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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9:2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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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11.6 http://www.john316.or.kr |
열왕기하(24) 인생의 결말을 좋게 하려면
(열왕기하 9장 27-37절)
요람이 예후의 화살에 맞아 죽는 것을 본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가자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결국 므깃도에서 그를 죽였습니다(27절). 예후의 분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합의 아내였던 이세벨에게까지 표출되었습니다. 결국 예후의 위협으로 내시들이 이세벨을 창밖으로 내려 던지게 했습니다. 그때 이세벨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자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았습니다(33절). 그리고 장사해주려고 했지만 이세벨의 해골과 발과 손 외에는 찾지 못했습니다(35절).
이세벨이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 제일 원인은 우상숭배를 조장한 것에 있었습니다. 우상숭배는 신상을 숭배하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생활에서 우상숭배와 관련된 행위들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은 우상숭배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란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행위이고 우상숭배를 멀리하는 행위란 승리의 원천이 하나님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사람을 너무 사랑하지는 마십시오. 사람을 신뢰하되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는 마십시오. 아무리 믿었던 사람도 내 곁을 떠날 때가 언젠가는 반드시 옵니다. 그처럼 믿었던 사람이 훌쩍 떠나면 어떻게 삽니까?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면 그것도 우상숭배이고 하나님보다 돈과 권력을 더 추구하면 그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지나치게 믿지만 돈과 권력은 믿었던 사람보다 더 빠르고 매정하게 훌쩍 자신의 곁을 떠날 수 있습니다.
2. 악과 결탁하지 마십시오
왜 아하시야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까? 악한 왕 아합의 아들로서 악의 길을 떠나지 않았던 요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만남입니다. 만남이 인생을 현저하게 결정합니다. 어떤 만남은 감동도 없고 흔적도 없지만 어떤 만남은 깊은 감동을 주고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좋은 만남은 삶의 의미를 주면서 좋은 인생은 만들지만 나쁜 만남은 삶의 재미만 주면서 나쁜 인생을 만듭니다.
영어에서 키스(kiss)는 ‘스치듯 닿았다가 떨어지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반면에 임팩트(impact)의 ‘깊이 푹 박히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좋은 만남은 가볍게 키스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임팩트를 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에 목숨을 걸고 수많은 기독교 성현들이 복음에 목숨을 걸었습니까? 예수님과 스치듯 만나지 않고 깊이 만나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쁜 만남은 귀와 눈을 닫아 인생을 뒷걸음치게 만들지만 좋은 만남은 귀와 눈을 열어 인생을 진일보하게 만듭니다. 소외된 땅 갈릴리에서 소외된 인생을 살던 예수님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눈과 귀가 열렸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역시 눈과 귀가 열렸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좋은 만남과 나쁜 만남을 잘 구별해서 늘 좋은 만남을 추구하고 악과 결탁하지 않게 하소서!”
3. 힘을 과시하지 마십시오
이세벨의 비참한 결말은 힘을 과시하며 살았던 자의 비참한 결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줍니다. 결국 힘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식은 무엇입니까? “모든 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란 의식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불의하게 남의 생명을 빼앗으면 결국 자신도 똑같이 당합니다. 그런데 죄 많은 세상에서는 힘이 생기면 그 힘으로 남의 생명을 누르고 빼앗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 최후의 결말이 이미 예감되면서 힘을 과하시는 것이 부럽게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불쌍하게 보입니다.
저는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까지 꽤 심하게 차력 및 격투기와 관련된 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싸움실력은 얻었지만 남은 것은 수전증뿐이었습니다. 운동을 심하게 하니까 손 부분의 말초신경이 상해서 점차 필체를 잃고 글씨도 제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대학 때 논문식 시험을 보면 남들은 2시간 동안 8절지 앞뒤로 3장 가득 해답을 쓸 때 저는 8절지 앞면의 절반밖에 쓰지 못했습니다. 그때 “왜 손이 이렇게 떨릴까?”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심한 운동과 관련된 생각은 못하고 공부한다고 잠을 적게 자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 후 운동을 그치면서 수전증을 온전히 치료하는데 거의 20년 걸렸습니다. 지금도 심한 손 운동을 하거나 아주 무거운 물건을 들으면 수전증 초기 증상이 다시 생겨나서 심한 운동은 가급적 피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힘의 상징인 울퉁불퉁한 근육이 부럽게 보이기보다는 측은하게 보입니다. 힘자랑은 육신적인 삶의 표시이자 재앙의 예고편입니다. 힘은 약자를 돕고 정의와 공존의 가능성을 높이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힘을 오용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힘을 선용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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