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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안의 우상 정신과 사상들

에스라 궁극이............... 조회 수 1546 추천 수 0 2014.01.06 10:39:59
.........
성경본문 : 스1:1-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1 1-4.

 

1-4: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져서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 살만에셀에 의해서 호세아 때에는 완전히 정복을 당했고, 또 이스라엘 백성을 잡아간 앗수르 왕이 북조 이스라엘을 분산정책을 써버렸습니다. 흩어버렸다 그 말이요. 그 때 남조에는 웃시야 왕 치세 기간인데,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지요.

 

웃시야 왕 다음에 요담 왕, 아하스 왕,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이렇게 남조 유다는 시드기야 왕으로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조에는 또 다니엘이나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잡혀갈 때는 소년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에스겔은 동 시대의 사람으로서 1차 포로 때에 다니엘이 왕궁으로 잡혀갔고, 2차 포로 때에는 에스겔이 그발강변으로 잡혀가서 얼마간 또 활동을 했습니다. 아마 에스겔은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지방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예언을 했던 모양입니다. 다니엘과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서로 만났을지도 몰라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다고 하는 이것을 예언한 눈물의 선지자라 그렇게 말들을 하지요. 예레미야가 백성들이 이 예언을 듣지 않으니까 ‘이제는 잡혀가더라도 대항을 하지 말아라. 대항을 안 해야 산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그렇게 말을 하자 어떤 정객들은 ‘예루살렘을 끝까지 사수를 하자. 예루살렘 성지를 지켜야 된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항복을 하라고 하고, 비신앙적 비애족적인 장로들과 방백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생명을 내대고 예루살렘을 지켜야 한다고 그런단 말이요.

 

그러니까 그 때 당시로 볼 때는 생명을 내대고 예루살렘을 지키자고 하는 자들이 상당히 보수적이고 신앙적이고 애국적으로 보여지고, 항복을 하자고 하는 예레미야는 비애국자로 보인단 말이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예루살렘을 사수하자고 하는 자들이 비신앙적이고 비애국자인데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예루살렘을 지키자고 하니까 그들이 애국자로 보인다 그 말이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비애국적으로 보이거든. ? 항복을 하라고 그러니까. ‘항복을 하지 말고 목숨을 걸고 싸우자’ 이렇게 해야 만이 애국자로 보일 턴데 행복을 하라고 그러니까 사람들 눈에는 비애국자로 보인단 말이요. 이래서 이제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이 통에 백성들은 갈팡질팡하게 되지요. 이때에 또 나타난 선지자가 에스겔 선지자가 되는 거지요.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갈 때에 대항도 없었습니다. 소년이니까 순순히 잡혀가게 되는 거지요. 보나마나 부모 형제들은 전란으로 전쟁 통에 죽고 다니엘은 소년으로서 잡혀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은 상당히 차원 높은 싸움을 하는 겁니다. 전면적인 그런 대결이 아니고, ‘머리를 숙이느냐, 안 숙이느냐’ 그것보다도 ‘바벨론 너희들은 우리 유대와 예루살렘을 정복을 했지?’ 그러니까 다니엘은 이 바벨론과의 싸움이 붙습니다.

 

‘그런데 한 편 유다가 즉 예루살렘이 왜 바벨론에게 잡혔느냐? 왜 먹혔느냐? 그 이유는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민들에게 천대를 받고 선민들로부터 하나님은 버림을 받았다. 그러니 버려진 이 하나님을 누가 모시고 오느냐?’ 다니엘은 그렇게 생각을 한다 그 말이요. 버려진 하나님을 누가 모시고 오느냐?

 

당시는 제사장은 제사를 성대히 하나님 앞에 드렸지만 하나님을 버린 정치적 이스라엘 종말의 때입니다. 정신적으로 가치적으로 하나님을 버렸다 그 말이요. 호칭적으로 명칭적으로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그 말이요.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가치적으로는 하나님을 버렸다 그 말이요.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는데 마음의 가치, 자기의 가치, 자기의 정신에서 하나님을 버렸어. 이것이 정치적인 이스라엘 종말이다 그 말이지요.

