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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찾으실 때에

마태복음 신실............... 조회 수 2014 추천 수 0 2013.11.11 1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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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1:18-22 
설교자 : 이영화 목사 
참고 : 당진 함께하는 교회 

주님께서 찾으실 때에

마태복음 21 : 18 - 22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無花果)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지만 인성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수님께서 ‘시장하셨다는 것’ 과 ‘주무셨다는 것’ 등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중요한 이유는 만일 하나님의 신성만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면 십자가의 고통을 얼마든지 피해 가실 수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기에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우리와 같이 받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장하시어 길가에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보니 잎은 무성하였지만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 하자 곧 나무가 말라졌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이들은 오늘 본문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가 있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하면  마가복음에서는 막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하신 말씀처럼 무화과가 열매 맺는 시기도 아닌데 왜 열매를 찾으셨나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가지는 예수님의 인격에 관한 문제로 아무리 식물이지만 어떻게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저주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답은 사실 무화과를 본격적으로 거둘 때에는 우리 절기로 하면 6월이었고 당시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실 때는 4월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4월은 무화과의 첫 열매를 맺는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함께 상고하기를 원합니다.

  

 먼저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심판에 대한 교훈을 하시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말씀 하시기를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 열매를,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열매를,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는 말씀처럼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시인하고,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였더니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에게는 구원 받은 목적이 있는데 그것이 곧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선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에 대해 엡5:1-2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즉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열매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바로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죽을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구원 얻은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해야 합니다.

 사랑하기에 섬겨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가뭄이 들어서 물이 몹시 귀한 때에 농촌에서는 물싸움을 할 때였습니다.

 한 성도가 밤새도록 수고해서 논에 물을 대어놓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논을 살펴보았더니 이웃 논의 주인이 논둑을 터서 물을 다 자기 논으로 빼앗아간 것입니다. 당장 달려가서 그 사람의 멱살을 붙잡고 싸우고 싶었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꾹 참고 다시 밤을 새워서 논에다 물을 대고 들어와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논에 나갔더니 이웃 논 주인이 또 논둑을 터서 물을 훔쳐간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몹시 화가 나서 당장 달려가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참고 목사님에게 달려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말하기를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지 말고 어느 것이 서로 사는 길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이번에는 물을 한 번 더 빼앗긴 셈 치고 그 사람의 논에 물을 대어주고 그 다음에 성도님의 논에 물을 대보세요”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던터라 이번에는 그 원수 같은 사람의 논에 몰을 대주고 자기 논에 물을 대어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다음날 아침 일찍 그 고약한 논 주인이 눈물을 흘리며 찾아와서 “예수님 믿으면 그렇게 착한 사람이 됩니까? 나는 당신이 달려와서 싸우자고 할 줄 알았는데 제 논에 물까지 대주다니요. 저도 예수님 믿고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의 선행으로 귀한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무는 잎이 무성함으로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열매가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저주로 마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에게 실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열매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시고 무화과나무에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열매가 맺어 있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기대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함께하는교회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와 여러분에게 기대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찾아오신다면 과연 주님께 보여드릴 열매가 있으십니까?

 예수님을 십수년 이상 믿고 이미 심겨진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잎사귀는 무성합니다.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조롱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몇몇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믿는자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그래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불신자들 보다는 더 선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세상이 교회에 대해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사람들도 교회와 믿는자들에게 잎만 무성한 것이 아니라 나무의 열매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와 믿는 사람들이 잎만 무성할 뿐이지 열매가 없으므로 너무나도 실망을 주고 있다는 것이 바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잎사귀가 무성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무화과나무가 말라진 이유는 장소만큼의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보기 좋은 장소에 있습니다.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여러분 땅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서울 명동에 있는 땅은 한 평에 1억이 넘는가 하면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산골은 한 평에 만원도 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찾아간 무화과나무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좋은 장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소 값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만 버리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눅13장 말씀을 보면 한 사람이 포도원에 나무를 심었는데 3년이나 그 주인이 열매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3년이나 기다려도 열매를 얻지 못하였으니 잘라 없애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땅만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있는 위치는 어디입니까? 내 위치에 있는 만큼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우리가 선 땅은 성도라는 장소입니다.

 세상 사람과 구별되어 있는 무리라는 말입니다. 구별되게 살고 있습니까? 달라야 합니다. 말이 달라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행동도 달라야 합니다.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끌어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매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도 저 사람을 보니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누구 누구 때문에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 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입니다.

