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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2623. 소나무로 살고 소나무로 죽었던 우리 겨레
최근 우리는 600살 된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나무는 충북 괴산에 있는 왕(용)소나무인데 붉은 줄기의 꼬임이 용의 꿈틀거림처럼 보인다 하여 용송(龍松)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삼송리 마을의 신목(神木)으로 여겨지던 이 왕소나무는 지난해 8월 태풍 볼라벤에 피해를 본 뒤 회생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뿌리를 드러낸 채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아기를 위해 솔가지를 매단 금줄을 쳤으며, 소나무 장작불로 밥을 해먹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잠을 잤습니다. 소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송편을 해 먹었으며, 솔잎주와 송화주(松花酒:송화를 줄기 채로 넣고 빚은 술), 송순주(松筍酒:소나무의 새순을 넣고 빚은 술)를 빚었지요. 송홧가루로 다식(茶食:차를 마실 때 먹는 한과)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笭)은 약제로 쓰이며, 송이버섯은 좋은 음식재료입니다.
또 소나무 뿌리로 송근유(松根油)라는 기름을 만들어 불을 밝혔고,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인 송연(松烟)으로 먹(墨)을 만들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송진이 뭉친 호박으로 마고자 단추를 해 달았고, 흔들리는 소나무의 운치 있는 맑은 소리를 즐겼으며, 소나무 그림 병풍을 펼쳐 두고 즐겼지요. 그리고 죽을 때는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나무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경복궁 등 조선시대 궁궐은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는데 이는 소나무가 나무결이 곱고 나이테 사이의 폭이 좁으며 강도가 크고, 거기다가 잘 뒤틀리지 않으면서도 벌레가 먹지 않으며 송진이 있어 습기에도 잘 견뎠기 때문이지요. 소나무는 또 예전에 가장 중요한 수송수단이던 배를 만드는 조선재로도 쓰였습니다. 우리나라 땅이름 가운데 소나무 송자가 들어가는 곳이 681곳이나 된다는 것도 우리 겨레가 소나무와 함께 살아간 반증일 것입니다. 왕소나무의 죽음을 보며 조선소나무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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