 

하나님을 내버려놓고 하나님을 부르고, 입으로는 부르는데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내버리고. 십일조 바치고 금식을 하고 의식과 제도적으로 활동적으로는 하나님을 버리지는 아니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종교운동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지는 아니했으나 종교운동을 하는 그 속의 마음의 수지가 그 중심에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있었다 그 말이요. 이게 이제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는데, 예수님을 부르는데 마음중심 사상에는 딴 것이 들어있어. 이게 우상이란 말이요. 우리가 우상의 개념을 신앙적으로 바로 내릴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우상의 유형을 보면 하나님 외의 다른 그 어떤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잘 되게 해 주고 유익하게 해 주고 기쁘게 해 준다고 하는 그게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을 버린 거. 이거는 자기가 스스로 말하기를 마음에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 즉 세상 것을 의지하는 것. 이런 사고방식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가 있지요?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단 말이요. ‘돈이면 제일이다’ 그런단 말이요.

 

이런 경우 부모도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자녀도 우상이 될 수도 있고, 형제도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산업도 직장도 우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 다 그렇게 돼 있단 말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거 없이는 못 산다’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우상을 섬기는 거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안 믿는다고 그래도, 불교도 기독교도 안 믿는다고 그래도 그 사람 속에 뭐가 들어 있느냐? 결국 인간이 아니면 물질적인 것이 들어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우상을 섬기는 거다.

 

그러면 자기가 의지하고 있는 그것이 우상이 될 수 있는 권리가 있느냐 하면 권리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상이 되게 하는 것은, 우상을 만들어놓는 것은 상대가 아니고 내가 그것을 우상으로 만든다 그 말이요.

 

우리 주변에 우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컴퓨터가 나를 지켜준다. 컴퓨터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하면 그게 우상이요.

 

하나님께서는 우상이라면 그게 사람이던 물건이던 산업이던 직장이던 없애버리고, 그 우상을 만든 사람도 하나님이 죽여 버립니다. 만든 사람도 죽고, 우상이 된 것도 없애버린다 그 말이요. 이게 성경에서 말하는 심판이란 말이요.

 

또 무엇이 우상이냐 하면 믿는 사람들에게서 이걸 볼 수가 있는데, 자기의 마음의 수지 마음의 정착지를 어떤 것에다가 딱 맞추어 놓고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을 부르면서 주님을 섬기는 것. 이것도 우상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우리 자식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거. ‘우리 자식이 주님을 많이 닮게 해 주십시오’ 이게 아니고 세상에서 뭐가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것. 사람 바로 만들어지는 이게 아니고 돈도 잘 벌고 행복하게 잘 살고 집도 사서 고생도 않게 사는 그런 면에다 붙여서 ‘우리 자식 잘 되게 해 주십시오’하는 거.

 

그러니까 그런 경우 자식을 주격으로 세워놓고 하나님을 끌어다가 놓은 것이니 이게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주격과 소유격이 바뀌어져 버린 거지요. 주인과 종이 바꾸어져 버렸어요. 하나님이 주격이 되고 주인이 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주격이 되고 주인이 됐어. 그러니까 주님이 종이 돼 버리고 심부름꾼이 돼 버린 거지. 그게 우상이란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독교 안의 우상도 볼 줄 알아야 되고, 기독교 외의 일반 우상도 볼 줄 알아야 돼요. 기독교 안의 우상과 기독교 밖의 우상의 차이점을 우리가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구분해서 볼 때에 예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에게 따라다니도록 만드는 것. 내가 주님을 따르는 게 아니고 주님이 나를 따라다니도록 하게 하려는 이게 우상입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우상이지요. 구원이 무엇인지 바로 알지 못하면 자기가 우상을 섬기는 줄도 모른 채 자기가 가장 잘 믿는 것으로 위안제 마시게 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미래적 영감의 감화를 갖고 있어요. 이걸 갖고 있으면 예비적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에스겔은 현재적 영감의 감화를 많이 갖고 있어요. 다니엘은 예비적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을 이용해 버렸어요. 총리대신이 되었어도 바벨론에 빠지지 않고 누림성에 빠지지 않고 바벨론을 이용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져도 그 사자 굴에 감염되지 않고, 풀무 불에 던져져도 그 풀무 불에 감염되지 않았어요. ‘그게 무섭다’ 하면 그건 벌써 감염이 된 거지요. ‘무섭다’ 하는 건 감염이 된 거요. 그런데 다니엘은 감염이 안 됐단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이론보다도 실력이다. 그러니 평소에 실력을 길러놔야 되는 거지요. 미래적 영감의 감화를 받으면 현재를 알아요. 현재를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 신앙생활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신약성경에 별을 연구하는 동방박사가 나오는데 이들은 박사증을 따기 위해서 별을 연구한 것이 아니고 메시아를 만나려고 별을 연구했다 그 말이요. 그래서 학위가 없다고 할지라도 박사실력은 갖고 있다 그 말이요.

