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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성탄, 낮아짐의 끝자락
대통령 선거는 “높아지기” 경쟁의 절정입니다. 총을 통해 최고가 되는 권력 게임이 아니라 선거를 통한 선택받는 게임입니다. 사상자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승자와 승리한 지지자들은 환호의 축배(祝杯)를 마시지만 패자와 패자의 지지자들은 절망의 쓴잔을 마십니다. 패자 편에 선 자들은 신문도 텔레비전도 보기 싫을 것입니다. 높아지기 게임인 선거는 '누가 옳으냐?'를 결정하는 시험도 아니고, '누가 실력이 있느냐?'를 묻는 실력 경쟁도 아닙니다. 선거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 그가 주장하는 것, 그가 속한 당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호(好), 불호(不好)의 게임입니다. 같은 편을 많이 만드는 편이 이기는 숫자 마케팅입니다.
미국 MIT 필립코틀러 교수에 의하면 "정치도 하나의 상품이라 규정하고 마치 비누를 만들어 세련되게 포장하고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호의적인 상품 이미지를 창출해 내듯이 선거에 입후보한 정치인을 메시지로 잘 포장해서 세련되게 채색하여 광고함으로써 유권자들로 하여금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호, 불호의 마케팅 수단으로 학연과 지연, 혈연, 종교와 이념, 공약 등을 내 걸고 자신을 선택할 자를 유혹 합니다. 유권자들의 선호도를 미리 분석하여 후보자를 이에 맞춰 광고하는 마케팅을 합니다. 호감을 줄 수 있는 요소를 개발하고 상대의 비호감은 드러내고, 자신의 비호감 요소는 제거하며 유권자들이 선호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선전합니다. 그것이 결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어 최고의 자리에 이르게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의 화신”이라고 말한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가 "정치는 일체의 도덕 ·종교에서 독립된 존재이므로 일정한 정치목적을 위한 수단이 도덕·종교에 반(反)하더라도 목적달성이라는 결과에 따라서 수단의 반(反)도덕성 ·반(反)종교성은 정당화된다"고 말했듯이 그 게임은 목적 달성이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선거를 통해 높아진 자가 높여준 자들을 망각하고 반대한 유권자를 적으로 해석하면 권력은 사유화된 칼이 되기 쉽습니다. 권력이 힘을 가지면 가질수록 섬김의 도구가 아니라 휘두름의 도구가 되면 높아지기 경쟁은 참화로 끝이 납니다.
'이솝우화' 중에 신에게 왕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개구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구리들은 신에게 왕을 요구하였는데 신은 나무토막을 내려 보내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낀 개구리들은 다른 왕을 보내달라고 재차 요구합니다. 신에 의해 새로운 왕으로 군림한 물뱀이 개구리들을 모두 잡아먹는다는 내용입니다. 국민에게서 나온 권력은 국민을 섬기라고 부여해 준 것입니다. 섬김은 낮아짐의 자세를 잃지 않을 때 이루어집니다.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자리로 내려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지식과 돈과 권력이 있어도 자신의 수준에 맞는 사람과 어울리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수준에 맞는 옷을 입고, 수준에 맞는 차를 타고, 수준에 맞는 집에 살고, 수준에 맞는 백화점에 다니고, 수준에 맞는 친구를 사귀고, 수준에 맞는 교회에 다니길 원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서석재씨는 그의 논문 [중산층 대형교회론]을 통해 기독교 신자들이 새로 교회를 선택할 때 교회의 유명도나 신도들의 사회 경제적 수준 등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형교회 신자들 중 상당수는 소속한 교회가 [수준 높은 식자층과 중산층들이 다니는 교회]로 사회에 알려져 있어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며, 이 교회 신자가 됨으로써 자신도 중산층으로 동일시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고, 비교적 편하게 다니며 이런 교회 정도는 다녀야 사회적 체면이 선다는 식의 [지위상승 욕구]나 [나도 중산층]이라는 소속감을 가지려는 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느 국회의원이 다니는 교회, 어느 재벌, 어느 유명인, 어느 연예인, 어느 교수, 어느 유명한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 어느 정도 수가 많이 모이는 교회에 다녀야 신앙생활도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표상은 성탄절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탄생부터 화려한 장식이나 마케팅의 도구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낮고 낮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화려한 호텔에 오신 것이 아니라 마구간, 그것도 말구유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최고의 권력자가 낮아지심의 끝자락에 서신 것입니다. 최고로 높으신 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낮아졌습니다. 성경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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