 “당신을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습니다. 당신의 가정을 보니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 장소만큼, 내 위치만큼 열매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맡은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 자리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만일 주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 찾아 오셔서 열매를 찾으신다면 보여드릴 것이 있으십니까?

 원하기는 우리의 장소만큼, 위치만큼 그 열매를 보여 드릴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은 나무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무는 목적이 있기에 심은 것입니다.

 관상수는 눈으로 보기 위하여 심고, 과실수는 열매를 얻기 위해 심은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관상수가 아닙니다. 열매를 위하여 심은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습니다.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어진 것입니다.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할 때에 그 사회를 혼란스럽게 되며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초신자가 세례를 받기 위해 문답을 할 때에 세례 교인의 의무와 권리를 이야기 해 주고 그에 따른 교인으로서의 의무를 다 할 것을 모든 성도들 앞에서 약속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 이제 교회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한 성도로 책임을 지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선 각자의 본분을 다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흔히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말이 많습니다. 시비가 많습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해만 줍니다.

 교회는 교회의 본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하지 못하면 교회는 무용지물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누가 이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 기관에서요? 아니면 교수나 선생님들이요? 아니면 학교에서요?

 바로 교회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으며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이 일을 감당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에 결국 말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쓸모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두 번째의 의미는 믿음과 기도의 능력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자마자 곧 나무라 마르자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까?” 라고 묻자 예수님의 대답은 21-2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과 기도는 산을 들여 옮길 수가 있습니다.

 산은 무엇인가요? 산과 같은 삶의 장애물을 말합니다.

 결국 인생의 장애물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산도 들어 옮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믿다가 너무나 오랫동안 어려움이 계속되면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심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의심은 불행의 씨앗입니다.

 사람을 의심하면 서로가 멀어집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한다고 하면서 믿다가 의심하면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도 먼저 믿고, 기도 하면서도 믿고, 기도한 후에는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산과 같은 장애물이 없어집니다.

 질병의 산이 없어집니다. 경제적인 고난의 산도 사라지게 됩니다. 환경적인 산도 사라질 것입니다. 불가능의 산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믿고 기도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어떤 한 청년이 신앙과 생활에 구속받는 것이 싫어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얘야, 내가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하마 네가 만일 방랑의 길에 지쳐서 어디로 갈 바를 모를 때 네 어머니의 하나님을 부르거라”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청년은 집을 나가 세상 죄악의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죽으려고 한 호텔에 들어갔는데 서랍 위에 놓인 성경책이 우연히 눈에 들어와 읽는 도중에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 오더라는 것입니다.

 ‘방황 할 때에 하나님을 찾아라 너를 인도하여 줄 것이다.’ 그 말씀이 가슴에 박히면서 지난 날에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훗날 큰 전도자가 되었는데 바로 그가 ‘토레이’ 라는 전도자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승리를 가져옵니다. 믿음의 기도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믿음에서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믿음의 낙오자에게는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첫째로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싫어집니다.

 전에는 말씀을 늘 가까이하였지만 분주하다느니, 여유가 없다느니 하면서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믿음에서 멀어진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기도생활을 중단합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해결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도와주는 것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낙심한 자들을 찾아 위로해 주는 것이 마치 낭비하는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믿음의 낙오자들은 모든 일에 항상 비판적입니다.

 잘한 것은 말하지 않고, 잘못 되었거나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비난하게 됩니

다. 

 다섯째로 믿음의 낙오자들은 예배에 참석하기를 게으르게 합니다.

 목사의 설교는 들을 것이 없고, 찬양대의 찬양은 시시하기 짝이 없고, 예배는 지루하고 그래서 굳이 교회에 나와 예배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섯째로 믿음의 낙오자들은 헌신이나 충성을 하지 않습니다.

 시간도 바쁘고 쓸데가 많은데 봉사도 할 수 없고 헌금도 내가 쓰기도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인색한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믿음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를 축원드립니다. 

 

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결국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통해 믿음으로 기도하면 우리가 구한 대로 모든 것을 다 얻을 수가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도전의 말씀을 주십니다.

 과연 너는 잎만 무성한 것을 자랑하고 있지 않느냐? 내가 찾는 열매를 가지고 있느냐?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무성한 잎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을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원하기는 이제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고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우리가 맺은 풍성한 열매를 내어 놓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3. 10. 13. 주일예배말씀. 이 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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