 

너는 너의 죄의 대가지불을 하려고 하지 말아라. 인간은 죄의 대가지불을 할 능력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죗값은 도성인신하신 주님께서 대형 대행으로 다 지불을 했습니다. 행동으로 표면적으로 육의 종교운동을 하는 것, 의식과 제도를 지키는 것, 율법을 지키는 것 이런 것은 전부 성화구원을 이루기 위한 방편입니다. 죗값을 갚으려는 게 아니라 그 말이요. 계명을 아무리 지켜도 예수님과 동행이 없이 계명을 지키면 안 됩니다. 우리가 부모공경의 계명은 지킬 수가 있어요. 그러나 부모공경을 안 할 수도 있다 그 말이요. 말은 부모공경을 지키는데 속에서 부모공경은 안 할 수가 있다.

 

계명이 활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주님의 그 말씀과 그 인격에 내가 능동적으로 피동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동적 피동은 유익이 없어요. 말씀의 인격성과 동행을 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입게 되지요.

 

8:23에 ‘양자 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라고 한 것은 점차적으로 입어나가는 구원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항상 동행을 하면 예수님을 닮게 되지요. 심판 날에 가견적인 것은 다 때려 부수고 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은 것만 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이런 활동 저런 활동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요.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것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 말이요. 그러나 심판 때에는 그것이 다 부서지지만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입은 게 있다면 그건 끄떡이 없어. 내 속에 남는 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뿐이야. 이거는 영원히 불타지 않는다 그 말이요.

 

그런데 보면 예수 믿는 믿음을 어디다 붙이느냐 하면 일에다 딱 목적을 붙여놓고 산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 일을 잘 이루어야 예수 잘 믿는 것이다’ 한단 말이요. 그런데 심판 때에 그걸 다 때려 부수고 나면 자기 속에 남는 게 뭐냐? 아무 것도 없단 말이요. 목적이 그 일이었으니까 자기 속에 하나님의 성품을 입은 게 없단 말이요.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목적으로 진리이치를 깨닫고 일을 했더라면 일한 그게 다 때려 부서져도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남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시간성 노동성 정력성이 일 거기에 다 투자가 됐고, 그것이 복음인양 신양인양 했던 그게 다 부서지고 없어지면 자기 속에는 예수를 닮은 그건 없는 거지요. 그 헛 믿은 거지요. 그게 우상이다 그 말이요. 그것이 우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불타지 않을 것을 입히기 위해서 말씀을 다양하게 주셨습니다. 그 주신 말씀 속에서 우리가 성화구원, 이 성화구원은 자체구원이요. 이 자체구원은 또 능력구원입니다. 복합으로 되어 있어요. 우리가 이걸 입어야 되는 거지요.

 

말씀이 주님이 나에게 인격적으로 와서 ‘이것 하자, 저것 하자’ 한단 말이요. 그런데 인간 편에서 보면 그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면 내 시간은 하나도 없다 그 말이요. 인간 편에서 이론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 말이요. 내 시간은 없어. 말하자면 주님의 일을 하다 보니까 세상적으로 성공 출세를 못 했어. 그러면 주님에게 다 빼앗긴 것이 아니겠느냐? 그거는 주님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고 알고 보면 결과적으로 빼앗긴 것 같으나 전부 다 투자가 된 겁니다. 이것은 시간구원이요 시간저축이 된 거란 말이요.

