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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십시오

말라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635 추천 수 0 2013.12.24 20: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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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말1:6-14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3.11.11 http://www.john316.or.kr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십시오

(말라기 1장 6-14절)

 

< 이름을 사칭하지 마십시오 >

 서울 인근의 한 개척교회 목사님은 유명한 크리스천 연예인 사진을 교회입구에 대문짝만하게 걸어 놓았습니다. 마치 그 교회를 다니는 것처럼 선전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면 그 연예인이 자기를 홍보해준다고 좋아할까요? 자기 이름을 사칭하고 자기 사진을 도용한다고 크게 기분이 상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과 인격이 엉망이고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도 없는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라고 자주 남용하면 그때마다 예수님은 “내 이름을 많이 선전해주니 고맙다!”라고 하지 않고 심히 분노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 봐도 사람됨과 성도다움이 갖춰진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기에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유명인들은 친하지 않은데 친한 척 접근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합니다. 교만 때문만은 아닙니다. 유명인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다 만나주면 개인의 삶은 없게 되고 자기 일은 하나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명인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아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사전에 깊은 친분이 없으면 유명인들은 만나기도 힘들지만 간신히 유명인을 만나도 그로부터 썩 좋은 반응이나 결과도 얻기 힘듭니다.

 교계에서도 초대형교회 목사님들은 개인적으로 만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 교회 성도도 만나기 힘듭니다. 그처럼 거의 개인적인 대화도 나누지 못하면서 “내 목사님!”이라고 하며 자기 목사님이라고 여기면 그 목사님도 자기를 자기 양으로 여겨줄 줄 알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성경적 개념에 의하면 자신에게는 그 목사님이 자기 목사님이라도 그 목사님에게 자신은 그의 양이 아닙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의 양입니까?

 이름과 얼굴은 알아도 1년 동안 개인적인 대화를 한 번도 못해본다면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그 목회자의 양이 아닙니다. 혼자만의 짝사랑일 뿐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목회자와 찬란한 비전을 가슴으로 공유하지 못하고 짝사랑만 하며 교회가 세운 비전을 수행하는 객체로만 지낸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 낭비와 영혼 낭비입니까?

 사회에서는 그런 유명인과의 만남이 더 힘들고 만나도 서로가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유명인은 처음에는 아무나 잘 만나주다가 나중에는 그런 만남을 점차 피합니다. 자기와 한번 만난 것을 가지고 친한 척 하면서 자기를 사칭해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로 몇 번 덴 경험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만남을 조심하면서 유명인이나 대형교회 목사님도 의외로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 외로움을 어떻게 달랩니까? 소수였을 때 사심 없이 서로 아껴주던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달랩니다. 성공하기 전에 이너써클 안에서 순수하게 만났던 소수의 사람들이 사실상 진짜 동지들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별로 친분이 없던 사람이 유명해지면 그 다음부터 그에게 연줄을 대려고 뛰어다니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는 그때는 그와 만나봐야 깊은 관계도 형성되지 않고 은근히 무시만 당합니다. 사심 없이 누군가를 섬기면 언젠가 최상의 연줄이 주어지지만 이익과 계산을 염두에 두고 연줄을 찾으면 썩은 동아줄만 잡힙니다.

< 제 3계명이 중요한 이유 >

 가끔 대통령 지인 중에 비리로 구속되는 사람을 봅니다. 요즘은 대통령도 친인척 비리 문제를 조심하기에 실제로는 대통령도 모르게 사칭될 때도 많습니다. 그렇게 사칭하는 것이 대검 특수부장과 대통령 총무수석을 통해 대통령에게 알려질 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렇게 사칭하는 것을 알면 대통령도 분노하면서 검찰에 지시합니다. “법대로 엄정하게 처리하십시오.” 그래서 대통령 지인 중에 누군가 잡혀가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길 원하는 사람은 오히려 대통령을 사칭하지 않고 더 조용히 지낼 것입니다. 결국 유명인이나 권력자의 이름을 사칭하고 도용하는 사람은 대개 질이 나쁜 사람입니다. 교인 중에도 행동과 인격은 엉망이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사람도 대개 질이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면 예수님의 이름에 누가 될까봐 행동도 조심하고 하나님의 이름도 함부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동네에서 아내가 차를 유턴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좌회전 신호 때 유턴해야 하는데 차량이 없으니까 대부분 편하게 아무 때나 유턴하는 곳입니다. 그때는 그것을 잘 몰라서 잡은 이유가 궁금해 “왜 잡았냐?”고 묻자 젊은 경찰이 짜증내며 말했습니다. “신호위반이거나 중앙선 침범입니다.” 저는 청력이 약해서 그 말을 “신호위반과 중앙선 침범입니다.”로 듣고 경찰이 딱지를 두 개 끊는 줄 알고 약간 언성을 높여 말했습니다. “모르면 물을 수도 있지 그게 무슨 중앙선 침범입니까? 그렇다고 딱지를 두 개를 끊습니까?”

