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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2013.11.15 경향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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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공담]기독교가 이상하다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갑골문은 슬픈 문자다. 고대 중국에서는 거북이 껍질을 불로 지져 그 갈라진 모양을 보고 점을 쳤다. 점에 나타난 길흉의 예언을 칼로 새긴 것이 갑골문이다. 갑골문은 귀신이 다녀간 흔적인 셈이다. 다만 그 예언이 어긋날 경우 무당을 태워 죽였다. 이것을 분무(焚巫)라고 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의 힘을 두려워하면서도 무당의 사사로운 조작을 의심하고 미워했던 것이다. 머지않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의 뜻이 들어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런 사상이 표출된 것이 <중용>의 첫 구절이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즉 “하느님의 말씀이 깃들인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이제 사람들은 무당의 입이 아니라 제 마음속을 돌아보며 하느님을 찾았다.
본시 신라의 왕들은 무당이었다. 굿을 집전하면서 하늘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었다. <삼국사기>에는 “왕호, 차차웅은 무당을 뜻하는 신라말이다(次次雄, 巫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권력자 무당이 이 땅에서 힘을 잃고 사라지는 모습이 ‘연오랑 세오녀 설화’다. 곧 불교의 시대가 열렸다. 이차돈이 신성한 피를 뿌리며 시작된 역사가 오래다. 하나 그 끝은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고려 말, 수도 개성에서는 승려들이 패를 지어 시가전을 벌일 정도였다. 군역과 세금을 피해 사람들이 절로 몰려들자 재정이 파탄 났다. 정도전의 ‘불씨잡변’에는 나라를 망친 불교의 악폐가 소상하다. 산으로 숨어든 불교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청규로 겨우 연명했다.
조선은 유교 국가다. 조선을 ‘짐이 곧 국가다’라던 루이14세식 절대왕정 국가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임금도 유교이념에 따라 정치하지 않으면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것을 반정(反正)이라고 한다. 중종반정, 인조반정이라는 말 속에 ‘잘못된 군주를 몰아내고 새로운 임금을 세운다’는 뜻이 새겨져 있다. 선비들은 권력에 무릎 꿇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깃든 하늘의 뜻에 따라 말하고 행동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의 문화를 드높이고, 남명 조식과 홍의장군 곽재우는 국난을 이기는 힘을 보여주었다. 이 세월이 500년이다.
그러나 그 끝자락은 죽음으로 얼룩졌다. 산골 굽이마다 먼지를 덮어쓴 열녀비며 효자각, 홍살문들이 유교가 사람을 죽인 흔적이다. 청나라 말기 중국의 문호, 루쉰이 “예교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던 일갈이 조선에도 유효했다. 오늘날도 우리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며 유교에 이를 간다.
조선이 망하면서 기독교의 시대가 열렸다. 흥미롭게도 1900년 뉴욕 기독교 회의에서는 이 땅에 불어나는 교회수를 둘러싼 논의가 있었다. 에윙이라는 박사는 증언한다. “저는 한국에서의 성과가 선교방식 덕분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청일전쟁이 그 요인이었지요. 전쟁 이전에 100여명에 불과하던 기독교인의 수가 청일전쟁 직후에 급증했습니다.”(뉴욕 세계공의회 의사록) 요컨대 “조선 사람들의 유교 포기와 기독교 수용은 두 종교의 철학적 가치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아닌 서양의 군사적 기술적 우수성의 목도에서 비롯되었다.”(존 프랭클) 서양의 군함과 대포 앞에 조선유교는 무력했다.
그 후 이 나라 근대화는 기독교가 이끌었다. 3·1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반식민지 투쟁의 거점이 되기도 했고,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첨단이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미군의 배경과 이승만의 도움으로 곳곳에 예배당이 들어섰다. 한편 유신정권의 억압 속에 도피하던 젊은이들이 숨어든 곳이 교회였다. 민주화투쟁에 앞장서고, 노동자들을 안은 곳이 기독교였다. 현대 한국인을 만든 것은 기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종교사를 간추려보자. 처음 이 땅의 정신적 지주는 무당이었다. 그들이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제정일치 시대였다. 그러나 무당이 권력화하자 곧 굿터는 불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불교가 비대해져 횡포를 부리자 사찰의 자리에 서원이 들어섰다. 또 유교가 딱딱해져 삶을 억누르자 향교와 서원의 터에 교회가 자리잡았다. 기독교가 자리 잡은 지는 고작 100년이다.
요즘 그 기독교가 이상하다. 예수가 아닌 교회가 중심이 됐다는 소식이 들린 지 꽤 되었다.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교회가 판매되고, 신도숫자로 은행 대출을 받는다는 건 소문이 아니라 확인된 사실들이다. 지난 정권 때는 권력과 결탁한 추문이 끊이지 않더니, 급기야 세계 최대 단일교회의 목사와 그 가족이 교회 돈 수천억원을 횡령했다며 장로들에게 고발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기독교는 뜨거우면서도 냉정한 이 나라 사람들의 종교적 심성을 알아차려야 하리라. 권력과 결탁하거나, 스스로 비대하여 권력이 되면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종교를 떠났다. 이 땅에는 영원한 성전이 없다. 한국인의 종교관이 지극히 실용적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인데, 변심은 급격하고, 그 결과는 참혹하다. 한국유교의 수장인 성균관장 최근덕(80)이 수뢰 혐의로 구속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경향신문 2013.11.16)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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