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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3: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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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10.2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5) 3대 복된 인생의 동반자
(왕하3:1-14)
유다의 여호사밧 왕 18년에 북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의 아들이자 8대 왕 아하시야의 동생인 9대 왕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12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1절). 여호람도 악한 왕이었지만 그의 통치 초기에는 부모인 아합과 이세벨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애면서 바른 왕이 되어보려고 했습니다(2절). 그러나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는 철폐하지 못했습니다(3절).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를 철폐하면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린다고 남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민심과 영향력을 잃을 것이란 인간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의 신앙갱신은 흐지부지 끝났습니다. 특히 부친 아합은 죽었어도 모친인 이세벨은 그의 통치 중에도 살아있었기에 단호하게 하나님께 돌아서지 못한 것입니다. 효도는 좋은 일이지만 부모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에 있다면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는 한이 있어도 담대하게 그 잘못된 길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것은 대개 피해야 하지만 좋으신 하나님께 돌아서는 일만은 우유부단함을 버리고 단호하게 결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유부단은 극단만큼 안 좋은 것입니다.
2. 좋은 영적 리더
우유부단한 여호람의 통치로 국력이 약화되자 다윗 때부터 매년 조공을 바치던 모압 왕 메사가 여호람 왕을 배반했습니다(4-5절). 그러자 여호람은 모압 정벌을 준비하면서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사신을 보내 모압 정벌을 제안했습니다(6-7절). 결국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유다의 속국인 에돔 왕이 모압 정벌에 나섰는데 길을 둘러 간 지 칠 일이 되었을 때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떨어졌습니다(9절). 게다가 골짜기도 말라 있었고 비의 징조도 없어서 그때 모압 군대가 공격해오면 꼼짝없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왕이 탄식했지만 여호사밧은 신실한 왕답게 큰 문제 앞에서 먼저 하나님의 사람을 찾았습니다(10-11절). 큰 문제가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절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지만 낙심과 절망과 불평과 탄식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도울 사람을 찾아 의논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지만 그것도 대개 실망으로 끝납니다. 인생의 큰 장벽을 만나면 그때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사심 없이 말해줄 좋은 영적 리더를 찾아야 합니다. 그때부터 상황 반전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여호사밧의 말을 듣고 여호람의 신하 한 명이 대답했습니다. “전에 엘리야를 가까기에서 섬기던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그 말을 듣고 신하를 보내는 대신 3명의 왕이 함께 엘리사를 직접 찾았습니다(12절). 그만큼 고통이 심각했고 엘리사의 권위도 컸다는 뜻입니다. 3명의 왕은 탁상공론 대신 직접 영적 리더를 찾음으로 절망적인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결국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을 찾고 좋은 영적 리더를 찾아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 거기서부터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입니다.
3. 좋은 비전 동지
세 왕이 오는 것을 보고 엘리사가 그 중에 이스라엘 왕인 여호람에게 그의 부모 아합과 이세벨처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찾지 왜 자기에게 왔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13절). 그런 핀잔을 듣고도 여호람 왕은 분노하지 않고 자신들의 어려운 상황을 말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더 자존심상하는 말을 했습니다(14절). “만약 제가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당신을 향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경건한 유다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아서 그를 맞이했다는 뜻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고 신앙갱신이 나선 적이 있었는데 그 신앙을 하나님이 기억해주셨고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옆에 있었기에 여호람도 영접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호사밧에게도 여러 흠이 발견되지만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은혜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람이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죄도 많이 짓고 실수도 많이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만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여호사밧 때문에 여호람을 맞이했다는 말은 비전 동지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좋은 비전 동지 때문에 자신도 축복 받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살면서 굳건한 믿음으로 후원해주는 좋은 비전 동지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비전 동지를 얻지 못합니까? 운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외면해서도 아닙니다. ‘후기의 대중’에 속하면서 동지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비전 동지를 얻으려면 ‘후기의 대중’이 아닌 ‘초기의 소수’가 되어야 합니다. 초기의 소수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동지’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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