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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78. 구제쌀을 나누며 가난한 이웃을 살피던 설 풍경
“넉넉지 못한 살님에 금음날 밤까지 사정 업는 지주놈의 빗 졸님에 죽을 지경임니다. 새해 첫날 아침에 차레를 지내고는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업시 모혀 안저 고향 생각에 일장 우름판이 터짐이다. 「친구 생각도 나고 친척도 보고 십구나! 우리가 왜 천리 타국으로 왓단 말인가.」「이 사람 울지 말게. 우리도 어서 돈을 모아 고향으로 가세.」... ... 이것이 서간도(西間島) 과세(過歲)의 1막(一幕)임니다. 그저 조와하는 것은 어린이들임니다. 고흔 옷을 닙고 설날 새벽부터 깁버 뛰놈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아해들아 너희는 오날부터 한 살식 더 먹엇다. 어서어서 자라서 고국을 차저 가자.」 이럿케 축복할 뿐임니다.”
위는 잡지 《별건곤》 제25호(1930,1,1)에 나오는 ‘서간도 정월 풍경’입니다. 일제강점기 낯선 타향에서 설날을 맞은 설움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렇다고 당시 국내 사정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1935년 2월 3일치 동아일보 기사에는 서울 장안에서 설을 앞두고 구세군과 동사무소 직원들이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한 구제쌀(救濟米)를 나눠주었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부내 서대문정 1정목에 있는 구세군 본영에서는 며칠 남지 않은 음력 세말을 앞에 두고 제3차로 서대문서 관내의 1,050명에게 한 끼의 밥이라도 지어 먹게 하기 위하여 오후 2시 30분부터 본영 앞에서 백미 20가마를 가지고 1인당 1승 내지 2승의 백미를 분배하여 주었다. 또한 재동과 가회동 직원들도 세말이 박두하였으나 먹을 것이 없는 동네 73호 292명에게 한 되 쌀이라도 배급해주려고 동네 유지에게 거둔 백미를 오후 2시 무렵 재동보통학교에서 2승 5합씩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는 기사를 보면서 어려운 시절 서로 나누고 이웃을 살피던 따뜻한 마음을 읽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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