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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예화 110편 모음

최용우............... 조회 수 30032 추천 수 0 2008.11.26 23: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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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예화 110편 모음

1.마음과 생각

어제는 가족들과 함께 모처럼 서점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월간지 이름 중에 '마음수련'이 있고 '좋은생각'이 있더군요.
도대체 '마음'이 무엇이고, '생각'이 무엇일까요?
마음은 가슴에 있고, 생각은 머리에 있습니다.
마음이 생각을 다스리는 것을 감동이라 하고
생각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의지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머리(생각)로 사는 것은 의지이고
가슴(마음)으로 사는 것은 감동이라... 그런 소리입니다.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똑똑하고 불과 같은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온유하고 빛과 같은 사람입니다.
대체로 서양 사람들은 머리로 살아가기 때문에 인정머리가 없고
동양 사람들은 가슴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계산을 잘 못합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통해 머리에 지식을 넣는 것은 생각을 키우는 것이고,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우정, 양보, 봉사, 사랑 같은 덕목을 배우는 것은 마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최용우

2.깨끗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의(意)가 없고- 사사로운 뜻 사의(私意)가 없고
필(必)이 없고 -반드시 해야겠다는 기필(期必)코 의 마음이 없고
고(固)가 없고 -고약한 집념(固執)이 없고
아(我)가 없는 -내 것을 챙기는 이기심(利己心)이 없는 사람
이 네 가지가 없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라고 공자님 말씀하십니다.
웬 공자님 말씀을 하느냐고 시비를 거실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이 깨끗한(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본다(마5:8)고 했으니
공자님의 입을 빌려서라도 깨끗한 마음을 배워야겠습니다.
깨끗한 마음이란 마음을 비워 아무것도 없게 한다는 말입니다.
장자는 언제나 상대방과 어울려 주어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라 했고
노자는 성인은 자기 마음을 따로 지니지 않아서 백성의 마음이 자기마음 삼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깨끗한 마음은 거울 같은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되 비추이는 것이 떠나가면 언제나 빈 상태가 되는 거울 같은 마음이 깨끗한 마음입니다.
시종일관 '내 뜻'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마음의 거울에 비추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다가 죽은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사셨기에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있으되 나는 없는 무용지물의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주님 얼굴 뵈옵고 싶어요. ⓒ최용우

3.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면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것은 얼굴에 나타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면 근심, 걱정이 없어집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저 담담하게 맞닥뜨릴 뿐입니다.
그래서 얼굴에 기쁨과 감사와 웃음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얼굴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얼굴을 예쁘게 꾸며도 하나님은 볼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천만금을 가지고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얼굴에 불안과 초조의 표정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환경 때문에 얼굴의 표정이 환하거나 어둡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최용우

4. 어떤 마음?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는 일을 기독교 용어로 '손 사역'이라고 합니다.
나그네 사역, 섬김 사역, 아브라함 사역, 긍휼 사역이라고도 합니다.
똑같은 손으로 사람들을 대접해도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일수도 있고 그냥 개인의 밥벌이 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과를 보시는 게 아니고 그 동기와 속마음을 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무감으로 할 수 없이 손님을 대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 보이기 위해서 대접을 하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이익을 보려고 대접하고
어떤 사람들은 손님을 사랑함으로써 대접하며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마음으로 손님을 대접합니다.
이 중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기는 '주님의 마음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손님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정성껏 대접하겠습니다. ⓒ최용우

5.마음이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소경인 사람은 다른 나라에 가도 역시 세상은 깜깜합니다.
한국에서 실패한 사람은 다른데 가도 역시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한국에서 못살겠다고 다른 나라로 이민간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하는 말이 거기는 더 못살겠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다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신학공부를 하여
목회나 하고자 하는 사람은 목회도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오늘 삶이 힘들고 고달픈 사람은 내일도 역시 힘들고 고달플 것입니다.
내 마음이 문제입니다.
감옥도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천국이고
한국도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지옥도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천국이 되는 것이고
천국도 지옥이라고 생각하면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오늘 여기가 천국인 사람은 어디를 가도 천국이고
오늘 여기가 지옥인 사람은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그곳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며 천국생활을 했습니다. ⓒ최용우

6.마음의 무게

자동차가 움직이려면 엔진이 돌아가야 하듯이 사람에게도 엔진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심장입니다. 심장이 벌떡벌떡 잘 뛰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심장은 단순히 피를 뿜어내는 일 외에, 인간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일도 합니다. 무서운 일 힘든 일엔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지고,거짓말을 할 때에도 얼굴이 빨개지도록 합니다. 거짓말 탐지기도 바로 심장의 박동을 체크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심장을 '마음'이라 하였고 한문으로도 심장을 형상화하여 마음 心자를 썼습니다.
고대 애굽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죽은 사람의 심장을 저울로 달아 그의 인간됨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심장의 무게가 많이 나가면 성대하게 장례를 치루었고, 살아있을 때 아무리 높은 대관고작 이었다 할지라도 양심의 무게가 가벼우면 죽은 사람을 천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의 양심이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요?
성경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시7:8)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보고 계신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지닌 사람이다"고 고백합니다. 어째 양심불량이거나 염통에 털 난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최용우

7.마음 청소

어떤 스승이 바구니 안에 꽃을 담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바구니인가?" 제자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꽃바구니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꽃을 들어내고 생선을 바구니에 담고 똑같이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생선 바구니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맞다. 똑같은 바구니이지만 꽃을 담으면 꽃바구니요, 생선을 담으면 생선바구니이니라.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 안에 쓰레기가 담겨 있으면 쓰레기같은 사람이지만, 그 안에 향기나는 꽃이 담겨 있으면 향기나는 사람이니라"
자! 그대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비 개인 아침 하늘은 너무나 맑고 아름답습니다. 그 깨끗한 공기는 마음을 상쾌하게 합니다. 방안에 눅눅하게 묵은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야 합니다.
마음속의 먼지를 털어냅시다. 앙금같은 찌꺼기들을 깨끗이 닦아냅시다.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환기 좀 시킵시다. 퀴퀴하고 쩔은 냄새를 다 몰아내고 마음 청소좀 합시다. ⓒ최용우

8.열가지 마음

1.따뜻한 마음을 가지세요.
2.여유있는 마음을 가지세요.
3.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4.양보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5.정직한 마음을 가지세요.
6.이해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7.즐거운 마음을 가지세요.
8.신뢰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9.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10.절약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최용우

9.마음의 멋

성경: 베드로전서3: 3- 4"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어떤 흑인이 거울을 앞에 놓고 자기의 얼굴을 보고 화장을 하다가 아무리 화장을 해도 새까만 얼굴을 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흑인이 "내 얼굴은 비록 검으나 내 마음은 희게 하겠노라"고 굳게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외모의 단장보다 마음의 단장을 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도 보면 외모를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도 보면 외모를 아름답게 하려는 미장원 등은 도처에 생깁니다. 그러나 실상 더 귀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고 추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갖은 추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겉모양의 멋은 일시적인 것이며 공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마음의 멋은 영원한 것이요,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는 멋입니다. 그야말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참다운 멋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공헌을 인류에게 끼치고 빛을 남긴 사람들은 그 모두가 이런 마음의 멋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박사,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그러한 분들이었습니다. 한 벌의 유행 옷은 사 입을 수 있어서 겉멋은 장식할 수 있지만 마음의 멋은 돈으로 살 수 없고, 교환할 수도 없거니와 빼앗아 나의 것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마음의 멋이야말로 자신이 찾아서 애써 구해야 하고 정성껏 가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부인들의 화장법 가운데 소위 심리화장법이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얼굴에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발라도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면 아름다워 질 수가 없다는 이론입니다. 온화한 마음을 가지면 온화한 얼굴이 되고, 사랑을 하면 아름다워집니다. 사람이 놀라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아름답게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유하고 정직하고, 인자하고, 겸손한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강퍅하고, 거짓되고, 잔인하고, 교만한 마음은 추합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31:30)/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중에서)

10.마음대로 안되는 사랑

한 여인이 길을 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저기 담장 아래 피어있는 꽃이 너무 아름다워요. 저에게 그 꽃을 꺾어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장에 달려가 꺾어다 줍니다. 아마,절벽에 핀 꽃이라도 생명을 걸고 꺾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해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만큼은 이상하게 사람의 생각대로 잘 안 됩니다. 어느 날 내 마음 속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어느 덧 양귀비가 되고,알랭 들롱이 될 수 있습니다.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에서 알랭 들롱이 나왔을 때 전 세계 여인들이 반해 버렸습니다. 알랭 들롱이 한번이라도 나 좀 좋아해 달라고 말한 적 있습니까? 그냥 혼자 좋아해 버린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도 억지로 하면 힘들고 괴로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 안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성경의 모든 서술문들이 명령문으로 바뀝니다. 참된 신앙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11.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언제나 머무르기를 좋아합니다. 지나치게 주관이 강하고 마음이 굳어 있고 닫혀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한다면 그 사람 가까이 있고 싶어 할 것입니다.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마음을 받아 주는 것은 그 사람이 낮아지고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애써 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린 마음으로 남의 말을 경청하려 든다면 그 사람 곁에는 늘 사람들이 머물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으며 벽도 없을 것입니다. 봄이 되면 넓디넓은 들판엔 수많은 들꽃들이 각기 색깔이 다르지만 어울려서 잘들 살아가듯이 그렇게 열려 있는 마음은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들판에 피어 있는 들꽃들은 여러 모양과 향기가 달라도 서로 시기하지 않으며 싸우려고 들지 않으며 아무런 갈등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것처럼 열린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열린 마음은 강합니다. 나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 두십시오. 진정 강해지려면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려면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십시오. 저 광활한 들판이 어떤 것과도 자리다툼을 하지 않듯이 열린 마음에는 일체의 시비가 끼어 들지 않습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12.마음의 안테나

우리의 마음은 무한(無限)과 직결되어 있다. 공중을 떠다니는 전파처럼 언제나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다. 내 마음의 안테나를 세워 보자. 그리고 감사의 주파수를 맞추어 보자. 세상에 보이지 않는 감사의 마음들만 수신하면 세상이 아름답고 즐거운 마음이 절로 생긴다. 남의 잘못을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 남의 잘못을 보고 듣고 집착하면 비판하게 되고 불평하게 되니 세상이 삭막하고 슬픈 마음이 절로 생긴다.
오늘 이 자리 이 시간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내는냐"에 따라 기쁨과 슬픔이 오고 천당과 지옥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오는 죄복(罪福)의 원인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 키워 가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파헤치지 말고 덮어두자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운 일들만을 골라 얘기하자. 쑥이 대밭에 있으면 대나무처럼 곧게 자란다. 단 한번 주어진 인생! 덕과 지혜의 향기가 조금씩 우러나는 부드럽고, 고귀하고, 보람있고, 멋진,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보자!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13.마음관리

성경: 마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옛날 바닷가에 어떤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해오라기와 친하게 되어 바닷가에 나가기만 하면 날아와서 어깨나 손위에 앉곤 했습니다. 그는 그 해오라기 얘기를 아내에게 했습니다. 아내는 그 해오라기 한 마리를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잡아 올 마음을 먹고 이튿날 바닷가에 나갔더니 해오라기는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해오라기를 잡으려는 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심이란 이렇게 겉으로는 아닌 체 하면서 속으로 품고 있는 사심입니다. 병자호란 때 인질로 잡혀갔던 소원세자 굴씨라는 궁녀가 있었습니다. 한국 땅에서 살다 죽은 이 굴씨는 휘파람으로 온갖 새를 불러들이고, 불러들인 새를 손가락 끝으로 마음대로 다루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별다른 비결이라도 있는 가고 물으면, 기심 없는 천진한 경지에 들면 새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고 대견스럽지 않게 대꾸하곤 했다 합니다. 마음의 품은 것이 입으로나 표정으로나 어떠한 모양으로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오늘도 마음을 선하게 관리하여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깨끗한 마음

탄광촌을 방문한 어느 젊은 목사가 탄광을 지나게 되었다. 어둡고 더러운 갱 안의 통로에서 아름답고 하얀 꽃이 자라고 있는 것을 그는 발견했다. “어떻게 이 시커먼 탄광에서 이와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있습니까?”라고 그 목사는 광부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탄가루를 그 꽃에게 부어보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목사가 그 말대로 했는데 놀라운 것은 탄가루가 꽃잎에 닿자마자 가루들이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그 꽃은 전대로 있었다. 꽃잎이 너무나 매끄러웠기 때문에 탄가루가 꽃잎에 붙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장소를 바꾸어도 꽃이 깨끗하게 피어나듯이,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인간이 다방면에서 죄를 접촉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깨끗하게 지켜주시며, 죄악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게 보호해주신다. 죄악의 한가운데 서게 되는 것은, 마치 하얗고 아름다운 꽃이 갱 안에서 피는 것과 같다. 청결의 비결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을 볼 수 있음의 비결, 하나님을 알 수 있음의 비결은 곧 마음의 청결에서 온다. 마음의 깨끗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어떠한 환경에 처하여도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빌리 그래함

15.두 마리의 늑대

한 체로키 인디언이 노인이 손자에게 삶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그는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 것과도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분개 자기연민 죄의식 열등감 거짓 허영 잘난 체하고 자신의 거짓자아를 나타낸단다. 다른 놈은 선한 놈이지. 이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선의 고요함 겸손함 동정심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를 나타낸단다. 이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도 일어난단다.”
손자는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체로키 노인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단다.”
우리 안에는 여러가지 마음이 있지만 어떤 마음을 붙들고 사느냐에 따라 내 삶의 모습과 결과가 달라집니다. 선한 마음을 붙들고 키워나갑시다. /최병남 목사(대전중앙교회)

16.마음의 눈

“다 잃었습니다. 겉만 보고 판단한 제가 잘못입니다.”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한 여인의 하소연이다. 한 여인이 아주 멋지게 생긴 기골장대한 얼짱을 만났다. 단지 상대방의 겉이 멋있고 매너가 좋아 신앙을 과감히 무시하고 결혼했는데 알고보니 유부남이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아 자살하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외적인 면에 치중해 사람을 바라보곤 한다. 그것은 책 표지가 예쁘다고 최고의 책으로 여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더 이상 외모로 사람의 인격까지 판단해 버리는 그런 실수는 없어야겠다. 우리들은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음으로 사람의 가슴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그리스도인은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겉은 후패하나 속은 새로워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다. /김학중 목사(새안산교회)

17.마음은 삶의 운전수

성경: 잠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니라'(잠23:7)
차 두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 주려고 달리는 앰블런스였고, 또 한 대는 최신식 모델의 세단이었으나, 차선을 마구 달리면서 다른 차를 추월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위험스럽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남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을 사고를 저지르고 말 형세였습니다. 이들 두 대의 차량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에서 왔을까요? 엔진? 차체의 모양? 값의 차이? 아닙니다. 유일한 차이는 누가 운전석에 앉아 있느냐 였습니다. 하나는 사랑과 봉사의 목적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하는 술취한 운전사였습니다. 부정적이고 더럽고 악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 긍정적이고 성령 충만하여 좋은 열매가 가득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과의 삶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 삶의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1초 후의 일도 알 수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내 마음의 운전수는 창조주이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면 유한하고 지치고 무거운 짐진 괴로운 나 자신입니까? 허물과 질병, 미움과 질투의 교차로를 달리면서 생의 목적지도 모른 채 황급하게 내달리기만 하려 하는 나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영생의 지도인 성경을 펴놓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목자 예수님이신가요? 삶의 운전석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조정실의 열쇠를 전능하신 사랑의 왕 예수님께 드리고 그 보좌에 앉으시게 하십시오. 그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왕좌인 심령에 거처를 가지실 뿐 아니라 그 보좌에 앉아 결정자가 되게 하십시오. 마음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내 마음을 주님께서 운전하게 하십시다. 그리하면 영원한 생명의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한 태 완 목사 지음, 좋은땅 , "예화포커스" 중에서

18.마음을 지키라

일찌기 이태리의 문인 빠삐니는 말하기를 "오늘날 세계의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다"라고 갈파하였습니다.성경 잠 4:23절에도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여 마음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마음을 잘 관리하여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 영혼의 하얀 도화지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는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미술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두 번이나 낙방했다고 합니다. 특히 함께 학교에 다니던 유대인 학생들의 놀림은 그에게 깊은 상처와 함께 열등의식으로 자리잡았고 훗날 그는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 앞에는 누구에게나 하얀 도화지가 놓여 있습니다. 인생은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풀잎 위에 앉은 이슬처럼 청초한 삶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극적인 상처와 절망을 그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어떤 그림이 숨겨져 있습니까? 어둡고 상처받은 기억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숨겨진 상처가 쌓이고 쌓이면 날카로운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진정 아름다운 그림을 원한다면 모든 상처와 아픔을 고백하고 우리의 영혼을 순백의 하얀 도화지처럼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20.마음의 모양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남긴 상형문자에 따르면 어린이의 마음은 세모,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입니다. 그래서 어린이가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픈 이유를, 세모꼴 양심이 죄를 짓는 만큼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로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모서리가 점점 닳아져 둥그렇게 변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잘못을 범해도 아픔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어린이의 마음은 작은 일에도 아픔을 느낍니다. 또 순수하고 정직했던 젊은이가 나이가 들면서 양심의 가책을 잘 느끼지 않는 무딘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봅니다. 당신 마음의 양심은 어떤 모양인가요? 궁금합니다. /이진우 / 기윤실 집행위원

21.자기마음이라는 정원에서

사람의 마음은 정원과 같아서 지혜롭게 가꿀수도 있고 거친들판처럼 버려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가꾸든지 버려두던지 반드시 싹은 돋아 난다. 유용한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쓸모없는 잡초씨가 날아와 무성하게 자라게 되는 것이다. 정원사가 자기정원에 사는 잡초는 뽑아 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꽃과 과일나무를 심고 키우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마음이라는 정원에서 그릇되고 쓸데없고 불순한 생각들은 없애버리고 옳고 유익하며 순수한 생각들의 꽃과열매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가꾸어 나갈수 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22.누구 책임?

