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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53. 책에 미쳐 살다 요절한 성간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에 미쳐서 사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조선 명종 때 윤원형처럼 땅투기에 미쳤다면 지벽(地癖)이고, 술 마시고 눈밭에 얼어 죽었다는 화원 최북은 주벽(酒癖)이며. 시(詩) 짓기에 빠진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는 시벽(詩癖)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돈 밝히는 전벽(錢癖), 차에 미치면 다벽(茶癖), 틈나는 대로 손을 씻는 결벽(潔癖),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상소꾼 소벽(疏癖)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쳐서 사는 벽(癖)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박제가는 “벽이 없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특히 책읽기에 빠진 책벌레는 서음(書淫) 또는 전벽(傳癖)이라 했다는데 구소수간 한 권을 천 번이나 읽었다는 세종도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종 때 성간(成侃, 1427~1488)이란 사람도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거정이 쓴 《필원잡기(筆苑雜記)》에 보면 성간의 일화가 나옵니다. 성간은 제자백가는 물론 천문지리의약불경산법역어 따위를 모두 섭렵했고 누구네 집에 희귀본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반드시 구해보았다고 하지요.
심지어 성간은 서거정이 집현전에 있을 때 찾아와 외부인에게 보여주지 못하게 되어 있는 장서각 비장본을 보여 달라고 애원하여 허락을 받고 밤새 등불을 켜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 후 10년 뒤 성간이 과거에 올라 집현전에 들어왔는데 장서각에 파묻혀 밤낮으로 책만 읽으니 종료들이 그를 서음전벽이라 놀려댔다고 합니다. 결국 성간은 책읽기에 빠진 나머지 몸이 여위고 파리하게 되어 30살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한 가지 벽(癖)에 빠지시지는 않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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