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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03: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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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10.14 http://www.john316.or.kr |
마구 퍼주시는 하나님
(시103:1-14절)
< 마구 퍼주시는 하나님 >
이틀 전에 둘째 딸이 <The Prodigal God>란 책을 읽고 메일로 독후감을 보내왔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비유 중의 하나가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돌아온 탕자(prodigal son)의 비유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꽤 잘하는 사람도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서 prodigal의 뜻을 보통 ‘방탕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Prodigal God>은 ‘방탕한 하나님’이란 말이 되기 때문에 무슨 개념인지 혼동하게 됩니다.
네트영어에는 7대 원리가 있는데 그중에 2번째 원리가 ‘단어의 핵심개념 이해’란 원리입니다. 그 원리를 따라 요새 틈틈이 네트영어 사전을 만들어서 현재까지 약 1400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그 네트영어의 원리에 따르면 prodigal은 ‘앞으로 퍼서 내주는’이란 원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변형해서 정의하면 prodigal은 ‘마구 퍼주는(마구 쓰는)’이란 개념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 단어를 개념의 정확한 이해 없이 무작정 ‘방탕한’이라고 외우면 <Prodigal God>가 무슨 개념인지 잘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혹시 둘째 딸에게도 그런 개념상의 혼동이 있을까봐 바로 답장메일을 보냈습니다. “한나야! 영어에서 prodigal은 나쁜 의미로 쓰면 ‘방탕한’이란 뜻이지만 원뜻은 ‘마구 퍼주는’이란 뜻을 가졌단다. 그래서 <The Prodigal God>의 뜻은 ‘방탕한 하나님’이 아니고 ‘사랑을 낭비할 정도로 마구 퍼주시는 하나님’이란 뜻으로 큰 죄인도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야. prodigal son(인생을 낭비하는 아들)을 기꺼이 받아주시는 Prodigal God(사랑을 낭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네게도 넘치길 바란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메일을 보냈는데 둘째 딸이 이미 <Prodigal God>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기뻤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마구 퍼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시고 거룩한 사명과 비전까지 주시고 지금까지 지켜 보호해주셨으니 하나님은 정말 지나칠 정도로 사랑을 마구 퍼주시며 낭비하시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그 하나님의 사랑의 낭비가 없었다면 우리는 사탄과 사건과 사고의 원투쓰리 펀치를 맞고 다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큰 시련과 시험이 있어도 범사에 감사하는 자세만은 결코 잃지 마십시오.
<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할까요? >
본문의 시편은 시편 1편, 23편, 42편과 함께 가장 사랑 받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자기와의 대화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인생의 성패는 대화상대를 누구로 삼아 어떤 대화를 하느냐에 크게 좌우됩니다. 나는 내 친구의 거울이고 내 친구는 나의 거울입니다. 즉 어떤 사람의 친구만 보면 대략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대화상대가 중요한데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대화상대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 시간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대화 상대가 바로 ‘자신’입니다. 자기와의 대화는 자기 존재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대화입니다. 스스로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짜증나! 피곤해!” 그러면 정말 짜증스럽고 피곤한 인생이 펼쳐집니다. 그처럼 자신과의 대화가 자신을 만들어가기에 자신과 어떤 대화를 하느냐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과 대화를 합니다. 어떤 대화입니까?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높이고 감사하라고 도전합니다. 영혼을 아름답게 만들고 인격을 성숙시키고 축복을 받으려면 자신에게 끊임없이 감사를 도전하십시오.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할까요?
1. 구원하심에 대해
본문 3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성도의 감사는 제일 먼저 십자가의 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실 구원의 은혜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입고도 현실적이고 육적인 은혜가 없다고 불평하면 있던 은혜도 잃게 됩니다. 가끔 보면 사랑을 잃은 후에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잘못이 없도록 힘든 현실에서도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면 그 현실도 조만간 좋은 행복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2. 치유하심에 대해
본문 3절 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사람들은 기적적인 치유에 “와!” 하고 찬탄하지만 사실상 더 큰 기적은 자신이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기적입니다. 수많은 질병의 가능성 속에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찬란한 계획이 있기에 병에 대한 저항력을 주셔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가끔 큰 사고를 만나도 몸이 멀쩡하면 이런 고백부터 나옵니다. “살아있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처럼 땅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건강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3. 보호하심에 대해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파멸적인 위험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높여주실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때로 시련을 겪지만 그 시련도 필요했기에 하나님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고 위대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곳에 그런 위대한 인물이 숨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인물이 되려면 시련도 필요한 줄 알고 너무 시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 희망 주심에 대해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짧은 인생을 잘 살다 가려면 부러움과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입니다. 또한 후회는 현재가 불만이란 뜻이고 미래의 희망도 잘 안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미래의 약속이 있기에 현재에 대해 불만을 가지거나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언제나 청춘의 심정으로 내일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청춘의 마음과 새로운 꿈과 비전과 희망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5. 심판하심에 대해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 도다.” 신자와 불신자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입니까? 불신자는 심판을 두려워하고 신자는 심판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모든 억울함과 서러움이 씻기고 모든 헌신이 보상 받는 심판의 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성도에게 힘과 위로가 됩니까? 다윗은 부조리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현실 속에 수많은 부조리와 수수께끼와 어둠이 있어도 힘 있게 일어나십시오.
