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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4:3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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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10.16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11) 세상의 해독가루가 되십시오
(왕하4:38-44)
본문에는 엘리사에 의해 이뤄진 2가지 기적이 나옵니다. 첫째 기적은 ‘솥의 국을 해독시킨 기적’입니다(38-41절). 어느 날, 엘리사가 길갈의 선지학교에서 사환에게 말했습니다.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해 국을 끓이라(38절).” 그때 한 사람이 들에서 따온 들 호박을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었습니다(39절). 그리고 국을 먹는데 갑자기 신학생들이 외쳤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님! 솥에 죽음의 독이 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가루를 가져오게 해서 솥에 던지자 국이 말끔히 해독되었습니다.
요새도 많은 음식에 죽음의 독이 풀어져 있습니다. 농약으로 범벅이 된 농산물과 방부제와 착색제 등이 섞인 음식물들이 곳곳에 넘칩니다. 그런 음식의 독도 문제지만 마음의 독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잘못된 정치공학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겨져 있습니까? 그런 독을 제거하는 해독가루 역할을 누가 해야 합니까? 성도가 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과 해독가루가 되고 힐링제와 화목제가 되어야 합니다.
성격 차이로 별거 중인 한 부유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오래 별거하면서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고 목회자와 상담을 통해 이해의 폭도 점차 넓어지면서 다시 결합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한 브로커가 끼어들어 갖은 모략과 부정적인 말로 둘을 이혼시키려고 했습니다. 부인을 생각해 주는 척 하면서 이혼소송으로 돈을 벌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잘못된 브로커의 모습이 바로 공작정치로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공작정치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냉철한 판단력을 길러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의 판단력에 한계가 있어서 진실과 음해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판단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용서와 화해의 손길입니다. 참된 진리는 최종 선을 지향해야 합니다. 불화로 귀결되는 것은 바른 논리는 될 수 있어도 참된 진리는 될 수 없습니다. 바른 논리보다 참된 진리로 인간사회의 진선미를 구현하려면 바른 논리의 밑바탕에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깔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초창기에는 전도할 때 “예수 믿고 천당 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예수 믿고 복 받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구호는 “예수 믿고 화해하십시오!”란 구호입니다. 노사 대립, 빈부격차, 세대차 등이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막을 때 성도들이 자기를 부순 세상의 해독가루가 되어 뿌려짐으로 사회의 힐링제가 되고 그것을 위해 오해보다 이해를 앞세우고 음해보다 화해를 앞세워 살아야 합니다.
< 물질 문제도 맡기십시오 >
본문에 나온 둘째 기적은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부대(자루)로 백 명의 선지학교 학생들을 먹인 기적입니다(42-44절).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인 기적을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8장에 나오는 떡 7개와 작은 물고기 두어 마리로 4천 명을 먹인 기적은 ‘칠병이삼어의 기적’이라고 하고, 본문에 나오는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부대(자루)로 백 명의 선지학교 학생들을 먹인 기적은 ‘이십병일대채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를 엘리사에게 드렸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신학생들에게 주어 먹게 하자 사환 게하시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습니까?” 그래도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세워 주어 먹게 하자 그 말씀처럼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44절). 이 기적은 오병이어의 기적의 모형으로서 당시의 종교적인 암흑기에도 선지학교 학생들의 먹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도운 경건한 후원자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그 생활 문제를 책임져주신다는 교훈도 줍니다. 그래서 성도는 물질 문제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인 가치관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부인해도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신앙이 어느 단계인가? 가치관이 어떤 가치관인가? 사람됨이 어떤가?”를 나타내는 가장 명백한 지표 중의 하나입니다. 믿음이 좋다면서 자기 몸보신에는 돈을 펑펑 쓰고 드나베(드림과 나눔과 베풂)의 삶에 인색하다면 그 믿음은 진실성이 의문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을 잘 나누는 삶을 통해 물질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의 필요에 깊은 관심을 주실 것입니다. 중국 내지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는 선교를 떠날 때 후원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필요를 신실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하나님을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지원이 결핍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고백은 믿음의 선진들이 했던 한결같은 고백이었고 또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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