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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8:3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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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찬희 목사 |
참고 : | 기둥교회 |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막 8:31-38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몇 개월 전 교단 일로 천안성결교회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담임목사실에 들어간 저는 너무나 놀랍고 반가운 것들을 보았습니다. 한 일곱평 쯤되는 공간이 있었는데, 사방 벽과 중앙에 수백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 목사님은 권석원목사님이라는 분인데, 그 분은 십자가를 모으는 것이 낙이자 취미라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십자가를 사서 들여와 교회 안에 십자가 박물관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보통 한국 개신교인들은 십자가 하면 그저 막대기 두 개를 가로질러 놓은 것만 생각하고, 다른 모양이라면 기독교 십자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는 온갖 모양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동석했던 한 목사님이 "아니 목사님이 이런 십자가들을 뭐하러 모으셨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교회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저로서는 그런 십자가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목사님의 무지와 그 무지에서 나오는 용감함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십자가는 기독교신앙의 상징이었습니다. 모양도 여러 가지이고 쓰임새도 여러 가지입니다. 천주교회에서 주로 많이 볼 수 있는 십자가가 있지요? 고상십자가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모양 그대로 주님의 성육신과 수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빈 십자가는 주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어떤 십자가는 세 개로 되어 있고 어떤 십자가에는 발판 같은 것이 달려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십자가는 주로 동방교회에서 사용하는데 아래에 달린 발판같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어떤 십자가는 빛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십자가는 나무로 되어 있고 어떤 십자가는 놋쇠로 되어 있고 어떤 십자가는 보석이 달려 있기도 합니다. 모양이야 어떻게 생겼든,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간에 기독교인들은 각각의 십자가를 통해 주님을 보고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합니다.
고대교회로부터 십자가는 기독교인을 상징하는 중요한 싸인으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교인들은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하고 집에 걸어두기도 합니다. 예배 때나 교회의 예식 등에서 십자가를 들고 행렬을 하거나 손으로 십자성호를 긋기도 합니다.
제 서재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상 십자가이고 하나는 빈 십자가이고 또 하나는 동방교회에서 이콘이라 불리는 것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발판이 있는 십자가입니다. 저는 그 십자가들을 보면서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늘 감사합니다.
저는 천안교회의 십자가 박물관에서 각양 각색의 십자가들을 보면서 그 십자가의 모양새만 볼 수 없었습니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십자가를 보며 그 십자가들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며 감동을 받았고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과연 나는 이 땅을 사는 동안 어떤 십자가를 어떻게 질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내 십자가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가끔 TV를 보면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십자가 목걸이나 귀걸이를 한 모습을 봅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 저 사람도 크리스찬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닌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얼마 전 끝난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 선수 중에 변천사라는 소녀가 있습니다. 저는 그 이름을 보고 "틀림없이 그 부모가 기독교인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독실한 불교신자였습니다.
