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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42. 백성사랑 마음이 가득한 허목선생의 ‘척주동해비’
“삼가 생각건대, 지금 정치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어서 넘어져도 부축할 길이 없고 위태로워도 붙잡아 낼 길이 없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중략) 사사로운 법 집행이 심하여 공정성이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 것이 이때만큼 심한 적이 없을 것이며, 모든 일이 이리저리 찢겨 무너지고 있는데도 대소가 안일에 젖어 있는 것이 이때만큼 심한 적이 없을 것이며, 정치는 피폐되고 백성이 원망하며 재앙과 이변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이때만큼 심한 적이 없을 것입니다.”이는 《효종실록》 19권 (1657년) 9월 21일치에 나온 지평 허목이 임금에게 상소 올린 글입니다.
백성사랑 정신이 남달랐던 미수(眉) 허목(許穆 1595∼1682) 선생은 1660년 10월부터 2년 동안 삼척부사로 재직하게 되는데 삼척이 동해에 가까워 해일이 자주 밀려와 백성의 피해가 커지자 해일 조수를 물리치고자하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세웠습니다. 이 비를 세우자 거짓말처럼 해일피해가 줄어들었다고 하지요. 척주동해비는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육향산 산마루에 있는 높이 175㎝, 넓이 76㎝, 두께 23㎝의 큰 비석으로 원래의 비는 1707년 풍랑에 파손되어 1709년에 재차 세운 것이 지금의 비입니다..
“머리 아홉 달린 해신들과 / 외발 달린 괴물짐승 / 태풍 몰고 비뿌리네 / 아침햇살 솟아나서 / 깊고 넓게 빛이나니 / 제왕의 빛 푸른 하늘이라” 이는 ‘척주동해비’의 일부 내용입니다. 이 비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전하는데 새로 부임한 부사 박래정(朴來貞)이 이 비석의 영험함을 전해 듣고, 미신이라며 철거해 버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해일이 일어 고민하던 박 부사에게 하인이 아뢰길 허목 전 부사께서 오늘 같은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장차 퇴조비에 이상이 있거든 동헌 마루 밑에 퇴조비 하나를 묻어 두었으니 쓰도록 하라" 고 했다고 해서 동헌 마루를 파보니 과연 퇴조비가 묻혀 있었다고 합니다. 장차 백성들이 닥칠 위험까지 걱정한 미수 선생의 백성사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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