아침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오다 보니 경찰차 한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쌩~ 하고 지나쳐갑니다. 침신대 네거리에서 자가용이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다행히 차만 크게 부서지고 사람은 다친 곳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부서진 것은 차인데 경찰은 양쪽 차의 운전자들을 잡아서 조사하고 있네요. 교통사고가 나면 차는 죄가 없습니다. 차를 운전한 운전자에게 범칙금을 물리고 벌점을 주거나 구속을 시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차는 운전자에 의해서 움직일 뿐!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 몸의 운전자는 '마음'입니다. 만약 우리 몸에 병이 들었다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몸의 운전자인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몸을 운전하여 끌고 다니다보니 몸과 마음은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시공을 초월하여 마치 하나인 것처럼 움직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몸의 운전자일뿐! 귀한 몸을 잘 사용하려면 '마음'이 몸을 잘 다스리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마음지킴', 찰스 스탠리의 '마음전쟁'이라는 두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 최용우

23.마음이 따뜻한 사람

가끔씩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가끔씩은 들판의 흙 내음이 좋아지고 푸른 산의 향기도 좋아지는 자연의 모습을 닮은 고향이 그리워지는 향수에 젖기도 합니다. 조용히 흐르는 저 강물처럼 바라만 보아도 편하게 느껴지는 그저 마음으로 미소지어 주는 사람이 있어 삶은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도 수수한 삶의 모습 그대로가 좋고 평온한 마음으로 삶을 엮어 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좋습니다.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사람은 묵묵히 바라만 보아도 작은 미소로 받아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 우리를 또 아름답게 해 줍니다. 때로는 마음의 휴식도 없이 바쁜 생의 여정이 이어질 때라도 평화로운 마음으로 삶을 받아들일 줄도 알고 사랑 가득히 담을 줄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바쁘게만 살아가는 삶이지만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희망과 기쁨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가슴에 남는 좋은 느낌》

24.따뜻한 마음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타셨는데 짐을 올려놓고 뒤지니 돈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기사분한테 "기사양반 미안한데 돈이 없구려..."
계속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기사분은 차도 출발시키지 않고서, 화를 내면서 "돈도 없는데 왜 타요! 내리세요."
무뚝뚝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무안해서 계속 미안하다고만 하고 있었고, 마침 출근길인 손님들도 많았답니다. 손님 중에는 운전 기사처럼 화를 내며 그냥 출발하라는 사람도 있었고, 할머니더러 내리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기사분이 계속 뭐라고 하니까 한 고등학생이 만원을 꺼내 요금함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걸로 할머니 차비하시고, 또 이렇게 돈 없는 분 타시면 아까처럼 화내지 말고 남은 돈으로 그분들 차비해 주세요."
순간 버스 안은 조용해지고 기사분은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답니다. 삭막해져가는 요즘 그런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학생을 정말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조금은 남에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었으며 좋겠습니다.

25.선한 마음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바이얼린 교수였던 골드슈타인(Goldstein)은 소련으로부터 망명온 음악인이었습니다. 그의 동생도 피아노 교수였습니다. 그는 위암으로 두번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를 거절한 채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마취를 하게되면 암기해둔 악보가 망각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장기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 그는 자기 손으로 부고를 만들어 화제를 남겼습니다. 부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조화를 가져오지 마시오.
둘째 조화대신 부의금으로 해주시오.
셋째 부의금은 현금으로 해주시오.
넷째 모아진 부의금은 전액 장애자 시설을 위해 써주시오.
다섯째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은행구좌로 부의금을 송금해주시오 라는 것이었습니다. 골드슈타인은 생전에 그가 연주했던 음악보다 더 멋지게 아름답게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며 마무리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오늘도 선하게 살아가시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잠22:9)

26.마음의 평안과 기쁨

마음의 조화란 마음의 평안을 말한다. 진정한 기쁨을 말한다.
마음의 찌꺼기를 모두 버리고 비워낸 사람은 얼굴부터 밝고 화사하다. 해맑고 잔잔한 기쁨에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주변에 늘 평화로운 파장을 전한다. 화내는 마음, 짜증을 잘 내는 마음, 섭섭한 마음, 오만한 마음, 우울한 마음, 유혹에 쉽게 빠지는 마음...... 어두운 상념,
음습한 상념, 부조리한 상념, 부정직한 상념들......
이러한 일체의 부조화된 상념들과 나쁜 습관들은 모두 철저히 버리고 비워야 할 대상들이다.
- 권기헌의《가야산으로의 7일간의 초대》중에서 -
*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자기 마음이 자기 얼굴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마음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가진 사람은 표정이 다릅니다.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냄새와 빛깔이 달라지고,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지는 매력있는 사람이 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27.거울과 창문

유태인 제자 한 사람이 랍비에게 찾아와 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서로 도우며 살려고 노력하는데, 저는 왜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걸까요?"
랍비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아라. 무엇이 보이느냐?"
"엄마가 자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차 한 대가 한가롭게 달려가고 있군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벽에 걸린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라. 무엇이 보이느냐?"
"제 모습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창이나 거울 모두 유리로 만들어졌지만 유리에는 칠을 하게 되면 자신의 모습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지."
우리가 남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비우는 것입니다. 넉넉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이진우 / 목사 · 저술가 >

28.마음 그릇

사람은 종종 그릇에 비유됩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금으로 만든 그릇, 은으로 만든 그릇, 스테인레스로 만든 그릇, 종이로 만든 그릇 등등, 그러나 그릇 자체보다는 그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릇은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집니다. 당신의 마음 그릇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같은 온갖 좋지 않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은 지요? 당신의 마음 그릇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 그릇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의 마음은 쉼과 기쁨을 얻을 것이며, 당신은 하나님의 가장 아끼는 그릇으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롬9:21, 벧전3:7)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0-21)

29.눈이 가장 맑은 곤충은 파리

이 세상의 곤충 중에서 눈이 가장 맑은 곤충은 '파리'라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두 팔로 얼굴의 대부분을 다 차지하고 있는 눈을 닦습니다.
파리의 눈은 여러개의 눈이 합쳐진 겹눈입니다. 겹눈에 먼지라도 앉으면 눈앞의 먹잇감이나 자기를 죽이려는 적들의 모습이 여러개로 겹쳐보인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낱눈들을 하나하나 티 없이 깨끗하고 반들반들하게 열심히 닦아야 합니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눈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팔복 중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했습니다. 파리가 눈을 닦는 것처럼 사람들도 열심히 마음을 닦아야 하나님이 보입니다.
마음의 눈에 먼지나 오물이 묻으면 딴 것이 보여 위험해집니다. 마음을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밝고 맑고 선하게 유지시키세요. ⓒ최용우

30.마음 밭을 기경(起耕)하라

성경: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잠11:18)
당신의 마음 밭에는 어떤 새싹들이 자라고 있는지요? 악한 열매를 거둘 악한 새싹들이 자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움, 다툼, 시기, 교만, 이기심, 험담, 판단 등이 당신의 마음 밭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는 않은 지요?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 밭을 기경(起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밭에 선한 씨를 파종하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성직자 칼렙 c. 콜턴은 말했습니다. "악을 뿌리 뽑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그 자리에 덕을 심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잡초가 자랐던 억센 토양에 아무 것도 나지 않게 하는 데 드는 수고보다 훨씬 적은 수고로 밀이 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욥4:8, 9)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31.병든사회에 부는 「건강바람」
우리 사회가 요즘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하시리라.
다들 큰 일이라고 말한다.다들 위기라고 그런다.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들이 태산같다.
요즘에는 또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대유행이다.하기야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 암이 더 무서운 법이다.아프지 않아서 내 몸이 썩고 있는 걸 마지막 순간까지 모르는 것보다는 통증 때문에 내 몸이 어딘가 고장났다는 걸 알게 되는 건 하나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서 대부분의 "위기"란 "기회"이기보다는 "패배"의 전 단계이기 일쑤이다."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특별히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진지하게 새로운 자세를 다질 때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소리일 것이다.위기가 공짜로 저절로 기회가 되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우리는 우리 사회의 건강을 아예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가 하면 때맞춰 "집단 히스테리"라고 느껴질 정도로 개개인의 건강집착이 요란하다.이건 결코 건강한 현상이 아니다.어차피 병든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 못할 테니까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의 "몸"부터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언젠가부터 텔레비전에서는 뉴스시간에도 "건강 꼭지"를 빠뜨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별난 대학교수들의 아리숭한 "건강 특강"으로 시청률 확보에 바쁘다.그래서 "텔레비전부터 건강해져라"라는 소리도 들린다.
물론 건강관리는 모든 생명체의 생물학적 의무이다.동시에 "건강한 사회"를 위한 노력은 우리 모두의 사회적 의무이다. 최근의 "내 몸"에 대한 건강집착증이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한 반사작용이 아니었으면, 사회적 의무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주의의 증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는 하지만,우리가 애오라지 튼튼하기 위해서 산다는 건 아무래도 좀 웃긴다.무언가를 위해서 튼튼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마침 오늘 반가운 책을 만났다.조수철 교수(서울대의대 정신의학박사)가 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는 책인데,"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주 성실하게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정신의학자가 "성선설을 믿는다"고 쓴 문구에 구미가 당겨서 점심시간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우리의 마음을 해부하는 전문가가 "우리는 원래 착하다"고 말한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가.나는 우선 나 자신에게 희망을 갖고 싶었고 또 우울한 처지에 놓인 이 사회에도 희망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나는 이 책을 한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참으로 좋은 책
이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조수철 교수는 말한다.
"모두들 앞다투어 나쁜 짓을 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우리 속에는 착한 부분이 더 많다. 어떻게 하면 이 긍정적인 부분을 강화시킬 수 있을까"
"타인과 사회에 속하지 않은 인간이란 인간이 아니다" 아무리 건강한 개인도 병든 사회에서는 저 혼자 행복하기가 아주 어려운 건가 보다.

32. 순전한 마음

프로야구의 인기 타자인 카루(Rod Carew)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의미 깊은 고백을 하였다.
"내가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과 놀 때 나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어린것들은 내가 인기 있는 선수이거나 그날 경기에서 네 번 나가 한 번도 못 때린 실패의 날이었거나 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인 내가 자기들 앞에서 다 털어놓고 함께 아이가 되어 놀아주는 데 최대의 행복이 있는 것 같았다. 어른들끼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카루의 말은 그대로 신앙문제이다. 하나님께도 그래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는 그저 이런 인간입니다." 하고 벌거숭이가 되는 정직이 곧 신앙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인생경기장에서 우리가 1등으로 달렸거나 꼴찌로 달렸거나 에 있지 않고 카루 씨와 아이들처럼 순박한 부자관계를 원하신다.

33. 부서진 마음

영국시인 E.그레이의 시

"부서진 것을 통해"

"부서진 대지에 곡식이 자라고 무르익습니다
부서진 구름이 넓게 퍼져 신선한 비를 뿌립니다
그 곡식이 우리의 양식이 되고
살아가는 모든 날들 속에서
부서진 것들에 의해 새로워집니다
부서진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
주님은 결코 멸시하지 않으시니
뉘우침으로 부서진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주님께 귀중한 향기가 되는 것은
부서지고 회개하여
비어있는 마음입니다"

34. 마음과 건강

영국의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 최근호는 밝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사는사람들이 잿빛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보고서를 게재,눈길을 끌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조사된 건강실태의 경우, 북부 칼레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남부 피레네에 사는 주민들보다 소화계통의 암이나 간경변에 걸릴 확률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건수도햇살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 어디 환경 뿐일까. 마음이 밝지 못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35.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옛날 황해도의 어떤 사람이 금광을 운영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금광에서 캐낸 금을 가지고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나 침몰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배에 탔던 사람들은 헤엄이라도 쳐서 목숨만 거지자는 생각으로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가까운 섬으로 헤엄쳐 가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지니고 있던 금을 허리에 전부 둘러매고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무거운 금을 허리에 맨 그는 아무리 헤엄을 치려해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물 속으로 가라 앉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이 가난하여 물질에 대한 가치를 분명히 알았더라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금과 바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질이란 우리 삶의 생명보다 귀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희한해서 허리띠를 조이고 살면 한없이 조이고도 살 수 있고, 또 잘 살려면 한없이 부풀려서 살 수도 있습니다. 한 달에 7,8만원 봉급을 가
지고도 살 수 있고 70만원 가지고도 모자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7,8백만원을 가지고도 못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겸허하게 살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세상의 헛된 것들을 탐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나가야 하겠습니다.

36 밝은 마음은 만병통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심한 우울증과 함께 졸음이 오고 식욕이 감퇴하는 "새드"라는 계절병이 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로젠탈박사는 기발한
치료법을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전등을 평소의 10배 정도로 밝게 해 하루 다섯시간씩 그 불빛 아래 있으면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 밝은 불빛이 최상의 치료제인 셈이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은 항상 밝다. 침울하고 음산한 마음은 사랑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화나고 미워할 때는 마음도 어두워진다. 밝은 마음은 만병을 물리친다.

37. 건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

일본 식양의 대가 지이오 박사는 평생을 바쳐 건강과 장수를 연구한 학자로 건강의 조건들을 항목별로 점수화시킨 학자로 유명하다. 그가 젊었을 때 발표한 건강의 6대 조건과 그 항목들의 비중은 다음과 같다.
1. 피곤함을 모른다-10점
2. 잠을 잘 잔다-10점
3. 식욕이 좋다-10점
4. 화를 안 낸다-20점
5. 기억력이 좋다-20점
6. 활력이 있다-30점
인간의 식양과 건강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던 지이오 박사는 30년이 지난 후, 제7항을 추가하여 새로운 건강 조건을 발표했다. 제7항을 발견한 그는 이 진리를 이해한 것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제7항을 강조했다고 한다.
지이오 박사가 새로 발표한 `건강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피곤함을 모른다-5점
2. 잠을 잘 잔다-5점
3. 식욕이 좋다-5점
4. 화를 안 낸다-10점
5. 기억력이 좋다-10점
6. 활력이 있다-10점
7. 선하게 산다-55점
제7항을 추가하여 55점의 무게를 준 것뿐만 아니고 왜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을까? 건강에는 정직하게 선하게 살면서 느끼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요, 지금까지 이 중요한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후회스러웠기 때문이다.
6항까지는 진리요 제7항은 하나의 지혜다. 제7항은 인생의 긴 삶을 통한 경험과 해안에 의하여 발견하는 지혜이다.
최근에는 뇌가 분비하는 호르몬의 연구에서 이것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고 있다. 마음의 평화가 이루어질 때 뇌에서는 건강에 좋은 안드레날린이나 앤돌핀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선하게 정의롭게 살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38. 플라시보 효과

플라시보(僞藥)란 어떤 약 속에 특정한 유효성분이 들어 있지 않은데도 마치 그것이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환자에게 투여하는 약을 말한다.
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입원 환자들이 간호사에게 더러 수면제를 요구한다. 이럴 때 어쩔 수 없이 수면제와 모양이 닮은 소화제를 수면제라 속이고 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화제를 먹은 환자는 곧 편안하게 잠든다는 것이다.
열이 나는 환자에게 증류수를 해열제라고 속여 의사가 직접 주사하면 많은 경우 열이 내린다고 한다. 강한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고 병도 치료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어느 여인은 살충제를 먹고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그녀의 위액을 조사했을 때 살충제는 없었고 독이 없는 다른 액체를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가 마신 액체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살충제를 먹은 줄 알았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죽은 것이다.
담석증 수술을 받아야 할 어느 마음 약한 여인은 자기의 배를 칼로 짼다는 사실을 심히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수술 준비를 위하여 수술대 위에 눕혀 놓고 차가운 알코올로 이 여인의 배를 소독했을 때, 수술칼로 째는 것으로 착각하고 쇼크사했다는 것이 임상보고 되었다.