이젠 십자가니 천사니 하는, 기독교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일반인들에게서 장식거리로 여겨지거나 좋은 이름 정도로 생각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의 의미는 별 상관이 없고 관심도 없고 그저 반짝이는 액세서리요 귀금속 정도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특별하고도 변함없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할 때마다 주님을 생각하게 되고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물건으로서의 십자가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러분! 우리도 주님처럼 십자가를 깎아 메고 예배당에 와야 한다는 말씀일까요? 그런 십자가를 날마다 끌고 다니라는 말씀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가끔 일부 보수적인 목사님들이 십자가를 만들어, 그것도 바퀴까지 달고 흰 장갑을 끼고 몇 걸음 끌고 다니며 자기 주장들을 펴지만 그것은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욕되게 하고 우습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이벤트요, 시위요, 명백히 말씀을 오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말씀을 가만히 보면, 주님을 따르려면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는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과 함께 중요한 한가지를 전제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생각,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을 세우고,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지는 십자가는 기독교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봄날 길거리를 촐랑거리며 다니는 처녀의 귀에서 달랑거리는 그런 십자가 일 뿐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이용해 무언가 얻으려 하는 이들은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지는 십자가는 자기 만족과 자기 공을 세우기 위한 쇼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조금 세밀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있은 후 주님께서 자신이 고난 받을 것과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펄쩍 뛰었습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의 원 뜻은 강경하게 만류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말은 주님의 생각과는 180도로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냥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이 아니라 영광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인류 구원의 길과는 상관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앞섰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그 후에야 올 부활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이 주시는 떡에 너무 배가 불러 있었고, 주님이 베푸신 기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꿈꾸는 것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주님은 이런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꾸짖으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내 일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까? 내 뜻입니까? 베드로의 뜻은 고난 없는 영광이었으나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으시는 주님의 뒤를 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람의 생각을 능가합니다. 전능하시고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생각에 여러분의 생각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사순절 제2주 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좆는 것은 주님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로 함께 가는 것이고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함께 달리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에서의 죽음 후에만 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제 아무리 좋은 것, 많은 것을 가지고 한없이 누린다 해도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은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누리게 될 것은 너무나 큽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다가는 하나님의 일을 잊을 수 있습니다. 영광을 생각하다가 고난을 마다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생각지 않다가 부활의 영광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롬 8:18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한 바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모범을 따르는 사람이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사순절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도 드릴 각오로 사는 절기입니다. 주님을 위해 헐벗고,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구원의 은총을 합당하게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십자가가 수치스럽고 미련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부끄러움도 불사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시고 그를 자랑스러워하십니다. 그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십자가는 죽이는 도구입니다. 자기 욕망을 죽이고, 자기 뜻을 죽이고, 자기 자랑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자기 안에 주님이 사시게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에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또, 롬 6:6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멀리 있는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죄의 유혹하고 죽이는 권세를 물리치고,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종이 되어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1182-1226년에 앗시시라는 곳에서 사셨던 성 프란체스코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성 프란시스라 불리는 분입니다. 그에게는 평생 소원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흔적을 자기 몸에 갖는 것이었습니다. 페루지아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1년을 지낸 후 고향에 돌아온 그가, 어느 날 말을 타고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문둥병자가 그의 발을 붙들고 구걸을 했습니다. 황급히 말머리를 돌려 피하던 그의 양심을 성령께서 두드리셨습니다. 되돌아와 말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자를 부둥켜 안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입고 있던 값진 외투도 벗어주었습니다. 23세가 되던 어느 날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던 중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가서 내 집을 세워라. 내 집이 무너져가고 있다" 음성을 들은 프란체스코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교회에 희사한 후 남루한 옷 한 벌만을 걸친 채 맨발로 길을 떠났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길을 따라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가 1300M가 넘는 베르나 산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 제목은 두 가지였습니다. "주여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두 가지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주께서 겪으신, 그렇게도 아프고 괴로웠던 고난을 저의 영혼과 몸으로 체험하게 하옵시고, 주께서 희생의 제물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 불타는 충만한 사랑을 저도 당신을 향해 갖게 하옵소서" 한참 기도하던 새벽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천사가 여섯 날개를 펴고 하늘에서 그에게로 오는데 그 날개에 십자가 형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의 양 손과 양 발 그리고 옆구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 왔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그의 손과 발에 못자국이 생겼고 옆구리에 창자국이 생겨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도 실명했습니다. 그 때 그가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나의 전부이십니다"
프란체스코는 자기가 가졌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자기의 안락과 영달을 부인하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의 전부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러분! 이 말씀에 응답하여 여러분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가신 고난의 길로 따라 나섭시다. 주님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가시밭이라도, 돌짝 밭이라도, 아골 골짜기, 빈들이라도 따라갑시다. 이 사순절에 주님의 십자가가 여러분의 자랑이 되면, 그 십자가를 통해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혼과 육체에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2006. 3. 12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둥교회 목사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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