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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호세아 이상호 목사............... 조회 수 1546 추천 수 0 2013.10.24 11: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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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호2:14∼23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호2:14∼23, 로마서 11:36, 마태 6:10            

2010. 1. 16, 여신도주일

 

이 설교문은 최영실(성공회대학) 교수가 만든 여신도회주일 설교문을 아주 조금 보충했습니다.

 

제95회 총회는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호세아 2:14-23, 로마서 11:36, 마태복음 6:10)를 표어로 정하였습니다. 따라서 2011년 우리 기장 여신도회는 같은 표어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그 뜻에 따라 실천하는 우리 여신도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선 호세아서의 본문을 보겠습니다. 사실 우리 여성들이 호세아서를 접하면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배반한 ‘음란한 여인’으로 묘사되는 ‘고멜’의 이야기와, 남편을 버리고 정부들을 쫓아갔지만 결국 버림당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어(호 2:1-13)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호세아서에서 남편을 배반한 ‘음란한 여인’과 ‘창녀’로 지칭되는 사람은 실제로는 ‘여성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입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주전 8세기, 여로보암이 북왕국을 다스리던 때(주전 782-753)에 활동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결혼한 ‘아내’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광야’의 길로 이끌었을 때에는 둘만의 ‘밀월’을 즐기며, 기쁨을 누렸던 관계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먹게 되자, “먹는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를수록 마음이 교만해지더니 마침내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호 13:5-6) 그리고 ’정부들‘을 쫓아다니며 음행을 했습니다(호 2:1-5).

 

물질의 풍요와 강대국의 군마에 의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부’와 놀아나는 것이며, 바알 신인 ‘우상’을 섬기는 일입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이 가장 문제 삼은 죄는 강대국을 등에 업고 동족 간에 싸우며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파들 간에 살육이 일어났던 ‘기브아’와 ‘길갈’에서부터 죄가 시작되었다(호 9:9, 15)고 말합니다. 그리고 군사를 일으켜 이스라엘의 경계를 침략하던 유다와, 이에 맞서 강대국 앗시리아로 달려가던 이스라엘을 모두 심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호 5:10-12)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바알 신들에게 분향하며 귀고리와 목걸이로 몸단장을 하고 정부를 좇아간’ 여자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 세월만큼 모든 벌을 내릴 것’(호 2:12-13)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호 2:10)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정부들‘로 묘사된 이웃 강대국들로부터 오히려 버림을 당하고 약탈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호 2:6).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호 7:9)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멸망하고 말까요? 아닙니다. 호세아서의 하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이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품에 안아서 기르고, 업고 다니며, 가슴을 헤쳐 젖을 물린’(호 11:3-4) 분입니다. 어머니와 같은 그분은 결코 이스라엘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호 11:8-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그들이 살 길을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호 6:1) 일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고,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것’(호 10:12)입니다. 다시는 “앗시리아에게 살려 달라고 호소하지 않고, 군마를 의지하지 않는 것”(호 14:3)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우상들을 버리고 완전히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을 축복하며 구원하리라고 말합니다. 그 구원 사건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호 1:11).

 

우리는 지금까지 호세아서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들었습니다. 이제 마태복음의 본문(마 6:5-15)을 보겠습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설교’로 알려진 마태복음 5-7장의 단락 안에 들어있습니다. 흔히 산상설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윤리적 계명, 혹은 이 땅에서는 이룰 수 없는 하나의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산상설교는 실제로는 ‘제자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당시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의를 행한다고 자처했던 율법주의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것은 산상설교가 끝났을 때 예수의 가르침이 ’자기들의 율법학자와 같지 않아서 놀랐다‘(마 7:29)고 ’군중들‘이 말한 것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산상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주의자와 바리새 주의자들을 하나님의 법을 불법으로 이용하는(마 7:23) 불의한 자들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산상설교의 첫 부분(5:21-26)에서는 율법주의자들이 갈릴리의 동족을 이방인이라고 욕하며 착취하던 것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위선적인 예배와 제물 드리는 일을 그치고, 도리어 ‘시급히’, 억압하고 착취한 그 형제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한 푼도 남김없이 되돌려 주는 회개의 행동을 통하여 참된 화해를 이루라(마 5:26)고 명합니다.

또 본래는 더 큰 보복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온의 법’(동태복수법)을 갈릴리의 동족을 보복하는 데 이용하는 예루살렘의 율법주의자들에게 예수님은 절대로 ‘보복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보복 대신에 도리어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라“(마 5:38-42)고 명합니다. “네 이웃은 사랑하고 네 원수는 미워하라”(마 5:43)는 거짓 교설을 만들어서 동족에 대한 적개심을 조장하던 율법주의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는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마 5:45-48) 하나님의 뜻을 일깨줍니다. 그리고 ’원수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촉구합니다.

