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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자가 되라

누가복음 빛의 사자............... 조회 수 1904 추천 수 0 2013.11.23 08:35:10
.........
성경본문 : 눅6:27-38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자비로운 자가 되라

 

본문: 누가복음 6장 27- 38

 

어느 시골 마을 교회에 인지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소년이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 아들이 행방불명됐다며 찾으러 왔습니다.

온 교인을 동원해 일일이 묻고 찾아다녔으나 없었습니다. 며칠 후 호수에 시신이 떠올랐습니다. 얼음이 얼었다 녹았다 할 무렵 얼음판을 타다 그렇게 된 것 같았습니다. 장례식에서 ‘지극히 작은 자’(마 25:40) 하나를 잘 돌보지 못한 죄를 회개하며 온 교인이 울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들이 소문이 되어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 등하교 길에서 장애를 가졌거나 공부를 못하는 이른바 ‘루저(loser)’ 아이를 ‘잘나고 똑똑한 척’하는 학생들이 따돌리고 때리며 그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어 즐긴다니 한심합니다. 하늘이 분노할 이런 무자비와 경쟁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을 치료해 살릴 길은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입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렘애3:22,23)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길을 지나갈 때 한 소녀가 달려와 무릎을 꿇었습니다."폐하,제 아버지를 용서해주소서"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나폴레옹이 묻자 소녀는,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라고 대답 했습니다."법을 어겼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러자 소녀가 흐느끼며 호소했습니다."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탄원하는 것입니다"침묵을 지키던 나폴레옹이 말했습니다."네 말에 아버지를 용서하니 돌아가라"

우리는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고 긍휼과 겸손과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엡4:32, 골3: 12- 14)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삼하22: 26)

 

자비는 성령님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 22- 23)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자비는 참된 자비라고 말씀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간의 자선행위를 자비로 단정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자비만이 참된 자비입니다. 인간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하신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임할 때 인간의 자비는 참된 자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할 때 하나님의 자비가 자신에게 임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시78:38)

 

하나님의 성품이신 자비는 인자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따라 유순하고 온유하여 타인을 넓게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 마음은 관용과 친절이 내포된 마음입니다. 인간의 자비하는 마음은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성령님을 사모할 때 그 자비는 인간에게 주어집니다. 이런 사실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자비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일컫습니다. 하나님께는 절대적인 성품과 도덕적인 성품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성품은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는 것과 완전무결, 절대불변, 영원하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덕적인 성품은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좋으신 분이란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매우 풍성하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인류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의 증거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 자비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에게 자비로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 3:12).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비하신과 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본받지 아니하면 벌을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2).

 

여기서 인자는 신약성경 원어인 헬라어 ‘크레스토테스’ 곧, 자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비로 무장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의 자비가 될 때 세상은 밝아지게 됩니다. 이웃에 대한 따뜻하고 온유한 마음인 자비가 없는 세상은 인류의 큰 고통입니다. 자비는 말이나 이론이 아닌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비로 무장하여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신 자비는 인자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따라 유순하고 온유하여 타인을 넓게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 마음은 관용과 친절이 내포된 마음입니다. 인간의 자비하는 마음은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성령님을 사모할 때 그 자비는 인간에게 주어집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 36)

 

독일 위벡 교회의 낡은 돌판에는 '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라는 작자 미상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주라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고, 빛이라 부르면서 우러르지 않고, 길이라 부르면서 걷지 않고,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슬기라 부르면서도 배우지 않고, 깨끗하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부자라 부르면서도 구하지 않고, 영원이라 부르면서도 찾지 않고, 어질다 하면서도 구하지 않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굉장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의롭다 부르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나니, 그런즉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입술로 고백하는 내용과 실제로 하는 행동이 다름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세상에서 표리부동한 사람이 온전히 살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며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말만 앞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고 순종합시다.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신 분이시므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 앞에 잘난 척하지 마세요. 불쌍히 여김을 받는 나라와 민족이 복이 있고 불쌍히 여김을 받는 가정에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시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34:6)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면 “아들이 아빠하고 붕어빵입니다, 딸이 꼭 엄마 닮아 아름답게 생겼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기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성도의 신앙생활 목표는 예수님 닮는데 있습니다.(엡4:13) 나는 지금 예수님을 얼마만큼 닮았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면,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열심이 하고, 소외된 이웃도 사랑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면 “자비로운 사람이 됩니다.

“자비”를 성경 사전에는 ‘무력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자비”란 말에는 이기적인 의미는 없고, 오로지 타인의 유익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오늘

본문을 주목해 봅시다.

 

첫째, 비판하지 않습니다.

37절에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했습니다. 비록 내가 잘못했을지라도 남이 비판하면 싫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우리가 선악은 분별할 줄 알아야지만,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비판”이란 ‘재판 석에서 재판하듯 다른 이를 심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옳은 행동이 아닙니다. 인간을 비판하실 권세는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옛말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치고 온전한 사람 없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피차 연약한 사람들끼리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7:1-2)

비판하기 좋아하는 구습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서로 격려해주고 칭찬해줄 줄 아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정죄하지 않습니다.

본문 37절에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못돼 먹어서 남을 쉽게 정죄합니다. 이 악한 습관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자들이었습니까? 그런데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 행위대로 보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악한 행위들을 용서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보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를 친히 담당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피로 더 이상 우리의 죄 값을 묻지 않으십니다. 더 이상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남에 작은 허물을 쉽게 정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요 8장에 보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연인이 있었습니다. 여자를 끌고 온 바리새인들은 율법대로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후, 결코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요8:11) 예수님은 율법 그 자체보다 율법의 정신이 더 중요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남을 정죄하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오늘 내 자화상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한량없는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망각하게 될 때 타인을 정죄하게 됩니다.

 

성도님 여러분! 성령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지비로우심 같이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서 ‘비판 대신 칭찬과 격려를, 정죄 대신 사랑과 축복’을 나누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하여 죽으셨음과 그의 보배로운 피가 저의 모든 죄를 씻으셨음을 믿습니다. 저는 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신뢰하기에 지금 말씀을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 마음에 주님이시요 나의 구원자로 모셔 드립니다. 날마다 주님의 뜻을 행하도록 도와주세요. 참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 중에 거하며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곧 우리의 삶과 일치하도록 인도하소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찬양케 하소서. 주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을 본받아 우리도 형제를 사람하고 용서하게 하소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보배로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갈릴리공동체)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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