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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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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9.26 http://www.john316.or.kr |
성도의 2가지 최대 사명
(요 21:16-17)
사람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진다. 그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그 인생은 가장 복된 모습이 된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며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네가 앞으로 얼마나 충성할래? 어떻게 사역을 할 것이며, 힘들어도 사명을 버리지 않을 거냐?”는 질문을 하지 않고 그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그 말은 하나님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매이는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께 매이면 세상으로부터 매이지 않고 사는 능력이 생기고 진짜 자유를 얻는다. 반대로 하나님께 매이지 않으면 세상에 매여 오히려 진짜 자유를 빼앗긴다. 사람이 하나님께 매이면 재미없게 살 것 같지만 진짜 재미를 누릴 수 있고, 세상에 매이면 재미있게 살 것 같지만 진짜 재미없는 인생이 된다.
어느 마을에 송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송아지가 자라 코뚜레를 할 때, 송아지는 농부에게 코뚜레를 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했다. 농부가 말했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망아지처럼 될 텐데.” 송아지는 말했다. “아닙니다. 주인님! 코뚜레를 해야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옛날 생각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코뚜레를 하지 않아도 두 배로 일을 잘할 테니 두고 보세요.”
결국 농부는 송아지의 코뚜레를 하지 않았고, 송아지는 처음에는 약속대로 잘했다. 그러나 점점 꾀를 부리고, 일을 거부하고, 농부를 뒷발로 찼다. 어느 날, 그 송아지가 마을에서 사라졌다.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주인이 도살장으로 보낸 것이다.
때로 성도에게는 코뚜레가 필요하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삶의 고통은 일종의 코뚜레이다. 그 고통을 통해 영적으로 코뚜레를 하고 내 고삐를 주님께 드릴 때 내게는 진짜 사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한번 세상에 매이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일전에 이주일 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담배 피우지 말라고 TV에서 호소했다. 그 후, 담배 매상고가 뚝 떨어졌다가 넉 달 후에 다시 올라갔다. 사람은 담배 하나에서도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어차피 어딘가 매여 사는 존재이다. 그때 하나님께 매이고, 하나님의 사명에 매일 때 진정한 자유와 기쁨과 평안이 주어진다.
2. 양떼를 먹이는 것
성도의 첫째 사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둘째 사명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고백을 받은 후에 바로 양떼를 먹이라고 하셨는가? 결국 ‘예수님 사랑’은 ‘양떼 사랑’과 똑같다는 말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표시는 양떼를 사랑하는 모습에 잘 나타난다.
주님이 3번이나 반복해 양떼를 먹이라고 하신 것은 이웃 사랑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다 사랑하겠다고 각오하지만 나중에는 귀찮고 힘들고 실망해서 사랑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에 미리 단단한 마음을 먹도록 주님은 그렇게 반복해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양떼를 먹이는 일이다. 목회는 겉으로 보면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화려하게 보이는 목회자들은 열 명 중 한두 명이다. 대략 목회자 10명 중 2명은 보통 이상의 삶을 살고, 10명 중에 2명은 보통 이하의 삶을 살고, 나머지 10명 중의 6명은 최하의 삶을 산다.
보통 이상의 삶을 사는 목사도 마음고생은 똑같다. 목회 자체는 행복한 일이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목회뿐 아니라 어디서든 사람을 먹이고 세워주는 일은 쉽지 않다. 내 자녀 양육도 쉽지 않다. 남 양육은 더욱 쉽지 않다. 그래도 양육과 이웃 사랑은 성도의 최대의 사명인 줄 알고 그 일에 대한 수고와 관심을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라. 최고의 인격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격이다. 천하를 얻고도 사람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을 무시하면 자신의 가치도 떨어지고, 하나님의 외면을 당한다. 하나님의 관심 중의 관심은 사람이다. 예수님을 잘 믿을수록 나타나는 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자녀를 양육할 때 가장 많이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삶이다. 친구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로 자녀를 즉시 야단치라. 어렸을 때 그 버릇을 고쳐주지 않으면 커서도 그 버릇을 버리기 힘들게 되고, 그때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대상이 된다. 사람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사람 무시하는 일이다.
이웃을 나무로 알고 그의 땅이 되어주라. 최선을 다해 이웃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편안함을 전해주는 소중한 이웃이 되라.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대로 살지 말고 종로에서 뺨을 맞아도 한강에서 화풀이하지 말라. 직장에서 야단맞았어도 집에 와서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삶을 살라. 그렇게 남을 배려하며 사는 만큼 축복의 그릇도 커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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