6.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해
하나님은 긍휼이 많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넘치는 하나님입니다(8절). 그래서 자주 경책하지 않고 분노도 금방 푸십니다(9절). 또한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하나님의 크신 자비로 우리의 죄대로 처벌하지 않습니다(10-11절). 또한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를 멀리 옮기셨고 우리의 체질과 약함을 아시고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기듯이 성도를 긍휼히 여기십니다(12-14절).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랑을 마구 퍼주시는 하나님(The Prodigal God)’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삶 >
성도에게 지상 최대의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려면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더욱 사랑하십시오
고난이 오면 희생양을 찾다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더욱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제일 위대한 속성 중에 하나가 불쌍히 여기는 속성입니다. 사람은 알고 보면 다 연약하고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를 멀리 던지고 잊어주신 하나님처럼 누군가의 허물과 잘못을 잘 잊어주십시오. 그런 사랑과 긍휼이 있어야 사람의 마음도 얻고 결국 하나님의 마음도 얻게 될 것입니다.
2. 더욱 용서하십시오
원수를 용서하고 더 나아가 그의 복을 빌어주십시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주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마치 하나님이 그 사람 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 편이기에 그런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미워하면 가슴이 떨리고 소화도 안 되고 원수는 더 형통해지면서 약만 오르고 자기만 비참해집니다. 반면에 용서하면 자기 상처부터 먼저 급속히 치유되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그 상황과 그 사람에게 적극 간섭하십니다. 그처럼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면 하나님이 앞서 움직이시면서 축복의 대로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3. 더욱 이해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해주셨습니다. 그처럼 사람마다 다 약점이 있고 체질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교회에서 “하나가 되라!”고 하는 것은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하나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행동과 의견이 다른 것으로 인해 충격과 상처를 받지 말고 상대의 행동과 의견을 존중하며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우자나 부모나 자녀나 교우나 동지가 자기 생각과 꼭 같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참된 하나의 관계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는 관계가 아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어깨동무하는 관계입니다. 부부가 매일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면 지겨워지고 흠도 많이 보이게 됩니다. 반면에 같이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서로의 흠도 감춰지고 서로의 의견과 인격을 존중하며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얼마나 정겹고 좋습니까? 하나의 기적은 행동과 의견을 억지로 통일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할 때 생깁니다.
4. 더욱 감사하십시오
깊이 생각해보면 사람에게는 불평할 이유보다 감사할 이유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 감사거리를 꼽아보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먼저 생명을 주신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기본 위에 하나님이 베푸신 삶의 추억들,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친구와 동료들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또한 거룩한 하나님의 선교 비전을 위해 은밀한 손길로 동역하면서 기쁨과 보람과 뿌듯함과 행복을 느꼈던 시간들에 대해서도 감사하십시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나머지 한해를 감사로 마무리 짓고 더 나아가 나머지 인생을 감사로 마무리 짓도록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새롭게 다짐하십시오. 큰 고난이 있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직 인생의 승부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고난 중에도 자기 삶을 귀하고 소망적으로 보고 앞으로 하나님이 주실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감사하는 안목을 가지고 사십시오.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어떤 안목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인생은 현저히 달라집니다.
일전에 어떤 도둑이 한 별장을 다 털고 나오다가 허름한 골프채 가방도 들고 나왔습니다. 그 골프채를 125만 원에 팔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골프채는 타이거 우즈가 메이저 대회에서 연속해 우승한 기념으로 만든 수억 원짜리 기념 골프채였습니다. 그 가치도 모르고 125만 원에 판 내용을 기사로 내보냈는데 그 기사 제목이 <안목 없는 도둑>이었습니다. 안목이 있어야 인생도 행복해집니다. 무엇보다 감사하는 안목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제 모든 상황을 감사의 안목으로 보고 좋으신 하나님을 통해 복된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 내 곁을 떠나면 하나님이 더 좋은 사람을 내 곁에 붙여주실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사업이 망하고 교회 성장이 안 되면 솔직히 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서도 인생의 교훈을 얻고, “다음 기회가 오면 더 겸손해야지.”라고 겸손을 다짐하고 더욱 하나님을 붙잡고 나가면 성공과 성장이 없어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성공이나 성장도 얼마나 허무한 것이 되는지 모릅니다.