 그곳은 유턴 가능 지역이라 중앙선 침범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경찰도 실수를 느꼈는지 딱지를 끊지 않고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그때 둘째 딸이 뒤에서 난생 처음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을 졸였다고 합니다. 또한 동네의 아는 사람이 신호위반으로 목사님 차가 걸린 장면을 볼까봐 염려했다고 합니다. 왜 마음 졸여 염려했을까요? 목회자로서 은혜가 안 되게 예수님의 이름을 먹칠할까봐 염려한 것입니다.

 그처럼 성도가 욕먹을 행동을 하면 예수님의 이름도 욕을 먹기에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조심성도 없이 막되게 행동하면서 어디서 보고 들은 대로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면 얼마나 예수님이 싫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행동과 인격도 엉망인 모습으로 하나님을 욕 먹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성도다운 성도가 “예수님 이름으로 명한다!”라고 하면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집니다. 그래도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신실한 성도는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란 말을 함부로 기계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남발하고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는 말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진실해질수록 자연히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쓰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처럼 남발하는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면 사탄이 물러갈까요? 아마 코웃음 치며 말할 것입니다. “이 녀석이 우리를 호구로 알아? 녀석아! 너나 물러가!” 왜 사탄이 그렇게 우습게 압니까? 그가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은 무서워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처럼 이용하며 “예수 이름으로!”라고 하면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웃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경외하면 그의 이름도 함부로 쓰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배운 사람은 부모나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결국 부모나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존중의 의미는 없고 경시의 의미가 큽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라고 사칭하는 것도 주의해야 하지만 굳이 써야 할 상황이라면 존댓말이 발달한 한국말로는 “예수 이름으로!”란 말보다는 “예수님 이름으로!”라고 쓰는 것이 좋습니다.

 찬송가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셨다는 것은 성육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지 진짜 예수님을 친구처럼 맞먹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처럼 함부로 남발해 사용하지 말고 자신을 살피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이 십계명의 제 3계명으로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진 것입니다.

 목회할 때도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라고 했으면 예수님처럼 목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목회했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천 명이 몰려오자 생명의 떡 설교로 그 군중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고 해서 기적이 일어나 사람들이 몰려오면 예수님처럼 그 군중들을 잘 물리쳐 ‘군중의 삶’이 아닌 ‘제자의 삶’을 가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군중들을 모아 교회를 키우려고 기적 연출의 수단으로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란 말을 남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얼마나 예수님과 반대 되는 모습입니까?

 예수님과 반대로 살면서 입으로만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라고 해서 기적이 생기면 그 기적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일까요? 사탄이 주는 기적일까요? 잘 분별해서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권위를 도둑질하고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십계명의 제 3계명을 어기는 죄입니다. 그 죄에 휩쓸리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행위 >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는 늘 있었습니다. 약 3500년 전의 모세 때도 심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제 3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 망령된 행동이 약 2500년 전인 말라기 때도 심해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행위를 엄하게 경고했습니다. 어떤 행위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행위일까요?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5가지를 언급합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것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무서워하지는 말되 경외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2.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당시 백성들은 더러운 떡을 드리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했습니까?”라고 항변했습니다(7절). 그때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눈멀고 절고 병든 제물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않으냐? 그것을 총독에게 드리면 그가 너를 기뻐하며 받아주겠느냐(8절)?” 율법은 흠 있는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지 말라고 했는데(레 22:22), 당시 백성들은 눈이 멀고 병든 양이나 염소를 싸게 사서 눈속임하며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처럼 형식적으로 제사하고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행위로 보셨습니다.

