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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2:1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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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10.1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4) 산 아래로 내려가십시오
(왕하2:15-25)
엘리야가 승천할 때, 멀리서 장엄한 후계자 위임 장면을 보고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학교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강하게 요청해서 엘리야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했습니다(16절).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 일말의 의구심을 가진 것입니다. 결국 선지학교 생도들이 보낸 용사 50명이 사흘 동안 엘리야의 시신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17절). 그 일로 인해 엘리야의 승천의 역사성과 엘리사의 권위는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후계자 위임이 마무리된 후, 엘리사가 여리고 성의 나쁜 물에 소금을 던져 좋은 물로 변하게 한 다음에 벧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엘리사를 조롱했습니다(23절).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평소에 가장 열등감을 가진 부분을 언급하며 아이들이 무섭게 조롱하자 엘리사는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몸을 돌이켜 그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했습니다. 그러자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 42명을 찢어 죽였습니다(24절).
그 사건은 막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엘리사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는 자기 말이 그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죄책감이 들면서 선지자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어린이를 죽음으로 내몬 자기도 무서워졌고 자기를 그런 지경으로 몰고 가도록 만든 사람들도 무서워졌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도시도 무서워졌을 것입니다. 그때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사마리아를 두고 며칠 간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간 곳이 바로 갈멜산이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싶고 세상과 사역을 잠깐 등지고 싶었다면 자기 고향인 요단 동편의 아벨므홀라로 가지 않고 하필이면 요단 서편의 지중해 쪽에 있는 갈멜산으로 갔을까요? 갈멜산은 휴양과 명상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엘리야의 주된 활동지로서 거기서 엘리야의 지인들에게 엘리야의 승천사실도 알리고 엘리야가 남긴 영적인 향취를 맛보려고 갔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마음의 안정도 취하고 계속 기도하면서 엘리야로부터 후계 위임을 받았던 때를 자주 떠올렸을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뜻이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임을 깨닫고 과감히 갈멜산을 떠나서 사마리아로 돌아왔습니다(25절).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자신의 사명을 따라 선지사역을 수행했습니다. 결국 은둔하며 선지사역을 수행한 엘리야와는 달리 엘리사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왕궁이 있는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선지사역을 수행했고 나중에는 왕의 상담자나 조언자 역할을 하는 위치까지 가게 되었습니다(왕 6:9; 8:4). 성도는 산 위로 오르는 것도 잘해야지 하지만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 산 아래로 내려가십시오 >
산 위에 있는 것만 좋아하면 갑각류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갑각류는 내부의 연약한 기관을 보호하는 딱딱한 껍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딱딱한 껍질이 내부를 보호해주는 장점도 있지만 외부와의 소통을 막는 단점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갑각류 인생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틀과 형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지만 남의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기준으로 남을 배척하며 남들의 고통과 슬픔에 잘 반응할 줄 모릅니다.
갑각류 인생은 남을 판단하는 선수입니다. 금욕적으로 사는 세례 요한에게는 귀신들렸다고 비난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예수님께는 시정잡배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찍어내려고 독재자들이 애용하는 딱지붙이기를 해서 예수님께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란 딱지를 붙였습니다. 고대나 중세의 경건주의자가 가장 경계한 것은 식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그런 딱지를 붙이면서 여론에 의한 인격말살을 자행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 ‘세리와 죄인의 친구’란 딱지도 붙였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포도주를 즐겨 마셨고 세리 및 죄인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리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산 위의 삶도 중요하지만 산 아래의 삶도 중요함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산 위에 있으면서 산 아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판단만 하는 것은 결코 복된 태도가 아닙니다. 세상이 어지럽다고 입산하는 뒷모습보다 어둔 세상에 작은 빛이라도 비추려고 하산하는 앞모습이 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엘리사도 갈멜산에 계속 있으면서 아무 욕심 없이 평안하게 살고 싶었겠지만 자신에게는 남다른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악의 소굴인 사마리아로 가서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외면할 수 없어서 결국 산 아래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처럼 산 위에서 은혜를 받았으면 산 아래로 내려가고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렸으면 평일에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나가 열심히 빛 된 삶을 사십시오.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엘리사처럼 왕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복된 인물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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