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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13 오늘은 상강, 국화는 서리를 맞아야 향이 진하다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 농사일에 경험이 많은 농부)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半夜嚴霜遍八紘 肅然天地一番淸 望中漸覺山容瘦 雲外初驚雁陳橫 殘柳溪邊凋病葉 露叢籬下燦寒英 却愁老圃秋歸盡 時向西風洗破).”
위 글은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에 나오는 상강 즈음을 아름답게 표현한 내용이지요. 오늘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절기 상강(霜降)입니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벌써 하루해의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릅니다.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뀌었지요. 이때는 추수도 마무리되고 겨울채비에 들어가야 합니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體露), 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하겠지.”라도 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은 서릿발의 차가움으로 삭막한 풍경이 됩니다. 하지만 국화 뿐 아니라 모과도 상강이 지나 서리를 맞아야 향이 더 진하다고 하지요. 꽃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향기는 느끼는 자의 몫이며, 상강을 맞아 그 진한 국화 향을 맡을 수 있는 것도 각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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