 

산상설교의 두 번째 부분(마 6-7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예배와 제물을 드리고, 자선을 베풀며 기도하고 금식하는 일에 몰두하던 바리새 주의자들의 위선을 비판합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6장 5-15절에서 예수님은 위선적인 기도를 드리며 오직 자신의 안일과 무엇을 먹고 마실까를 위해서만 간구하던 위선적인 바리새주의자들에게 그런 기도를 그치라고 촉구하며 그들이 드려야 할 참된 기도에 관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늘에서처럼 땅위에서도.......”(사역)

이 기도문에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바로 ‘나의 이름’, ‘나의 나라’,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일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와 같은 맥락에 서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마 26:39)

 

오늘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도 단지 나와 가족의 안녕과 부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나의 뜻’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뜻’,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의하면 이 ‘하늘의 아버지’는 결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이념이나 사상,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고 죽이는 그런 분도 아닙니다. 도리어 그 분은 ‘악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와 비를 주시며,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분(마 5: 45)입니다.

무엇보다 ‘하늘의 아버지’는 당시의 법 체제에 의해 ‘죄인의 멍에’를 지고 신음하던 자들에게 무죄를 선언해 주며 그 멍에를 벗겨 주시는 분(마 12:7)입니다. 의를 자랑하던 바리새주의자들이야말로 사실은 율법을 불법으로 이용함으로써 아무 죄도 없는 힘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걸려 넘어지게 만든 자들’(마 18:1-9, 5:29-30)이라고 폭로합니다. 그리고 바리새주의자들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죄를 거저 용서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동족과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불의한 자라고 심판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한 ‘하늘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자매를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지 않을 것이다.”(표준새번역 /마 6:15, 18:3-5)


표준새번역의 ‘형제 자매’는 희랍어 원문과는 좀 다릅니다. 원문에는 ‘자매’라는 말은 없고 ‘형제’라는 말만 있습니다. 성서에서 ‘형제’라는 말은 남북으로 갈라진 유대 민족을 지칭합니다. 산상설교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갈라져 반목하다가 결국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서 로마 제국에 의해 패망하게 된 주후 67-70년의 ‘유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체제에 동조하면서 부와 권력을 누리던 헤롯 가문의 부자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갈릴리 사람들을 ‘강도’와 ‘폭도’로 매도했습니다. 그리고 ‘살인자’와 ‘국가를 소란하게 만드는 자’라는 죄목을 붙여 로마 제국에 밀고하여 죽였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제국의 압제에 맞서 일어난 유대 독립전쟁은 도리어 동족인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전쟁이 되었고, 결국 그로 인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모두 적국 로마의 군대에 의해 짓밟히고 유대민족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호세아서와 마태복음의 두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아야만 하겠습니다. 한 핏줄 한 자매형제가 강대국의 패권다툼에 휘말려 남과 북으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룬 지 어느덧 60년의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정권자들이 분단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보복과 미움을 가르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분단의 땅에 흘린 피와 눈물의 희생을 통해 ‘권력자를 끌어내리고 부자를 빈손으로 되돌리는’(눅 1:52-53) 참된 평화가 마침내 이 땅에서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분단의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금강산과 해금강을 찾아가고, 봉수교회에서 손을 맞잡고 눈물 흘리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함께 예배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제 그제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남북간에 왕래가 끊어지고,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분들이 대거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북 정상 간에 어렵게 합의한 성명서는 휴지조각이 되고, 동족을 정죄하고 비방하는 삐라를 날려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미연합군이라는 이름으로 서해안에서 군사훈련을 하던 중에 천안함 사건이 터졌습니다. 연평도에서 총탄이 오가고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임을 당했습니다. 곳곳에서 ‘북을 응징’하고 몇 배로 보복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연평도 사건과 관련하여 “무력으로는 결코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남북간의 대화와 회담을 촉구했습니다. 이렇듯 제2의 전쟁으로 치달을지 모를 이 위기 앞에서 한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말하고, 무슨 설교를 했을까요?


한반도의 평화는 결코 ‘무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아니 우리 여신도회는 지금, 시급히 남과 북이 서로 만나 평화적으로 ‘하나 되는 길’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합니다. 강대국의 무력에 의존하여 동족인 형제자매를 억압하고 욕하는 일을 시급히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북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해와 비를 똑같이 내려주시는’ 그분의 ‘자녀들’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를 욕하고 억압하는 불의를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호세아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강대국의 무력에 의존하여 동족을 억압하는 자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마태복음을 통해서는 “너희가 너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지 않으면 결코 나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마 6:14-15)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민족 전체의 패망으로 실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족 간의 보복과 미움과 전쟁으로 말미암아 결국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모두 로마의 칼날 아래 짓밟힐 것을 아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합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1-44).


민족이 패망할 때마다 가장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바로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들’(눅 21:23)입니다. 우리는 이미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남편과 자식을 잃고 비통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눈물과 고통을 겪었는지를 보았습니다. 여신도들이여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마음을 모아 기도합시다. “당신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소서!"

 

기도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의를 되돌리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려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남과 북을 갈라놓고 적대시하는 거짓 교설과 교리를 깨뜨리고, 자비와 사랑에 의한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강대국의 억압과 제제를 풀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정죄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행위를 근절시키고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물질과 무력을 신봉하며 강대국을 좇아가는 불의를 돌이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에만 자비의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참된 구원의 사건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뜻(사랑, 정의, 행복, 평화, 기타 좋은 것)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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