39. 마음의 바탕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집에서 일하던 두 종이 하루는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큰 소리가 들리기에 톨스토이가 나가서 보니까, 종 둘이서 서로에게 별명을 붙인 것이 감정을 상하게 하였던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좀 홀쪽하게 생긴 종이 뚱뚱하게 생긴 종에게 곰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곧 뚱뚱하게 생긴 종이 홀쪽하게 생긴 종에게 원숭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곰, 원숭이하면서 서로 티격태격 언쟁을 합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주인이 이런 말을 하면서 서로의 불화를 중재시켜 갔습니다. 그 홀쪽하게 생긴 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가 저 사람을 곰이라 불렀지. 너는 저 사람이 곰이기 때문에 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니다. 네 마음 속에 곰과 같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을 곰이라 부른 것이다.”그리고 그 곰이란 별명을 가진 뚱뚱한 종에게는 “너가 저 사람을 원숭이라고 불렀지. 저 사람이 원숭이이기 때문에 원숭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니라 네 마음 속에 원숭이와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네겐 원숭이처럼 보여진 게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무엇인가 던져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믿음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 하나님의 세계로 더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선한 사람이거나 악한 사람이거나 거짓된 사람이거나 간에 바로 이들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생각을 더 깊이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사람을 보느냐에 따라서 헐뜯을 수도 있고 그를 격려할 수도 있고, 그를 일깨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40. 보석과 보배

중국 송나라 때의 일. 희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던 어떤 사람이 당시 높은 벼슬에 있던 자한에게 바치려고 감정인을 찾아갔다.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진귀한 보석"이라고 감정인은 말했다. 그는 자한에게 가서 보물을 보여주며 감정인의 말을 전했다. 청렴하고 고결한 인품을 지녔던 자한은 이를 거부하며 말했다. "당신은 보석을 보배로 여기고 있으나 나는 탐내지 않는 마음을 보배로 여기고 있습니다. 내가 이 보석을 받으면 우리 둘 다 보배를 잃어버리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41. 스트레스와 우울증

미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필립 골드박사는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스트레스와우울증이 지속되면 이때 분비되는 각종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액 속에 오래 머물러 각종 질병은 물론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고 워싱턴 발 연합기사가 19일 보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중에 오래 머물러 있을 경우 심하면 식욕저하 면역체계무력화 세포재생능력중지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뼈가 쉽게 부러지며 암 유발이 된다는 것.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신다(이사야61:1).

42. 크리스챤의 미소

중국 한나라에 유백천이란 분은 여덟명의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중에 부인이 불치의 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사별하고야 말았습니다. 부인과 사별할 당시 막내가 두살박이였는데 어린것들을 키워갈 앞날이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본업이 장사하는 일이었는데 아내의 일까지 겸하여 할려고 하니 육체의 고달픔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하여 자식들 중 똑똑한 아이 한둘만 자기가 키우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 남의 집에다가 양자로 주기로 하고 어떤 자식을 자기가 기를까 하다가 제일 잘 웃는 자식을 택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기가 막힌 사연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웃기를 제일 잘하는 자식은 몇번째 자식이었는가 하면 제일 큰 자식으로 그는 딸이었고 그 당시 나이가 16살이었다고 합니다. 항상 천사같은 미소를 띄우면서 너그러운 마음을 보이는 딸이었는지라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 했었습니다.
당시 태현 황제의 아들인 소황세자가 사냥을 나왔다가 이 소녀를 만나 미소짓는 미모에 반하여 사랑하게 되었고, 부인으로 삼으니 그 미소로 인하여 형제들이 흩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페킨스'라는 분의 말을 빌리면 사람을 감동시킬수 있는 미소를 지을수 있는 마음이 되려면 적어도 세 가지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첫째는 마음에 불안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 즉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상대방에 대하여 무시하거나 천대한 생각이 아닌 존경과 사랑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하며, 셋째는 자기분야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미소가 우러 나올수 있다고 했습니다.
천사같이 미소짓는 인사 한 번이 이 세상을 부드럽게 만들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43. 절대 공간

D.L 무디가 설교중에 성도들에게 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컵 안에는 공기가 가득차 있습니다. 이 컵안의 공기를 어떻게 하면 다 뽑아 낼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뚜껑을 꼭 다고 공기펌프로 뽑아 내지요"등 여러가지 제안들을 이야기 했다.
무디는 컵이 진공상태가 되면 깨어져 버린다는 것 등을 알려준 다음 주전자에 든 물을 컵에 가득 채우며 "자 보십시요. 컵 안의 공기는 조금도 없습니다. 이와같이 헛되고 공허한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야만 가능하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에는 절대 공간이 있는데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며 오직 절대자이신 하나님으로만 채워진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비워져 있지 않습니까?

44. 마음이라는 이름

헬라어 젤로스는 성경에서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하나는 `질투'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여림'이란 뜻이다. 이 말을 같은 어근으로 해서 나온 영어가 `jealousy(질투)'와 `zealousness(열심)'이다.
질투는 인간이 세상에 탄생되면서부터 갖게 된 인간성이다. 질투는 천사적인 사랑과 열심으로 발전되기도 하고 악마적인 미움과 파괴로 발전되기도 한다. 질투가 갖는 두 개의 얼굴은 천사와 악마의 얼굴이다.
이기적인 질투가 얼마나 악마적인지를 성경은 수없이 가르쳐 준다. 질투는 가인을 살인자로 만들고 다윗을 배신자로 만든다. 인간들의 질투는 충신 모르드개를 교수대로 내몰고 다니엘을 사자굴로 떨어뜨린다. 성경에 나타난 질투는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임금들을 내려앉게 하며 예언자들을 죽게 한다. 헤롯은 질투 때문에 영아대학살을 결행하고 예수는 질투의 제물로 십자가를 지게 된다.

45. 비단 주머니속의 열 냥

의술은 뛰어나지만 인색하기로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자기 아이를 고쳐준 것에 감사해 한 여인이 예쁜 비단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하찮은 것입니다만, 제가 손수 만들었습니다. 보잘것 없지만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자 의원은 비단 주머니를 도로 내밀며 말했다.
"나는 사례를 물건으로 받지 않습니다. 현금을 주십시오."
무안해진 부인은 주머니를 다시 집으며 물었다.
"그럼 치료비는 얼마인지요?"
"닷냥이요."
그 말을 들은 부인은 잠자코 그 비단 주머니속에서 열 냥짜리 돈을 꺼내 의원에게 준 다음 거스름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가버렸다.

46. 신종 악성바이러스

현대인의 심성을 파괴하는 신종 「악성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격발성 자기훼손이나 불특정다수를 겨냥하는 충동범죄가 그것이다.
얼마 전 택시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던 30대 후반의 남자가 갑자기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뒤 차문을 열고 한강 아래로 투신했다.
운전 기사에 따르면 술 기운이 돌던 이 사람은 전혀 자살할 것같지 않은인상이었는데 갑자기 변했다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언25:28)

47. 격발성파괴증후군

28일 호주 태즈머이니아섬 포트아서의 유적지에서 29세의 청년이상점과 길거리에 있던 행인들에게 자동소총을 난사,33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은 단독범에 의해 저질러진 세계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이었다.
하루 전인 27일 서울.
정체불명의 범인이 서초구 방배동 앞길에서 사제폭발물을 던져 길가던행인 2명이 부상했다.
불특정다수를 겨냥하는 광기어린 `격발성파괴증후군'으로 공동체가 위협받고 있다.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까지 산성화되어 가는 것일까.

48. 성 브리지드 샘

킬브로니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혜와 만병통치의 샘이라 부르는 성 브리지드 샘이 있었다. 성 브로나치 기념축제 전날 밤에 이 샘물로 얼굴을 씻으면 젊고 아름다워진다는 전설 때문에 해마다 축제일이 되면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어느해 기념축제 전날밤이었다. 이 마릉 로리성에서는 성주 로리 맥기니스의 출정승리에 축하하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성으로 모였다. 그 중에는 맥기니스를 남몰래 짝사랑해온 소녀 블라마도 끼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보이지 않았던 블라마는 2년 전 축제 전날 밤에 성스런 샘물에 눈을 씻은 뒤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두 눈을 뜬 이후 그녀는 전보다 훨씬 자주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곤 하였다. 못생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실망했을뿐 아니라 이제까지 맥기니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이유를 못생긴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블라마는 다시 한번 샘물에게 소원을 빌기로 하였다. 블라마가 샘가에 무릎을 끓고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을 더 아름답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조심스레 샘물에 얼굴을 씻으려 할 때였다. 갑자기 주위가 밝은 빛으로 가득차더니 샘물 위로 희미한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이란 눈에서 빛나는 영혼이다. 늘 아름다운 일만을 생각하고, 모든 풍경이나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그것들을 좋아하도록 하라. 질투, 시샘, 복수 같은 어리석은 감정들은 못생긴 표정을 낳을 뿐이다.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너의 마음에 따라 몸을 가꾸어 좋은 자질을 갖도록 하라.'
블라마는 샘물에 얼굴을 씻시 않았다. 그 글을 마음에 새긴 그녀의 얼굴은 이미 환하게 빛났으며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미 아름다움이 마음속으로 들어온 블라마는 놀랍도록 아름답게 변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청혼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향해져 있었다. 얼마 후 그녀는 젊은 성주 로리 맥기니스의 아내가 되었다.

49. 사람의 마음바탕에 따라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자기 집에서 일하던 두 하인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 톨스토이가 나가 보니까, 서로에게 붙인 별명이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던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홀쪽한 하인이 뚱뚱한 하인에게 곰이라는 별명을 붙이자 뚱뚱한 하인은 홀쪽한 하인에게 원숭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곰, 원숭이 하면서 언쟁하는 모습을 바라본 주인이 서로 화해시키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저 사람을 곰이라 불렀지? 너는 저 사람이 곰이기 때문에 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니고 네 마음속에 곰과 같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을 곰이라고 부른 것이야. 마찬가지로 너도 원숭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네 마음속에 원숭이와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네겐 원숭이처럼 보여진 것이다."
저수지를 보더라도, 강태공은 낚시질할 것을 생각하고, 수영선수는 수영할 것을, 보트를 잘타는 사람은 보트 탈 것을, 농부는 논에 물댈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50. 따뜻한 마음씨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어느 가구점 진열장 밖에서 다리를 저는 할머니 한 분이 상점 물건을 구경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젊은 점원이 뛰어나가 "할머니, 밖에 서 계시지 말고 비도 피하실 겸 들어오셔서 보세요." 했습니다.
"나는 물건을 살 사람이 아닌데."라고 하여도 점원은 웃으며 할머니를 안으로 모셔와 자기 자리에 앉아 기다리게 했습니다.
며칠 후였습니다. 이 가구상에 놀랄 만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습니다.
그것은 강철왕 카네기로부터의 친필 편지였습니다.
"일전에 비오는 날, 나의 어머니에게 베푸신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의 요청으로 지금 짓고 있는 저택과 플랜트 회사에서 쓸 가구 일체를 당신의 상점으로부터 구입하고 싶습니다."
이 일이 과연 행운이었을까요? 아니면 따뜻한 마음씨에 대한 하늘의 축복이었을까요?

51.마음먹기에 따라

한 평생을 두고 인간과 그 잠재능력에 대하여 연구해 온 위대한 심리학자인 알프렛 아들러는 말하길 "인간에 있어 가장 놀랄 만한 특성의 하나는 마이너스 (-)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델마 톰슨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전쟁 중 남편이 캘리포니아의 한 육군 교련소에 배속되어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사정은 그녀의 기대와는 딴판이었습니다. 모래 바람과, 더위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멕시코 인과 인디언과 함께 사는 것이 정말로 고역이었습니다. 그녀는 양친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런 곳에서 사느니 감옥이 나을 것이라는 푸념과 함께 곧 돌아가야겠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친의 답장은 단 두 줄뿐이었습니다.
"두 사나이가 감옥의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한사람은 진흙탕을,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이 두 마디 말이 그녀에게 잊혀지지 않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낀 그녀는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즉 자신의 감옥의 창에서 별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낯설었던 인디안들은 친구가 되었고, 새로운 세계에 자극되고 감동되어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하였을까?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그녀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52. 양고기 국물과 찬밥 한덩이

중산군이라는 중국의 한 왕이 자신이 따르는 사대부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던 날이었다. 사대부들이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잔치상이 차려져 나왔다. 하인이 손님 수대로 차례차례 음식을 나누어 주고 마지막으로 양고기 국물을 내주었다. 그런데 국물이 모자라 사마자기라는 사람에게만 국물이 돌아가지 못했다. 당황한 하인이 얼른 중산군의 눈치를 살폈으나 중산군은 물러가도 좋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사마자기는 다른 사람들이 국물을 떠 먹으며 즐기는 동안 몹시 불쾌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이 일로 사마자기는 중산군을 버리고 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중산군은 몇 사람의 심복을 데리고 피신하였는데 웬 낯선 사내 두 명이 창을 들고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중산군이 그들을 불러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이건데 나를 보호해 주는가?"
그러나 사내들은 무릎을 굽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예, 중산군께선 저희 부친이 배고픔으로 쓰러졌을 때 우연히 지나가시다가 찬밥 한덩이를 주신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부친은 그 찬밥 한 덩이로 목숨을 구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 저희에게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만약 왕께 무슨 일이 생기면 죽음으로 보답하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왕을 따르는 것이옵니다."
"허허, 다른 사람에게 무엇를 베푼다는 것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로구나. 상대방이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중요하며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사는 것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었구나. 그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내가 한 그릇의 양고기 국물로 나라를 잃고 한 덩이의 찬밥으로 목숨을 구하였구나."
그 순간 사마자기의 부대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내의 보호를 받으며 중산군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53.문 두드리는 예수

홀만 헌트(Holman Hunt)라는 사람이 그린 `문 두드리는 예수님'이라는 그림을 여러분은 아마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이 안으로부터 굳게, 조그만 빈틈도 없이 단단히 잠근 어떤 집 문 앞에 예수님께서 바싹 다가서서 계십니다. 마치 그 모습은 안의 동정이라도 살피기 위해서 온 신경을 거기에 기울이고 계신 것같이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렇게 굳게 닫혀진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것도 조용히 두드리십니다. 그런데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끈기있게 문을 열 것을 기다리시며 두드리십니다. 문을 자세히 보니까 밖에는 손잡이도 없습니다. 문을 열고 닫는 것은 문 안에 있는 사람에게 달렸습니다.

54.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고명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온 한 방문자는 스승앞에 자기의 고민거리를 한참 이야기하고는 다시 자신의 장래 계획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스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방문다의 찻잔에 차만 계속하여 따랐다. 차는 찻잔에 흘러넘쳐 앉은 자리까지 홍건히 젖었다. 스스로의 아야기에 도취되어 떠들어대던 방문자는 놀라 스승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잔이 넘쳐서 흐르는데 어찌하여 자꾸만 따르시는지요?" 그제서야 스승은 입을 열였다. "이 찻잔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은 너무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마음의 잔을 비우지 않으면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르쳐 드린다 해도 다 넘쳐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은헤와 축복을 누리고자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장래의 길을 갈 때 넘어지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교만과 질투로 빈틈이 없다. 돈이 많아서 예수를 못믿는 사람들이 많고, 사업이 잘되어 주일을 못지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지식 때문에 설교를 제대로 듣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예수 앞에 나올 때는 없는 것보다도 있는 것이 죄가 되고 참된 축복의 거침돌이 되는 일이 많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

55.네 모든 마음으로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라는 선교 기관은 글이 없는 곳까지 들어가 말을 만들어 주면서 성경을 번역하는 사업을 한다. 남미의 어느 부족에게 한 선교사가 들어가 말을 만들고 성경을 번역하는데 `순종'이라는 단어가 막혔다. 그러던 어느날 그 마을의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그 일을 꼭 해야 한다고 하면서 "네 모든 마음으로"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심부름 가는 아들에게 "네 마음을 나누지 말라"라고 조심시켰다. 이 선교사는 `순종'이라는 말을 "마음을 나누지 않고 모든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56. 참된 사랑은 마음으로 한다

팔레스타인에는 두 바다가 있다.
한 바다는 맑고 물고기가 산다.
다른 한 바다는 물도 마실 수 없다.
갈리리 바다는 요르단 강물을 받지만 언제까지나 그 물을 가두어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방울이라고 흘러 둘어오면 그만큼 또 흘러 내려 보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주고 받는 정도가 꼭 같다.
그러나 다른 쪽 바다는 보다 빈틈이 없고 들어오는 것을 빠짐없이 저장한다.
이 바다는 아무리 많이 받아도 넘치지 않는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는 물을 주면서도 살아있다.
그러나 다른쪽 바다는 아무것도 주는 것이 없이 죽어있다.
그래서 이름을 사해라고 한다.
그것은 세상에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과 비슷하리라.

57.온전한 치유

한 전도자가 어떤 도시에서 두 주간의 집회를 인도했다. 그때 그는 한 친구로부터 입원 중에 있는 어떤 여인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환자는 암으로 죽어가는 여인이었다. 첫번째 방문 때, 환자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그녀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막으시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여인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해 기도해드릴 수가 없군요.” 그녀는 다소 경멸하듯이 반응하였다. 다시 부탁을 받아 방문했을 때도 그 전도자는 똑같은 말을 했다. 그 여인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주의 음성이 또다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당신은 교회 목사님과 잘 지내십니까?” 이 질문은 그녀 안에 억눌려 있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우리 목사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세요. 나는 그분을 증오해요. 당신은 그분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몰라요. 당신은 나에게 우리 목사님을 용서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그 여인은 거의 15년 동안이나 마음 속에 증오심을 간직하여 왔는데, 그 동안 그 감정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종종 가족과 친구들의 권면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여인은 병이 악화되어서 또다시 병원을 찾게 될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생명이 위태로웠다. 그녀는 전도자의 손을 꼬옥 잡고 속삭였다. “우리 목사님을 불러주세요” 그 목사가 왔고,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그곳에는 재회의 기쁨이 있었다. 또한 화해와 용서를 통한 치유가 있었다. 당신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뜻을 알고 있는가?

