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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4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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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누가 비상한 사람인가?
마5:43-48, 요 13:34
2010. 12. 12, 오전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비상에 대한 말씀을 정리할까 합니다.
정작 비상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옛사람과 새사람이 다르고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다르듯이 날개가 접혀 땅에서 쪼그리고 있는 사람과 날개를 펴고 하늘을 비상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물질적으로 다르고 심리적으로 다르고 영적으로 다릅니다. 다르지 않으면 비상한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압니다.
1. 비상한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나눌 것이 없습니다. 표지판도 없습니다. 구역도 없습니다. 그냥 영공일 뿐입니다. 어느 정도 하늘을 오르면 어느 국가의 소유가 아닙니다. 모든 나라가 사용할 수 있는 영공입니다. 기도와 성령으로 비상한 사람은 절대 나누지 않습니다. 이것이 비상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제러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에서 주장한 것처럼 소유의 시대가 아니라 접속의 시대입니다. 무엇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연결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땅을 많이 가진 사람들보다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입니다.
김무곤은 「NQ로 살아라」라는 책에서 아파트 수위 아저씨와 청소부 아줌마에게 잘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인사를 따뜻하게 하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보다 지휘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사람이 관계지수가 높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별명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또 다른 별명이 있는데 '하나님의 벗'(대하 20:7, 약 2:23)입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비밀이 없고 숨김이 없없습니다.(창 18:17) 비상한 사람은 관계를 중요시 여기고 내가 먼저 대접하고 내가 먼저 인사합니다.
원태연 시집에 나오는 시 구절입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을 년
미친개한테 주둥아리 물릴 년
달리는 차바퀴에 튕겨 나온 돌에 맞아 죽을 년
발바닥을 바늘로 죽을 때까지 찔러도 시원찮을 년
아무리 심한 욕을 하고
죽일 년 살릴 년 해 보아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나. 쁜. 년."
이렇게 나쁜 사람이지만 견디며 살다보면 미운정이 생깁니다. 미운 정이 들기도 전에 갈라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관계가 중요합니다. 관계가 복입니다.
우리 교회를 위하여가 아니라 우리 교회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달라집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5:45)
우주의 중심 바로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용서입니다. 교호의 기초는 사랑입니다. 비상한 사람은 나누지 않습니다.
2. 비상한 사람은 가식이 없습니다.
하늘에서는 보여 줄 누군가가 없으니 사람의 눈치 보며 살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늘의 비상을 즐기면 됩니다. 그래서 즐겁습니다. 어느 정도 높은 고도에 이르면 찌푸린 날씨가 없습니다. 폭풍도 없습니다. 항상 그대로 그 모습입니다. 항상 밝은 햇살입니다.
얼굴에 표정이 얼마나 많으면 ‘천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식이 없는 상태를 의라고 합니다. "아 이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구나, 아 이사람 비상한 사람이구나." 다 압니다. 그의 얼굴과 냄새로 압니다.(고후2:15-16)
비상의 조건 중에서 말씀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말씀이 바로 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믿음이 의입니다. 이 말 때문에 바울은 생명을 걸고 이방 전도에 나섰고, 이 말 때문에 루터는 생명을 걸고 부패한 천주교와 싸웠습니다. 왜 죽을 각오를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의가 내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그들의 생명보다 귀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의가 없으면 그건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 의입니다.
신앙생활 왜 힘든지 아십니까?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라는 비상한 자의 삶의 태도가 세워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내나라 먼저 세우려고 하니까 어렵고 힘듭니다. 내 마음에 내 자랑 내 자식 자랑 하려니까 힘듭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합니다. 임마누엘 칸트 “네가 해야 하기 때문에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용서해야 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비상한 사람은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더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순수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진실해야 합니다.
링컨 대통령은 다윗처럼 비상한 사람입니다. 그는 진리의 편에서 싸웠고, 진리를 위해 살았고, 어떠한 박해를 받아도 끝까지 이겨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싸워야 함은 승리가 아니라 진리를 지키기 위함이다.”
3. 비상한 사람은 집착하지 않습니다.
하늘에는 잡을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붙잡은 사람들은 비상할 수 없습니다. 애초 비상한 사람은 집착이 없으며 집착하려고 하여도 잡을 것이 없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2:6-7)라고 하셨습니다.
멈출 줄 모르는 차가 과열되어 불타 버리듯이, 멈출 줄 모르는 욕심 때문에 갈등이 있고 번뇌가 있고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습니다.
