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경제와 세상]‘여인국’의 인구는 어떻게 늘었을까
뉴스언론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조회 수 812 추천 수 0 2014.01.09 07:52:20[경제와 세상]‘여인국’의 인구는 어떻게 늘었을까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경향신문 2014.1.9
오늘은 우화(寓話)의 세계로 가 보자. 옛날에 여인들만 사는 나라가 있었다. 남자들이 없으니 인구가 늘어날 수 없었다. 이 나라의 왕, 아니 여왕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이름 하여 ‘외국남자 결혼촉진법’. 그리고 신랑감이 될 남자들을 구하기 위해 해외를 순방했다. 여인국에는 여인이 많으니 수지맞는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꼭 여인국에 들러서 결혼을 해 달라고 세일즈를 했다.
하나 둘씩 남자들이 왔다. 그들은 제후가 부럽지 않게 살았다. 혼숫감으로 이것저것 요구하고, 부인에게는 툭하면 밥을 줄였다. 여왕은 “가정평화 정착”을 외치며 ‘밥값 상승 억제’를 주요 국가 시책으로 정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남자들은 부인이 밥을 많이 먹는다며 가정 경영의 필요가 있는 경우 ‘정리이혼’이 가능하게 해 달라고 졸랐다. 여왕은 흔쾌히 허락했다. 남자들은 “밀면 밀리는구나” 생각하고는 더 대담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비정규 부인’을 허용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통과되니 그 다음에는 ‘부인파견제’를 들고 나왔다. 부인들이 ‘학대받는 부인들의 조합’을 만들어서 항의하니, 남자들은 이런 항의 때문에 가정 평화가 훼손되어 손해가 발생했다고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이들을 사법당국에 ‘가사활동방해죄’로 고소했다.
이 우화의 중반부는 우울하다. 여자들의 지위가 흔들리니 출산과 육아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정규 부인은 언제 정리이혼 당할지 모르는데 애 딸린 이혼녀가 되기 싫어서 출산에 소극적이 되고, 비정규 부인이나 파견된 부인들은 아예 출산을 생각지도 않았다. 애초의 정책 목표였던 인구증가는 턱도 없었다. 다급해진 여왕은 남자들의 대표들을 왕궁으로 불러 제발 결혼하고 애를 낳아 달라고 애걸했다. 그러자 남자들은 마지못해 연간 결혼 목표를 내놓았다. 그 중 행실이 좋지 못한 남자 하나만 유독 화려한 결혼 계획을 발표했다. 여왕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들의 결혼 계획은 모두 외국에 가서 결혼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른 여인국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회가 엉망이 되면서 여인국의 인구는 정체되고 급기야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도 역전되었다. 학대의 대상인 여자는 계속 줄어들었지만 남자들은 오히려 지천이었다.다급해진 여왕은 옛날부터 써왔던 정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외국에 나가 결혼 세일즈를 하고, 외국남자 결혼촉진법을 개정하여 규제를 더욱 완화하기로 했다. 세금도 더 깎아 주기로 했다. 남자들이 원한다면 비정규 부인 제도나 부인 파견제도도 더욱 입맛대로 해 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인구는 늘지 않았다. 여왕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우화의 끝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희비극이다. 비극의 결말은 간단하다. 이 나라는 인구 감소를 겪다가 망했다. 여왕도 쫓겨났다. 여왕의 그 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희비극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그 시작은 여왕이 감옥에 갇힌 어떤 신하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비롯된다. 이 신하는 “가정민주화”를 외치다가 여왕의 미움을 사서 쫓겨났었다. 이 신하의 진언은 간단했다. 발상을 바꾸면 바로 옆에 정답이 있다고.
문제해결의 핵심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여자들의 권익 증진이었다. 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의식주를 풍요롭게 하고, 좋은 교육을 시켜서 훌륭한 신붓감으로 만들면 남자들이 줄을 선다는 것이다. 부인의 밥을 줄일 것이 아니라, 부인의 행복을 높여야 된다는 것이다. 밥하고 빨래하고 양복 다림질에만 매달려서야 언제 정신차리고 출산과 육아를 생각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여왕은 크게 느낀 바 있어 가정민주화를 국정의 제일 지표로 삼았다. 비정규 부인은 모두 정규 부인으로 전환시켰고, 부인파견제는 금지했다. 이렇게 되자 남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외국에 나가서 그저 그런 신붓감을 맞이해서 질펀하게 살 것인지, 아니면 이 여인국에서 훌륭한 신붓감을 맞이해서 애 낳고 살 것인지. 일부 탕아들은 외국으로 나갔지만 정신 똑바로 박힌 남자들은 되돌아왔다. 사회는 안정되고, 인구는 증가했다. 이 버전은 여왕의 결혼과 쌍둥이의 출산으로 끝을 맺었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