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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40. 74살의 나이에도 의병에 앞장 선 면암 최익현
“양풍에 휘말리어 습속마저 바꿔지니
머리 깎고 갓 없애고 이 무슨 재변이냐
방원(方圓)의 옛 제도를 모멸할 자 누구인가
이제부터 행동은 의식을 갖추누나
늘그막에 섬 구경 생각조차 못했거니
서울로 돌아갈 날 죽기 전엔 없을 것인 가
한 가닥 노래하고 오랫동안 서성대니
첩첩 싸인 저 봉우리에 석양이 비껴 있다”
위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형시(流刑時) 일부입니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7)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보고 제자들과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다가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면암 선생은 나라가 기울자 을사오적의 죄가 아비나 임금을 죽인 것 보다 더 크다는 상소를 올려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을 처단 할 것을 상소하면서 1906년 2월 면암은 가묘(家廟)에 하직을 고하고 호남으로 떠나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하는데 이때 나이가 74살의 고령이었습니다.
면암 선생은 1833년에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스물 두 살 되던 해인 185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하고 관직을 삭탈당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다가 동부승지로 재 등용되지만 대원군의 서원 철폐와 한일 통상을 반대하는 ‘척사소(斥邪疏)’ 따위를 올려 제주도와 흑산도로 거듭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그뒤 1905년 을사늑약을 당해 제자들과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다가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되었고 유배지에서도 그는 국운이 기울어짐을 탄하는 ‘유소(遺疏)’를 올린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선생의 ‘유형시(流刑時)’는 유형지인 대마도에서 느낀 비통한 심경을 담담하게 나타내며 행간 마다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이 새겨 있습니다. 오늘은 조선의 당당했던 선비 면암 최익현 선생이 태어난 날입니다.
* 방원(方圓) : 네모나고 둥근 것. 곧 “방원(方圓)의 옛 제도”란 원칙과 적당히 굽은 것이 함께 있어 완벽하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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