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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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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9.27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 21장(23)
원수 같은 과거도 사랑하라
(요21:16-17)
주님이 하신 세 번의 질문은 같은 것 같지만 엄밀히 보면 다 다르다. 헬라어에서 ‘사랑’을 뜻하는 4가지 단어가 있다. 첫째는 육신적 사랑을 뜻하는 에로스, 둘째는 친구간 사랑을 뜻하는 필레오, 셋째는 어머니 사랑을 뜻하는 스톨게, 넷째는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이다.
주님이 첫째와 둘째 질문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할 때 사용한 단어는 아가페였다. 그때 베드로는 아가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 두 번 모두 “제가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주님은 17절에서 셋째로 “네가 나를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즉 베드로가 아가페로 도달하도록 다그치지 않고 주님께서 필레오로 사랑의 기준과 눈높이를 낮춰주셨다.
용어뿐만 아니라 말씀 강도에서도 눈높이를 낮추어주셨다. 주님은 처음 질문할 때 15절에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이 모든 것들보다) 나를 더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셨다. 그 질문에 베드로가 자신 없게 대답하자 두 번째 질문할 때에는 조금 강도를 낮춰 ‘이 사람들보다’라는 구절을 빼고 그냥 “네가 나를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래도 자신 없게 대답하자 마지막으로 “네가 나를 필레오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이 장면을 보면 베드로와 눈높이를 맞추려는 주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처럼 되는 것이다. 그런 성육신의 사랑이 진정한 변화의 역사를 만든다.
한 선교사가 옷을 안 입는 부족에게 선교를 갔는데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 문제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해서 자기가 걸친 두꺼운 옷을 벗어던지자 비로소 원주민들이 마음 문을 열었다. 그처럼 두꺼운 자존심의 옷을 포기해야 비로소 삶에서 능력과 기적이 나타난다.
성육신의 사랑은 쉽지 않다.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자기 사랑은 본능이지만 자기희생은 의지이다. 그 자기희생적 사랑이 바로 아가페이다. 아가페란 자기를 조각조각 찢어주고 자기는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 절대 사랑이다. 절대 사랑은 절대 능력을 주고, 절대 변화를 일으키고, 절대 축복을 준다. 남의 희생을 강요하면 잠깐만 살지만 자기희생을 각오하면 영원히 산다.
또한 성육신의 사랑은 겸손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겸손하면 은혜가 주어지지만 교만하면 은혜가 없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제일인줄 착각하지만 그 착각에서 자기를 지키는 길이 인생 승리의 길이다. 옷을 걸치면 달라보여도 벗으면 다 똑같다. 사실 가장 똑똑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가장 정신 나간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한 목사가 용인 정신병원에서 설교하는데 한 병자가 킥킥대며 웃자 옆에 있는 환자가 그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목사님! 얘는 가끔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미친 사람이 남보고 미쳤다고 하자 너무 웃겨 목사님이 설교하다가 정신없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병자가 말했다. “어, 저 목사도 미쳤네!” 그때 그 목사는 자기가 미쳤다는 진리를 처음 발견했다.
내가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사실상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그것이 내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하는 일마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지만 진정으로 겸손하면 내 앞에 시원한 대로가 열린다.
< 원수 같은 과거도 사랑하라 >
베드로를 일으킨 것은 주님의 성육신의 사랑이었다. 사랑은 과거의 수치를 이기게 하고 깨진 관계를 복원시켜준다. 내 한과 상처, 그리고 힘든 삶의 여정을 극복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주님 사랑이다.
실제로 세 번의 질문이 끝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주님 질문이 자기 상처를 덧나게 하는 질문인 줄 알았는데, 세 번의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새 마음의 질병이 다 치료되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는 과거의 수치를 깨끗이 잊고 누구보다 훌륭한 제자의 길을 새롭게 갈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을 붙드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어떤 분은 회를 먹다가 체한 후 더 이상 회를 먹지 않는다. 한번의 체한 기억이 맛있는 회를 먹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그처럼 과거에 실패한 경험을 잘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일부분이 파괴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생긴 실패의 경험을 잘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상당 부분이 파괴된다. 그때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사랑이다. 특히 원수 사랑이 필요하다. 링컨은 원수는 마음에서 없애라고 했다. 누군가 링컨에게 원수를 없애버리라고 할 때 링컨은 말했다. “당연히 원수를 없애야지요. 저는 원수 사랑으로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 원수를 없앨 겁니다!”
진정 복된 삶을 살려면 원수사랑은 필수적이다. 원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짜 원수는 ‘과거의 실패와 수치의 기억’이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그 기억을 잘 극복하고,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모든 원망과 과거의 아픈 기억을 버리라. ‘원수 같은 과거’를 잊어버리고 더 나아가 ‘원수 같은 과거’까지 사랑하라.
원수 같은 과거를 그냥 잊어버리는 것도 훌륭하지만 더욱 훌륭한 일은 그 원수 같은 과거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그때 그 수치로 내가 이렇게 겸손할 수 있었구나! 그 실패로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가 되었구나!” 그런 넉넉한 믿음의 고백으로 원수 같은 과거까지 사랑으로 품고 승화시켜 나갈 때 가장 멋지고 사랑스런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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