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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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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9.24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1) 성도의 복된 2가지 길
(열왕기하 1장 1-4절)
솔로몬 왕 말년에 지혜롭지 못한 정치로 이스라엘이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죽자 백성들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자신들의 노역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요청의 거부로 주전 930년에 북쪽의 10개 지파가 따로 여로보암 왕을 세우면서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단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유다와 베냐민 2지파로 형성되었고 북 이스라엘은 나머지 10개 지파로 형성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20명의 왕 중에서 4명이 시해되었지만 다윗 왕조 하나로 345년 지속되다가 주전 586년에 20대 왕 시드기야 때 바벨론에 의해 멸망됩니다. 북 이스라엘은 19명의 왕 중에서 거의 절반이 역모에 의해 죽었기에 9개의 왕조가 들어서 209년 지탱되다가 주전 722년에 19대 왕 호세아 때 앗수르에 의해 멸망됩니다.
남 유다에는 3대 왕 아사, 4대 왕 여호사밧, 8대 왕 요아스, 13대 왕 히스기야, 그리고 16대 왕 요시야와 같은 개혁적인 경건한 왕들이 가끔 나왔지만 북 이스라엘에는 부분적인 개혁을 실시한 10대 왕 예후 외에는 단 한 명도 경건한 왕이 없었습니다. 열왕기하는 남북 분단 후 약 80년이 흐른 시점인 북 이스라엘의 8대 왕 아하시야 얘기로부터 시작되는데 본문에는 아하시야가 다락에서 떨어져 병을 얻고 벌어진 일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나옵니다. 본문은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2가지 길을 교훈합니다.
1. 믿음의 길
아합이 죽고 국력이 약해지자 다윗에 의해 정복당한 후(삼하 8:2)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있던 모압이 반기를 들었습니다(1절). 그 즈음에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게 되자 사자를 보내며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고 했습니다(2절). 에그론은 블레셋의 5대 성읍 중에 하나로 가장 북쪽에 있어서 이스라엘과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블레셋 성읍이었고, ‘바알세붑(바알 파리)’은 ‘바알세불(바알 왕, 사탄)’을 비하하는 명칭으로 추정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가 당한 사고는 우상숭배에 빠진 그를 회개시키려는 하나님의 징계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아하시야는 우상에게 병의 치유 유무를 물은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바엘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하며 아하시야의 어리석은 행위를 질책합니다. 아하시야는 다급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나님 대신 바알세붑을 찾은 기복적인 배신행위를 한 것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 우상을 찾거나 기복주의나 미신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참된 믿음의 길을 고수하십시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할 때 하나님이 죽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극적인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복주의나 미신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의 길을 굳게 걸으면 하나님이 죽지 않게 하시고 망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2. 사명의 길
아하시야의 불신으로 그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얘기를 아하시야의 사자에게 전하라고 하자 엘리야는 지체 없이 길을 떠났습니다(4절). 절대 권력자인 악한 왕에게 죽음의 심판을 선포한다는 것은 보통 믿음과 용기가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지만 엘리야는 그 명령을 수행하려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즉시 사명의 길로 갔습니다.
사명의 길을 가면 고생이 따르지만 고생에 이어서 기쁨과 보람도 따르게 됩니다. 또한 사명자의 삶은 외롭지만 외로움을 각오하면 하나님이 신기하게 동역자를 붙여주십니다. 모세가 말을 더듬자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셨고, 바울이 몸이 약하자 의사 누가를 붙여주셨습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에게 차분한 요한을 붙여주심으로 둘은 12제자 중에 제일 같이 붙어 다니면서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베드로만 있으면 일이 자주 깨질 것이고 요한만 있으면 일이 잘 진척되지 않을 것입니다. 둘이 동역했기에 최상으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명의 길을 담대하게 걸을 때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도 붙여주시고 필요한 것도 채워주실 것입니다. 인간의 일은 계산으로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신중할 필요도 있지만 너무 신중하면 방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찰하는 지식인에서만 끝나지 말고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십시오. 환경에 길들여진 다수의 길보다 환경을 열어가는 소수의 길을 가십시오. 믿음이란 결단하고 모험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나의 품은 뜻 주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라고 고백하며 찬란한 꿈과 비전을 위해 위험과 모험을 무릅쓰면 반드시 선한 변화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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