58.마음의 눈

어느 날 늙은 꿩의 새끼 한 마리가 사라져 버렸다. 늙은 꿩은 틀림없이 다른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믿었다. 그는 제일 먼저 이웃에 사는 흰 토끼를 의심하였다. 틀림없어! 그가 왜 우리와 가깝게 살고 있었겠어? 기회를 엿보다 내 새끼를 잡아먹자는 속셈이었던 거야. 속담에, `토끼는 울타리 앞의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고 했지 울타리 앞의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고기를 먹는다는 말 아니겠어? 이렇게 의심한 궝은 안경을 끼고 희 토끼를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축 늘어진 큰 귀를 봐. 틀림 없는 강도의 특징이야! 그 빨간 눈은 악마의 것이 아닌가? 짧은 꼬리는 꼭 이리 새기를 훔쳐먹다 이리에게 물어뜯긴 것 같군...보면 볼수록 흰 토끼는 흉물스럽게 보였다. 궝은 틀림 없이 새끼가 흰 토끼에게 잡아먹혔다고 결론지었다. 꿩은 저도 모르게 목놓아 울었다. "아이고, 불쌍한 내 자식, 가엾게도 토끼 밥이 되고 말다니!"
이튿날 새끼 꿩이 돌아왔다. 밖에서 놀다 길을 잃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늙은 꿩은 속으로 생각했다. 괜히 흰 토끼를 의심했구나. 그는 강도들에게 능욕당한 동물이야. 내가 어떻게 그를 의심할 수가 있어? 그가 나의 이웃이 된 것은 이리떼가 두려워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였어. 속담에, `토끼는 울타리 앞의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고 했지. 울타리 앞의 풀도 그냥 둘 정도니 얼마나 선량한 짐승이야! 늙은 궝은 또다시 안경을 끼고 흰 토끼를 자세히 분석했다. 귀를 좀봐. 강도를 방지하느라 저렇게 큰 거야. 저 빨간 눈을 좀 봐. 이리의 시기를 받고 너무 울어서 그렇게 된 걸 거야. 고리가 짧은 건 틀림없이 늙은 범에게 물어뜯겼기 때문이고!...흰 토끼가 어떻게 나의 보배둥이를 먹을 수 있겠어?

59.마음의 상처

나의 아들 앤디가 열네 살쯤 되었을 때 나는 그 아이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처음에는 매우 많은 시간동안 귀로 피아노를 치는 일에 몰두했다. 귀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멜로디를 가지고 수없이 많은 화음을 쳐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모두 똑같이 들렸다. 어느 날 이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는 거실을 향해 “앤디. 네가 아는 것이 그게다냐.”라고 말했다. 음악에 무지했던 나에게 그것은 수시간 동안 똑같은 곡을 반복하는 것으로 들렸던 것이다. 그는 즉시 연주를 그쳤다. 그리고 다시는 내가 있을 때에는 연주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앤디가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지만 결코 거실에서 그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앤디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그와 대화하게 되었는데 그는 열네 살 때 어느 날 오후 거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내게 말했고. 그날 이후 나에 대해 화가 나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고 나는 진지하게 말한 것도 전혀 아니었는데 십대의 앤디에게 내가 전달한 것은 “나는 너나 너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무감각하여 자라나는 젊은 예술가는 그의 작품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느낀다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짓밟아 버렸고 그는 나에게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상처는 거부받는 느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생각지도 못했던 나와 내 아들과의 사이에 이 사건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에 어떻게 거부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준다.

60.진정한 평안

메리 슬레서라는 미혼의 젊은 여자는 19세기 말경 스코틀랜드를 떠나 질병과 형용하기 어려운 위험이 들끓던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으로 갔다.그러나 메리는 불굴의 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더 견딜 수 없도록 쇠약해지거나 그 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때에도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었다. 특별히 지치고 힘든 일과를 보냈던 어느 날 밤을 회상하며 그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요즈음 나는 내 잠자리가 어떻든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만약 나뭇가지 몇 개를 얼기설기 얹어서 침대를 삼고 더러운 옥수수 껍질로 이불을 하고서 쥐들과 벌레들이 우굴거리는 방에 세명의 여자와 난 지 사흘된 아기가 같이 누웠고, 밖에서는 양과 염소, 그리고 소들이 떼지어 모여있는 그러한 곳에서 잠을 잘 때, 그날밤 내가 잠을 설쳤다면 여러분들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는 아주 고요하고 편안한 밤을 지냈다.” 이러한 메리의 고백은 우리가 제기하고 있는 내면 세계의 질서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성경적인 용어로 '마음'이라 하든지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우리 안에 질서정연하고 고요한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곳으로부터 외부의 소란을 극복하고, 그 소란에 의해 위축되지 않는 힘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61.즐거움과 창조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전등및 축음기를 발명하는 때, 며칠이나 자지않고 계속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자지 않고서 일을계속할 수 있었던 듯 합니다. 즐겁게 일을 하면, 혈관이 팽창하여 피로를회복하므로 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승부내기를 하는 사람들이 재미가 있으면자지 않고서 노는 것도 이 이유에 의합니다.
분주한 생활에도, 발명이나 발견의 재미가 계속된다면, 피로는 적습니다.
지는 싸움에 피로는 많습니다. 심장은 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네 부분중, 하나의 부분이 언제나 교대로 쉬어 갑니다. 피로의 문제는 일을 즐겁게하느냐의 여부에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전집 22권 323

62.영적 상처

스탠리 존스는 영적인 상처를 가져오는 아홉가지 요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1. 자기집착입니다.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만 아니까 정신적으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2. 권태감입니다.
3. 염려감이며
4. 공포심입니다.
5. 열등감입니다.
6. 증오심
7. 우유부단한 마음
8. 과민증입니다.
9. 죄책감입니다. 죄책감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합니다.

63. 마음이 눌릴 때

시56:1-2, 64:1, 18:2, 77:3, 94:22, 18:10, 17:8, 91,4, 21:4, 63:11,40:11, 61:1-8,

64. 거꾸로 가는 시계

이른 새벽에 인근 공원이나 약수터나 운동장에 나가보면 직립(直立)해서 걷는 사람 틈에 역립(逆立)해서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걷는 사람 틈에 뒷걸음질로 걷은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왜 사람은 역립해 걸어선 안 되며 뒷걸음질해서 안 될 게 뭐냐 하는 이 세상의 상식에 대한 반역의 성토장만 같다. 그러하듯이 시계바늘도 오른쪽으로만 돌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시계가 생긴 이래 수백 년 동안 오른쪽으로만 돌아 클라크와즈(clockwise:시계방향)란 말까지 생겨나기까지 했는데, 왼쪽으로 돌린대서 무슨 큰 이변이라도 생긴다는 말인가.
아프리카 대륙의 끝 케이프타운은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 중앙공원에 구경갔을 때 훌륭하게 만들어놓은 석조(石造)태양시계를 볼 수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놀란 것은 시계의 문자판에 3시가 왼쪽에 있고 9시가 오른쪽에 있었다. 곧 시계바늘이 왼쪽으로 돌게 돼 있는 거꾸로 가는 시계였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이 세상 최초의 시계는 해시계였을 것이다. 적도의 북쪽에 위치한 북반구에서는 해가 동쪽에서 떠 남쪽으로 돌기에 가운데 꽂아 놓은 해시계의 막대그늘이 오른쪽으로 돌지만, 남반구에서는 북쪽으로 돌기에 그늘이 왼쪽으로 돈다고 한다. 나팔꽃 줄기도 북반구에서는 오른쪽으로 감아 도는데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감아 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른쪽으로 도는 시계는 이 지구의 절반에 불과한 북반구문명의 소산일 뿐이다. 만약 거꾸로 도는 시계를 만들어 남반구에 팔아먹는다면 일확천금 할 것이 아닌가.
역시계(逆時計)는 비단 남반구에 들어맞는 논리만은 아니다. 모든 육상경기, 빙상경기, 사이클, 모터 경기가 왼쪽으로 돌고 야구 베이스도 왼쪽으로 돌게 돼 있다. 사람이 맨 첫발을 디딜 때 본능적으로 왼발부터 나오며, 말이나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탈 때도 왼쪽에서 탄다.
자동차 운전석이 왼쪽인 것도 인간의 좌향(左向)능동성과 무관하지가 않다. 바구니를 짜거나 뜨개질을 할 때도 왼쪽으로 얽고 짜나가며 맷돌을 갈때도 왼쪽으로 돌린다.
고스톱의 화투놀이도 짝을 왼쪽으로 돌린다. 시계도 왼팔에 차고 반지도 왼손가락에 끼지 않는가. 인간의 활력원인 심장이 왼쪽에 붙어 있어서인지 좌향이 우향보다 능동적이다. 시계만이 오른쪽으로 도는 것은 그래서 불합리하다 할 수가 있다.
또한 역시계의 심리적 효과도 대단하다. 늙은이에게는 젊음으로 역행하고 싶은 잠재의식을 충족시켜주고, 젊은이들에게는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체제에 대한 반항과 반골심리를 충족시켜준다. 여성에게는 남성우위 사회에 대한 반감을, 억눌린 사람은 억누르는 사람에 대한 배리감을 이 역시계가 대행, 위안시켜준다. 어린이들에게는 마냥 요정의 나라 시계만 같아 신나게 해주고.
얼마 전 누군가가 거꾸로 가는 시계를 발명해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올림픽에 밀어닥칠 남반구 주민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겠고, 더우기 이 역시계의 논리와 심리학이 잘 먹혀 든다면 관광상품으로도 각광받을 받을 만하다.
다만 역행은 시계 정도에서 그쳐야지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도의나 양식 같은 것까지 역행해서는 물론 안될 일이지만.

65. 거짓말의 다섯유형

거짓말에는 자동차 운전면허처럼 제 1종 거짓말에서 제 5종 거짓말까지 있다. 제 1종 거짓말은 도덕적인 교육용 거짓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서당아이 셋이 길 가다가 돈 한 푼을 주웠다.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일이라 거짓말 제일 잘한 아이가 갖기로 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바람이 세어 지리산이 쓰러진다고 지게 작대기 들고 받치러 갔단다.' 이어 `우리 어머니는 날이 가문다고 열 마지기 논에 오줌누러 갔단다'고 응수했다. 나머지 아이의 거짓말은 이렇다. `우리 누나는 장마가 길다고 바늘실 갖고 찢어진 하늘을 꿰매러 갔단다.' 판결을 낼 수 없자 서당훈장을 찾아가 심판해 달라고 했다. `거짓말 내기를 하다니 이런 못된 버릇이 있나. 이 훈장은 평생 거짓말 한 적이란 단 한 번도 없단다'고 하자 엎드려 있던 세 아이가 일제히 고개를 들고 `야 훈장님이 이겼다. 한 푼은 훈장님 차지다'고 했다.
평생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그 큰 거짓말이 제 1종 거짓말인 것이다.
소년시절의 조지 워싱턴이 벚나무를 꺾고서 그것을 아버지에게 정직하게 고하고 용서를 빌었다는 이야기는 미국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를 두고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일침을 놓고 있다. `그래서 미국사람은 글러먹었다. 미국에 예술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 이같은 도덕적인 거짓말 때문이다'고.
제 2종 거짓말은 남을 즐겁게 해주고 근심 걱정을 덜어주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이를테면 암을 숨겨주는 거짓말은 제 2종에 속한다.
남을 즐겁게 해주되 그로써 자신의 이득을 노리는 저의가 내포된것은 제 3종 거짓말이다. 윗사람이나 권세있는 사람에게 하는 속에 없는 아부말이 모두 이 3종에 속한다.
무지개빛 공약으로 유권자를 잘속이는 정치가들은 거의가 제 3종 기능의 보유자들이다. `우리 집사람은 미인이다'는 거짓말도 그 말이 집사람에게 전달되어 저녁밥상에 찬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 제 3종 거짓말이다.
사실을 빙자한 거짓말, 곧 통계적(統計的) 거짓말이 제 4종 거짓말이다. 이 제 4종 거짓말이 얼마나 가공한가에 대해 통계학자 다렐허프는 이런 실례를 들고 있다.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 동안 미해군의 사망률은 1천 명당 9명이었다. 한데 같은 기간 뉴욕에서 사고로 죽은 사망률은 1천 명당 16명이었다. 미국의 모병관(募兵官)들은 이 통계를 들어 해군에 입대하는 편이 한결 안전하다고 선전했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을 해치는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 제 5종 거짓말로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또 법률적으로 절대악이 되는 거짓말이다.
미국사람들은 1 주일에 평균 13 번씩의 거짓말을 하고 산다는 최근 조사통계 보도가 있었다. 예의, 도덕과 인정이 발달하고 높은 사람에게 약한 우리 나라 사람들을 조사해 본다면 아마도 제곱의 거짓말을 하고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66.생각의 중요성
옛날 바닷가에 어떤 사람이 살았다. 그는 해오라기와 친하게 되어 그가 바닷가에 나가기만 하면 날아와서 어깨나 손위에 앉곤 했다. 그는 그 해오라기 얘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내는 그 해오라기 한 마리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잡아올 마음을 먹고 이튿날 바닷가에 나갔더니 해오라기는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다. 이것은 그에게 해오라기를 잡으려는 기심(機心)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심이란 이렇게 겉으로는 아닌 체하면서 속으로 품고있는 사심(邪心)이다.
예로부터 조류(鳥類)는 인간의 기심에 예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江南)의 아파트촌인 압구정동(狎鷗亭洞)은 세조(世祖) 쿠데타의 공신(功臣)이요 벼슬밭에서 영화를 누렸던 권신(權臣) 한명회(韓明澮)의 정자 이름에서 비롯된 동명이다. 그는 벼슬에 욕심없이 강촌(江村)에 은퇴해 산다는 허울을 위해 이 강변에다 갈매기와 친한다(狎鷗)는 뜻으로 압구정을 짓고 아호(雅乎)도 기심을 잃은 노인이라 하여 `망기노(忘機老)'라고 자칭하였다. 하지만 기심에 예민한 갈매기는 이 정자를 피해 날았던 것 같으며, 뜻있는 선비들은 친할 `압(狎)'이 아니라 짓눌러버릴 `압(押)'구정으로 불러 내렸던 것이다.
병자호란 때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昭顯世子)따라 우리 나라에 온 굴씨(屈氏)라는 궁녀(宮女)가 있었다. 한국 땅에서 살다 죽은 이 굴씨는 휘파람으로 온갖 새를 불러들이고, 불러들인 새를 손가락 끝으로 마음대로 다루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이 별다른 비결이라도 있는가고 물으면, 기심없는 천진(天眞)한 경지에 들면 새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고 대견스럽지 않게 대꾸하곤 했다.
한말, 헌종(憲宗)-철종(哲宗)-고종(高宗) 3대를 거쳐 어전에서 판소리를 읊었던 이날치(李捺致)라는 명창(名唱)이 있었다. 이 명창의 새 타령을 들은 일이 있다는 시인(詩人) 임규(林圭)는 이렇게 적어 남기고 있다. `어릴 적 고향인 익산(益山) 근처 심곡사(深谷寺)에서 이날치의 새 타령을 들은 일이 있는데 그가 새 소리를 낼 때마다 뻐꾹새인지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산새들이 날아 들어 그를 에워싼 것을 보고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었다'고-.
신앙이나 예술이나 수양에서 기심을 잃은 신묘한 경지에 이르면 새와 사람 사이에 격의가 증발해 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새가 사람을 보고 피하는 것은 권욕(權慾)이며 이욕(利慾), 명욕(名慾), 음욕(淫慾)..., 위선, 시기, 모략, 음모...등 온갖 잡심이 범벅이된 것을 꿰뚫어 본 때문일까-. 그렇다면 도시에서 새가 사라지는 현상은 비단 공해만도 아닌 범람하는 기심 때문이었을까-

67.사랑 병

다정(多情)도 병이라는데 하물며 지나친 너무 사랑이 병이 안 될 수 없다. 고려의 칠현(七賢)으로 손꼽히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남주락적(南州樂籍)에 군수로 와 있던 사나이가 임기가 끝나 그곳에서 사랑에 빠진 기첩(妓妾)과 이별하게 되었다. 너무 사랑했던 터라 기첩은 오로지 임만을 사랑할 수 있게끔 아무 누구도 자신을 유혹할 수 없게 해놓고 떠나라고 안달을 했다. 그리고 촛불을 건네주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비롯하여 유방이며 얼굴이며 온몸을 어느 한군데 남기지 않고 화상을 입힐 것을 애원했고 또 그렇게 상처를 입혔다. '너무 사랑'이 가공할 피학증(被虐症)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가극(歌劇)으로도 곧잘 상연되고 있은 12세기의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너무 사랑도 병이 되고 있다.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것만으로 사랑을 충족 못 해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를 거세시켜가면서까지 사랑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은 그 후 수도승과 수도녀가 되어 사후 나란히 매장되고 있다.
근년에 인상적이던 너무 사랑병으로 '인형의 집'의 주연으로 유명해진 여배우 리브 아르망과 명감독 잉그마 버그만의 격렬한 사랑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위치한 연중 겨울인 불모의 무인도에 단 둘이만을 위한 집을 짓고 도피,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 가면서까지 사랑을 했다.
"외계로부터 문을 닫고 친구도 친척도, 그리고 과거며 추억이며 두 사람의 관계를 위협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결별, 행복과 소유욕을 충족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각기 "고독을 슈트케이스에 담아 들고....." 이별의 길을 떠나가고 있다. 너무 사랑이 중증이 되면 별의별 변태로 다 나타난다.
변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너무 사랑(too much loving)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성이 적지않다. 지금 미국에서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이라는 이 증후군을 다룬 책이 40주간 베스트 셀러로 2백만 부를 돌파하고 있다.
알콜중독증이나 마약중독증 환자수 이상으로 많은 여인이 이 너무 사랑중독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웬만한 도시에는 '너무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임' 이 없는 도시가 없을 정도라 한다.
이 너무 사랑병의 원인은 결손가정-부모가 없거나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없이 자랐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주정이 심하고 노름으로 지새우는 등의 가정에서 가족애 없이 자란 여인들일수록 이 증후군에 걸리기 쉽다 한다. 너무 사랑병 환자는 버림받는다는 것이 최대의 불안이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피학으로 자신을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만들려 하기도 하고 지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상대를 그 결함을 미끼로 잡아두고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채우려 들기도 한다. 헌신적일수록 아름답다는 사랑도 한계가 있는 것이 되니 무상하다. 한계애정량(限界愛情量)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라도 없는 것일까.