3. 믿음 없이 은혜를 구하는 것

 당시 백성들은 겉으로는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은혜를 내려주소서!”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형식적인 제사로 어떻게 내 마음을 얻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9절). 그래서 그들의 형식적인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려고 “헛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생한 표현까지 쓰셨습니다(10절). 그 정도로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시지 않으니까 믿음 없이 은혜를 구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4. 선민이 더 나쁘게 행동하는 것

 하나님은 동서 사방에서 이방 민족이 깨끗한 제물을 드림으로 그들 중에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되지만 유대인은 불결한 것을 바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다고 말씀했습니다(11-12절). 그 말씀이 신약시대에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음으로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신약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안심하지 말고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신실한 믿음과 헌신생활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이름을 형식적으로 주문처럼 불러대는 모습은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5. 깨끗한 예물을 드리지 않는 것

 당시 백성들은 멀리서 제물 가져오는 일이 번거로우니까 성전 바깥뜰에서 시장 가격보다 몇 배 비싸게 제물을 사서 드렸습니다. 성전 바깥뜰에서는 제사장의 허락을 받은 상인들만 제물을 팔 수 있었는데 그렇게 제물 판매권을 주며 제사장들은 막대한 뇌물을 받아먹었습니다. 그처럼 제물 가격이 비싸니까 많은 백성들이 돈을 아끼려고 병들고 흠이 있는 제물을 싸게 사서 드리면서 서원기도를 드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모습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모습으로서 결국 저주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13-14절).

<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십시오 >

 본문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의 외침은 지금 한국 교회를 향한 외침입니다. 요새 형식적인 예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찬양예배조차 형식이 지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본문의 제사장처럼 항변할 것입니다. “목사님! 왜 우리 예배가 형식적입니까? 화려하게 음악과 손발을 동원해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란 말도 누구보다 많이 하지 않습니까?”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배당 안의 예배는 있지만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를 인식하고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을 위해 부족함은 힘써 감추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십시오. 자기 이름을 높이고 영성을 자랑하려고 자기를 꾸며대는 것은 위선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자기를 단장하는 것은 소양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운 일의 당사자가 되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되지 않도록 힘써 감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앞일은 모르니까 저도 어쩌다가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교통경찰이 “직업이 뭐냐?”라고 물을 때 분당 샛별교회 목사라고 하면 은혜가 안 되니까 그때는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네. 글 쓰는 일을 합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8권의 책을 출판했고 계속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위선이 아닌 성도의 기본 소양입니다.

 잘했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겸손하게 드러낼 필요는 있습니다. 물론 너무 지나치게 드러내면 역효과입니다.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고 축구장 한 복판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면 옛날에는 좋게 봤지만 지금은 역효과도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모습보다는 “실제 삶에서 신앙심을 보여라!”고 더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 요구에 지혜롭게 부응해야 합니다.

 그처럼 잘했을 때는 하나님의 이름을 겸손히 드러내고 못했을 때는 하나님의 이름을 최대한 감추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받지 않게 하십시오. 식당에서 크게 식사기도를 해서 믿는 사람임을 드러낸 후에 공짜라고 밑반찬을 7번이나 달라고 요구하면 식당 종업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이름도 훼손됩니다. 못된 성질과 인격을 다 드러낸 후에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라고 해도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훼손됩니까?

