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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84. 임금도 돈을 빌렸던 이덕유와 어음
어음은 일정한 돈을 일정한 날짜에 치르기로 약속하는 유가증권입니다. 그 어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황현(黃玹)이 쓴 편년체의 역사책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있습니다. “이덕유는 서울의 중인이다. 나라에서 으뜸가는 부자로 민영준과 견주어도 더 앞선다. 젊었을 때 북경으로 들어가다가 요동에서 한 죄수를 보았다. 돈 천금만 있으면 죽음을 모면할 수 있다고 하기에 이덕유가 전대를 풀어 그에게 주었다.”
이후 다시 이덕유가 중국에 갔을 때 돈을 주었던 죄수가 그 돈을 갚으려고 기다렸다가 오지 않자 그 돈을 불려 밭을 사고 큰 농장을 만들어 소작료로 만석을 받는 재산을 만들어 놓았다며 바쳤지요. 그 뒤 이덕유는 집에 마제은(청나라 때의 말발굽 모양 돈)이 여러 곳간에 그득할 정도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중국에까지 알려지자 임금이 중국에 재물을 쓸 일이 있으면 이덕유에게 어음을 받아 보냈고, 청나라 장사꾼들도 임금의 옥쇄보다 이덕유의 어음을 더 믿었지요.
조선시대의 어음은 어험(魚驗) 또는 음표(音票)라고도 하였는데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상평통보가 교환수단으로 널리 유통하게 된 이후부터 신용을 으뜸으로 하는 개성상인 사이에서 먼저 쓰였습니다. 당시 어음은 보통 길이 6∼7치(한 치는 약 3.03cm로 20cm 안팎)와 너비 2∼3치의 종이에 쓰였지요. 일단 어음을 쓰면 보통 어음의 가운데를 지그재그 모양으로 잘라 채무자의 이름이 있는 쪽인 남표(男票, 雄片·雄票)를 채권자에게 주고 다른 한쪽인 여표(女票, 雌片·雌票)를 채무자가 가졌습니다. 남표를 가진 사람이 채무자에게 지급을 요구하면 채무자는 그가 가지고 있던 여표와 맞추어 보고 어음에 쓰인 돈을 주었었지요. 이덕유는 불쌍한 이에게 덕을 베풀고 그 덕은 다시 큰 재산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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