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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83: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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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시83편)
본문: 시편 83: 1- 18
신앙인에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왜 저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습니까? 저의 다급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으면서 왜 그렇게 침묵하십니까? 극심한 고난을 당하는데도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잉거솔(Ingersoll)이라는 독일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강연에서든지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무신론 강연에 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절정에 이르자 갑자기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를 풀더니 하나님에 대한 도전장을 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당신에게 5분이라는 시간을 주겠소. 나는 5분 동안 당신을 저주할 것이오. 만약 당신이 살아있다면 나를 저주하고 형벌을 내리시오.” 그리고 그는 5분 동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5분이 지났는데도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저를 보십시오. 이만하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때 그의 강연장 뒤편에 있던 한 노인이 서서히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감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한 그리스도인이오. 내가 감히 당신의 연설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면, 오늘 당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단지 당신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명했을 뿐이지요. 내가 믿고 경험한 하나님은 내가 그분을 떠나서 거스를 때 책망하시고 때로는 징계까지 하셨던 분이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당신에 대해서 침묵하셨소. 그분의 침묵은 곧 당신이 그의 자녀가 아니라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로마서 1:28)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하나님께서는 때로 불의에 대해 침묵하십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합1:2)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응답치 않으심이 원망스러운 나머지 ‘속이는 시내’ 같다고 한탄하였습니다.(렘15:18) 이처럼 하나님은 종종 이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곧바로 실행치 않으시고 침묵하십니다.
무신론자들과 회의론자들은 이러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두고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불의한 자들로 인한 성도들의 고통의 부르짖음에 대해 침묵하시는 것은 곧 성도 자신의 연단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욥23:10) 이처럼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데에는 분명 그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숙한 성도는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회의나 좌절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하심 속에는 반드시 그분의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한규 목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저녁 6시 20분경에 아내와 저는 교회 앞에서 유치원 차를 타고 오는 딸 은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보니 행복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좋아하는 맛있는 어묵을 요리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슈퍼마켓에 들르자고 졸라댔습니다. 웬만하면 은혜의 요청을 들어주겠지만 그 순간만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에 은혜가 좋아하는 어묵을 준비해 놓았는데, 영양가도 없는 과자를 사주어서 입맛을 버리면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은혜는 엄마 아빠의 마음도 모르고 막 떼를 쓰며 울었습니다. 껌 사줘요! 과자 사줘요! 엉엉엉! 은혜야! 집에 가면 맛있는 어묵이 있어! 조금만 참으면 돼! 그래도 은혜는 그 잠깐의 순간을 참지 못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어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아내 울고 있는 은혜에게 재빨리 냄비에서 어묵 꼬치 하나를 꺼내 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은혜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영양가 없는 껌과 과자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들의 종합적인 영양을 고려하여 잠시 침묵으로 대응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침묵 속에는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한 음성이 들어 있습니다.
일본작가 엔도 슈샤꾸의 작품에 「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온 기독교가 박해를 당해서 많은 성도들이 순교할 때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로 해서 쓴 책입니다. 박해자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좋아 하는데 너희들도 십자가에 죽어보라"고 하며 바다 한 가운데에다 십자가를 세워 놓고 거기에 신자들을 묶어 놓습니다. 이제 밀물 때가 되어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이윽고 물속에 그들은 잠겨서 죽게 되었습니다. 박해자들은 그들에게 어느 때에라도 예수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답니다. 두 사람의 카톨릭 교인이 순교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화란 신부는 그들을 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오지 않자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고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 합니다. 그때에 그의 심경 깊은 곳에 고요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통에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고통과 신음에 외면하고 침묵하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의 눈물을 흘릴 때에 주님께서도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아파할 때 우리 주님께서도 아파하시며, 여러분이 슬퍼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더 슬퍼하고 계십니다.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 영광스런 구원에 넉넉히 이를 수 있도록 연단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난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크게 노래할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큰 고난을 겪었던 사람일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을 동정 하지만 그 때에는 모두 그들을 부러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
본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멸하려 드는 원수들의 도모에 대해 고발하는 전반부(1- 8절)와 그들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기를 간구하는 후반부(9- 18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제국을 이룩한 로마는 두 개의 유명한 보병 사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레 군단’이라는 밀리틴 군단입니다.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176년 게르만 민족과의 전쟁 때 붙여 준 별명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군은 북으로 진군하던 중에 가파른 산 위에서 적들에게 포위됐습니다. 계속되는 더위와 가뭄은 군사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때 근위병 중의 한 명이 황제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밀리틴 군단이 기도의 능력을 믿는 기독교인들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했던 황제는 “그들로 기도하게 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 밀리틴의 군사들은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로마군을 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밀리틴 군사들의 기도는 밤새도록 계속됐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는 순간에 먹구름이 몰려왔고, 천둥이 치기 시작하더니 강한 폭풍이 적의 요새를 덮쳤습니다. 폭풍은 적의 심장부를 기습해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상처는 로마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폭풍은 환호하는 로마군에게 단비로 변해 내리더니 이내 그치고 말았습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이 일이 있은 후 밀리틴 군단을 ‘우레 군단’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공격을 잠재울 수 있는 신적 병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사탄의 공격을 그에게 치명적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1. 위기 앞에서 부르짖음 (시83:1~8)
아삽은 공동체의 위기 앞에 침묵하고 계신 듯한 하나님을 불러 흔들어 깨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머리를 쳐들고 날뛰는 자들이 ‘주의 원수들’,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치려는 대상이 바로 ‘주의 백성’, ‘주께서 숨기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적들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아닌 ‘주’를 대적해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의 이름이 세상에서 영원히 기억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서로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에 대해 아삽은 대적의 정체를 하나님께 낱낱이 아룁니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주변 국가뿐 아니라 앗수르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음을 아룁니다. 이런 위기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삽과 같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2. 대적의 멸망을 위한 기도 (시83: 9~18)
하나님이 대적들을 물리치신 사건들을 잘 알면 우리의 기도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구체적으로 행하신 것처럼, 지금도 구체적으로 행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대적도 지금의 대적과 동일한 목표를 가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목장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하나님이 과거에 대적들에게 행하신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행하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굴러가는 검불같이, 바람에 날리는 초개같이 되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대적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놀라 결국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그들은 멸망의 순간에 가서야 주님의 이름을 찾을 것이고, 여호와만이 세상의 지존자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본서는 결국 택한 백성들에게는 보호와 구원으로, 그리고 그 대적자들에게는 패배와 멸망으로 갚는 공의의 행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역사 속에서 반드시 실현될 줄로 확신하는 시인의 믿음을 잘 드러내 주는데 오늘날 불의가 판치고 악인이 득세하는 현실 가운데서 낙심하기 쉬운 우리도 그 같은 하나님의 최종적 공의의 보응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침묵에는 큰 뜻이 있음을 깨달아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고 기다리게 하소서. 영적으로 무지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깨닫게 하시고, 징계 뒤에 따라오는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손길을 기뻐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존귀와 영광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 주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 묵상:
0 오늘날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들은 누구입니까? 현대 교회가 처한 위기 앞에서 내가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0 내 삶의 현장에서 지금도 영적 전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느낍니까? 하나님만이 세상의 지존자이심을 삶 속에서 전파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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