1980년대에 서울에 있는 한 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 성장에는 한 재벌의 물질적인 힘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그 교회가 각지에 세운 프랜차이즈 교회도 단기간에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재벌이 무너졌습니다. 당시 정권은 불법축재와 부실경영으로 무너졌다고 했지만 그 재벌은 정권의 탄압으로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많은 한국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그 재벌의 말을 믿어주고 동정했습니다. 교회성장에 큰 역할을 했고 신학교와 선교센터도 세우면서 기독교계에 나름대로 공헌을 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시 세금 징수 공무원들이 그 재벌 집을 급습해 보유한 현금을 압수했습니다. 그때 그 재벌 아내 권사가 소리쳤습니다. “그건 하나님께 낼 돈이니까 손대지 마세요!” 그때 한 공무원이 핀잔을 줬습니다. “하나님도 세금 내면 잘했다고 할 겁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보도였습니다. 물론 억울한 사연도 있겠지만 그 사연과는 별도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일컫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손길들에 의해 이뤄진 외형적인 교회성장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최소한의 양식을 갖춘 교회 리더라면 큰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교통위반만 해도 교통경찰에게 “나 목사인데... 나 장로인데... 나 권사인데...”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사실을 어떻게든지 감춰서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범죄를 하고서 교회의 리더임을 내세우면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셈이 되고 게다가 하나님의 이름까지 서슴없이 발설해 죄에 대한 변호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3계명의 죄까지 짓는 셈이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외형적인 성공이나 성장과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성장이 지체되면 하나님이 더 겸손하게 자신을 정비하고 성숙시키는 시간을 주시려고 그렇게 했다고 믿고 감사하십시오. 사실 지금 한국 교회의 정체는 그런 성숙을 위한 진통입니다. 그처럼 생각대로 일이 잘 안 될 때도 감사하고 극심한 고난 중에는 더욱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최고의 덕이고 성령 충만의 최대 표식입니다. 배신은 자연히 돋는 들풀처럼 잘 자라지만 감사는 잘 가꿔야 피는 장미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하는 삶을 가꾸고 연습하고 체질화하십시오.
<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까요? >
이제 범사에 감사하고 힘써 감사표현을 하십시오.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까요? 첫째, 예배를 통해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인간 창조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특히 예배할 때는 축복을 목적으로 예배드리지 말고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예배드리십시오. 축복을 따라가면 축복이 도망가지만 하나님을 따라가면 축복이 따라옵니다.
둘째, 물질을 드려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사실 생각과 말로 감사하는 것도 감사지만 물질로까지 감사 표현을 하면 그 의미가 훨씬 깊어집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감사한다면서 드림과 나눔에 인색하면 그 믿음은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위해 마음으로도 함께 하고 손도 펼 줄 알아야 그 은혜가 지속됩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감사표현에도 능숙하십시오.
셋째, 몸을 바쳐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하나님이 건강한 몸을 주셨으면 그 몸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십시오. 바울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기 몸이 부서지도록 죽기까지 수고했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충성이 말과 생각에서만 머물지 말게 하시고 몸과 마음까지 바치는 지경까지 가게 하십시오. 그러면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를 눈동자처럼 귀하게 여겨주실 것입니다.
넷째, 찬양으로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하나님은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낭비적인 사랑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큰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큰 사랑을 받고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할 수 있습니까? 그 중에 가장 좋은 표현 방법이 바로 찬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찬양은 요새 유행하는 잘 세팅이 된 ‘찬양예배’에서 복음성가를 멋지게 잘 따라 부르라는 의미의 찬양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윗처럼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넘치는 찬양고백을 잘 하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으로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무수한 죽음의 고난을 통과하며 무수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했기 때문에 생생한 감사 찬양이 입에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찬양고백을 하며 시편의 약 3분의 2를 쓰게 된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실감나게 자신에게 찬양을 도전합니까?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이 구절에서 “네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심장과 허파와 위장도 찬양하고 간과 소장과 대장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즉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해 전심으로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선교하라! 전도하라! 기도하라!”는 말씀도 많지만 그런 말씀들과 비교 불가할 정도로 많이 나오는 말씀이 바로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감사 찬양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살다 보면 불행하게 보이는 일들이 때로는 큰 축복의 계기가 될 때가 많습니다. 밀알은 산채로 땅에 떨어져서 질식할 것 같은 흙에 덮여 잠깐 죽음의 고통을 겪지만 마침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그 매장의 고통이 결국 새 생명을 탄생하게 만들고 새로운 축복을 낳게 한 진통이 된 것입니다. 그처럼 삶이 매장되는 큰 시련과 아픔이 있어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사 찬양을 결코 잃지 않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마구 퍼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넘치게 받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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