68.향기나는 미끼

깊은 사색의 글을 많이 남긴 알랭의 글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한 노파가 바람에 꺾여진 꽃가지를 세워 받침대를 대고서 실로 묶어주는 것을 창 너머로 본다. 꺾어진 꽃가지를 묶어준다 해서 살아날 리는 없다. 하지만 그 노파는 꽃의 생사문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고 묶어주고 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알랭은 꽃나무를 의인화(擬人化)하여 거기에 인간성을 투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오묘한 심성을 보아낸 것이다.
꽃이나 나무 같은 식물(植物)에 투사되는 이 같은 인간주의 플랜트와 휴머니즘을 합자(合字)하여 플랜튜머즘이라는 말을 만들고 있다. 그 인간주의가 벌레나 새나 짐승에 투사되었을 때는 애니멀류머니즘이 되고 물론 사전에는 없는, 자신의 사색을 위해 자신만이 쓰는 말이다.
수년 전 미국 중부의 과수원업계에서 가지가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과를 열리게 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을 위해 사과나무를 학대하는 일이라 하여 자숙하는 운동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이때 플랜튜머니즘이라는 말을 찾아내어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대지(大地)'의 작가 고(故)펄 벅 여사에게 한국 여행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을 물었을 때의 대답이 생각난다. 소달구지에 짚단을 싣고 소를 모는 한 농부가 역시 짚단을 가득 지게에 지고 가는 장면을 보았을 때라 했다. 등짐을 소달구지에 얹고 갈 수도 있을 텐데, 소의 노력(勞力)을 감안하여 굳이 지고 가는 그 농부의 애니멀류머즘을 예리하게 보아낸 것이다. 그 등짐을 얹어서 소가 힘이 들지, 안 들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 힘이 들 것이라는 인간의 마음이 그 얼마나 아름답느냐는 것이다.
황희(黃喜)정승이 길을 가다가 밭을 갈고 있는 두 마리의 소를 보고 농부를 불러 어느 소가 더 밭을 잘 가느냐고 물었을 때 귀엣말로 대답했다는 고사(故事)는 널리 알려져 있다. 소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소를 불쾌하게 하고 싶지 않은 애니멀류머니즘의 아름다운 발로를 그에서 보는 것이다.
근대화는 이 같은 아름다운 심성마저 미이라처럼 말라비틀어지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플래스틱으로 꿈틀거리는 가짜 미끼를 만들고 고기에게까지 사기치는 것도 뭣한데, 이제 멀리까지 향기를 풍기게 하여 고기떼를 유인하는 가짜 미끼가 나왔다고 한다. 고기에게 사기를 치건 말건 낚아올리는 결과 측면에서 피장파장 아니냐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고기 입장에서 보면 죽고 사는 중대사인데 사기까지 당해가며 죽는다는 것이 너무너무 억울하여 얼마나 사람을 원망하겠는가.
낚시는 본질적으로 사기이긴 하지만 유혹하는 먹이쯤은 실물이게 하는 것이 애니멀류머니즘이 아닐까 싶다.

69.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원격탐사(遠隔探査)기술이라는 것이 있다. 가시광선,적외선, 마이크로파에 의한 사진 촬영등에 의하여 원격 대상물의 정보를 수집하여 해석하고 거기 필요한 정보를 읽어 내는 것이다. 최근에는 레이더와 같은 별도의 파장 영역을 사용하여 지하의 사물이나 인간의 눈으로 본 것과는 다른 실물의 정확한 실체를 밝히는 기술로 까지 발전했다.
1981년의 일이다.
미국의 우주 왕복선 콜롬비아호는 원격 탐사기구를 사용하여 사하라 사막 ㅣ지하에서 옛날에 흘렀던 큰 강을 발견했다. 이로써 그곳이 지금은 50년에 한번 비가 올까 말까하는 지역이지만 옛날에는 비가 많이 왔고 사람들이 모여 문화생활을 하던 곳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결론은 땅 밑에 감추어져 있던 하상을 실제로 발굴해 봄으로써 사실이라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명백히 증명이 되었다. 발굴된 지하의 하상에서 달팽이 껍질이 발견되고 손도끼를 위시하여 석기시대의 유물이 상당수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 기술이 얼마나 발달이 되어 있겠는가?
오늘날의 고고학계는 이 원격탐사기라는 첨단 기술을 사용하여 우리가 미처 상상할 수 없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여기 고대인의 무덤이 있다고 가정을 하자.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 가를 알기 위하여 구태여 삽질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이 원격 탐사기술을 이용하여 고분속에 있는 물건들을 소상히 아는 것은 초보적인 기술에 속하고 그 고분벽화의 완전한 모습까지도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린 물감의 재료가 무엇이라는 것도 확연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잰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땅에 보물을 숨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사정이니 적국의 땅속에 무기가 얼마나 어떻게 숨겨져 있으며 그것의 용도가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쉬운일인 것이다.
못난 인간들의 기술로도 이 정도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게서 우리의 영적인 내면세계를 완벽하게 통찰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 세계를 완벽하게 보이고 있는 상대를 향하여 거짓을 늘어놓고 도는 겉다르고 속다른 짓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고 가소로운 일인 것이다.
예수님이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보시고 그렇게도 심한 반응을 보이신 이유를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살면서 원격탐사의 기술까지 알고 있는 우리들이다.
우리의 중심을 환하게 살피고 계시는 하나님앞에서 보다 솔직하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17:10)라고 말씀하고 있다.

70.세상을 사는 지혜

백이(伯夷)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은나라 말기와 주나라 초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원래 숙제와 함께 고죽국의 왕자였다. 그런데 부왕이 죽으면서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숙제는 그 자리를 형에게 양보했다. 백이또한 부왕의 유지를 어길 수 없다고 끝내 사양하자 둘은 함께 왕위를 버리고 주나라 문왕의 신하가 될 요량으로 중국땅을 밟았다.
그러나 그 당시 중국의 상황은 문왕이 죽고 그 아들 무왕이 군사를 일으켜 포악무도한 은나라 주왕을 멸하고 중국 천하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일들이 모두 옳지 않다고 통박한 다음 자기네는 주나라 영향권 밖에서 살겠다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생활했다는 인물이다.
그는 참다운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고 진정한 벗이 아니면 사귀지 않으며 악인이 있는 조정에서는 함께 벼슬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아예 그들과 더불어 말도 하지 앟았다. 이런 그였기에 비록 제후들이 정중하게 초대하는 글을 보내와도 받기를 거절했다. 제후들이 더러운 존재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고고한 선비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한편 유하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 하지않고 작은 벼슬이라고 하찮게 여기지도 않았으며 관직에 나아가면 능력껏 소신대로 이를 처리해 나갔다. 이런 사람이기에 버림을 받아도 원망치않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던 것이다.그는 종종 "나는 나, 너는 너다,네가 비록 내 곁에서 벌거벗고 있다고 한들 자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그에게 실제로 닥친 것이다.
심하게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이었다. 폭유로 인하여 집이 허물어져 버린 옆집의 젊고 예쁜 과부가 혼자사는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유하혜는 즉시 방문을 열어주었고 둘은 한 방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모종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세번이나 벼슬길에 올랐는데 높은 지위에 앉았다고 즐거워하는 법이 없었고 낮은 지위에 앉았다고해서 원망하는 일도 없었다.그는 그저 자기가 맡은일에 최선을 다했고 부지런히 살았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생애를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다.
백이의 삶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칠한 무덤을 연상하게 된다.
유하혜의 일생을 통해서는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정정당당했던 용감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말했다.
세상이 악하고 더럽다고 부정적인 자세를 지닌 사람들을 향하여 그런 사람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고전 5:10)고,
지구를 떠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도 그와같이 부패한 인간임을,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나 외에는 모두 죄인이요 부정한자라고 떠들며 백이와 같이 산에 들어가 고사리나 캐먹고 사는 못난 바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더러운 세상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내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71.가인의 마음

내 인격속에는 가인과 같은 마음은 없는지? 우리는 가인을 악한 사람이고 아벨을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며 산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아벨과 같이 선한 의로움만 갖고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은 희망일뿐 내면에 잠겨 있는 또 다른 내 속에는 추악한 가인의 속성을 갖고 살아간다.
즉, 우리의 인격속에 아벨과 가인의 피가 공존하여 흐르고 있으며 마음속에 있는 가인과 아벨의 두마음이 내 자아를 지배하려고 서로 싸우고 있다.
아벨의 마음만 갖고 살고 있는 줄 알았던 내 속에 가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또 내마음을 지배하고 있음을 인하여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두려움을 느낀다.
얼마전 지존파라고 하는 악당들이 세상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하여 침을 뱉고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렇게 욕하고 흥분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그들과 같은 적개심과 살의가 가득하다면 감히 누가 그들을 향하여 돌을 던질 것인가?
가인의 마음은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유대인들이 예수님앞에서 분노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도 간음의 욕구가 잠재되어 있음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돌을 버리고 물러갔던 것이 아니겠는가?율법으로 잘 포장된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더러움이 있었던 것을 그들은 순간 알았을 것이다.
그 누구도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음을 알고 돌아섰던 군중들의 마음에도 가인의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에서 가인의 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행함이라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도 그렇게 자신의 이중성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렇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가인의 마음을 인하여 근심하고 탄식하는 자가 영혼이 건강한 자라 할 것이다.
가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 마음에 이끌려 사는 자들은 이미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심각한 병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애통해 한다. 가인의 마음이 내 속에서 꿈틀대지 않도록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자신의 힘없음을 깨닫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주와 함께 동행하기를 힘스게 된다.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가인을 이기기 위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72.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께 의미있는 존재다.



에베레스트 산은 해발 약 8,000미터라고 한다.그리고 필리핀 해구는 수심이 약 8,000미터정도이다,만일 잠수부가 지구상에서 가장 낯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몰 수 있다면 그 16키로에 달하는 관경은 사람이 정상 위치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태양 위에서서 지구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지구가 당구공처럼 표면이 밋밋할 것은 분명하다 그 위치에서는 에베레스트 산이나 깊은 해구나 문제가 될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문제가 되는 그것들이 우주에서 볼때는 아무런 문제점이나 차이점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산처럼 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필리핀 해구와 같이 낮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때 그러한 차이점들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 차이점이 없이 다만 그저 인간일 분이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중요한 것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다.

73.고자질하는 양심(죄책감)

19세기 미국의 작가 애드가 엘렌 포우는 그의 작품 [고자질하는 양심]의 주인공을 통하여 죄책감으로 고통당하는 인간의 양심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여 자기 집 지하실에 묻었는데, 이상하게도 죽은 사람의 심장 고동 소리가 그의 귀에 똑똑히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온몸은 식은 땀으로 촉촉히 젖었다. 귀를 막아도 잠을 자도 계속 들려오는 그 섬뜩한 고동치는 소리를 피할래야 피할 길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그 소리가 지하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서 울려 나오는 자기 심장의 고동소리인 것을 깨닫는다. 용서받지 못한 죄책감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묘사한 것이다.
양심은 헬라어로 인데, 이는 사람이 자기와 함께 나누는 지식, 즉 자아 의식 이라는 의미이다. 세상사람 모두를 속일수는 있어도 자신의 양심은 속일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이 죄짓고는 못산다. 해결치 못한 죄책감은 병을 불러 온다.

74.양심

한 여인이 빨간 차만 보면 두드러기가 나는 것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빨간 색의 차만 보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이다. 병원에 가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후에 결국 그 원인이 밝혀졌는데, 신혼 초에 남편이 징집갔을 때 외간 남자와 불륜 관계를 맺었다. 물론 관계는 그 한번으로 끝났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후 그 일이 마음에 걸리었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 그일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이제 어느 정도 그 일이 무마되고 마음속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빨간 차면 보면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정신 신체 상관성 질환(psycho- somatic- illness)나타난 것이다. 현대인의 앓고 있는 질병의 85%가 정신 신체 상관성 질환이라고 한다.

75.사(私:사사로이 할 사,간통할 사)와 사(邪:간사할 사,희롱할 야,)

私는 곧 邪와 통한다.
邪는 곧 악(惡)한 것이다.
우리의 눈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대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우리의 마음에 사(私)라고하는 검은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을 때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흐려지고 만다.
독선,아집,자만,이기,독단등은 私에서 생기는 악한 종자들이다.

76.맑음의 상징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
구름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
시냇물에 깨끗히 씨기운 하얀 조약돌,
갓난아기의 티없이 영롱한 눈동자,
깊은 산속의 하얀 눈,
그리고 남의 고통을 보고 눈물 흘리는 깨끗한 눈이다.

77.용모의 美(외형)

용모의 미는 품성의 미에 뒷받침되고, 외형의 아름다움은 정신의 아름다움을 지녀야만 올핸 생명과 향기를 발할 수 있다.

