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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26. 느릿느릿 소달구지 타볼까 - 그때를 아십니까(75)
느릿느릿 터벅터벅 / 덜컹덜컹 나아간다 / 한여름 뙤약볕을 / 소달구지가 나아간다 / 새끼를 외양간에 두고서 / 암소는 한 가족 먹여 살릴 / 먹거리를 팔기위해 / 달구지를 끌고서 / 읍내 시장으로 나간다 / 달구지 끄는 소는 / 닭 몇 마리 / 파 몇 십 단 / 무 몇 십 개를 이고서 돈두렁을 지나간다.(“사랑학개론 소달구지”에서 )
지방에 따라서 우마차, 수레 따위로도 불렸던 소달구지를 어렸을 때 우리는 어른들을 따라 일본말인지도 모르고 “구루마”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소달구지는 두엄을 낼 때나 가을걷이 할 때 그리고 방아를 찧으러 갈 때, 장 보러 갈 때처럼 시골에서는 참으로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자동차가 신작로를 누비기 전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소달구지는 사람들의 소중한 도구였지요.
《대지》 작가 펄벅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일로 소달구지를 끌고 가면서 농부가 따로 지게에 짐을 지고 가던 것을 들었습니다. 그 농부는 소를 단순한 짐승이 아닌 “생구(生口)”로 생각해서 소달구지에만 짐을 맡기지 못하고 나눠졌던 것입니다. 예전 농업이 근본이었던 시절에는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큰일꾼이었던 소를 살아 있는 입이라는 뜻의 “생구”라 하여 반사람으로 아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구지는 근현대박물관이나 경북 영주 선비촌 소달구지 체험장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1970년 무렵부터 시골에 경운기 기계가 보급되면서 달구지는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지요. 제주도 근현대박물관인 “선녀와나무꾼”에는 소달구지 사진이 걸려 있어 찾는 이들에게 아슴푸레한 향수를 자아내게 합니다. 아이들은 소달구지를 타고 함박웃음을 웃고 송아지는 어미소를 따라 그저 걷고 있지요. 놀이수단이 별로 없었던 옛날엔 소달구지 타는 것만으로도 신이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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