예화) 낚시꾼이 푸른 빛이 나는 신비한 물고기를 낚았습니다. 이 물고기는 낚시꾼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였습니다. “나를 살려 주면 어떤 소원이라도 세 가지 들어 주겠소.” 그 말을 들은 낚시꾼은 다섯 가지 소원을 들어 달라고 고집하였지만 그 물고기는 세 가지밖에 들어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다가 네 가지 소원을 들어 주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한 물고기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도 전에 죽어버렸습니다. 육지에 너무 오래 있어서 말라 죽었던 것입니다.
채우려고 하면 채워지지 않습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옛 사람은 욕심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시인 박노해씨는 인간의 지나침에 대하여 재밋게 표현했습니다.
“열심이 지나치면 욕심,
성공이 지나치면 부실,
열정이 지나치면 맹목,
확신이 지나치면 독선,
책임이 지나치면 군림.”
행복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가 갖고 싶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입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습니다.
나보다 적은 것과 비교하면 항상 남습니다. 남으니깐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행복합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감사하다고 하면 나는 감사한 사람입니다.
정말로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은 사람은 비워야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식도락가들은 잡탕으로 먹지 않습니다. 진짜 미식가는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학위를 가진 사람은 그 분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비움의 충만, 십자가는 비우는 것입니다. 다 가지려면 다 버려야 합니다. 다 채우려면 다 비워야 합니다. 비상한 사람은 비운 사람입니다.
집착하지 않는 사람의 두 번재 특징은 내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겸손의 극치입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교만은 신앙의 가장 큰 적입니다. 교만한 사람에게 만족이 어디 있으며 교만한 사람에게 행복이 어디 있으며 교만한 사람에게 감사가 어디 있습니까?
겸손해야 복을 받습니다. 겸손해야 행복하고 겸손해야 감사합니다.
예화) 수탉 두 마리가 암탉을 거느리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다가 결국 한 마리가 이겼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외쳤습니다. “저 암탉은 내 거다.” 그리고 지붕 높이 올라가 크게 솔리 질렀습니다.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그러다가 하늘에서 먹이를 찾던 독수리가 보니까 닭이 잡아먹기 좋게 지붕 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좋은 음식 주셔서 잘 먹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하고 잡아먹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교만한 사람 다 망했습니다. 교만한 가정 다 망했습니다. 교만한 국가 다 망했습니다. 교만한 기업은 다 망했습니다. 교만한 신앙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판단하지 않겠다. 이 세상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온 내가 너를 판단하겠느냐? 나는 오직 너를 긍휼히 여기고 너를 용서하고 너를 사랑할 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낮은 곳에 계셨기 때문에 한 여자의 간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는 복종합니다.
모르면서 순종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순종하는 자들은 순종만 하면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잘못된 순종의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는 분명히 멍에입니다. 십자가 멍에에 마음의 쉼이 있고, 멍에에 평화가 있고, 멍에에 생명이 있습니다. 멍에에 바른 삶이 있습니다.
집착을 버린 사람의 네 번째 득징은 ‘자족’입니다. 다 완벽하면 도전이 없습니다.
비상한 사람은 자족합니다.
다섯 번째 특징은 ‘감사’입니다.
감사는 가진 것을 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보고 살아가면 불평하게 됩니다. 할 수 없는 것은 1%박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와는 그 1%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 결과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긍정적인 인생관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인생관이 있습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 큰일입니다. 칼 힐티는 '행복론'에서 "감사하라. 그러면 젊어진다. 감사하라. 그러면 발전한다. 감사하라. 기쁨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감사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때문에 인생이 아니라 남에게 감사하는 덕분에 인생을 찾아야 합니다. 같이 해 봅시다.
"다 당신 덕분이야!"
자전거 점포의 점원이 세계적인 회장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마쯔시다 고노스 회장입니다. 사업 성공의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저에게는 감사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재는 일찍 부모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둘재는 저의 학력이 초등학교 4학년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 공부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셋째로 저는 건강이 늘 약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건강에 신경을 썼더니 이처럼 건강하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우리는 흔히 'because'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thanks to'라는 말을 많이 써야 합니다. 일찍 부모를 잃은 덕분에, 배우지 못한 덕분에, 몸이 약한 덕분에 라고 말할 수 있어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신앙 최고의 열매입니다. 비상하는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비상한 사람은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2. 비상한 사람은 가식이 없습니다.
3. 비상한 사람은 집착하지 않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을 비우고 삽니다.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내려옵니다.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복종합니다.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자족’합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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