78.마음

마음은 매우 깊은 우물과도 같다. 바닥에 있는 두터운 침전물은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거기에 그런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하지만 격렬한 감정이라는 바람에 의해 그 우물이 휘저어질 때, 너무나도 보기 흉하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오물이 깊은 밑바닥에서 솟아 올라 표면에 나타난다. 분노, 미움, 시기, 질투, 육욕,잔인함, 복수,등 심지어 살인까지 나타난다. 그러한 가장 민감한 순간들마다 악을 행할 수 ㅇㅆ는 우리의 잠재 가능성에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79.심령이 가난한 사람(설교)

가난이라고 하면 생계 수단 즉, 의식주(衣食住)의 결핍(缺乏)등으로 우리는 쉽게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난이란 말은 좀더 적극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프토코스( )인데 이것은 하루 하루 노동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도와 주지 않으며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상태의 가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로 "거지"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푸어(poor)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바로 "가난한""부족한""초라한""불쌍한""서투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정권을 잡은 자나 아니면 종교적 지위가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체적 억압과 빈곤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서민들이었는데 그 당시 그들의 메시야는 바로 그렇게 가난한 대중들을 구원할 줄 알고 기대했었습니다. 즉, 그들의 구원관은 물질적이며 외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가난한 자"란 물질적 가난을 말함이 아니라 바로 심령의 가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가난은 복이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죄의 결과일 수도 있는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저주일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육적인 가난은 근본적으로 복이 되지 못합니다. 다만 그 가난을 통하여 하나님게서 유익함을 얻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자가 되기위한 하나의 교훈일 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심령이란 보통 "영"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이를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깊은 자아(自我)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령의 가난이란 그 당시의 바리세인이나 사두개인들처럼 종교적,지적,지위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자부하며 사는 사람이아니라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고 그래서 비천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위로 그러한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세상적 권력이나 물질로 자만에 빠진 사람은 그곳에 설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 때 예수님의 주위로 몰려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가련한 사람들, 초라한 사람들, 결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 무엇인가 잔뜩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예수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연약한 군증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그 무엇으로도 그들을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스스로 그것을 채울 수 없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렇다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비참함과 결핍을 유일하게 채워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적의 군대가 한 마을을 포위했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그 마을 사람들은 적군의 포로가 될 형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살길이 없을까 하고 두려워하며 궁리하고 있을 때 적군의 장수가 마을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남자들은 모조리 우리의 노예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특별히 풀어줄 것이니 이 마을을 속히 떠나 가되 인정을 베풀어 그대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 한개씩만 지니고 나가도록 허락한다."
그래서 그 마을의 여자들은 그 마을을 떠나게 되었는데 모두가 한가지씩 금반지며, 목걸이며, 은수저며 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은 이상하게도 허약한 몸이면서 커다란 보다리 하나를 질질끌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검문하던 자가 수상히 여겨 보따리를 헤쳐보니 왠 남자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건 누군가?"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예, 제 남편입니다."
"왜 그대는 명령을 어기는가? 둘 다 죽고 싶은가?"
적의 장수가 위협을 가하자 여인은 간절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제 남편입니다. 명령대로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하나 지니고 나가는 것이니 나를 보내 주십시오"
적군의 장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의 지헤와 남편에 대한 사랑에 감동하여 남편을 데리고 나가도록 하락했다는 애깁니다.
그 여인은 남편이 없이는 도무지 험한 세상을 살아갈 자신도 없었고 또한 살아갈 힘도 없었기 대문에 병들고 나약한 자신에게는 남편이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자신의 비참함과 결핍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여인은 남편에 대하여 무척이나 가난한 마음을 품고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루 하루를 살아 갈려면 건전지가 하나씩 소모된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것이 없이는 내일을 보장 받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긴 말이 필요없지요. 당연히 내가 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는 건전지 한개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나의 아름다움과, 물질의 풍요와, 지식과, 권세와, 명예가 다 부질없는 것이 될 것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공백이 있습니다.
그 공백은 상당히 많은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세상의 물질과 지위와 권세를 다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한 반정도 채워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될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로는 겨우 단 10%도 그 공백을 메꿀 수가 없습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또는 친구간의 우정도 그것을 메꿀 수 없습니다. 단지 너무 밑바닥에 있다가 조금 올라가면 밑바닥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고통이 사라지기 때문에 충족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시 경험하지 못한 괴로움과 염려와 근심이 압박을 가해옵니다.
그것은 메꾸어지지 않은 공백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엇을 소중이 여기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것은 입맛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위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매운 고추장에 비벼먹는 것이 입맛에 맞다고 해서 마구 먹어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사람에겐 고추장으로는 위장병이라는 빈 공간을 결코 채울 수 없습니다. 위장에 가득 들어있는 순간에만 포만감 때문에 조금 덜 아픈 것 같지만 잠시후면 더욱 위장의 벽을 할퀴는 역할을 합니다.
자꾸자꾸 위장은 썩어갈 것입니다.
무엇이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하면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인생의 공백을 메꾸어 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물질을 원합니다. 또는 권력을 손에 쥐고, 명예를 손에 쥘려고 합니다.
[노예]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노예는 아무리 일을해도 자신의 소유를 벌어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일을해도 항상 배고프고, 헐벗은 상태로 살아갑니다.
그들의 주인은 체찍으로 내리쳐서라도 많은 수확을 거둘 것을 요구합니다. 맞지 않기 위해서, 주인이 주는 밥을 먹기 위해서, 그가 입혀주는 옷을 입기위해서 더욱 악착같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병에걸려 비참한 모습으로 쓸쓸하게 죽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노예가 겪는 인생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이와같이 노예 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을 해도 자신의 소유를 벌어들일 수가 없는 것이 진리가 됩니다.

노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가 가장 그에게는 소중합니다.
노예생활의 고통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는 자유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루는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온 문제는 인생의 공백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물질이 많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만큼 학식과 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장차 유대인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유망한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그는 요즘 사람들이 구하는 일등 신랑감입니다.
인생의 어던 공백도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에게 커다란 공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소유한 그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에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포기하고 더 소중한 것을 인식하도록 하기위해서 그에게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예수님은 그가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비참(悲慘)과 결핍(缺乏)을 함께 보셨습니다.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의 공백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가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했고, 결핍된 자신의 삶을 오히려 부요한 삶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 아무 것도 없는 결핍과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여기지 못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위에 올라가야 할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고, 지금 그 위에 내가 올라가 있다면 나의 상태를 무엇으로 표현해야 합니까?
이것은 가정이 아닙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올라가야 할 곳이 십자가 윕니다. 그곳에 지금 내가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분명 비참한 몰골입니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바로 나입니다. 소유한 것이라고는 내 몸을 괴롭게 하는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내가 소유한 것이었습니다.
가련하고 비참한 사람, 심한 결핍상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
심한 모욕과 조롱을 받아 마땅한 죄인된 사람,
그러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수치를 가리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고의 보혈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죄와 수치와 비참한 모골을 가리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에 메달려 있는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여러분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물질과 명예와 지위와 권세를 말합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고, 여러분의 수치를 드러내게하는 십자가를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죽이는 도구입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리석게도 그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수치와 비참한 몰골을 가리워 줄 수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나의 공로로 결코 나의 수치와 죄를 가리울 수 없음을 깨닫고 주의 보혈의 능력으로 힘입기를 원하는 자가 삼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찬송가 202장을 다 함께 불러 봅시다.
1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보혈의능력 주의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2 육체의 정욕을 이길힘은 보혈의능력 주의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3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것 보혈의능력 주의보혈 부정한 모든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4 구주의 복음을 전할제목 보혈의능력 주의보혈 날마다 나에게 찬송주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보혈 능력있도다 주의피 믿으오 주의보혈 그어린양의 매우 귀중한피로다"
지금도 우리들을 위해서 그 보혈을 흘려 주셔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면,
그 보혈의 공로가 있어야만 그것을 의지하여 회개할 때마다 용서를 받고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가 있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육신을 입고 이세상에 내려오신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십니까?
자녀에 대한 교육입니까? 남편에 대한 배려와 사랑입니까?
여러분의 감정입니까?
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가장 귀중한 존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무엇으로도 상처를 입힐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귀중하고 좋은 것,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다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비참함과 빈핍함을 유일하게 채워 줄 수 있는 분, 하나님, 그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셔서 여러분의 공백을 메꾸시기를 바랍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또 어떤 사람입니까?
둘째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간절히 기다리는 겸손한 자입니다.
심한 영적인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 그 사람은 자신의 가난함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3:17에서[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은 스스로가 부자라고 느끼며 살았습니다.
봉사도 훌륭히 잘 해 냅니다. 열심히 빠지지않고 예배에 참석도 합니다. 거룩한 의식을 배우고, 그 문화를 배웁니다.
누가 보아도 크리스챤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사람들, 더 이상 들을 것이 없는 사람들,
그들은 그 순간부터 선생이 되기 시작합니다. 심판관의 자리에 앉기를 원합니다.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스스로 느끼는 자는 분명 부요한 사람입니다.
부요하다라는 말은 가난하다라는 말보다는 듣기 좋습니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부자가 돼서는 안됩니다.
항상 채우지 않으면 하루라도 살 수 없는 가난한 자가돼야 합니다.
"나는 많은 설교를 들어왔고, 하나님 말씀도 많이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난 얼마든지 내 신앙을 꾸려나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나는 부자라 나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멀하는 라오디게아 교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신이 부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통치받고 간섭받기를 싫어합니다.
자신의 지헤와 능력으로 일을 꾸려나가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가난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선 그를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통치아래 들어가고자 애를 씁니다. 그 통치아래 거하는 삶이 평안한 삶인 것을 알고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염려와 근심하는 것을 부질 없는 짓으로 여기고 늘 소망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힘을 기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자존심을 스스로 세우고자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세워주시도록 맡겨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위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어느 통치아래 내가 들어가 있다면 나를 통치하는 자에 의해서 내 위신이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아래 나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는 그 통치자에 의해서 자신의 위신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자존심은 자신을 통치하는 그 통치자가 세워주어야만 가능하다고 믿고 그분의 주권이 자신에게 임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분명 가난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사람을 복이있는 사람이요 천국이 저희 것임을 선언합니다.
자기 스스로 위신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생명과도 같습니다. 자존심이 사라지면 그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어집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어져도 사람들이 보는 장소에서는 별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걸어갑니다. 속은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르지만 사람들이 사솟한 일로 자기를 기억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고통을 참으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기 대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 가장 심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그 사람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점잖다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위신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어쩌다가 좋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것이 발견되어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할까 염려하고,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죠.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잘못을 저리른 사람을 보면 괜히 마음 한구석에 즐거운 감정이 생겨 납니다. 나 한사람에게만 잘못이 있다는 것은 역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는 것도 사실 많이 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공히 하루 세께 외에는 더 먹을 수 없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벌어들입니다.
좋은 집을 장만하고, 좋은 옷을 입고,좋은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좋은 차를 타고,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해서 사람들앞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우세함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일종의 자존심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만 되면 여학생들이 입술에 슬그머니 립스틱을 바르는 일도 거기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 남학생들은 죽어라하고 담배를 피울려고 합니다. 그 담배피우는 일이 그 학생에게는 일생 가장 중요한 일처럼 보여질 정도입니다.
남들이 하고 있는 일을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위신 세우기 입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유행가 가사를 모르는 일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뒤덜어진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까봐 두려워하기 대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종아리만 드러나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어느때는 수영복만 입고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대담해 집니다. 뒤떨어지지 않은 사람이 됐다는 일종의 자기 만족 대문입니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럴 때는 자신이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그렇게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우리들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8:42)에서
[내가 저희를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시90:3)에서는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또 (시89:47)에서는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시103:15)에서도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전9:3,12)에서는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이러한 인생의 진리를 아는 사람은 그 심령이 가난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아래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세울 수 있는 위신이란 고작해야 공격을 받을 때 완강하게 반격해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사람은 결코 자신의 자존심과 자기 위신을 스스로 만들지 못합니다. 약간의 성공과 성취에 만족하는 정도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아래 무릎을 꿇고 그분의 주권을 기다립니다.
주 안에서 자신의 위신이 세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면 결코 그 누구도 그 위신을 깎아 내리지 못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기 대문에 그 통치아래 무릎을 굽힌 사람은 당연히 염려와 근심과 더불어 함께 살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분 스스로 위신을 세우고자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통치아래 무릎을 꿇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인간이들이 그분의 자존심을 끌어내리고자 할 때 반격하지 않으셨고, 그대로 몸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 통치아래 몸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반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자존심은 철저하게 땅에 떨어졌습니다. 만인이 보는 가운데 수치를 당하시고 사람들이 환호하고 떠들며 자신을 따르던 모든 자리들을 잃어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묵묵히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여 자신을 온 인류앞에 구세주로 세워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셨습니다. 그것은 죽음도 그분의 기다림을 꺾지 못햇습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분이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쓸만한 자존심과 위신이 있다고 보십니까?
주 앞에 무릎꿇고 그분의 통치를 받지 않아도 스스로가 세울 수 있는 자존심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십시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임하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삭개오와 같은 실패를 하지 않아도 될 인생으로 복을 주실 것입니다.
많은 소유를 통해 자신의 위신을 세우고자 했던 삭개오를 잘압니다. 그러나 그의 소유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그의 위신은 땅에 떨어집니다. 본인 스스로가 아무것도 세울 수 없음을 깨달은 때는 그의 마음의 병이 깊어진 후였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통치아래 무릎을 꿇었고, 그분의 주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하였습니다. 그의 위신은 주 안에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의 공백을 메꾸어 주시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통치아래 무릎을 꿇음으로 그의 위신을 세워주시고 보람된 삶을 살게 하심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질 복을 블레시-드(Blessed)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복(福, fortune)의 개념은 어떻습니까?
바로 "행운""운이 좋은" "형통한""재물이 많아짐""부귀와 공명""장수"등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런 개념보다는 여기에서는 "행복한" "기쁜" 이라는 개념이 더 짙습니다. 그것은 돈다발을 쥐고 기뻐하는 기쁨이 아니라 거룩한 기쁨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기쁨과 행복감입니다. 그 행복감과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손상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입니다.
사전에서는 그 반대어로 "저주 받은""벼락 맞을" 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소유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식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그분의 통치아래 무릎을 꿇고 순종하는 자,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영적인 가난을 자각하고,자신의 비참함과 결핍을 인하여 결코 교만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항상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회개하는 심령으로 항상 하나님앞에서 떠는 심령, 너무 부족하고 연약하여 떨 수 밖에 없는 사람,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모든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이 복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결국 소유하게 될 복은 무엇입니까?
바로, 천국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천국은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과 삶을 지배하시는 왕(王)으로 인정될 때 그 결과로써 임하는 복과 은혜와 구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추상적으로 그 개념을 부여하신 것이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얘깁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신 내용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계3:16 -22에서[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마음이 부요한 자에게는 천국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마음이 가난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아 주님을 영접하여 들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문을 열면, 내가 그분의 통치를 기다리고 무릎을 꿇으면, 그래서 나의 마음의 왕좌에 그분이 앉도록 내어드린다면 천국이 바로 그 사람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정 부요한 사람인데 에수께서는 바로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시록 2:9에서[네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얼마나 역설적인 말씀입니까?
연약하고 궁핍한 자가 실상은 부요한 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창세기 33장을 보게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자신의 소유가 많아지도록 비열한 방법까지 사용하면서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복은 인간 스스로가 탈취할 수 있는 것으로 그는 보았습니다.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그는 어느정도 목적을 달성합니다. 아내도 얻었고, 많은 재물도 얻었습니다. 그가 삼촌 라반의 슬하에서 벗어나 홀로 얍복강 나루터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최후의 결단을 요구하는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빼앗고자 군대를 이끌고 자신에게 원한이 가득한 형 에서가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였습니다. 자신이 죽어버리면 많은 소유가 다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에게는 오직 소와 양때외에는 소유물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다 빼앗길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깊은 고뇌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기에 이르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자신의 소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필사적으로 메달릴 수 밖에 없었던 야곱은 밤이 맞도록 하나님을 붙잡고 애원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아래 자신을 받아주시기를 그는 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야곱은 한번도 소유해 보지 못한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아래 그가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는 염려와 근심으로 일관하던 자신을 청산하고 일어나 에서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았던 재물들을 그에게 내어놓으며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창33:11) 에서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데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그는 소유를 탐하는 가난한 사람이었으나 그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그분의 통치아래 무릎을 꿇는 순간 그는 부요한 자가 된 것입니다.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행복을 그는 비로소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소유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나의 소유가 족하다]다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천국을 소유하는 복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다 사랑하는 것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두번째로는, 하나님의 통치아래 무릎을 꿇고 그분의 주권아래 순종하십시오.
나의 소유는 물론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인식하고 나의 결핍과 무능함을 깨달아 항상
[ 하나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도와 주소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자에게 주시는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여러분 모두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고 주시는 이 복을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은 그,마음이 자신의 소유로 인하여 하나님앞에서 부요한 자들입니다.
그 부요함이 결코 진정한 부요함이 아님을 깨달아 하나님앞에서 궁핍하고 가련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앞에 무뤂을 꿇음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헤와 사랑이 넘치는 천국을 소유하심으로 늘 기뻐하ㅣ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0.마음의 문

유명한 예술가 홀맨 헌터라고 하는 분이 성경 말씀을 기초로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성화에 보면 예수님께서 굳게 닫힌 문 밖에서 한편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한편 손으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의 문밖에서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어떤 때는 양심을 통하여 어떤 때는 이성을 통하여서 때로는 경험을 통해서 슬픔, 기쁨 등, 때로는 친구의 권면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인간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의 바깥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문 밖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열어야 하며 다른 이가 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마음 문의 주인은 우리 각자 자신입니다. 주님의 문 두드리시는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어서 주님께서 마음 속에 들어오시어 자신과 같이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열쇠는 내게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나 열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멸망의 책임도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81.마음에 계시는 에수님

소련의 쟈부르스키라고 하는 청년은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깡패 출신의 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자, 소련사회에서 예수를 믿는 것은 손해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한 번은 군대 상관이 그를 불러서 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만 부인하면 계급도 올려주고 돈도 벌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쟈부르스키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상관이 쟈부르스키를 불러놓고 자기의 과거 경험담을 털어 놓았습니다.
“우리 부대에 너와 비슷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지. 그는 목에 십자가를 항상 걸고 다녔어. 내가 한번은 그를 불렀네. 그리고 둘이서 이야기를 오래 했다네. 이야기를 다 끝마치자 그 친구는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를 끌러 탁자 위에 놓더니 다시는 십자가를 목에 걸지 않겠다고 하더군. 그리고는 공산당 입당원서를 달라고 하더니 거기에 자기 이름을 쓰고 공산당에 입당했다네. 그 후로 아주 자랑스러운 공산당원이 되었다네 "
상관의 설득은 달콤했습니다. 그러나 쟈부르스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도 목에 건 십자가를 벗어 놓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런 십자가에 계시지 않고 제 마음에 계시는데 어떻게 합니까? 저도 예수님을 탁자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렇게 하면 제 생명에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며 제 마음을 칼로 도려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목에 건 십자가는 탁자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어도 내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을 탁자 위에 올려 놓을 수는 없습니다.”

