주어서 보냅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로 놀라운 축복이 임했습니다. 갑자기 지식과 지혜의 은사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의대를 들어갔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수술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하는 사람, 추위에 떨고 있는 할아버지....그런데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배고플 때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추울 때 입을 것을 주었기 때문에 내 평생에 내가 먹고 입는 것을 책임지리라..”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을 천사라고 부릅니다.

 

반드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몰라주어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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