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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685. 정조가 백성에게 준 영양제 ‘제중단’
“본도의 민정은 거듭 흉년이 든 끝에다 또 춘궁기까지 당하였으니, 배불리 먹지 못하고 몹시 굶주린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구제하는 방법은 오로지 진휼을 하는 것과 곡물을 나누어 주는 두 가지 일에 의지하고 있는데, 수령들이 진휼할 때 곡물을 줄여서 몰래 자기의 호주머니를 채우고 곡물의 대여를 오로지 하리들에게 위임하여 농간을 부리게 놔두고 있으니, 아! 저 백성의 목숨을 어떻게 구제한단 말인가?”
위는 《정조실록》 7년(1783) 6월 8일의 기록 <영남 어사 심기태에게 암행어사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다>의 일부입니다. 수령과 그 수하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것에 대해 “아! 저 백성의 목숨을 어떻게 구제한단 말인가?”라며 가슴 아파 했던 백성사랑의 임금입니다. 정조의 백성사랑은 그의 치세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특히 수원 화성을 쌓을 때의 일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정조임금은 영의정 체재공에게 화성을 쌓을 때 그곳에 살던 백성을 쫓아내지 말라고 하여 성곽을 꾸불텅하게 쌓게 했던 임금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화성성역의궤》에 보면 성을 쌓는 과정에서 생긴 부상자는 팔달산 서쪽 임시 병원에 입원시키고 일당의 50%를 주었습니다. 또 정조는 무더위를 견디도록 ‘척서단(滌署丹)’이라는 약을 주었고, 노동에 힘들어하는 관련자 모두에게 ‘제중단(濟衆丹)’이라고 하는 영양제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조의 백성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겨울 정3품 당상관 이상만 귀마개를 할 수 있는 때에 성 쌓는 백성에게 털모자를 내려준 것입니다. 이에 화성유수 조심태는 장계를 올리면서 임금이 내려준 옷 1벌, 모자 하나가 추위를 전혀 걱정 없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성군이 좀 더 오래 살아 백성을 위한 개혁정책이 완성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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