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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20. 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렸던 면암 최익현 선생
“어떤 이가 공을 세우려고 숨검을 데리고 가서 순검들에게 면암 최익현 선생의 머리를 자르라고 하였다. 이에 순검들은 깜짝 놀라 ‘우리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차마 대감의 머리에 칼을 대겠는가?’라며 꾸짖었다. 숨검들이 크게 욕하고 가버리니 그의 흉계가 수포로 돌아갔다. 선생이 이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이름이 선비면서 처신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금수만도 못하다.’라고 했다.”
이는 조선 말기의 학자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崔益鉉) 선생의 책 《면암집(勉庵集)》에 나와 있는 1895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당시는 단발령이 내려진 상태지만 선생의 머리는 그 누구도 자를 수 없었습니다. 또 한 일화를 보면 1906년 홍주(洪州) 의병 80명이 먼저 갇혀 있었는데 왜놈 헌병이 칼을 가지고 와서 머리를 자르려고 하다가 면암 선생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모두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시 선생의 기개는 그 누구도 짓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은 다른 이 같으면 쉽게 올리지 못할 서슬 퍼런 상소를 여러 차례 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1876년에는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하며 “지부소(持斧疏, 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리며 답을 기다리는 것)”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당하였으며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청토역복의제소(請討逆復衣制疏)”를 올려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지요. 그 뒤 1905년 소위 을사 5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화와 박제순,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의 을사 5적(五賊) 처단을 주장한 “청토오적소(晴討五賊疏)”를 올려 모든 조선 사람이 선생을 존경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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