82. 악마의 편지 (마음을 지키라,마음)

유명한 악마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서 마음밭 비유를 가장 탁월하게 설명했습니다. 어떤 영국의 노신사가 어느 날 대영제국의 도서실을 찾아갑니다. 그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실에 들르는 그의 습관적인 태도로 그날도 도서관에 들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책 중에서 손에 쥐어진 책이 신앙에 관한 책이었고, 이 책을 읽어 보다가 노신사의 마음 속에는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분은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신사에게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 속에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점심 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그는 잠시전 마음 속에서 생각하려고 했던 하나님에 관한 의식을 누르고 식탁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이 때에 악마는 그 마음속에 다시 말하기시작합니다. 이 악마에게 감동을 받은 노 신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하나?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
식사를 끝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사단의 역사를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 좌석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느때와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이때, 루이스는 이런 인상 깊은 그림을 그립니다. 마치 자신에게 아무 사건도 일어나기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버스를 타고 가는 이 노신사 뒤에서 악마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83.마음을 바꾸라(마음)

우리는 자아중심주의 탐욕 거짓됨 미움 두려움 좌절감 죄책감등을 반드시쫓아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들을 심 어주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란 헬아원어로 [메타노이아]입니다. 이 말은 [마음을 바꾸라] [마음의 생각을 바꾸라]는 뜻입니다.
자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탐욕에서 주의 영광으로, 거짓됨에서 진리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두려움에서 신념으로, 좌절감에서 용기로, 죄책감에서 의로움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가난의식에서 부 요의식으로, 눈먼 의식에서 하나님 나라 의식으로, 눌림에서 건강 의식으로,율법주의에서 은혜 의식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 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4:2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음의생각이 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변화하면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84.성화 '세상의 빛'(마음)

유명한 예술가 홀맨 헌터라고 하는 분이 성경 말씀을 기초로 '세상의 빛'
이라는 제목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성화에 보면 예수님께서 굳게 닫힌 문
밖에서 한편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한편 손으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는 모습
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의 문밖에서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
다.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어떤
때는 양심을 통하여 어떤 때는 이성을 통하여서 때로는 경험을 통해서 슬픔,
기쁨 등, 때로는 친구의 권면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인
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의 바깥에는 손잡
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문 밖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
봄볜 열어야
하며 다른 이가 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마음 문의 주인은 우리 각
자 자신입니다. 주님의 문 두드리시는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어서 주님께서
마음 속에 들어오시어 자신과 같이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열쇠는
내게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나 열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멸망의 책임도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85.선하고 평화로운 사람

먼저 당신 자신이 평화로운 마음을 갖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욕정이많은 사람은 선한 일도 악으로 만들며 쉽사리 악한 일에 귀를기울입니다. 그러나 선하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모든 일을 선하게합니다. 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운 자는 어떤 사람이라도 나쁘게 생각하거나 의심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불만이 많고 걱정을 가진 사람은 많은 의혹과 고통으로 괴로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도 안정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정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종종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은하지않고 지나쳐 버립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하는가에대해서는 생각하나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이웃에 대해서 참견하기 전에 당신 스스로 열심을 내어 노력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이웃에 대해서도 적합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또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 속에 평화를 지니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인내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누구든지 크나큰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긴 사람이고 세계를 정복한 주인이며 그리스도의 친구요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86. 극적인 대화(속사람,)

저 부두를 걸어가는 한 사람을 보라. 영국 포츠마우스의 해변을 한노인이산책한다. 그는 팔이 하나 밖에 없다. 그는 눈도 하나 밖에없다. 그는 배멀미가 심해서 배 위에서 걸어다닐 때는 무엇에 의지해야 했다. 그런데도그는 뱃사람이다. 아니 이 사람이 바로 호레이오 넬슨(Horatio Nelson)이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하여 영국을 구원한 넬슨 제독이었다.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마음 속을보신다 (삼상16:7).
겉의 행위를 보고 좋다 나쁘다고 구별하는 것은 인간의 눈이다. 하나님은행위를 보고 구원하지 않는다. (롬11:6) 사람의 행위에 얼마나 큰 차이가있는가? 하나님의 눈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이다.
얼음판에서 놀던 아이 하나가 엷은 얼음을 딛고 물에 빠졌다. 곁에 있던 소년이 얼른 가서 건져주었다. 물에 빠졌던 아이의 어머니가 와서 칭찬했다. "정말 너는 용감한 소년이야. 얼음물에 뛰어들어내 아들을 건져주다니!" 소년이 대답했다. "그 아이가 내 스케이트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예요." 웃기는 이야기로만 들을 것이 아니다.
양심적으로 따져볼 때 우리가 하는 소위 선행이라는 것이 결국은 나의 유익이나 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눈앞에 "나는죄인입니다. 나는 구원받아야 합니다." 하는 진실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한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옷 때문에 인상이 극적으로 변하는 사람이 미국에서는 강철공장 노동자라고 흔히 말한다. 그들은 작업중 땀을 많이 흘리고절반쯤 벗은 사나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이 고된만큼 수입이 높아 일요일 교회에 나설때쯤은 일류 신사복과 좋은 차를 운전하여 국회의원이 아닌가고 혼돈할 정도로 외모가 변한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라"(계3:18) 금은 믿음이요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87. 사마귀도 그리시오

영국의 크롬웰(Oliver Crowell 1599-1658)은 장군이요. 명정치가로 한때 영국의 실권을 장악했던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의 초상화를 후세에 남기기위하여 최고의 미술가가 고용되었다. 크롬웰은 얼굴에큼직한 사마귀가 있었다.
그 당시 유명인사의 초상화는 흉터 같은것은 없애고 오히려 실물보다 더잘 생기게 그리는 것이 전례였으므로 이 화가도 크롬웰의 사마귀를 빼버렸다. 이것을 알게된 크롬웰은 크게 노해서 호령했다. "사마귀도 크롬웰의 일부요 사마귀도 그리시오."나의 약점을 엄폐하려는 것보다 솔직하게 내어놓는 것이 좋다. 죄는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없다. 하나님께 정직한 것이 믿음이요. 이점을 하나님은 가장 기브게 생각하신다. 회개보다 더 나은 제사는없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바리새인을 '회칠한 무덤'으로 비유하여예수는 몹시 경계하였다. 속과 겉이 같은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된다.
한국말 잘 하기로 이름났던 미국 선교사 김기수 박사의 일화 중 이런 이야기가 있다.
숭실대학 교수로 있을 때 한번은 시험기간이 되었다. 앞뒤로 앉은 두 학생이 시험지를 보고, 보여주는 장면을 목격한 김기수 선교사는마침 그들이 하나는 표씨요. 다른 한 학생은 이씨임을 알고 즉석에서 문자를 활용하여" 표리부동이요"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표리부동은 속과 겉이 다르다는 뜻이다.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왕을 이을 새 임금을 뽑도록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이새의 집을 찾아갔다. 사무엘은 첫 눈에 장남 엘리압이 마음에 들었다.
용모가 준수하고 체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용모와 신장을 보지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여호와는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는 하나님의 관찰 표준이 명시되었다.

88.차이점

에베레스트 산은 해발 약 8,000미터라고 한다.그리고 필리핀 해구는 수심이 약 8,000미터정도이다,만일 잠수부가 지구상에서 가장 낯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몰 수 있다면 그 16키로에 달하는 관경은 사람이 정상 위치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태양 위에서서 지구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지구가 당구공처럼 표면이 밋밋할 것은 분명하다 그 위치에서는 에베레스트 산이나 깊은 해구나 문제가 될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문제가 되는 그것들이 우주에서 볼때는 아무런 문제점이나 차이점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산처럼 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필리핀 해구와 같이 낮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때 그러한 차이점들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 차이점이 없이 다만 그저 인간일 분이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중요한 것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다.

89.자포자기의 힘....

구소련에서 있었던 이야기 하나.
철도국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냉장고 화차 속으로 들어간 후
그만 실수로 밖의 문이 잠겨 냉장고 화차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런데 이 냉장고 화차는 고장이 나 있었다.
작동이 안돼 공기도 충분했고, 온도도 섭씨 13도의 알맞은 체감온도였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다른 직원이 이 사람을 찾다찾다
냉장고 화차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죽을 만한 환경이 아니었는데 왜 죽었을까?
사람들은 그 사람(죽은 직원)이 고장난 냉장고 벽에 남긴 글을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점점 몸이 차가와진다. 나는 점차 몸이 얼어옴을 느낀다..........아마 이것이 마지막일는지 모른다....."자포자기와 절망이 그를 죽인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구약 p.914-잠언 4:23)

90.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장날 시장에서 사과를 한 바구니 사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사과 다섯개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과 중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벌레 먹은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어떤 사과부터 먼저 먹는가 하고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큰 아들은 다섯 개 중에서 제일 좋은 것부터 골라서 먹고, 나쁜 것은 맨 나중에 먹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의 사과 골라 먹는 방법은 좀 달랐습니다. 다섯 개의 사과 중에서 제일 나쁜 것부터 먹고 좋은 것을 나중에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어머니는 두 아들 중에서 좋은 것부터 먹은 큰 아들을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과 다섯 개 중에서 처음에 제일 좋은 것을 먹고, 남은 것 중에서 또 제일 좋은 것을 먹고, 그래서 큰 아들은 사과 다섯 개를 먹을 때마다 좋은 것만 골라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의 경우는 다섯 개의 사과를 먹을 때마다 가장 나쁜 것만을 골라먹은 셈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요? 똑같은 세상, 똑같은 환경 속에서 여러가지 희노애락을 겪어 가면서 똑같은 인생살이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밝은 면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반면에, 똑같은 사과를 먹으면서도 나쁜 것만 골라서 먹었다는 그 둘째 아들처럼, 같은 환경 속에서도 불평과 원망과 다툼과 짜증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게 되면 아무리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그 속에 밝음을 찾아 살아가게 되는데, 이런 자세가 크리스챤의 생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91.한 인간의 양면성(히틀러)

그는 작은 꼬마시절에 목사가 될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때때로 빈 의자에 올라서서 목사 흉내를 내며 설교를 하였다. 그는 노래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어서 전혀 음악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수도원 합창단 단원이 되었으며 젊은 청년이 된 그는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그는 음악감상에 대한 열의도 대단해서 한때는 앉은 자리에서 바그너의 작품 로엔그린을 계속해서 열 번이나 들은 일도 있다고 한다.
또 오페라의 음악을 듣고 콧노래로 이를 재생시켜 다른 친구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역사 철학 예술 등 각 방면의 책을 즐겨 읽었으며 재능 또한 대단하였다.
그가 군대에 있을 때 참호를 파고 은폐하여 있는 곳으로 작은 강아지가 한 마리 다가왔다. 그는 그 강아지를 붙잡아 먹이를 주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둘은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그 강아지를 훔쳐가 버리자 그는 슬픔에 잠겨 며칠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번은 배고픈 쥐떼를 보고 자기의 빵 부스러기로 그 쥐들을 먹여 살렸다. 그는 전혀 어떤 사람에게도 어떤 짐승에게도 해를 끼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특히 그는 집안이 가난하거나 여타의 결함으로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풍요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였다.
한번은 가난한 사람에게서 달걀 두 개를 받아 쥐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어느날 작은 아이가 의자에 머리를 부딛쳐서 울자 그는 그 아이처럼 의자에 스스로 머리를 부딪쳐 슬픔을 같이 하고 아이를 대신하여 그 의자를 때려 주었다.
그는 서른 네 살 때에 자기 어머니에 대한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를 써서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사랑하라고 권면하였다. 이제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크게 놀라실 것이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이다.
그 사람이 후일에는 지구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악마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즉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양면성이 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92.별을 보는 사람

미국 오하이오주의 어느 군인 가정이 전보발령을 받아간 새로운 임지는 거칠게 사막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기후 조건이 좋지 않은 부대였다.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 방 청소를 해도 모래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의 아버지는 4성장군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편지를 보냈다. 우리가 이 부대에서 생활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 달라는 청탁서였다. 얼마 후에 아버지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 딸은 반가운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글이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이 감방에 있었는데 하나는 별을 보았고 하나는 흙을 보았느니라.”
처음에 이 딸은 이 편지를 받고 도무지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러 날 묵상하는 가운데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형편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왜 부득이 너희만 참고 견디지 못하느냐는 책망이요. 또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참고 견디라는 위로와 격려의 편지였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93.미래의 그림은?

어떤 부인이 남편과 아들 삼형제와 함꼐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남편의 직업은 선장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바다에서 폭풍우에 휘말려 배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는 비보가 날아들어왔다. 그리고나서 세월은 흘렀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렸건만 큰 아들도 남편의뒤를 이어 배를 탔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또한 둘째 아들도 한사코 말리는 어머니 몰래 선원이 되었다가 그도 역시 얼마후에 목숨을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막내 아들조차 장래선원이 되겠다고 하였다.
어머니와 모든 친척들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네 사람이 바다에미친 까닭을 몰라 이 부인은 이웃에 사는 목사님꼐 그 원인을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한참 동안 집안을 살펴보던 목사님은방에 걸려있는 그림과 사진을 당장 떼어내고 대신 다른것을 걸도록권하였다.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 정도로 시원한 바다 그림과 선장차림의 멋있는 아버지의 사진이 아들들의 마음을 바다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부인은 바다 그림 대신 산과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었다. 얼마 후 막내 아들은 선원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대신 농부가 되어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것은 무의식 중에 우리의마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자기 암시에 빠지고 만다. 텔레비전 지나칠 정도로 보는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모두 광고 노래인것들도 바로 이때문이다. 우리 믿는 자들 역시 우리의 눈이 현 세상에 집중되어 있다면 우리의 영혼 역시 세상의 욕망과 어지러움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러나 미래의 그림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걸어놓고매일 바라보게 된다면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미래의 그림은 어디에 있는가? 화랑에서 살 수 있는가? 아니다 미래의 그림은 바로 성경속에 있다.

94.그리스도인의 마음

어느 구두 판매원이 구두 판매 시장을 확대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을 방문하였다. 그는 그 부족 사람들이 모두 맨발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국내 본사에 이런 전문을 보냈다. " 구두 주문 취소. 이 부족에게는 구두 시장 없음". 후에 다른 판매원이 동일한부족을 찾아갔다. 가자마자 그는 즉시 본사에 이런 전문을 보냈다.
"구두 주문 곱절로! 이 부족에는 구두시장 무한함" 한 판매원은 비전이 없었으나 다른 판매원은 부족 사람들 모두가 구두를 신을 수 있다는 비전이 있었던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의 차이입니다.

95.자족

사무엘 루터포드는 옥중에서 1년 반 동안에 220장이나 되는많은 서신을 써서 교회들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의 1절은 "만일 내가 땅과 같이 넓은 종이를 가지고 모든 하해와 같이 많은 잉크를 가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적어 볼 수 있다면" 이라고 하였고, 그는 옥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왕궁"이라 하고 "십자가는 달고 가볍고 빛나고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그는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그의 영화로운 일을 찬송하노라. 나의 진실은 나의 유익이요, 나의 감옥은 왕궁이요, 나의 슬픔은 기쁨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잔치를 얻기 위하여 지옥이라도 통과해 가고 마귀의 무리라도 헤치고 나아가리라."고 하였다.(마5:10-12)어느 곳에 있는지 자족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96. 소외감

1.거부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
1)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쉽게 상처를 받는다.
2)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3)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 부터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다.
4)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거부]의 상황에 부딛힐 때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5)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 빌 웨버 -

97.소외감의 극복

피퍼라고 하는 사람은 구원의 범주에 속한 종교로서 대표적인 두 가지를 공산주의와 기독교를 들었다.
공산주의는 종교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상이지만 어떤 면에서 볼때 주체사상,막스와 레님의 교조적 사상은 그 신봉자들에게는 하나의 절대적인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종교의 범주에 넣어도 과히 무리가 없을지경이다.
공산주의는 현재 삶의 여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앟고 능히 개선할 수 있고 변혁시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도 역시 현실의 여러 어려운 조건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것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기독교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현제보다 좀더 나은 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나의 불리한 조건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겠는가?"하는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또 성경의 결론 자체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5)
하는 변혁의 약속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변혁을 상당히 강조하는 종교인 것이다.
인생 자체도 예수안에서 완전히 변화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공산주의와 기독교의 유사점은 바로 현실 부정과 인간 사회의 현실을 개혁할 수 있디고 보는 것이다. 즉 인간이 소외 상태에 있다고 하는 데에는 기독교나 공산주의가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소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 회복을 시도해야 한다는 데에서는 동의하면서도 인간 소외의 원인 규명에서는 양자가 서로 그 의견을 달리한다.
인간 소외의 원인을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에 두고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기독교에선 인간 소외의 원인을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데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불안과 인격 분열과 고통을 경험하며 증오심에 사로 잡히게 되고 원치 않는 악을 자꾸 행하며 사회적으로는 구조적인 악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내리신 해산의 고통이 개인의 영역에 속한 심리적이 문제로,아담에게 노동을 하고 땀을 흘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신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소외의 문제에 대해 공산주의와 기독교 모두 매우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절대적인 변화를 주장하지만 그 실현 방법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계급 투쟁을 통해서 제도작으로 혁명을 일으켜서 해결하려는 것이 공산주의의 방식이다. 공산주의는 세상을 변혁시켜 나가는 동기 부여와 진행 과정에서 언제나 그 주체가 인간이 된다.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서 혁명이라는 방법을 통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옛 사람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는 것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한다.
인간과 사회를 새롭게 하고자하는 이 동기는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니님으로부터 오며 변혁의 진행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고 인간은 그분의 동역자로 참여한다는 생각이 바로 공산주의와 다른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적 유물사관에 근거하여 필연적으로 자율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회 혁명을 이야기하며
기독교는 죄인 스스로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타율적인 인간 변혁을 이야기 한다.
신약 성경을 보면 변혁의 동기를 가지 주체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이 나타나 있다.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를 쩌나 돼지를 치며 고생하던 둘째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로하여금 집으로 돌아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가 집을 떠나갈 때 그의 등 뒤에서 아버지는 돌아올 것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아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대문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탕자는 다시 돌아왇고 아버지는 자신을 받아 주실 것이라는 잠재 의식을 안고 떠나갔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을 다시는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고 탕자가 집을 나섰다면 어찌 그가 다시 아버지를 향하여 갈 수가 있었겠는가?
그가 돌아갈 수 있었던 힘을 제공한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였다.
인간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인 것이다. 공산주의가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98.건전한 자화상

그리스도인으로서 전문 상담인인 머리스 와그너 박사는 그의 훌륭한저서 "가치있는 사람이 된 느낌"이란 제목의 책에서 건전한 자화상을구성하는 세가지 기본적인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요소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소속감이다. 이것은 누군가가 자기를 원하며, 용납하며, 돌보아주며, 즐기며, 사랑한다는 것을 단순히느끼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출생 전에 이러한 느낌을 갖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내가 마음 속에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면서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다. 즉 그들 속에 느끼고 있는 거부감의 근원이 출생전 그들의 부모들이 가졌던 잘못된 태도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가졌을 때, 그 어머니의 뱃속에있는 아이는 소속감을 거의 누리지 못하게 된다.
두번째 요소는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내적믿음과 감정을 의미한다. "나는 가치가 있어. 내게는 뭔가 내어놓을만한 것이 있거든." 세번째 요소는 자신감이다. 이것은 느낌으로부터오는 생각이다.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어,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잘 처신해 나갈 수 있지, 나는 생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 위의 요소들을 모두 한 데 묶어보라. 그리하면 자아개념 감정을 형성하는 세 쌍의 요소를 얻게 된다. 즉 그것은 와그너 박사가 말하는 소속감과 가치감 그리고 자신감이다.

