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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2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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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주일설교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거절하는 믿음
히11:24-26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람을 든다면 단연 모세일 것입니다. 모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바울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홀드맨이라는 사람은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의 생애는 일련의 충격적인 대조를 나타내 보여주는 삶이다. 그는 노예의 자녀였으나 황녀의 아들이었고, 오두막에서 태어났으나 궁중에서 살았다. 그는 가난을 물려받았으나 국왕의 부를 누렸고, 군대의 지도자였으나 양떼를 지키는 목동이었다. 그는 전사였으나 온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다.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광야에 거했다. 그는 애굽의 지혜를 가졌지만 하나님을 어린아이와 같이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였다. 그는 도시생활에 익숙했으나 광야에서 방황하는 유랑자였고, 죄악의 유혹을 받았지만 경건함으로 승리하였다. 그는 눌변이어서 말을 잘 못했지만, 밤 깊고 배고픈 줄 모르고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얘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목자의 지팡이 하나밖에 가진 것이 없었지만 무한한 능력을 행사한 자였으며, 바로 앞에서 도망자였지만 하늘나라의 사신이었다. 그는 율법을 받은 자였으나 은혜의 선구자였다. 그는 느보산에서 그처럼 그리던 가나안을 바라보며 한을 품고 돌아갔지만, 후에 그리스도와 함께 이스라엘 한복판 변화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의논한 사람이었다. 그의 장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장사지내셨다.”
그러나 이 찬사로는 모세의 생애를 나타내기에 역부족입니다. 모세는 그보다 훨씬 탁월하고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생애는 출생부터 임종까지 기적으로 가득 찬 생애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모세의 출생과 성장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간섭과 역사로 이루어졌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을 받아 애굽의 절대군주였던 바로와 정면으로 대결하여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모세는 바다를 갈라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게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땅과도 같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했습니다. 그는 120세에 죽었는데, 그때까지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렸는데, 이 칭호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칭호였습니다. 성경은 모세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모세는 그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대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상)
무엇이 모세를 그토록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올바른 결단을 내린 믿음이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올바른 결단을 잘 내립니다.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못합니다. 모세는 세상의 것들을 거절하고 최상의 것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40세가 되었을 때 모세는 자기 일생을 좌우하게 될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가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함께 봅시다.
애굽의 권력을 버림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24절) 이것은 그가 애굽의 엄청난 권세를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모세가 애굽의 왕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에게는 이 공주 외에 자녀가 없었는데, 바로와 그의 공주가 모세를 왕위계승자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이 공주는 바로의 무남독녀였는데, 자기가 왕위를 계승하지 않고 자기 남편을 왕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공주의 영향력은 매우 컸으며, 자라가면서 모세는 매우 유망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주는 자기 아들 모세의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따라서 모세는 애굽의 학문에 능통하기까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설혹 그가 왕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이 정도로 유망한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이란 대단히 매력적인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한 번 권력을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국가의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주위의 작은 권력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권력을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버린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막대한 권력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모든 권력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돈과 좋은 환경을 거절함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24절)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는데, 그것은 권력뿐만 아니라 모든 부요를 거절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세는 궁궐에서 애굽의 모든 부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이 되거나 막강한 권력을 권력자가 되어 부귀영화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굽의 모든 부요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는 것은 또 모든 좋은 환경을 거절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세는 거기서 최상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나쁜 환경에서 좋은 환경으로 옮겨가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에서 나쁜 환경으로 옮겨가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편리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옛날의 문화 환경으로 돌아간다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화장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굽 궁전의 최상의 환경을 버리고 광야에서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양모의 정을 버림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24절) 아마도 모세에게 가장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기를 길러 준 양어머니의 정을 뿌리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올바른 사람일수록 돈이나 권력을 버리는 것보다 정과 의리를 버리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한 것은 정을 뿌리치는 것만이 아니라 은혜를 배반하는 것도 되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의 양어머니는 모세에게 “나에게는 너 하나밖에 없지 않느냐?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에게는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오직 소명을 좇아
이러한 모세는 요셉의 경우와 대조됩니다. 모세는 애굽의 권력과 명예와 부귀와 영화를 거절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애굽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포기하거나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거절했는데, 왜 요셉은 그러지 않았을까요?
모세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와 명예와 영화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을 멸망의 위기에서 건져냈으며,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전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는 최고 권력가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총리라는 직책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내려가 좋은 환경 속에서 맘껏 번성하는 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재직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일하도록 부르셨던 것입니다.
모세도 요셉처럼 애굽의 왕이나 최고 권력가가 되어 더 크고 영향력 있게 쓰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앞에서 살펴본 대로 모세는 어쩌면 애굽의 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모세는 애굽의 권세와 부귀영화를 거절했을까요? 물론 모세가 원한다면 그 모든 것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애굽의 부귀영화를 떠나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도록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그것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목회의 소명을 받는 것은 21살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목사가 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가 목사보다는 좋은 장로 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장로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원하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저에게는 목회 이외의 세상 모든 것들이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길이었지만, 목회 이외의 인생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갖다 준다 해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준다 해도, 목회가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될 때까지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도 가난과 고생을 많이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생을 하면서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만일 목회를 그만 둔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목회를 그만 둔다면 인생을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모세도 그랬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높은 권세를 얻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일이 모세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그런 것들에 조금도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동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길만이 그가 인생을 살아갈 이유와 의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렇게 부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 봄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한 것은 그보다 더 높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무엇이 더 귀하고 좋은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24-26절)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만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위하여 잠시 누리는 죄악의 쾌락을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높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더 높고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것들과 하늘의 것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거절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모세는 그의 선택으로 자신의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보화와 그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애굽의 부와 권력과 웅장함에 압도당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면에서 모세가 내린 결단은 애굽의 생활을 완전히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우선순위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처럼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명에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돈과 명예와 풍요가 반드시 죄악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우선순위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세상 것들이 우리에게 우선적인 것이나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면,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건강이 하나님 섬기는 것과 믿음 지키는 일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범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는 나에게 주신 이 모든 것들을 언제든지 다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것을 잠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는 언제든지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선한 청지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가서 결산할 때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당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까, 세상 부귀영화입니까? 당신의 첫 번째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당신의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입니까? 부요와 명예와 평안을 얻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입니까?
진정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더 높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것과 충돌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단호히 거절합니다. 당신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무엇을 거절했습니까?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나님의 뜻을 좇기 위하여 무엇을 버렸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아무리 좋게 보여도 거절할 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은 버릴 것을 버리고,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용기를 갖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의 인생을 모세처럼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만듭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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