 오래 전에 K부흥사가 기도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주일예배 때 늦어서 신호위반을 했다가 교통경찰에게 잡혔습니다. 그래서 사정했습니다. ‘저는 강남 아무개 교회 목사인데요. 주일예배에 늦어서 신호위반을 했어요. 봐주세요.’ 그래도 딱지를 끊으려고 하자 그때 교통경찰의 손을 확 붙잡고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분을 축복해주세요.’ 그랬더니 교통경찰이 물끄러미 저를 보면서 ‘그냥 가라!’고 해서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극적으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 설교를 듣고 청중들은 막 박수를 칩니다. 그 박수를 들으면서 사탄은 빙그레 웃지만 하나님은 이름이 훼손되어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그런 행위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감추기는커녕 부흥회에서까지 자랑스럽게 떠들면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뭘 배우겠습니까? 무속적이고 편법적인 마구잡이 기도만 배우지 않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한 것을 얻으면 축복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축복을 추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나쁘게 축복을 추구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왜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 목사님 설교가 비판받습니까? 그분에게 장점이 많습니다. 마음도 깨끗하고 따뜻해 보입니다. 좌절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려는 모습도 훌륭합니다. 또한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긍정주의자들보다는 상당히 유하고 설교내용도 잘 준비된 내용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가끔 K부흥사가 했던 식의 설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과 관련된 신학부재 문제만 해결되면 배울 점이 많은 설교자인데 참 아쉽습니다.

 그때 교통경찰이 왜 K목사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냥 가라고 했을까요? 죄를 짓고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는 모습에 감동해서 가라고 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속으로 “별 미친 목사가 다 있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냉소하며 황당해서 그냥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지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 철면피 신앙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습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됩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믿음을 보여줄 때 하나님이 크게 이름을 높이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즉 소리 없는 꾸준한 헌신과 고난 중에도 변함없는 감사생활 등이 하나님의 이름을 최고로 높이는 모습들입니다.

 며칠 전에 대입 시험을 쳤습니다. 그 날 저녁에 한 신실한 아빠가 시험을 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시험결과가 어떻든 네가 시험을 무사히 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빠는 네가 대견해보이고 네게 고맙단다. 정말 수고했다. 결과와 앞날은 하나님께 맡기자!” 그러면 그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자녀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시는 우리 아빠는 확실히 다르셔!” 바로 그때 그 아빠는 예수님의 이름을 최고로 높이면서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더 나아가 자녀가 시험을 잘못 쳤을 때는 더 하나님께 영광 돌릴 절호의 기회입니다. 시험을 잘못 쳤을 때 야단치면 가뜩이나 실망한 자녀들은 더 절망하게 됩니다. 그때는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얘야! 괜찮다! 아빠가 이제까지 살아보니까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의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다시 힘을 내라.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널 도와주실 거야.” 그러면 그 자녀가 깊이 감동 받으면서 “역시 하나님을 믿는 우리 부모님은 달라!”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그 아빠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높임 받게 됩니다.

 얼마나 멋진 아빠의 모습입니까? 그런 멋진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한국 교회에 널리 확산시키는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준비하십시오. 거룩한 비전을 가진 한 사람의 힘은 결코 작은 힘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 거룩한 비전을 새롭게 품었다면 오늘 예배는 최상의 예배를 드린 것이고 언젠가는 그 비전이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꿈같은 때가 올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나를 통해 예수님의 이미지가 남에게 투영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하지 않고 높이려고 최선의 지혜를 발휘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이름을 최상으로 지켜주시려고 천군천사를 동원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삶이 너무 중요해서 하나님은 그 계명을 제 3계명에 두셨습니다. 그 사실을 늘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지키는데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이 최상으로 지켜주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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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5 열왕기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왕하9:1-13  이한규 목사  2013-12-24 2123
10174 열왕기하 좋은 인맥을 만드십시오 왕하8:16-29  이한규 목사  2013-12-24 1302
10173 열왕기하 사람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왕하8:7-15  이한규 목사  2013-12-24 1984
10172 사사기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 삿7:3-7  한태완 목사  2013-12-24 1956
10171 시편 정직하고 진실하게 삽시다. 시51:10  한태완 목사  2013-12-23 1707
10170 누가복음 믿음으로 맞이할 성탄 [1] 눅2:25-33  강종수 목사  2013-12-22 2461
10169 히브리서 시험을 통과하는 믿음 히11:17~19  이정원 목사  2013-12-21 1860
10168 히브리서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는 믿음 히11:13~16  이정원 목사  2013-12-21 2112
10167 히브리서 사라의 믿음 히11:11~12  이정원 목사  2013-12-21 2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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