99.노이로제(Neurosis)

현대인의 정신질환 중에 점점 노이로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연세 많으신 분들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 가운데서도 노이로제 현상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노이로제를 가리켜서 심리학에서는 정신분열의 초기 현상이라고 합니다. 정신분열의 초기 단계인 노이로제의 초기 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집에서 나올 때에 문을 꼭 잠그고 나왔습니다. 골목을 나오다가 내가 정말 문을 잠갔는가 의심이 생깁니다. 다시 되돌아가서 문을 한번 열어봅니다. 확인해봅니다. 잠겼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가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문을 잠갔는가?'
또 어떤 사람은 부엌 일을 하다가 가스불을 잠그고 시장에 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정말 가스불을 잠그고 나왔는가?' 의심이 생깁니다.
자기가 한 일, 행동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전기곤로를 끄고 밖에 나왔습니다. 친구집에서 한참 놀다가 문득 '내가 정말 전기곤로를 끄고 나왔는가? 끄지 않고 나왔는가?' 의심이 났습니다. 집에 전화를 걸어서 아이에게 불을 끄도록 부탁을 합니다. 아이가 확인하니 불은 꺼져 있었습니다.
물론 건망증의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엔 심리적인 큰 원인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확신한 것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지 못한 사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나중에 역의 현상, 반대 현상을 겪게 됩니다. 즉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확신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위선과 거짓에 사로잡힌 이 심리적 상태가 점점 누적이 되면 이처럼 반대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실제 행동한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데서 정신분열의 초기 현상인 노이로제 현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그 사람은 헤어날 수 없는 갈등과 번민, 심적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의 상태를 건실하게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토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고 그것을 방치할 때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고 자신의 못난 점을 시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0.우울(憂鬱)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사람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한다.
이런 사람이 자살에 실패해서 병원에 실려오게 되면 의사는 제일먼저 먹음직스러운 고단백 음식을 마음껏 먹도록 배려한다.
대개 우울증 환자는 2-3일 정도 제대로 먹지 않아 몸안에 단백질의 필수치와 함께 에너지 수치가 매우 낮아져 있기 때문에 그 결과 우울증의 수치는 급상승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단백의 음식을 먹이는 것이라고 한다.
우울증이란 근심이나 걱정이 있어서 명랑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우울증적인 요소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경험하는 우울한 감정이 정도를 지나쳐 생기가 저하되고 모든 생활체험이 지속적으로 우울하여 몸과 마음이 다 함께 침울해 지면서 스스로 무능감에 사로잡히는 사람,결국 자신의 생명을 끊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리가 작용하게 된다.
심하지는 않지만 모든 현대인들은 바로 이와같은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단백 음식이다.
바로 우리의 영과 마음을 살리는 고단백 음식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
바로 그 말씀의 떡을 먹는 사람은 우울증세가 사라지고 마음에 기쁨과 활력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101.생각할 것, 생각하지 말 것

오늘 하룻동안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만 생각하겠습니다.
슬픔을 주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나의 장점과 진실만을 생각하겠습니다.
단점과 거짓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 주위의 축복들만 생각 하겠습니다.
거절당한 것이나 불행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우정과 미덕을 생각 하겠습니다.
잘못과 헛점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기분 좋았던 날들만 생각하겠습니다.
한숨과 고통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 앞에 있는 소망들을 생각하겠습니다.
뒤에 남은 찌꺼기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가 베풀수 있는 친절만 생각 하겠습니다.
나 자신만 돌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하겠습니다.

102.신념은 성공의 시작-적극적인 마음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는 산사나이들의 목표다.1963년 5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 산을 정복한 사람은 짐 휘태커였다.휘태커를포함한 등반대가 네팔 당국의 심의를 받았다.그때 다른 등반대원들은『정상에 오를 수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네.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휘태커는단호한 목소리로 『네.나는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심의를 한 사람들은 휘태커가 정복할 것으로 믿었다.그것은 현실로 드러났다.

103.모든병의 근원은 「마음」-마음

김시습의 매월당집에 나오는 말. -무릇 만병이 마음에 말미암으니 마음에 걱정이 생기면 병이 난다…떤 사람은 산림에 다니다가 독사에게 정강이를 물리고서도 동백나무에 걸려서 상처가 난 것이라고만 여기고 삼십리를 갔어도 오히려 의심하지 않았고 독기도 또한 발생하지 않았는데 홀연히 뱀잡는 사람을 만나 「독사에게 물렸다」는 말을 듣고 독기가 발작,바로 죽었다.

104. 만족한 마음

대부호가 신문에 『자신의 생활에 만족함을 증명하는 사람에게 1만달러를 주겠다』고 광고를 냈다.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의 만족한 생활에 열변을 토했다.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주어진 명예,안정된 직업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고말했다.
그러나 1만달러는 아무도 받지 못했다.광고주가 던진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정말 만족한다면 나의 돈 1만달러를 무엇 때문에 원하는가』

105.화풀이 하기

미국에는 '풍선 술집'이라는 맥주 대폿집이 있다. 들어서면 수십수백 개의 풍선이 주렁주렁 매어달려 있는데, 풍선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양각식의 얼굴들이 험상궂게 그려져 있다. 손님은 자신이 증오하고 있는 인물과 흡사하게 생긴 용모의 풍선을 골라 갖는다. 이를테면 상사로부터 꾸지람받고 나왔으면 그 상사와 흡사한 대머리 까진 풍선을, 여편네에게 얻어맞고 나왔으면 여편네와 흡사한 여우 같은 풍선을 골라 들고 옆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풍선 파열 장치가 돼 있는데, 그 장치에 그 풍선을 끼우고 스위치를 누르면 조명이 되어 보다 험상궂은 몰골이 부각된다.
일정한 거리에서 마냥 달려가 그 풍선에 주먹질하여 터뜨리면 그 파열음이 진폭 확성되어 천지가 무너지듯 한 소리가 난다. 그로써 후련해진 손님은 생맥주 한잔 들이켜고 나간다. 이 유사 폭력에 의한 스트레스 발산으로 가정에 있어 아내를 때리는 와이프 비팅, 남편을 때리는 허즈 비팅의 가정 폭력이 2 퍼센트 내외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풍선 술집 말고 와이프 돌(Wife doll), 허즈번드 돌(Husband doll)이라 하여 등신대(等身大)의 각시 인형, 서방 인형을 팔기도 한다. 격앙된 분노를 실물 대신 이 각시 인형이나 서방 인형을 내리쳐 가정 폭력을 예방하는 인형 작전인 것이다. 때리면 그 강도에 따라 피가 나고 부어오르게끔 만들어져 있어 때리는 데 실감이 나게 돼 있다 한다.
미국에는 연간 평균 1백 80만 명의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얻어맞고 있으며, 전가정의 4 분의 1이 이 가정 폭력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얻어맞기만 하는 아내가 아니다.
39 퍼센트의 남편이 아내에게 세간살이를 던지며, 37 퍼센트의 아내가 남편에게 세간살이를 던져 응수를 하고, 31 퍼센트의 남편이 아내를 밀치고 목을 조르는 데 대해 21 퍼센트의 아내도 그 같은 방법으로 남편에게 응수를 한다 했으니 이제 가정 폭력에 있어 아내만이 피해를 입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가정 폭력이 질적으로 어느만큼 악화하는가는 미국의 연간 평균 살인 건수인 2만 건 가운데 부부간 살인이 10.6 퍼센트라는 것만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풍선 술집과 각시 인형, 서방 인형의 '비팅 돌'산업은 희망 산업이랄 수 있다. 여권이 강해질수록 희망이 밝아지는 산업인 것이다.
70 년대의 대학 축제는 남녀가 손을 번갈아 잡고 돌리는 포크 댄스를 추고, 80 년대의 축제에서는 남녀가 붉은 글씨의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으로 하늘을 치더니 요즈음 대학 축제에서는 남학생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고 여학생이 주먹으로 후려패는 사나이 때리기, 곧 보이 비팅이 등장하고 있다 한다. 허즈번드 비팅의 예행 연습인가. 저승에 가 있는 조상들 집단 기절할 일이다.

106.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헬라왕 필립스는 철인이었다. 옛날 독재 국가의 왕이란 교만하기 쉽다. 그래서 왕은 자기의 노예에게 부탁해서 아침마다 냉수 한잔을 갖고 왕의 처소에 들어가 "필립스왕이여 그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요"를 큰소리로 말하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임종의 시점에 내가 서 보면 지금 내가 하는 일, 사람을 대해서 하는 일들을 훨씬겸허하고 관대했어야 할 것이다. 제로가 되어 벌거벗고 가난한 마음으로 살자. 누구에게나 관대하고 손해보며 욕먹어도 축복해 주며 영원히 살 사람들은 사랑하며 용서하며 희생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

107.두 측면의 마음

두 사람이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두 사람 다 딸기 한상자씩 선물고 받았습니다. 딸기중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벌레먹고, 상한 것도있었습니다. 그리고 딸기는 오래 보관을 못하는데 (날씨는 덥고 냉장고도 없었음) 하루에 다 먹을 수 없는 많은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이 딸기를 골라 먹는 방법이 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딸기중에서 제일 좋은 것부터 골라서 먹었고,하루가 지난후 나쁘고 상한 것은 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은 오래두고 먹을 욕심으로 상한 것은 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은 오래두고 먹을 욕심으로 나쁜 것 부터 먹고, 좋은 것은 남겨두었으나, 하루가 지난후 너무 상한 것은 먹지 못하고 내버렸습니다.
결구 한사람은 맛있고 좋은 것을 맛볼수 있었으나, 또 한사람은 나쁜 것만을 먹다가 버렸는데, 버린 양은 좋은 것부터 골라 먹은 사람과 같은 분량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즉 똑같은 한 상자에 해당되는 70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같은 환경, 같은 세상속에서 희노애락을 겪어가면서 인생살이는 하는데 어떤 사람은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마음으로 불평 짜증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되면 아무리 세상일지라도 그 속에 밝음을 찾아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게되는데, 이런 자세가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면에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사는 세상 사람은 어두운 세상에서 헛된 것만을 추구하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후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롬12:2).
"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잠 13:15-16)

108.인간의 본심

언젠가 속리산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생식(생식)을 하면서 15년 동안 마음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사람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에게 뭐하러 그렇게 돌아다니냐고 묻자그의 대답이 마음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았느냐고 다시 묻자아직 못 찾았다고 하길래 그럼 언제 찾을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모르겠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사람은 바르게 진단한 것입니다.
물론 마음이 있기야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가짜 마음입니다. 병든 마음,미친 마음, 취한 마음, 환장한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고, 이리저리 몰리고, 쫓기고 쫓겨서 푸토코스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본심으로 돌아갑니다.
병들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까지 연극을 하면서 죽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마지막임종하기 직전에 대개 본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자기와 싸우던 사람에게도 "날용서해 주시오."하고 용서를 빕니다. 최후의 숨넘어가는 사람이 이를 갈면서 "내가죽어도 원귀가 되겠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아무리 억울한 사람이라도 "미안하게 됐다."고 하며 죽습니다. 본심은 그런 것입니다. 본심은 사랑으로돌아갑니다. 생명을 걸고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 버렸거나, 자기 자녀가 셋이나 한꺼번에 죽어 버린 사람을 얼마 후에 만나러 가 보면 세상을 참 잘못 살아온 것 같다며 많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2-5)

109. 항상 잊어서는 안될것

"열 번 길을 물어보는 것이 한 번 길을 잃는 것보다 낫다." 이 속담은 인생의 기본을 가르친다. 유대인은 "율법의 민족"이라고도 불리지만, 율법이 누구에게나 납득되는 인생의기본적 규례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을 경시하기 쉽다. 걷는 법, 뛰는 법, 먹는 법, 앉는 법부터 살아 가는 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가 하는 것은 의외로 옛부터 변함이 없는 것이다.
한 번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들을 종종 한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변함이 없으며,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결국은 같은일이 약간 형태를 바꾸어 일어나고 있을 따름이다.
오래된 가르침을 지킨다는 것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 행동을 통계로 뽑아 이 경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이다.
미국의 아무리 뛰어난 시장조사 회사나 여론조사 기관이라도 과거 수천년 동안을거슬러 올라가 사람들을 면접하고 통계를 종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대의 율법이나 가르침이라는 것은 그와 같은 것이다.
기본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이야기가 <탈무드>에 실려 있다.
어느 마을에 영리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만일 닭이 달걀을 품고 알을 깔 때와 같은 온도를 유지해 준다면 얼마든지 병아리를 만들어 그것을 팔아 부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연구가 이루어져 그는 자기가 고안한 장치에다 사온 갓난 달걀을 넣으려 했다.그러나 얼떨결에 달걀 상자를 떨어뜨렸다. 달걀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는 기본을잃어버린 것이다.
"소가 아무리 젖을 짜내더라도 그 뒤에 젖이 들어있는 바게츠를 발길로 차 버리면아무 쓸데 없다"고도 한다.
고도의 지성에 따라 행해지는 일이라도 늘 기본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110. 무감각의 고통

일본의 작가 중 엔도 슈우사꾸라는 사람이 <바다와 독약>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본의 후방 기지 병원에 있던 젊은 군의관 로다는일본 군부의 명령을 받아 미군 포로를 잡아다가 마취시켜서 생체 실험하는 데 참가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군 포로를 잡아서 진단하는 척하다가 그 포로들에게 병이 들
었으니까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미군 포로가 처음에는 의심하고 거부해 보려고 했지만 적의 의사이든 아군 의사이든 혹은 전쟁 중이든 평화시이든 의사만은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사에 대한 절대 신뢰로 수술을 승락했습니다. 일본 의사는 미국 포로의 몸을 해부해서 왼쪽 폐 전체를 잘라 내고 오른쪽 폐의 상엽
을 절단했습니다. 폐를 얼마만큼 남겨 놓았을 때 사람은 얼마 동안 살 수 있는가를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리를 잘랐을 경우에는 얼마 동안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생체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로다라는 의사는 그 순간에 자기의귓가에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죽였다. 죽였다.'라는 소리가 들려
왔고, 또 '나는 책임이 없다.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안할 수 없다. 나와는상관없다. 나는 책임이 없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이후로 의사는 거의 자아를 상실하고 망령처럼 삽니다. 자기가 잘라 낸 미군 포로의 폐를 보며 그 젊은 의사는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그는 미쳐 버렸습니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의 폐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인 인간의 일부분을 보고도 무감각하고 괴로와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자기의 마음을 보고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가책이었습니다. 가슴의 고통이었습니다.
마음을 찢는 회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생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설혹 세상의 재판관이 비록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정상을 참작해 줄지라도 이대로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겨 놓고 그 작품은 끝납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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