 

물론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구원이 많습니다. 자체적 구원도 있을 수 있고, 소유적 구원도 있을 수 있고, 시간적 구원, 경제적 구원, 정력적 구원, 목숨구원 등 이게 다 들어 있을 수 있다 그 말이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 자체를 놓고 성공여부를 묻는 게 아닙니다. 순종여부를 묻는다 그 말이요. 순종여부를 본다 그 말이요. 그런데 보통 보면 예수님께서 일을 못해가지고 자기에게 예수님의 일 좀 도와달라는 식으로 알고 예수 믿는 사람이 많더라 그 말이요. 이렇게 되면 누가 시은자가 되고, 누가 수은자가 되느냐?

 

만일 예수님이 당신이 일을 못해서 우리에게 일을 시킨 것이라면 우리가 그 일을 잘 해 드리면 주님이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될 거라 그 말이요. 우리는 수은자의 위치를 잘 지켜야 신앙입니다. 이런 자세로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순종을 하면 보이지 않는 충만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울로 있던 그 얼굴 그 몸과 똑같은 그대로 입니다. 껍데기는 옛날 그대로이지만 그러나 속은 예수님으로 바꾸어 놨다 그 말이요. 즉 그의 인격성 사상 소원 욕망 쾌락 전부 다 주님 것으로 바꿔 놓았다 그 말이요.

 

이렇게 한 사도바울은 아마 자체적 구원 능력구원, 이 성화구원을 많이 입은 것 같아요. 그 속에는 경제적 구원, 정력구원, 시간구원 목숨구원이 다 들어있지요. 상당히 많이 입은 것 같아요.

 

우리는 이런 다양한 구원을 입고 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에스라서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걸 보여주시는 겁니다. 왜 그들이 잡혀갔느냐? 잡혀갔다가 되돌아 와서 그들이 한 일이 무엇이냐? 우리가 이제 에스라서 뒤를 죽 보면 그런 게 다 나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의 역사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고레스가 이 명령을 했지요? 우리가 성화구원을 입어 갈 때에 모든 것은 다 동원이 됩니다. 심지어 사단 마귀까지 동원이 돼요. 도와준다 그 말이요. 성화구원을 도와준다. 사단 마귀는 대립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대립적으로 도와준다 그 말이요. 이런 면을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성도의 성화구원을 위해 동원시키시는 그 목적을 보고 나도 그 눈을 가지고 세상을 넓게 볼 때에 세상 모두는 우리의 성화구원을 이루어 갈 재료들로 보여지게 되는 겁니다.

 

이 구원을 모르면 자칫 잘못하면 예수 믿으면서 우상을 섬기게 돼요. 오늘날 기독자들이 잘 믿는다고 그러면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신앙사상을 많이 볼 수 있고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말이요. 교단적으로도 그런 것을 볼 수 있고, 종교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의 신앙 속에서도 우상을 섬기고 있는 신앙사상을 볼 수가 있더라 그 말이요.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정치적 이스라엘 종말 때에 그들이 입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고, 제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상당히 호화찬란하고 웅대하게 하나님을 부르고 지켰지만 그러나 그 마음속의 깊은 중심 속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한 마디로 말하면 세상 것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끌어다 부른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때 당시의 그것이 악한 짓들이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고, 우상을 의지하는 것이니, 그 정신에서 그들이 이웃 나라를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했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역시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 안에 그런 우상을 섬기는 신앙사상을 흔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설교로도 들을 수 있고 기도로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것을 아는 오늘날 저희들이 어떤 식으로 기도를 해야 할지, 어떤 식의 신앙을 가져야 할지 바른 깨달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자타의 성화구원을 위해서 열심으로 살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이 성화구원은 영원히 가는 줄 압니다. 이 신앙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이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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