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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약4: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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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2013. 11. 17 주일 오전 예배설교http://cafe.daum.net/st888 |
성경 : 약4:7-10
제목 : 웃을래, 울래?
약4:7-10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아멘.
요즘 흔히 사람들은 웃음철학을 빌어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행복해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고 노력들 합니다. 아무 근거없이 죄인들이 어떻게 행복해진다고 봐야 합니까?
신구약 성경전서에서 사람이 웃는 일과 우는 일을 비교하면 웃고 기뻐하는 일보다 슬퍼하고 우는 일이 10배로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웃으신 적이 있던가요? 단 한 번도 없고 우셨다는 말씀은 3번 나타납니다(눅19:41,요11:35,히 5:7). 왜 성경은 슬픔과 우는 소리가 많을까요? 성경에는 웃는 일보다 왜 우는 일이 더 많을까요? 진짜 행복하기 원한다면 그 방법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1. 인생은 죄인이라 근본적으로 웃을 사람이 못됩니다
사회적으로도 무서운 죄를 진 사람이 히죽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면 섬뜩합니다. 정서상 사람이 사람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모든 인생은 사형받아 마땅한 죄인들로 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히죽대고 웃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말입니다.
본문, 약4:7-8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이 말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바, 인생의 실존을 말하는데, 원죄로부터 시작된 죄악은 마귀의 조종가운데 계속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웃는다고 해결될 존재가 아니라 그말입니다.
2. 진정으로 행복을 구한다면 영혼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은 기쁠 때도 있고 슬퍼할 때에도 있습니다. 문제는 매냥 웃기만 한다고 그게 행복한 것이냐 하는 겁니다. 흔히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행복해진다’는 심리효과들을 진리처럼 믿으려 하는데 순간적인 겁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웃는 생활로 일관되려하는 것은 성도로서는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잠14: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새번역 (웃어도 마음이 아플 때가 있고, 즐거워도 끝에 가서 슬플 때가 있다.)
그래서 전도자를 말했습니다. 전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본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본문 약4:9-10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웃음으로 행복을 전한다고 해서 웃음전도사라는 말을 붙인 사람 중에는 자살도 해버렸고 코미디하는 사람들은 항상 행복할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성도는 새 사람입니다. 그래서 행복도 다르고 취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웃음으로 행복해지는 그래서 구원자가 자신의 마음이 되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짓입니다.
유다가 멸망하고 세상 애굽을 의지하다 망가진 처지에서 예레미야선지자는 잠도 이루지 못하고 울었습니다(애1:1-2). 오늘날 교회사회는 형편없는 지경인데 교회는 매일같이 웃자, 웃자, 이런 소리로 설교라고 해대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세인들도 책임질 수 없는 심리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초상집으로 오인 받았습니다. 오늘날 비극은 성도들에게 눈물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속의 즐거움과 기쁨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주시는 주님의 평강을 얻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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